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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도 무더웠던 2010년 여름의 끝물, 여전히 폭염으로 시달리는 주말이었다. 9월 17일이면 경칩을 한참 지난 시기였지만, 더위는 물러설 줄을 몰랐다. 자연과학자들의 예언대로 과연 지구 온난화는 가속화되고 있는 것일까? 한낮은 거의 한여름 수준인 섭씨 30~33도를 넘나드는 불볕 더위였다. 주중에 비가 온 탓인지 습도가 높은 후텁지근한 날씨는 사람들에게 더욱 참기 어려운 고통을 주었다.

해변의 연인들 - 해운대 비치에 앉아 사랑의 밀어를 나누고 있는 아베크족의 풍경이 밤바다의 낭만을 새록새록 느끼게 해준다.
해변의 연인들- 해운대 비치에 앉아 사랑의 밀어를 나누고 있는 아베크족의 풍경이 밤바다의 낭만을 새록새록 느끼게 해준다. ⓒ 박태상

토요일 주말 오후 부산에서 특강을 마치고 화명역 근처에서 저녁식사로 낙지볶음을 먹은 후 제자가 새로 개업했다는 호프집으로 이동을 했다. 근처 중형마트에서 포도 한 박스를 선물로 샀다. 요즈음 추석을 앞두고 물가가 폭등하고 있다. 태풍으로 인한 홍수가 과일과 야채에 커다란 피해를 끼쳐 추석물가가 장난이 아니었다. 오이나 호박이 개당 2000~3000원씩 한다면 누가 믿을 것인가? 특히 삼겹살과 함께 싸 먹는 상추 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었다. 3인 가족이 먹을 만큼의 상추가 5000~6000원씩이나 하니 상추 때문에 삼겹살을 못 사먹을 지경이었다.

부산의 별미 ‘낙지볶음’ - 서울에서는 청진동 낙지골목에서 입을 호호 불면서 맵게 먹는 낙지볶음이 유명하지만, 부산의 낙지볶음도 여름의 미각을 자극하는데 일조를 한다.
부산의 별미 ‘낙지볶음’- 서울에서는 청진동 낙지골목에서 입을 호호 불면서 맵게 먹는 낙지볶음이 유명하지만, 부산의 낙지볶음도 여름의 미각을 자극하는데 일조를 한다. ⓒ 박태상

다행스럽게도 과일 중에서 포도 가격만 비교적 싼 편이었다. 포도 1박스에 15000~19000원이었다. 태풍도 심했지만, 폭염이 계속되어서 그런지 당도가 높아서 우리나라의 포도 맛이 칠레산 못지않았다. 마침 제자가 개업한 맥줏집은 세계맥주전문집이라 전 세계의 맥주가 대체로 갖추어져 있었다. 누구나 자기 취향대로 골라서 먹을 수 있어 좋았다. 버드와이저도 있고 쿠어스와 하이네켄도 있었다. 하지만 밀러만 없었다. 10여 년 전 미시간주립대학에서 객원교수를 보냈기 때문에 밀러에 대한 추억이 많다. 주로 시카고를 비롯하여 미국 동부지역에서는 밀러가 미국인들의 맛을 사로잡고 있었다. 밀러 대신에 우리나라의 카프리가 있어서 골뱅이 무침, 과일 모듬 그리고 포도 등을 안주 삼아 얼근하게 취할 정도로 맥주를 들이켰으며 일부는 소주 세 병을 시켜 폭탄주까지 돌렸다.

최근 여성 국회의원들 모임에서 박근혜 의원이 농담으로 던졌다는 '경상도 할머니와 미국남자 개그'('버스데이', '온데이' 등)를 소통도구로 하여 깔깔대다가 누군가가 취한 김에 바다를 보러 가자고 제안했다. 북구 화명역에서 해운대구까지는 자가용으로 50분 내지 한 시간이 걸리는 장거리였다. 자가용 2대와 택시 한 대로 분승하여 12~13명이 단숨에 해운대로 내달았다. 송정해수욕장으로 가자는 의견도 일부 있었으나, 역시 부산의 상징인 해운대로 방향을 정했다. 

해운대 비치의 길거리 가수 - 노보텔호텔 쪽 해운대비치에서 길거리 무명 가수가 흘러간 팝송을 구성지게 부르면서 연인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있다.
해운대 비치의 길거리 가수- 노보텔호텔 쪽 해운대비치에서 길거리 무명 가수가 흘러간 팝송을 구성지게 부르면서 연인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있다. ⓒ 박태상

폭염이 계속되던 여름이 거의 지나갔으나, 주말이라서 해운대는 인파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썩어도 준치'라고 했던가? 해수욕장으로서 기능을 상실한 해운대였지만, 여전히 매력이 있었다. 우선 한낮의 땡볕에 비해, 저녁 무렵 해운대의 바닷바람은 청량감을 느낄 정도로 시원했다. 일행 중 한 사람이 '부산갈매기'를 흥얼거렸고 이어서 '해변으로 가요!'를 소리쳐서 불렀다. 요즈음 부산갈매기로 상징되는 프로야구 롯데 팀이 4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것이 확정되었고 4번 타자 이대호선수가 홈런 44개로 1위를 달리고 있어 부산은 들썩거리고 있었다.

