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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일구 앵커 MBC 뉴스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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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9명 당선자 여러분들, 제발 싸우지 마세요.
머슴들이 싸움하면 그 집안 농사 누가 짓습니까."

위의 말은 총선 전 후로 17대 국회의원 당선자들이 분쟁을 일삼자, 이를 가르켜 최일구 앵커가 한 말이다.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주말 <MBC뉴스데스크>를 진행했던 최일구 앵커는, 내가 고등학교 1~2학년 일 때 즈음 매우 화제를 모았던 앵커였다. 기존 뉴스의 딱딱한 정보전달을 넘어서서 앵커도 저렇게 자신의 색깔로 저런 멘트를 할 수 있구나, 하며 꽤나 놀랐던 기억이 난다.

톡톡 튀는 그의 발언이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기도 했었고, 뉴스에 대한 재해석을 일으키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했다. 그저 정보를 따라 읽기만 한다고 여겨져, 앵무새라고 불리우는 아나운서들의 기존 이미지에서 탈피해 새로운 영역을 창조한 그는, 아나운서계의 '혁명가'라고 불리어도 아깝지 않을 듯하다.

그의 멘트가 대중에게 어록이 만들어지도록 인기 있었던 것은, 단순히 기존뉴스에 자신이 느꼈던 모두가 웃을 수 있는, 몇 마디의 생각을 더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의 멘트 속에는 우리 사회의 허와실을 찌르는, 굵고도 간결한 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더 나아가서는 뉴스가 일방적인 의미의 정보전달이 아니라, 뉴스도 대중과 하나의 '소통'이 가능함을 직접 보여준 인물이기도 했다.

그 당시 고등학교 문예부에 있었던 나는, 교지를 창작하면서 평소에 관심있었던 최일구 앵커를 인터뷰하기로 기획했다. 그래도 한편으로, 내가 보낸 메일을 확인하고, 답메일을 성실하게 써주실까? 하는 의아한 마음을 가진 채 취재 동기를 적고, 질문 몇 가지를 적은 채 최일구 앵커의 메일로 보냈었다. 걱정도 잠시, 이메일을 보낸 지 얼마 되지 않아 그에게 메일이 왔고, 20개 남짓한 질문을 빼곡 채워준 그 분의 메일을 받고 우리 부서 아이들 모두 감동의 탄성을 질렀던 기억이 난다.

다음은 최일구 앵커가 뉴스데스크로 활약했던, 2004년. 목포여자고등학고 <풍란>지 54호에 기재됬던 인터뷰 내용이다.

1) 무슨 계기로 앵커가 되셨나요?
작년 9월 당시 가을개편을 앞두고 주말뉴스의 앵커를 교체하려는 회사의 방침이 있었죠. 그때까지는 김상수 기자와 정혜정 아나운서가 주말을 진행했는데 당시 구영회 보도국장이 저에게 주말 앵커 해볼 생각이 있는가 물어왔습니다. 앵커는 원래 한번은 해보고 싶었던 보직이라 응하게 됐어요. 그리고 나서 앵커를 해보고 싶어하는 다른 기자 선후배들과 카메라테스트를 거쳐서 앵커를 맡게됐죠.

2) 앵커가 되는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요?
앵커가 되는 과정은 앞서의 답변에서 나온 것 같고 힘든 것은 없었죠. 모두 회사의 인사명령에 따른 것이니까요. 맡고 나서의 힘든 점을 묻는 것으로 생각하고 답변하자면 중압감이죠. 안방에서 보면 텔레비전이 시끄럽지만 뉴스를 생방송으로 진행하는 뉴스센터 안은 그야말로 적막강산입니다. 그곳에서 단 일초의 말실수나 행동에 이상이 있다면 방송사고로 이어지는 것인데 그에 대한 중압감이 제일 겁나는 대목이에요. 그리고 또 어느 정도 지나가면서 시청자들께서 제 얼굴을 알아보기 시작하는 것도 극복하기 힘든 부분이고 이 점은 아마 앵커를 그만둔 이후에도 갈 것 같아요. 그리고 웃으면서 뉴스진행을 해보라는 요구가 많으신데 그게 영 아직은 안됩니다. 참고로 저는 무지하게 웃으려고 노력하는데도 안되고 있어요.

