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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10여 년 만에 찾아온 폭염으로 인해 '한여름'이란 말이 실감났다. 너무나도 땀이 많이 나서 그냥 집에서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2010년 8월 중순 여름방학을 맞아 무작정 각종 피서도구를 챙겨 트렁크에 꾸역꾸역 넣고 자가용을 몰았다. 사실 피서도구라야 큰 대형부채와 해수욕장용 보조의자가 전부였다.

8월 초 대형마트에서 여름 피서철 낚시터나 해수욕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멋진 보조의자를 싸게 팔아서 구입했는데, 춘천여행에서 요긴하게 사용했다. 피서지로 춘천을 선택한 이유는 CEO들을 대상으로 '신 한류열풍'에 대한 특강을 자주 하는 입장에서 요즘도  여전히 일본관광객들이 찾아 드는가 궁금증이 들었기 때문이다.

청평사 구성폭포 - 마치 북한의 개성에 있는 박연폭포와 흡사했다. 그래서 ‘리틀 박연폭포’로 부르기로 했다.
청평사 구성폭포- 마치 북한의 개성에 있는 박연폭포와 흡사했다. 그래서 ‘리틀 박연폭포’로 부르기로 했다. ⓒ 박태상

30여 차례 춘천을 방문했지만 번번이 가보지 못한 중도를 꼭 포함시키기로 했다. 중도에서는 매년 가을에 '재즈페스티벌'이 열린다. 그래서 이번의 춘천과 가평문화탐방 코스는 소양강댐과 청평사 ->공지천과 명동 ->중도 ->남이섬으로 정했다. 그 중 소양강댐과 청평사를 맨 먼저 탐방하기로 했다. 그 이유는 청평사를 가본 지 어언 20여 년이 흘러갔기 때문이다.

춘천 소양감댐 - 댐 위에서 바라다 본 소양강댐은 아늑하고 포근했다. 소양호는 면적만 1,608ha이고, 저수량만 무려 29억t인 한국 최대 크기의 호수로 그 수면직선거리만 60km이며 굴곡 수면거리는 약 120km라고 한다. 물문화관에서 나와 조금 내려가면 선착장에 닿을 수 있다.
춘천 소양감댐- 댐 위에서 바라다 본 소양강댐은 아늑하고 포근했다. 소양호는 면적만 1,608ha이고, 저수량만 무려 29억t인 한국 최대 크기의 호수로 그 수면직선거리만 60km이며 굴곡 수면거리는 약 120km라고 한다. 물문화관에서 나와 조금 내려가면 선착장에 닿을 수 있다. ⓒ 박태상

소양강댐에는 수상레저를 즐기려는 사람들을 위한  쾌속 보트와 유람선이 환상적인 파도 자국을 남기면서 달려가고 있었다. 역시 소양강댐은 수도권사람들의 소중한 휴양지임에 틀림이 없었다. 우선 소양강댐에서 청평사로 가는 선착장에는 길게 관광객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무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표를 사고는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연령층도 다양했다, 젊은 청년계층의 연인들도 많았지만, 대가족으로 보이는 3대 가족들도 있었고, 중년의 부부들도 많았다. 

수상레저의 공간 - 소양강댐은 홍수조절과 전기 공급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보트와 유람선을 즐기면서 일상 삶에서 일탈하여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휴양지이기도 하다.
수상레저의 공간- 소양강댐은 홍수조절과 전기 공급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보트와 유람선을 즐기면서 일상 삶에서 일탈하여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휴양지이기도 하다. ⓒ 박태상

그렇게도 무더운데 소양강을 가로질러 청평사로 향하는 피서객들은 인산인해였다. 오후의 날씨는 섭씨 35~36도를 오르내리고 있었다. 선착장을 내려 청평사까지는 2~3 km를 걸어야 하는데도 땀을 뻘뻘 흘리며 고행의 길을, 수도승마냥 걷고 있었다. 갑자기 인도여행과 티베트여행 때가 생각났다. 인도여행 때 보았던 힌두교도나 티베트탐방에서 목격했던 라마승처럼 성지순례를 하는 수도승과 마찬가지로 모두들 열정적으로 걷고 있었다.

