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부터 고로롱거리는 노인네 한 분과 모사를 꾸미기 시작했다. 뭔고 하니 가출을 해보자는 것이 그것인데 일이 성사가 되었다. 문학을 사랑하는 질척한 분들이 안동에 모인다는 첩보를 입수하고는 손가방 하나 달랑 메고 잽싸게 그쪽으로 합류를 한 것이다. 쉽게 말해서 합법적인 가출이 이루어진 것이다.
함께했던 분들의 프라이버시를 생각해서 그분들의 얼굴사진은 안 올리지만은 남들이 이러거나 말거나 그분들은 나의 기준에 부합되는 시인(詩人)이자 내 말을 가장 잘 들어주는 벗들이다. 그리하여 가을도 깊어만 가는 시월하고도 이십사일 귀도 안 들려, 눈도 침침해, 무릎의 도가니가 안 좋아 절룩거려, 도대체가 온전한 구석이 별로 없어 항상 고로롱거리는 한 분과 새벽잠을 설치고 안동행 승용차에 올랐다. 승용차에 제트기 엔진을 달았는가? 시속 180~200킬로를 넘나들며 서울서 안동까지 세 시간 만에 얌전히 내려놓고 사라진다.
여장을 풀 곳에 들어서자마자 "이 누꼬?" 하는 경상도의 억센 말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는데 잘만하면 한 대 후려칠 기색이다. 가갸거겨 고교구규 쏟아내는 말투로 봐서는 도저히 시인들이라 하기 어려운 분들이다. 그러나 시인이 어디 주둥이로 시를 쓰던가? 가슴으로 쓰지! 어~ 허허허~~~
참으로 안동사람들 대견스럽기도 하지, 내 술 좋아하는 것을 어찌 알고 아침부터 반주로 안동소주를 내놓는다. 속으로 "아, 이래서 안동을 양반의 고장이라고 하는구나!"하며 고상한 척 하느라 밥 반 공기에 안동소주 한고뿌 털어 넣는데 목구녕의 오래된 때가 씻겨 내려가는 듯 싸하다.
안동소주 두 잔에 뱃속도 훈훈해졌으니 주왕산으로 떠나려 채비를 챙기는데 무릎관절이 워낙이 안 좋건만 걱정이 덜 되는 것이 고로롱거리시는 한 분이 항상 내 옆에 계시고 나보다 열 살이나 많으신 형님도 한 분 계시기에 낙오를 해도 셋이 함께하겠지 하며 내심 음흉한 미소를 짓는다. 그러나...
이런 제기랄, 주왕산 정상 삼분지 일이나 올라갔을까? 발목이 시큰거리더니 땅을 디딜 수가 없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하면서 배는 아파오고 난리도 아니다. 할 수 없이 사람들 눈을 피해 등산로를 벗어나 엉덩이를 까고 앉았는데 등 뒤에서 형님 한 분이 "쟤가 원래 장이 안 좋아서 어쩌구..." 하시는 소리가 들린다. 나를 두둔해서 하시는 말씀인데 막말로 시아버지 앞에서 국 쏟고 방귀 뀌고 할 짓은 다 한 셈이 되었다. 한 가지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이 나 말고도 낙오자가 셋이나 더 있었으니, 이래서 아직은 살아볼만한 세상인가 보다.
암튼 내가 짝사랑하는 어린중생 하나와 중늙은이 둘을 모시고 산을 내려오니 고로롱 육십이 기다리고 계신다. 참 나도 기가 막히지만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오시는 분이다. 그렇게 낙오자 다섯이, 좋은 말로 어린 시인 하나 포함해서 유유자적한 선비 다섯이 모였는데 산 아래서 할 일이 뭐 있겠는가? 냉큼 빈대떡집으로 뛰어 들어가 메밀묵 한 사발과 빈대떡을 시켜놓고 술타령에 들어갔다. 빈대떡 맛이라야 다 그렇겠건만 못난 중생들 다섯이 깔깔거리며 그래도 우리가 잘났지? 해가며 서로를 추어주는데 참 맛나기도 맛난 메밀묵이고 빈대떡이다.
아마도 이번 안동여행은 나에게 있어 평생 잊지 못할 여행일 것만 같다. 평생이라야 지금의 내 꼴을 보면 맥시멈 이십 년 정도이겠지 만은 잊을 수 없는 추억거리를 지니고 산다는 게 얼마나 멋진 일인가? 안동이 처음이었지만 아무려면 나이 오십 잡숫도록 주왕산만한 풍경을 어디선들 못 보아서 감탄에 감탄을 하고 악 소리를 질러댔겠는가? 함께하는 사람들이 좋았고 풍경이 좋았고 안동의 넉넉한 인심이 좋았다. 그러면 되었지 뭘 더 바라겠는가?
한 가지 걱정이 있다면 이번 여행의 후유증이 좀은 오래갈 것 같아서 걱정이다.
* 고로롱팔십 : 몸이 약해서 늘 골골거리는 것을 고로롱거린다고 한다. 고로롱 고로롱하면서 여든까지 사는 것을 고로롱팔십이라고 한다. (도사리와 말모이)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http://blog.daum.net/hanast)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