3) 방송사에서, 최일구 앵커의 방식에 대한 첫 반응은 어땠나요?
앵커의 진행방식은 저는 일종의 창작활동이라고 봐요. 다 사람마다 개성이 다르기 때문에 그것을 선호하기도 하고 혹평하기도하고 그저 그렇게 보기도 하고 그런 겁니다. 왜 학생들이 웅변을 했다고 했을 때 보거나 듣는 사람마다 다 다른 것 아닙니까. 아 저 친구는 잘해, 아냐 내 맘에 안 들어, 하는 것 처럼 말이죠. 앵커의 진행방식에 대해 회사 내에선 공론화 된 적은 없습니다. 간간이 들려오는 이야기들뿐이었는데 좋다는 것 반 안 좋다는 것 반 정도였겠죠. 무엇보다 반응은 회사 밖의 신문이나 인터넷에서의 반응이 거꾸로 회사로 들어왔다고 해야할 겁니다.

4) 앵커가 되고 나서 후회한 적이 있나요? 있다면 이유를 말씀해주세요
우리 아이들이 아빠 때문에 학교나 동네에서 노출이 되고 있을 때가 가장 후회스럽습니다. 처음에 앵커 시작할 때도 이 점 때문에 망설이기도 했는데 요즘에도 역시 그렇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무슨 '어록'이라는게 돌아다니니까 우리 아이들의 친구들이 뒷자리에 앉아서 어록을 따라 해가면서 놀려대는 경우가 있다고 그러네요.

5) 앵커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앵커를 하기 전에는 몰랐는데 진정성을 갖고 멘트를 했을 때 시청자들께서 국민의 마음을 대변해줘 고맙다는 반응을 보여주실 땝니다.

6) 자신의 방송 중 가장 큰 실수는 무엇인가요?
너무 많죠. 새내기 기자시절 때 라디오 생방송을 전화로 연결해서 1987년 칼858기 폭파사건의 속보를 전했을 때였는데 너무 실수를 많이 했어요. 그것이 사단이 돼서 저는 사회부에서 한직으로 옮겨지는 일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런 고통은 곧 약이 되는 것 같아요. 절치부심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더 오기를 품고 취재현장 보도에 내 자신을 올인하게 만들었거든요. 우리 학생 여러분들도 지금 뭐가 안 좋다고 절대 포기하시면 안됩니다.

7) 일반방송을 할 때와, 뉴스를 방송할 때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취재기자를 하면서 일반뉴스를 할 때는 거의 대부분이 오디오와 화면을 편집해서 하기 때문에 실수 라는게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생방송은 어떤 돌발변수가 있을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겁니다. 다만 그것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거죠. 뉴스 생방송은 특히 코미디프로 등과는 다른 절제의 미덕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특히 그렇습니다.

8)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앵커와 그 이유는?(꼭 아나운서가 아니어도 되요)
글쎄요. 아저씨가 초등학교 당시 국민학생 때 저희 선친께서 TBC 뉴스전망대라는 메인뉴스를 자주 보셔서 따라봤는데 그때 앵커가 봉두완씨였어요. 존경까지는 아니더라도 인상적이었다고 봐야죠. 그때 그 분이 뉴스 클로징멘트를 할 때 이랬어요. 'TBC뉴스 전망대에서 바라본 오늘의 세계 ... 어둡습니다' 이렇게 짧은 멘트를 하나 하는데도 어린 내가 봐도 신선했고 아버지께서 무척 이런 멘트를 좋아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9) 뉴스 말고, 현재 맡아보고 싶은 프로그램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그런 건 없어요. 아저씨는 기자이지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소위 아나운서가 아니거든요. 실제로 아저씨는 말을 깔끔하게 이어가는 프로그램 진행자처럼 하는 솜씨는 없어요. 아저씨는 그저 회사가 맡긴 현재의 앵커라는 보직을 충실히 수행할 뿐입니다.

10) 뉴스를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충격적이거나) 기사거리는 무엇인가요?
뭐 많죠. 아저씨가 방송기자생활만 올해로 만19년인데 강산이 두 번 바뀌는 건데. 87년 6.29때 명동성당에서 우리 사건기자들은 '취재거부에 돌입하며'라는 성명서를 내고 취재거부를 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5공 때 민주화를 요구하는 국민들의 시위기사가 전혀 방송되지 않을 때였죠. 광주사태 때야 (그때는 아저씨가 대학2학년) 물론 더했겠지만.