곧 11월이 다가오면 G20 정상회의가 열려 동백섬 누리마루에도 외국 정상들이 방문하여, 해운대 야경의 아름다움을 전 세계 사람들에게 선사하게 될 것이다. 여러모로 해운대는 자신만의 풍광을 뽐내게 될 것이다. 몇 년 전 부산시청 공무원으로 근무하는 제자로부터 <사진으로 보는 해운대 백년사>라는 귀중한 책을 선물 받았다. 컬러화보로 해운대해수욕장의 발전과정을 담은 책이었다. 따라서 1910년 일제 강점기의 해운대비치로부터 최근 해운대 해수욕장으로 발전된 모습까지 살펴볼 수 있게 되었다.

해운대 관중들의 조용한 호응(?) - 길거리 가수의 통기타 반주에 흥겨움을 느낀 관중들이 맥주를 들이키면서 노래를 경청하고 있다.
해운대 관중들의 조용한 호응(?)- 길거리 가수의 통기타 반주에 흥겨움을 느낀 관중들이 맥주를 들이키면서 노래를 경청하고 있다. ⓒ 박태상

사실 부산을 떠올릴 때면, 유행가요 「부산갈매기」보다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더 유명하다. " 꽃 피-는 동백섬에 봄-은 왔건만 형제 떠난 부산항에 갈매기만 슬피 우네 ! 오륙∼도 돌아가는 연락선마다……"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무명의 조용필을 1980년대 최고스타로 만든 대중가요이다. 특히 이 노래는 부산의 다방가나 카페 등 다운타운에서 호응을 얻어 서울로 그 인기의 물결을 북상시킨 것으로도 유명하다. 「돌아와요 부산항」에 나오는 '동백섬'과 '오륙도'는 해운대 앞 바다에서 잘 보이는 풍경들이다. 안개가 끼면 다섯 개 섬으로 보이다가 걷히면 여섯 개로 보인다는 '오륙도'의 모습도 바다에 대한 추억거리 중 하나일 것이다.

해운대에 진출한 독일 명차 BMW  - 해운대 해수욕장과 별로 어울릴 것 같지  않는 독일 자가용 <BMW 자동차 판매 영업점>이 밤새 환하게 네온을 켜놓고 고객들의 눈길을 모으고 있다.
해운대에 진출한 독일 명차 BMW - 해운대 해수욕장과 별로 어울릴 것 같지 않는 독일 자가용 이 밤새 환하게 네온을 켜놓고 고객들의 눈길을 모으고 있다. ⓒ 박태상

하지만 일부 부산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여름이 되면 100만 명이 놀러온다는 '해운대'라는 명칭이 바로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에 의해 신라시대에 지어졌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해운대'라는 이름은 고운 최치원 선생의 자 '해운(海雲)'에서 따온 것으로 고운이 벼슬을 버리고 가야산으로 가던 중 해운대에 들렀다가 달맞이고개 일대 등 절경에 심취되어 떠나지 못하고 머물렀는데, 그 무렵 동백섬 남단 암벽에 '해운대(海雲臺)' 라는 글씨를 남겼다는 전설에서 유래한다.

옛날에는 섬이었던 동백섬은 장산폭포에서 흘러내린 물과 좌동 동쪽 부흥동에서 내려온 물이 합류한 춘천이 좌동, 중동, 우동지역 충적평야의 모래를 실어 내려 육지와 연결된 육계도다. 이 섬에는 동백나무와 소나무가 울창하고, 남단 암벽 아래 해안가에는 황옥공주의 전설이 얽힌 인어상이 있다. 동백섬에는 고운선생의 동상과 기념비 그리고 그의 약전과 9편의 시가 적혀있는 비 등 문화유적이 산재해 있다. 또 하나 해운대 바닷가에는 조선 중엽의 유명한 문인인 이안눌이 최치원을 생각하며 지은 한시 「해운대에 올라(登海雲臺)」가 새겨진 시비가 해운대구청에 의해 1996년에 세워졌다.

헤밍웨이가 해운대에?  - 노보텔 호텔 앞에서 노트북의 무선인터넷으로 친구에게 이메일을 보내던 미국 관광객이 함께 사진을 촬영하자고 포즈를 취해주었다.
헤밍웨이가 해운대에? - 노보텔 호텔 앞에서 노트북의 무선인터넷으로 친구에게 이메일을 보내던 미국 관광객이 함께 사진을 촬영하자고 포즈를 취해주었다. ⓒ 박태상

조선비치호텔 쪽에서  해운대 비치를 내려다보며 산책로를 걷는 것은 환상적인 묘미를 느끼게 해준다. 그런데 경보로 길을 걷는 데 방해가 되는 시설물이 몰골을 드러내며 서있었다. 처음에는 짜증이 났으나 곧 공사설명을 보고 이해하게 되었다. 10월 초에 부산국제영화제 행사를 위한 가건물을 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15회 부산국제영화제는 67개국 308편의 영화가 초청돼 2010년 10월 7일부터 10월 15일까지 해운대와 남포동의 5개 극장에서 열릴 예정이다. 올 영화제의 개막작은 홍콩 장이머우 감독의 <산사나무 아래>이고, 폐막작은 장준환 감독, 일본의 유키삳다 이사오 감독, 태국의 위시트 사사나티엥 감독이 옴니버스 식으로 제작한 <카멜리아>이다.

