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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아름도 넘어보이는 오래된 나무가 여러 갈래로 찢겨 있다.
한아름도 넘어보이는 오래된 나무가 여러 갈래로 찢겨 있다. ⓒ 이주연

전국을 덮친 태풍 '곤파스'는 서울 마포구 성미산도 지나쳐갔다. 그런데 유달리 피해가 극심했다. 2일, 태풍이 잠잠해진 후 찾은 성미산 한쪽엔 일곱 그루의 나무가 나란히 누워 있었다. 백 년도 더 됐을법한 나무는 여섯 갈래로 찢겨 괴기스러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정확히 반 토막 난 나무들도 곳곳에서 보였다. 홍익학원이 성미산 자락에 홍익초·여중고교를 세운다며 중턱부터 산을 파헤쳐 빚어진 결과다. 태풍의 위력을 버티려면 땅 끝까지 뿌리를 내려야 하는데, 산허리가 잘려나가는 바람에 나무가 의지할 지반이 없었던 것이다. 

'성미산 생태 보전과 생태공원화를 위한 주민대책위'(이하 대책위) 상황실장인 이창환(46)씨는 "나무들이 쓰러져 있는 것을 보면 시체가 누워 있는 것 같다"며 "잘린 나뭇가지들은 마네킹의 팔다리를 보듯 섬뜩한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대책위는 홍익학원의 학교 건설에 반대하며 성미산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이 홍익학원에 건축허가를 내준 5월 26일 시작한 농성이 벌써 100일을 맞았다. 10여 명이 교대로 성미산 입구를 지키고 100여 명이 매일 모여 성미산 문화제를 열고 있다.

덤프트럭에 위협받아서는 안 될 아이들의 등하굣길

이창환씨는 그 100일 동안 하루 12시간씩 성미산을 지키며, 거침없이 밀고 들어오는 포클레인과 전기톱을 맨몸으로 막아냈다. 기자가 2시간 머물렀을 뿐인데 정확히 7군데를 물고 달아난 억센 산모기와 싸우는 것도 만만치는 않았을 터였다. 그러나 육아를 함께하고, 대안 교육을 실천하며, 생활협동조합을 통해 건강한 먹을거리까지 나누는 '성미산 마을'의 상징이자 그 자체인 성미산이 황폐화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기에 그는 산에 올랐다. 
 
 등교를 하는 성서초등학교 학생들이 경사가 심한 성미산 공사장 진출입로 예정지 입구 앞을 지나고 있다.
등교를 하는 성서초등학교 학생들이 경사가 심한 성미산 공사장 진출입로 예정지 입구 앞을 지나고 있다. ⓒ 성미산대책위

홍익학교가 들어설 곳 바로 옆에 위치한 성서초등학교 아이들의 등하굣길이 학교 공사를 위해 수천 번씩 드나들 덤프트럭의 위협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될 게 뻔하다. 게다가 비싼 등록금(급식비 포함해 분기당 180만 원)을 내며 승용차로 등교하는 홍익초등학교 아이들을 바라보며 열심히 자전거 페달을 밟아 산꼭대기에 오를 성서초등학교 아이들이 감당해야 할 격차는 또 얼마일까?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이직을 준비하던 그가 무급 자원봉사인 '성미산지킴쟁이'로 취직한 이유다.
 
"물론 힘들죠. 제가 일을 못하니까 생활도 어려워요. 그래도 가족들이 지지해줘서 힘이 됩니다. 큰아이 승혁(16)이가 뿌리가 드러난 나무에 흙을 덮어주면서 '땅에는 주인이 있을지 몰라도 생명에는 주인이 없는 거예요'라는 말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이 아이가 날 지지해주고 있음을 절절히 느꼈어요."

"성미산을 지키는 것은 상식의 일"

성미산에는 또 한 명의 '100일 지킴이'가 있다. 매일 오후 8시 성미산에서 열리는 문화제의 사회를 도맡고 있는 김언경(42)씨다. 그는 "비가 억수같이 와도, 문화제에 참가하는 사람이 세 사람 뿐이더라도 하루도 빼놓지 않고 문화제를 열었다"며 "성미산 주민들이 산에 대한 감각을 놓지 않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두 지킴이들은 이것이 단지 성미산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김씨는 "서울시내에 있는 산의 대부분이 사유지"라며 "산의 소유자들은 이 싸움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렇기에 '마포구에 있는 조그만 산의 문제'라 보지 말고 '내가 즐겨 산책하는 산의 개발문제'라고 봐 주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단순히 뒷산에 대한 문제가 아닌, 생태 보존이라는 상식의 문제이기에 지킴이들은 100일 동안 '올인'할 수 있었다. 이씨는 "숲을 깎아내고 학교를 짓는다는 것은 너무나 비상식적인 일"이라며 "성미산이 무너지면 아이들과 내가 나눌 수 있는 상식의 큰 축이 무너질 텐데, 그것을 두고 볼 수 없기에 성미산을 포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산에서 내려오는 길, 5년 동안 혹은 10년 동안 산을 탔던 이들이 웬일인지 길을 헤매고 있었다. 이쪽으로 갔다가 "이 길이 아닌가봐"라며 저쪽으로 가기 일쑤다. 산이 하루가 다르게 황폐해지고, 쓰러진 나무들로 인해 길이 막혀 거의 매일같이 통로가 바뀌기 때문이다. 김씨는 "너무나 가슴 아프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며 "천천히 산을 다시 살리면 된다"고 의지를 다졌다.