이것이 촉발 되서 방송사의 민주화바람이 불고 노조가 출범하는 계기도 됐죠. 서진룸싸롱 살인사건도 있었고 그때는 한 달 동안 집에도 못 들어가고 여름에 서초 경찰서에서 살았어요. <2580>할 때는 딱지어음 사기사건을 취재했는데 모녀가 충청도에서 둘이 살면서 콩나물재배해서 서울에 납품하는데 2000만원 어치 콩나물을 납품 받고는 사기단이 도망쳤어요. 그 아주머니가 죽음을 결심하기도 했다고 그래요. 그래서 경제사범은 살인범보다 더한 가정파괴범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아저씨의 이런 수많은 취재현장에서의 경험들이 앵커 멘트를 쓸 때 녹아드는 것 아닌가 생각해요.

11) 뉴스를 진행할 때 입는 옷차림이나 말투에 관한 앵커님의 생각은요?
옷은 회사에서 고용한 코디네이터가 양복상의, 넥타이, 와이셔츠를 갖다 놓으면 입게 됩니다. 제가 아는 많은 사람들 특히 제 딸이 매일 머리모양이 마음에 안든다고 불만이 크죠. 또 넥타이가 튄다거나 양복 색깔이 안 좋다거나 하는데 그 모든 걸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어요. 그냥 그대로 가는 거죠. 말투는 아저씨가 고향이 경기도 안성이라 그런 대로 표준말을 쓴다고 하는데 제가 이른바 대화체로 하다보니까 거슬리는 분들이 많은가 봐요.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그게 제 진행방식인데.

12) 만약 앵커가 되지 않았다면, 지금쯤 무슨 일을 하고 계실 것 같나요?
제가 지금 있는 부서가 통일외교부예요. 통일 북한 문제와 외교문제(예를 들면 고구려사 왜곡이라든가)를 다루는 부선데 통일외교부장을 도우면서 열심히 차장 역할을 하고 있을 겁니다. 앵커를 그만두면 이런 보직들을 맡게됩니다.

13)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은 무엇인가요?
최근에 읽은 책으론 엄홍길의 <8000미터의 희망과 고독>입니다.

14) 발음교정을 위해 특별히 연습하는 게 있나요?
방송사에 처음 입사했을 때 선배들이 신문을 큰 소리로 낭독하라고 그래요. 처음 작년에 이것 시작했을 때도 한두 번 그래봤는데 나이 먹어서 남사스럽기도 하고 해서 지금은 안 하는데 학생들에게 권한다면 신문이나 국어 책 영어 책을 큰 소리로 읽는 훈련이 좋을 것 같습니다. 발음이 좋아지는 것은 확실해질 것 같아요.

15) 앞으로 앵커가 되려는 학생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앵커가 되려는 학생들? 글쎄 앵커가 되는 길은 지금으로선 기자나 아나운서가 일단 돼야겠죠. 열심히 자신을 연마하는 겁니다. 이런 고된 훈련이 끝나고 나서 방송계에 입문을 한뒤에 또 열심히 해야 하는 겁니다. 인생은 열심히 살고 준비하는 자만이 결과물을 딸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참고로 아저씨는 서울의 대성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 그때 교훈이 이거였어요. '하자 하면 된다 할 수 있다.

자신을 아저씨라 칭하며 친절한 답변을 해주었던, 최일구 앵커의 인터뷰 내용을 편집하면서 느꼈던 것은, 대중과는 또 다른 엘리트층으로 여겨져 다소 거리감이 느껴졌던 티브이 속 아나운서의 모습이 그리 멀지 않게 다가왔단 것이었다. 짧은 인터뷰였지만, 그의 멘트처럼 무엇보다도 사람을 사랑하고 정말 진실된 모습이 그의 글 가운데 스며들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다소 신선했지만, 기존 뉴스가 가진 이미지로선, 파격적이기까지해 논란이 되었던 최일구 앵커의 멘트를 들을 때 그저 딱딱함을 넘어 무심하게까지 느껴졌던 뉴스까지도 서민들의 마음을 대변해 줄 통로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는 사실이 매우 기특하게 여겨졌다.

2005년이 지나가고 그를 뉴스에서 찾아 보지 못하게 되었을 때에 아쉬움과 그의 빈자리가 느껴졌지만, 수능과 입시의 전쟁에 동참했던 나로서는 돌연히 사라진 그에 대한 의문을 던져볼 마음의 여유조차 찾지 못했었다. 하지만 그렇게 어록만 남기고, 기억 속에서 잊혀지나 싶었던, 최일구 앵커가 5년여의 시간이 지난, 11월 6일 다시 MBC 주말 뉴스데스크에 복귀한다고 한다.