해운대에서 소주와 조화를 이룬 횟감 - 해운대까지 가서 회를 한 접시 안 먹는다면 무슨 재미가 있을까?
해운대에서 소주와 조화를 이룬 횟감- 해운대까지 가서 회를 한 접시 안 먹는다면 무슨 재미가 있을까? ⓒ 박태상

회가 나오기 전의 밑반찬 - 우도 쪽의 해운대 바닷가 횟집에서의 밑반찬도 푸짐한 편이어서 소주와 맥주 등 폭탄주를 제조하여 수작(酬酌, 원래 술잔을 주고  받는다는 의미)을 부릴 수밖에 없었다.
회가 나오기 전의 밑반찬- 우도 쪽의 해운대 바닷가 횟집에서의 밑반찬도 푸짐한 편이어서 소주와 맥주 등 폭탄주를 제조하여 수작(酬酌, 원래 술잔을 주고 받는다는 의미)을 부릴 수밖에 없었다. ⓒ 박태상

해운대 비치에서는 젊은 연인들이 상호 밀착된 상태로 붙어 앉아서 밤바다를 바라보면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을 비추는 주황색 가로등은 실루엣이 되어 바다를 더욱 환상적으로 디자인하고 있었다.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컷을 놓칠 수 없어 디카 속에 담았다. 그리고 우리 일행들도 서로 같은 포즈를 취했다. 특히 거리의 가수가 중절모를 쓰고 흘러간 팝송을 부르고 있어서 발길을 멈추게 했다. 30여 명의 아베크족들이 무명가수의 노래를 경청하고 있었다. 또 노보텔 호텔(예전의 하이야트 호텔) 앞에는 한 미국인이 노트북 무선인터넷으로 친구에게 이메일을 보내다가 함께 포즈를 취해주었다. 그의 외모는 「노인과 바다」를 쓴 미국 소설가 헤밍웨이를 많이 닮았다.

또 해변의 밤바다에서는 연인들끼리 폭죽을 쏘면서 밤바다의 향기에 취해 있었다. 폭죽을 팔러 다니는 청년은 전동휠체어를 모는 장애인이어서 더욱 끝물여름의 해운대 바다를 을씨년스럽게 만들었다. 연인들이 취하는 야릇한 포즈(?)를 바라보면서 어느 듯 횟집이 모여 있는, 달맞이 고개가 보이는 곳까지 다다랐다. 해운대에서 횟집을 그냥 지나칠 수 있는가? 우리 일행은 누구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해운대 야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횟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모듬회를 안주 삼아 다시 소주를 한잔씩 돌렸다. 어항 속에서는 대게, 가라비 그리고 멍게 등이 꼼짝거리고 있었다.

해운대의 밤바다 - 니스도 좋고 베니스나 나폴리도 좋지만, 밤바다는 9월 중순의 해운대가 최고인 것으로 생각되었다.
해운대의 밤바다- 니스도 좋고 베니스나 나폴리도 좋지만, 밤바다는 9월 중순의 해운대가 최고인 것으로 생각되었다. ⓒ 박태상

"꽃 향기는 천리를 가고 사람의 향기는 만리를 간다"고 했던가? 바다의 비릿한 내음과 시원한 바닷바람에 취해서 모두들 목소리가 커져갔다. 처음에는 사람이 취하고 다음에는 술이 취하고 마지막에는 바다가 취한다고 하지 않는가? 모두들 최치원 같은 낭만파 시인이 되어 대학가요제 수상작 「저 바다에 누워」를 암송하고 있었다. 해운대의 야경은 이렇게 저물고 있었다. 누가 프랑스의 니스가 그렇게도 아름답다고 했던가? 이날 밤 한국의 니스, 해운대가 훨씬 더 살갑게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다. 부산 술에 취해 바다를 바라보며 "그것이 인생이야!(C'e la vie)"를 속삭이듯 외치고 있었다. 2010년 여름의 끝자락은 그렇게 흘러갔다.

덧붙이는 글 | 해운대는 한여름 해수욕장으로서 가치도 빛나지만, 가을로 접어드는 계절에 밤바다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점이 더욱 돋보인다. 니스도 좋고 베니스나 나폴리도 좋지만, 우리나라 해운대의 야경이 더욱 아름답다.



#해운대문화탐방기#최치원#제15회부산국제영화제#길거리 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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