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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정의로운지 묻는 것은,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 이를테면 소득과 부, 의무와 권리, 권력과 기회, 공직과 영광 등을 어떻게 분배하는지 묻는 것이다. 정의로운 사회는 이것들을 올바르게 분배한다. 다시 말해, 각 개인에게 합당한 몫을 나누어 준다. 이때 누가, 왜 받을 자격이 있는가를 묻다 보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하버드대 마이클 샐던 교수가 던진 화두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논쟁이 우리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특히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집권후반기 핵심가치로 '공정한 사회'를 언급한 이후, 불거진 국무총리 지명자와 두 명의 장관 후보들의 낙마에 이어 유명환 외통부장관의 딸 외통부 특혜 채용으로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관심은 더 커지고 있다. 한마디로 칭찬과 공감 일색이다. 

샐던 교수는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질문이 해결 불능의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그런 질문을 던지고, 그와 관련한 논쟁을 하는 것은 '우리가 늘 이 질문에 답을 하며 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샐던은 스스로 '해결 불능의 문제'라고 말을 하면서도 자신의 수업에서 끊임없이 같은 질문을 던지는 이유를 "도덕적, 정치적 견해를 이해시키려는 것이 아니다. 학생들에게 비판적 태도를 심어 주어 중대한 도덕, 정치 문제에 직면했을 때 깊이 고민하는 시민이 되게 하는 것이 수업의 목적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샐던 교수의 이런 태도를 보며 어딘지 찜찜한 기분이 드는 건 그가 철저히 미국이라는 틀 안에서 사고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학생들로 하여금 '비판적 태도를 심어 주어 중대한 도덕, 정치 문제에 직면했을 때 깊이 고민하는 시민이 되게 하는 것이 수업의 목적'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책을 다 읽고 나면, 샐던이 말한 '시민'은 세계 시민이 아닌 결국 '미국 시민'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결론에 대해 샐던은 아니라고 말할지 모른다. 왜냐하면 샐던은 '연대 의식과 소속 의무가 외부로 향할 때, 내 공동체 사람에 대한 의무 외에도 내 공동체가 역사적으로 도덕적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들에 대한 의무가 있다'고 말하면서, "역사적 부당 행위에 대한 집단적 사죄와 보상은 연대 의식이 내 공동체가 아닌 다른 공동체에도 도덕적 책임을 지게 하는 좋은 예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샐던이 말하는 연대는 지역, 물리적 공간에 기초한 집단의 연대 혹은 동일한 역사를 소유한 지역 공동체를 기초로 한다는데 인식의 한계가 있다. 이는 물리적 공간을 초월하는 연대, 즉 '노동자는 하나다'라고 할 때와 같은 국경을 넘어 선 계급에 대한 인식과 그를 넘어선 연대나 미 대륙을 벗어난 세계 시민의 연대를 담고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연대 의식이 다른 공동체에 대한 역사적 부당 행위에 대한 집단적 사죄와 보상을 하게 한다.'고 말을 하지만, 샐던에게서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학살, 세계 초강대국인 미국이 벌였던 베트남전, 이라크 침공 등에 대한 진지한 반성은 찾아볼 수가 없다. 이처럼 미국이 범한 역사적 과오에 대한 반성 없이 정의를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은 미국식 사고에서나 가능한 일인 것이다.

물론 샐던은 미국 국민들 중 일부는, 부당하고 미국인에게 어울리지도 않는 전쟁이라는 믿음으로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을 벌였는데, 그 근저에 연대 의식과 애국심이 있었다고 언급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미국의 역사적 과오에 대해서 반성을 하거나, 따끔하게 지적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연대의식이 외부로 향하면 그럴 수 있다는 정도에서 그친다는 점에서, 정의를 말하는 그이기에 더욱 아쉬움이 남는다. 

샐던이 철저히 미국적 사고를 한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은 이민 정책에 대한 그의 보수적 태도에서 더 쉽게 드러난다. 그는 개방적 이민 정책을 실시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 근거로, '삶과 역사를 공유하는 시민의 행복을 추구할 특별한 의무가 있다'는 서사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언급한다. 여기에서 샐던은 이민으로 건설된 미국이면서도, 이주민에 대해 철저히 이중적인 정책을 취하는 미국 중산층과 정치인들의 생각을 답습하고 있다.