그의 복귀가 반갑기는 하지만, 마냥 맞아 줄 수만은 없는 것은, 현 사회는 최일구 앵커가 화제가 됐던, 5년 전의 참여정부의 시절과 달리, 방송인들뿐 만이 아니라 누리꾼들마저 현 정부의 치밀하고 집요한 인터넷 검열 등의 탄압방식으로 인해 함부로 현 세태에 대한, 비판의 어떤 말들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이 때, 최일구 앵커는 또 어떤 어록을 만들 수 있을지 궁금하다. 행여나 함부로 말했다 또 다시 그의 얼굴을 뉴스석에서 찾아보지 못하진 않을까 하는 걱정도 된다. 하지만, 아직도 그의 멘트가 우리에게 잊혀지지 않고, 아직까지 기억되는 것처럼, 그가 하나의 혜성처럼 반짝하고 사라져 버리는 별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항성처럼 롱런할 수있는 별로 남는 앵커가 되어 이 사회를 바로 비취는 그 역할을 잘 감당하기를 바란다.

※ 다음은 최일구 어록 중의 일부분이다.

최일구 어록
멘트1
네, LG전자 압력밥솥이 최근 전국에서 펑펑 터지고 있지 않습니까?
문제의 제품 5천여대 이상이 아직도 전국의 부엌에서 밥을 짓고 있거든요
폭발사고 위험이 매우 높습니다.
LG 밥솥 쓰시는 분 지금 당장 모델 확인해서 빨리 바꾸시고 5만원도 받아가세요.

멘트2
홍도는 빼어난 아름다움을 지녀서 섬 전체가 천연 기념물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홍도는 쓰레기와 오폐수로 오염되고 있습니다.
아직 가보지도 못했는데 홍도가 울고 있습니다.

멘트3
쓰레기 만두 파동으로 손만두집들까지 휘청거립니다.
조류독감때 치킨집들이 문닫던 악몽이 만두집들에 재현되고 있습니다.
만두의 옥석이 가려지고 있으니 이제 만두 먹어도 되는 거 아닙니까?
저희도 저녁에 만두 시켜 먹었습니다.

멘트4
일제시대 군 위안부 강제징집에 대해서 일본정부는 정부가 개입한게 아니라고 우겨왔습니다
기록이 없었기 때문인데 드디어 그 공식문서를 찾아냈습니다.
일본사람들 말이죠 우길 걸 우겨야죠.

멘트5
(뉴스 데스크 마무리 시간)
네 7호태풍 민들레가 홀씨가 되서 소멸되었습니다.
다음태풍도 장미 국화 채송화 이렇게 꽃으로 이름지으면 중간에 없어지지 않을까요??

멘트6
이 같은 과학수사의 필요성은 수없이 재기되었지만 달라진 건 없습니다.
전문가가 턱 없이 부족한 우리나라 현실에서 과학수사는 말뿐입니다
미국의 과학수사대 영화가 부러울 뿐 입니다.

멘트7
네, 이렇게 더울때는 냉면이 최고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일부 냉면집 육수에서 식중독균이 검출됬습니다.(기자가 취재를 하는 장면)
그래도 저는 냉면 먹겠습니다. 다음소식입니다.

멘트8
살인극의 용의자 유영철을 경찰이 조사까지 하고도 놓친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경찰서도 다른데도 아니고 유씨가 저지른 국의동 일가족 피살사건을 수사중인 곳 입니다.
어느서냐고요? 서대문 경찰서 입니다.

멘트9
일본행 여객기에 폭발물이 실려있다는 협박 전화가 또 왔습니다.
장난전화 였는데요. 이러니 또 보안검색 하느라 소동이 벌어졌지 뭡니까?
항공기 상대로 장난전화 하면 큰일 나니까 장난전화하지 마세요. 징역3년입니다.

멘트10
뚱뚱한 청소년들이 늘면서 건강을 위협받고 있습니다.
과체중 청소년의 80%가 합병증을 앓고 있습니다.
우리 청소년 여러분 운동 열심히 하셔야 합니다.

멘트11
동해바다 수온이 자꾸 올라가고 있습니다.
이러다 보니까 남평양이 고향인 아열대 어종들이 동해로 몰려들고 있습니다.
그래도 여름 해수욕에는 문제 없겠죠?


태그:#최일구, #뉴스데스크, #앵커, #MBC,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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