청평사로 접어드는 오솔길을 오르면, 바로 시원한 폭포가 신성의 세계와 세속의 세계를 구분해주는 듯 관광객들을 반기고 서있다. 이 폭포는 요즈음은 구성폭포(九聲暴布)라고 불리고 있지만, 조선조에는 구송폭포(九松暴布)라고 명명되었다. 정약용은 이 폭포의 이름이 구성폭포가 된 연유에는 이자현이 소나무를 심어 그것이 구송으로 퍼져나가 폭포이름으로 굳어졌다고 증언했다.

다산 정약용은 상폭을 구송정 폭포, 하폭을 경운대 폭포로 각각 불렀다. 원래 아래 폭포의 반석과 구송대 사이에 아홉 그루 소나무가 자라고 있어 구송이란 접두어가 붙었다. 필자는 구송폭포를 '리틀 박연폭포'라고 명명하고 싶다. 그만큼 박연폭포와 이미지가 비슷하다. 물론 크기는 박연폭포의 1/3정도의 규모이다. 다만 개성은 쉽게 갈 수 없는 북한 땅이므로 개성이 고향인 분들은 구성폭포를 찾으면 향수를 느끼게 될 것이다.

‘공주와 상사뱀’ 전설 - 청평사에는 아름답고도 슬픈 이야기, 즉 중국의 공주와 평민총각과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로맨스가 불교설화로서 전해지고 있다.
‘공주와 상사뱀’ 전설- 청평사에는 아름답고도 슬픈 이야기, 즉 중국의 공주와 평민총각과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로맨스가 불교설화로서 전해지고 있다. ⓒ 박태상

구송폭포 옆에는 청평사와 연관된 슬픈 사랑의 이야기인 '공주와 상사뱀 설화'를 묘사한 동상이 자리 잡고 있다. 옛날 중국에서 공주와 몰래 계급을 초월해 사랑을 나누던 평민총각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황제에게 발각이 되어 청년은 처형을 당했다. 공주를 잊지 못한 총각은 상사뱀으로 환생하여 공주의 몸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여러 가지 의술과 주술을 사용해도 상사뱀은 떨어지지 않아서 점차 공주는 몸이 야위어 갔다. 결국 공주는 명산대찰을 찾아 불심에 의존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결국 우리나라의 청평사까지 찾아온 공주는 구성폭포 아래 작은 동굴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아침에 범종이 울리자 상사뱀에게 절에 불공을 드리러 가겠다고 말했는데, 상사뱀은 예상외로 공주의 몸을 풀어주었다.

계곡에서 목욕재계한 공주는 청평사를 찾아 불공을 올렸다. 공주가 늦게까지 오지 않자, 상사뱀은 공주를 찾아 청평사 회전문으로 들어선 순간 하늘에서 천둥벼락이 치면서 소나기가 내려 상사뱀은 그 자리에서 벼락을 맞아 죽고 그 사체는 빗물에 떠내려가 계곡의 물에 떠올랐다.

불공을 마치고 공주는 돌아왔다가 상사뱀이 죽은 것을 목격하고 정성껏 묻어준다. 그리고 오랫동안 청평사에 머물며 부처님의 은공에 감사드리는 천 배를 올리며, 삼층석탑을 시주하여 건축하였다. 오늘날에도 공주가 머물렀던 동굴을 '공주굴', 공주가 목욕했던 계곡을 '공주탕', 삼층석탑을 '공주탑'이라고 부른다.

청평사 회전문  - 중생들에게 윤회전생의 의미를 깨우치게 하기 위해 조선 명종 때 보우스님이 신축한 건물이다.
청평사 회전문 - 중생들에게 윤회전생의 의미를 깨우치게 하기 위해 조선 명종 때 보우스님이 신축한 건물이다. ⓒ 박태상

청평사를 내려오다 보면 계곡에 '영지'라는 연못이 있다. 이곳은 고려 말에 이자현이 조성한 고려정원이다. 우리나라 정원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고 일본 교토 사이호사(西芳寺)의 고산수식(枯山水式) 정원보다도 200년 앞선 정원이다. 구성폭포에서 오봉산 정상 부근의 식암까지 2km, 9천 여 평의 방대한 지역에 펼쳐진 고려정원은 계곡을 따라 주변의 자연경관을 최대한 살려 수로를 만들었다. 계곡의 물을 자연스럽게 정원 안에 끌어들여 영지에 연결시켰으며, 정자와 암자 등을 그 주변에 세워 자연의 섭리 속에 정진하는 불교정신을 잘 보여주고 있다.