다음은 성미산 지킴이들과 나눈 일문일답 전문이다.

"성미산은 '성미산 마을 만들기'의 상징이고 구심점"

 
 100일 동안 12시간씩 성미산을 지킨 이창환씨.
100일 동안 12시간씩 성미산을 지킨 이창환씨. ⓒ 이주연

- 올라올 때 보니 쓰러진 나무들이 많더라.

이창환(이하 이) : "안 넘어질 나무도 땅을 다 파헤쳐 놓으니 지지되는 흙이 없어서 넘어가 버렸다. 나무들이 쓰러져 있는 것을 보면 시체가 누워 있는 것 같다. 잘린 나뭇가지들은 마네킹의 팔다리를 보듯 섬뜩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아이들을 숲에 못 오게 한다. 나무가 베어지고 쓰러진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
 
- 성미산 마을에서 성미산의 의미는 무엇인가.

 "성미산은 '성미산 마을 만들기'의 상징이고 구심점이다. 우리 마을이 지향하는 가치의 중심에는 생태적 가치가 있다. 성미산 마을은 대안교육을 실천하는 교육공동체의 성격이 강한데 그렇다 보니 생태적 가치들이 중심에 서는 것이다. 이 때문에 대안학교를 지어도 성미산 학교, 주민들이 식당을 만들어도 성미산 밥상이 되는 것이다. 성미산은 내가 살고 싶은 마을을 만들어 가는 '성미산 마을'의 지향점 그 자체다."

- 성미산 마을 공동체는 어떠한 모습으로 꾸려지고 있나.

김언경(이하 김): "성미산 밥상, 성미산 카페, 성미산 생협, 성미산 학교 등 무한대로 공동체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 공동으로 하는 일에 대해선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공동으로 꾸리는 일이 생기면 일하는 사람도 우리 마을 사람이고 소비하는 사람도 우리 마을 사람이다. 마을 자체 내에서 고용 창출이 많이 된다."

- 성미산 마을의 아이들에게 성미산은 어떤 의미인가.

이 : "성미산은 아이들의 친구고 놀이터다. 마을의 아이들은 여기서 자라고 배우고 논다. 그런 성미산의 한 축을 없애려는 것이 홍익학원이다."

- 홍익학원의 초·여중고교 설립, 무엇이 문제라고 보는가.

김 : "홍익초등학교가 성서초등학교 바로 옆에 들어서게 되는데, 사립인 홍익은 등록금이 굉장히 비싸다더라. 학생의 반이 자가용 등교를 하고 나머지는 교복을 입고 스쿨버스에서 내릴 텐데 자전거를 타고 비탈길을 오를 성서초 아이들이 위화감과 격차를 느낄까봐 걱정이다. 또 다른 문제는 교통이다. 학교 앞에 있는 길이 2차선인데 지금도 많이 막힌다. 그런 길에 등하굣길에 오가는 자가용까지 더해지면 도로가 주차장으로 변할 것이다."

"땅에는 주인이 있을지 몰라도 생명에는 주인이 없는 거예요"
 
 
 성미산 문화제의 사회를 도맡고 있는 김언경씨.
성미산 문화제의 사회를 도맡고 있는 김언경씨. ⓒ 이주연
- 100일 동안 성미산을 지켰다.

이 : "5월 26일부터 천막을 치고 농성을 했으니 오늘로 100일째다. 매일 12시간씩 이곳을 지킨다. 물론 힘들다. 내가 일을 못하니까 생활도 어렵다. 그래도 가족들이 지지해 주고 참아줘서 힘이 된다. 큰아이 승혁(16)이가 뿌리가 드러난 나무에 흙을 덮어주면서 '땅에는 주인이 있을지 몰라도 생명에는 주인이 없는 거예요'라는 말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이 아이가 날 지지해주고 있음을 절절히 느꼈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한 당위성을 설명한 적도 없는데 아이가 이미 알고 있더라. 또 언젠가 승혁이가 '우리가 진다면 홍익학원의 돈에 지는 것'이란 얘기를 했다. 승혁이가 바라보는 것처럼 생명은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것인데, 돈의 논리 앞에선 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는 안 되지 않겠나."

