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물의 미궁> 겉표지
▲ <물의 미궁> 겉표지
ⓒ 씨네21

관련사진보기

'여긴 수조로 만든 미로나 다름없어'

<물의 미궁>(이시모치 아사미 저, 씨네21 펴냄)의 도입부에서, 하네다 국제환경 수족관에 근무하는 사육계장 가타야마는 이런 생각을 머릿속에 떠올린다.

하네다 국제환경 수족관에는 총 서른여덟 개의 수조가 놓여 있다. 이 수조들이 질서정연하게 놓인 것이 아니라서 신입사원의 경우는 수조들 사이에서 방향감각을 잃고 헤멜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최소한의 조명만 켜두는 한밤 중에는 더욱 그렇다. 길이 복잡하고 어둡기 때문에 여름방학 중에 학생들을 대상으로 담력시험을 하기에도 적당할 정도다. 수족관에 들어가는 물의 전체 무게는 약 천 톤 가량이다.

천 톤의 물을 담고서 좁은 공간에 효율적으로 배치된 수조들, 그 수조를 비추는 밝지 않은 조명, 미로처럼 수조 사이를 가르는 통로들. 시쳇말로 '길치'인 사람이 혼자 여기 들어온다면 패닉 상태에 빠질지도 모르겠다.

3년 전 돌연사한 수족관 사육계장... 그의 기일에 온 '문자 한 통'

<물의 미궁>에서는 이렇게 복잡한 수족관에서 미궁에 빠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도입부에 등장했던 가타야마는 한밤중에 혼자서 수조를 차례대로 점검하다가 심장마비로 쓰러져서 숨을 거둔다. 사인은 과로로 인한 심부전증이다.

작품은 가타야마가 숨을 거둔 지 3년 후, 그의 기일에 시작된다. 많은 직원들에게 존경을 받았던 가타야마인 만큼, 기일이 되면 그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가타야마의 후배인 고가, 후카자와 이 두 사람도 마찬가지다. 고가는 수족관 사육계에서 근무 중이고 후카자와는 근처 전기회사에서 일한다.

후카자와는 가타야마의 기일을 맞아 수족관을 찾아서 가타야마의 액자에 헌화하고 오랜 친구인 고가와 함께 그 앞에서 합장한다. 그 직후에 이상한 일이 발생한다. 수족관 관장 앞으로 정체모를 휴대전화가 하나 전해진다. 관장과 직원들이 모두 궁금해하는 도중에 휴대전화로 다음과 같은 내용의 문자가 한 통 전송된다.

'도쿄만의 오염이 심하군요'

이 문자는 도쿄만을 재현한 수조에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관장은 즉시 직원을 그 수조로 보내고, 직원은 수조에서 알코올이 담긴 작은 병 하나를 꺼내온다. 커다란 수조에 알코올이 조금 뒤섞인다고 해서 그곳의 물고기들이 떼죽음 당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단지 알코올 근처에 있던 물고기들이 정신을 잃거나 기운이 약해지는 정도다.

그렇더라도 이건 고약한 행동이다. 전시생물들의 생명은 둘째치고 이런 장난이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 직원들은 수조에 대한 경계를 강화하지만 그것을 비웃기라도하듯 관장의 휴대전화로 계속 경고문자가 들어오고 해당 수조에는 위험물질이 투입된다. 직원들은 당황하면서도 분노한다.

그러던 도중에 고가와 후카자와는 오늘이 가타야마의 기일이고, 경고의 대상이 된 수조들은 가타야마가 죽던 날 뭔가 문제를 일으켰던 수조들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것은 우연의 일치일까. 아니면 범인은 죽은 가타야마와 어떤 연관이 있는 사람일까. 혼란속에서 직원 하나가 가타야마와 똑같은 상태로 죽음을 맞는다. 고약한 장난이 살인사건으로 변한 것이다.

또 다시 희생된 직원... 범인은 무엇을 노리고 있는걸까

작품 속에서 무대는 한 차례도 수족관을 벗어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수족관은 이런 장난 또는 범행을 저지르기에 적당한 장소일 수 있다. 수족관에 입장하는 하루 평균 관람객은 대략 8500명, 그중에서 상당수가 아이들이다. 수족관의 직원은 채 20명이 되지 않는다. 깔깔거리며 뛰어다니고 떠들어대는 아이들을 20명이 통제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이렇게 소란스러운 현장 속에서 범인이 수조의 개방된 위쪽 면으로 무엇인가를 집어넣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다. 요즘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현장에서 누가 문자를 보내는지 일일이 감시하는 것도 어렵다. 범인은 이런 허점을 노려서 수족관을 범행현장으로 택했을 것이다. 문제는 왜 하필이면 가타야마의 기일을 노렸느냐 하는 점이다.

고가도 수조들 한 가운데에 서서 두리번 거린다. 자신이 이 수족관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아무것도 모른채 유유히 헤엄치는 물고기들, 휴대전화를 가진 관람객, 그 속에 섞여있는 범인. 친숙하게 느껴졌던 수조들이 고가에게도 미궁으로 다가오는 순간, 수조 안의 물고기들도 애꿎은 희생양이 된다. <물의 미궁>을 읽고나면 수족관에 가서 수조와 물고기들을 그냥 보아 넘기지는 못할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물의 미궁> 이시모치 아사미 지음 / 김주영 옮김. 씨네21 펴냄.



물의 미궁

이시모치 아사미 지음, 김주영 옮김, 씨네21북스(2010)


#물의 미궁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