다시 배를 타고 소양강댐을 거쳐 의암댐으로 자가용을 몰았다. 의암댐에는 펜촉모양을 한, 1930년대의 소설가 김유정의 문학비가 서있다. 김유정은 <봄 봄>, <동백꽃>, <따라지> 등 일제 강점기에 수탈당했던 조선 소작농들의 고통과 슬픔을 유머러스한 문체와 예리한 풍자적 수법으로 묘사하여 리얼리티를 부여하였다.

1980년대 말 필자는 김유정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주인공 '점순이와 그 아들'을 찾아내어 당시 <현대문학>에 게재함으로써 김유정문학의 사실성을 입증하여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몇 년 전 강원대학교 전상국교수의 노력으로 의암댐에서 멀지 않은 실레마을에 김유정의 생가가 복원, 김유정 문학촌이 형성돼 많은 관광객들을 유치하고 있다.

의암댐에 위치한 김유정 문학비 - <봄.봄>, <동백꽃> 등의 해박풍자소설을 집필한 1930년대 소설가 김유정을 기념하여 세운 문학비이다.
의암댐에 위치한 김유정 문학비- <봄.봄>, <동백꽃> 등의 해박풍자소설을 집필한 1930년대 소설가 김유정을 기념하여 세운 문학비이다. ⓒ 박태상

김유정 문학비에서 의암댐을 따라 남춘천에서 서울 쪽으로 나아가면, 바로 의암댐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하나 있다. 계단을 내려가다 보면, 담벼락에 조그만 표식이 하나 달려 있다.그것은 바로 영화 <말아톤>을 촬영한 현장이라는 설명이다. 그 계단을 좀 더 내려가면 인어아가씨 동상이 의암호수를 바라보며 서 있다. 호수 건너편에는 서울 등 수도권 등산객들이 많이 찾는 '삼악산 등선폭포 코스' 입구가 자리하고 있다.

영화 <말아톤> 촬영지 - 조승우, 김미숙 주연에 정윤철 감독 작품인 <말아톤>은 2005년 장애인들도 일반인과 다름없는 의지와 용기가 가지고 있음을 확인시켜준 명화다.
영화 <말아톤> 촬영지- 조승우, 김미숙 주연에 정윤철 감독 작품인 <말아톤>은 2005년 장애인들도 일반인과 다름없는 의지와 용기가 가지고 있음을 확인시켜준 명화다. ⓒ 박태상

다시 춘천 시내 쪽으로 차를 몰았다. 춘천시는 의암호, 춘천호, 소양호 등으로 둘러싸여 있어 '호반의 도시'라고 불린다. 서울에 한강둔치가 있듯이, 춘천에는 '공지천'이 있다. '공지천'은 춘천시민들의 레저공간이자 동시에 산책공간이기도 하다.

춘천에는 행정구역개편 때 개명한 퇴계동이 있다. 퇴계 이황의 외가마을로 퇴계가 여기까지 와서 지냈으므로 퇴계동이라 이름 지었다는 전설이 전해져 오지만,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는 없다고 한다.

퇴계 이황이 퇴계동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 어느 날 강아지가 찾아와서 마루 밑에서 쭈그리고 앉아 글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사실 강아지는 용왕의 아들로 학업을 게을리 하여 징벌로 개가 되었다고 한다.

나중에 퇴계의 은공을 안 용왕이 퇴계를 용궁으로 모셔 극진히 대접했다고 하며 용궁을 떠날 때 용왕이 짚 한 다발을 주면서 조금씩 잘라 잡수시라고 했다. 퇴계 이황 선생이 약간 남은 지푸라기를 공지천에 넣었더니 수많은 물고기가 되었다고 한다. '공지천'의 이름은 여기에서 유래한다. 

