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정원사가 키 큰 향나무를 손질하고 있다. 삐죽삐죽 돋아난 싹들은 정원사의 눈높이에 영락없이 거세당한다. 향나무는 해마다 거의 같은 모양으로 가을을 난다. 한 번 그 모양은 계속 그 모양이다. 정돈되지 않으면 존재하기 힘든 향나무. 잘려나간 새싹들이 독하게 토해내는 향내가 하염없이 진하다.
생명이 있는 것들이 서럽게 잘려나가는 정원에서 상념에 젖는다. 내 안에 안주하고 있는 무수한 무생명체들이 생명체인 나를 괴롭히고 있다.
내 안에 탐욕을 떼어내고 싶다. 내 안에 모순덩어리를 잘라내고 싶다. 내 안에 무기력을 걷어내고 싶다. 내 안에 악성들을 싹둑싹둑 베어내고 싶다. 내 안에 위선을 떼어내고 싶다. 내안에 증오를 잘라내고 싶다. 내 안에 노여움을 걷어내고 싶다. 내 안에 표리부동을 싹둑싹둑 베어내고 싶다.
자유롭게 거침없이 뻗어나가야 할 생명들이 서슬 퍼런 가윗날에 거세당하고 있다. 차라리 내가 너였으면 좋겠다. 누군가 내 안에 잡것들, 헛것들을 잘라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을, 정원사의 날 선 가위가 사람의 눈으로 무질서한 새싹들을 잘라낸다. 나무는 나무대로 나는 나대로 서럽다. 내 안에 부재중인 진실과 사랑을 복원하려면 내 안에 거짓과 증오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정원사의 가위를 빌리고 싶다. 부지런히 쳐내다 보면 오롯한 열매 하나 열릴 수 있을까? 가을은 그렇게 깊어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