그러나 서사적 존재로서의 인간에게 지워진 '연대와 소속 의무'는 공동체의 결집과 애국적 정서의 기초가 될 수는 있어도, 차별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 공동체에 속한 우리끼리 똘똘 뭉쳐서 살고, 역사적 동질 의식을 갖고 살겠다는 것을 비난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부당한 편견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보수적인 시각을 가진 이들이 이주민에게 갖는 편견은 이주노동자가 저숙련 노동자의 임금을 빼앗고, 임금을 저하시킨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그들이 혼자 돌팔매를 맞아야 할까? 아니다. 자본이 이주노동자에 대한 착취를 묵인하는 사회 시스템이 그러한 결과를 낳는 것이다. 탐욕이 빚어낸 결과를 이주노동자에게 전가할 수 없다는 점에서 연대와 소속 의무라는 말로 이주노동자 차별이 정당화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미국식 사고라는 한계 속에서도 샐던은 '공정'이 이슈가 되는 이 시대, 우리사회가 충분히 공감할 만한 많은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그가 던지는 메시지는 G20을 앞두고 노숙인들을 거리에서 내모는 MB 정부 정책이 벤담의 공리주의와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 준다.

"벤담은 우선, 거지와 마주치면 두 가지 측면에서 행복이 줄어든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정이 많은 사람이라면 동정심이라는 고통이, 정이 없는 사람이라면 혐오감이라는 고통이 생긴다는 것이다. 어떤 경우든 거지와 마주치면 일반적으로 사람들의 공리가 줄어든다. 따라서 벤담은 거지를 구빈원으로 몰아넣자고 제안했다."

또한 유명환 장관의 딸 특혜 채용과 관련해서는 "분노는 자격 없는 사람이 무엇인가를 얻는다고 생각될 때 느끼는 특별한 종류의 화다. 다시 말해, 부당함에 대한 화다"라는 말에서 자연스레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샐던은 롤스의 차등원칙을 들어 "모든 사람에게 경기에 참가할 기회를 주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애초에 출발선이 다르다면 그 경기는 공정하다고 보기 힘들다. 모두 똑같은 출발선에 서서 경기를 할 때라야 승자도 포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말로 공정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를 말하기도 한다.

샐던은 강의를 질문식으로 하기로 유명한 교수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책에서 똑 부러지게 그의 생각을 집어내기가 쉽지 않다. 자신의 생각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샐던은 정의로운 사회의 기초로 무엇이 필요한가를 말하며,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있다.

"정의에는 어쩔 수 없이 판단이 끼어든다. 구제금융이나 상이군인훈장, 대리 출산이나 동성혼, 소수집단우대정책이나 군 복무, 최고경영자의 임금이나 골프 카트 이용권을 두고 어떤 논란을 벌이든, 정의는 영광과 미덕, 자부심과 인정에 관한 대립하는 여러 개념과 밀접히 연관된다. 정의는 올바른 분매만의 문제는 아니다. 올바른 가치 측정의 문제이기도 하다."

위와 같은 이유로 샐던은 본질적인 도덕 문제를 다루지 않고서는 권리와 의무를 규정하기가 불가능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논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근래 우리사회에 '정의'니 '공정한 사회'니 하는 이야기가 넘쳐나는 것은 어쩌면 도덕적 문제를 회피해 온 정치권을 비롯한 사회 시스템 전반에 대한 불신이 가져다 준 산물인지 모른다.

늦게나마 '정의란 무엇인가'란 화두가 던져진 것은 감사한 일이다. 다만 과거 '정의사회 구현'을 외치던 시대처럼 말의 성찬에 불과하지 않으려면, 이러한 논의가 미국인이 말하는 정의에서 세계 시민이 말하는 정의로 확장될 수 있어야 하고, 우리 삶에서 구체적으로 실현되어야 할 것이다.


정의란 무엇인가 (리커버 특별판) - 새로운 시대, 새로운 정의

마이클 샌델 지음, 김명철 옮김, 김선욱 감수, 와이즈베리(2014)


#마이클 샐던#정의#공정사회#미국#이주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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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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