에티오피아 한국전쟁 참전기념관 내부 - 아프리카 대륙에 위치한 에티오피아는 인구 7,800만 명의 빈국이지만, 1950년 약 6, 000 여 명의 육군 보병을 교대로 파견하여 춘천과 철원 등지에서 북한 인민군과 격전을 펼쳐 한국을 지켜준 우방국이다.
에티오피아 한국전쟁 참전기념관 내부- 아프리카 대륙에 위치한 에티오피아는 인구 7,800만 명의 빈국이지만, 1950년 약 6, 000 여 명의 육군 보병을 교대로 파견하여 춘천과 철원 등지에서 북한 인민군과 격전을 펼쳐 한국을 지켜준 우방국이다. ⓒ 박태상

공지천에는 종합레포츠 시설이 있으며, 조각공원과 6·25 한국전쟁의 아픈 역사의 흔적을 담고 있는 '에피오피아 한국전 참전기념관'이 있다.

공지천을 둘러보고 나니 시장기가 느껴졌다. 아마도 경춘가도를 달리다가 춘천막국수 집이 보여서 점심식사로 막국수를 먹었기 때문이리라. 저녁은 튼실하게 먹어야 했다. 그래서 KBS TV 드라마 <겨울연가>로 인해 일어난 한류열풍 때문에 일본 관광객들이 매년 2 ~ 3백만 명이나 몰려들었던 춘천 명동을 찾아갔다. 춘천하면 닭갈비 아닌가? 춘천시는 관광객들을 위해 2000년대 초에 명동 닭갈비 골목을 만들어 관광지화 하였다.

춘천 명동의 닭갈비 골목 - 드라마 <겨울연가>로 일본관광객들이 밀려들면서 명소가 된 춘천 닭갈비 골목은 1970년 초 4개의 업소가 철판 요리로 본격적으로 닭갈비요리를 발전시켜서 명소로 만들었다. 현재는 30 ~ 40개 정도의 가게가 성업 중이다.
춘천 명동의 닭갈비 골목- 드라마 <겨울연가>로 일본관광객들이 밀려들면서 명소가 된 춘천 닭갈비 골목은 1970년 초 4개의 업소가 철판 요리로 본격적으로 닭갈비요리를 발전시켜서 명소로 만들었다. 현재는 30 ~ 40개 정도의 가게가 성업 중이다. ⓒ 박태상

드라마 <겨울연가>로 일본 관광객들이 밀려들면서 명소가 된 춘천 닭갈비 골목은 1970년 초 4개의 업소가 철판 요리를 본격적으로 시작해 닭갈비요리로 발전시켜 명소가 됐다. 현재는 30-40개 정도의 닭갈비 가게가 성업 중이다.

춘천 닭갈비 요리 - 춘천의 명물로 통하는 음식으로 야채, 떡 고구마와 닭갈비를 섞어 지글지글 익혀서 내놓는 요리로서 쫄깃쫄깃하고 매콤한 맛이 일품이다.
춘천 닭갈비 요리- 춘천의 명물로 통하는 음식으로 야채, 떡 고구마와 닭갈비를 섞어 지글지글 익혀서 내놓는 요리로서 쫄깃쫄깃하고 매콤한 맛이 일품이다. ⓒ 박태상

닭갈비 골목을 따라 30-40개 닭갈비 음식점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었다. 어느 곳이 원조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어 그냥 깔끔하고 손님이 많이 북적거리는 한 집을 들어갔다. 나중에 나와서 가격대를 비교해보니 1~2천 원 정도의 가격차가 있었다.

미리 확인하고 들어가면 비용을 절감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조라고 했지만 맛에서는 서울 닭갈비집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맛의 특화를 위한 많은 노력이 선행되어야 외국 관광객들이 지속적으로 몰려들 것이다. 그것이 바로 신한류열풍의 문화전략인 것이다.

덧붙이는 글 | 36도의 폭염 속에서 청평사로 들어가니 별천지가 나타났다. 바로 구성폭포이다. 외형은 황진이가 놀았다는 북한 개성의 박연폭포와 흡사했다. 그래서 '리틀박연폭포'로 부르기로 했다.



#춘천가평문화탐방#청평사#김유정문학비#에티오피아한국전쟁참전기념관#명동닭갈비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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