김 : "비가 억수같이 와도, 문화제에 참가하는 사람이 세 사람 뿐이더라도 하루도 빼놓지 않고 문화제를 열었다. 성미산 주민들이 산에 대한 감각을 놓지 않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 3일, 대규모로 문화제를 연다고 들었다.

김 : "농성 100일을 기념하는 문화제가 시청 서소문별관 앞에서 열린다. 그동안 우리 문화제에 함께했던 인디밴드들도 한자리에 모이고, 우리를 지지해주는 학자들과 시민단체들도 함께 자리할 것이다. 300명 이상 모이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다." 

- 100일을 지키게 한 열정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이 : "숲을 깎아내고 학교를 짓는다는 것은 너무나 비상식적이다. 성미산이 무너지면 아이들과 내가 나눌 수 있는 상식의 큰 축이 무너질 텐데, 그것을 두고 볼 수 없다. 그렇기에 여기서 포기할 수 없다. 아이에게 숲은 소중한 것이라 이야기해 왔는데 내가 포기해 버리면 후에 뭐라고 설명할 수 있겠나."

김 : "마을 사람들이 함께 나눈 우정이 원동력이다. 시간이 길어지면서 열심히 활동하는 이들에 대한 미안함이 생기고 고마움이 생겨 끈끈한 우정이 솟았다. 이 싸움을 하며 마을 공동체가 더 공고해졌다." 

- 공정택 전 서울시교육감 때 서울시교육청이 홍익학원에 건축 승인을 내줬다. 이번에 교육감이 바뀌면서 상황이 바뀔 것이라는 기대를 했을 것 같은데.

김 : "교육감이 바뀌면 전 교육감이 한 짓이니까 바로잡아 주리라 생각해서 선거운동도 나름 열심히 했다. 곽노현 교육감 당선 이후 눈에 띄는 변화는 없다. 여러 경로를 통해서 교육감 면담을 추진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서운하다. 홍익학원에 건축허가가 난 것 자체부터 문제였다. 학교를 지을 동안 성서초등학교 아이들의 통학 안전이 확보되고 나서 허가가 났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수천 대의 덤프트럭이 공사 현장을 오갈 텐데 우리 아이들의 안전은 누가 책임질 거냐." 

'조그만 산의 문제'가 아닌 '내가 즐겨 산책하는 산의 개발문제'로 봐주길
 
 
 태풍 곤파스가 지나간 후 성미산의 나무들이 힘없이 무너져 있다.
태풍 곤파스가 지나간 후 성미산의 나무들이 힘없이 무너져 있다. ⓒ 이주연
- 해결 방법은 무엇인가.

이 :  "홍익학교 건설의 대체부지 마련이 필요하다. 여러 행정적 절차의 문제도 존재한다. 비오톱(자연생태계가 가능한 공간) 1등급지는 절대 보존한다는 조례가 시행되기 며칠 전 서울시교육청이 홍익학원에 학교 건축 허가를 내주었다. 성미산은 80% 이상이 비오톱 1등급지인데도 보존되지 못하는 것이다. 또, 서울시는 두 차례 회의만으로 '체육 시설'에서 '교육 시설'로 도시계획을 변경했다. 주민 대상 공청회도 없었다. 이런 문제를 안고 있음에도 홍익학원의 건설을 허가해 준 장본인인 마포구, 서울시, 서울시교육청이 나서 정부 소유 유휴지를 대체부지로 제공해야 한다."

김 : "체육 시설에서 교육 시설로 도시계획을 변경할 때의 녹취록을 확보했다. 그런데 도시계획위원 중 한 명이 홍익대 관계자였다. 이해 당사자가 도시계획 변경에 참여한 것이다. 이런 문제를 짚고 넘어가기 위해 서울시에 행정소송을 할 예정이다. 그러나 소송의 승리만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이기고 지는 싸움이 아니라 모두 함께 사는 방안이 있어야 한다. 홍익학교 아이들의 학습권도 있으니, 그 아이들이 더 좋은 땅에서 공부하고 숲은 지키는 상생의 결과가 있었으면 한다." 

- 성미산을 지키는 문제를 단지 '뒷산' 문제라고 보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 : "이번 사안에선 숲의 공공성과 재산권, 소유권, 개발논리가 맞붙고 있다. 그러나 성미산의 소유권이 홍익학원에 있고 적법한 절차를 통해 이뤄졌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 싸움에서 주민들이 진다면 앞으로 숲을 훼손하며 개발하려는 논리들이 거세질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싸움은 굉장히 중요하다."

김 : "서울시내에 있는 산의 대부분이 사유지이다. 산 소유자들은 이 싸움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마포구에 있는 조그만 산의 문제'라 보지 말고 '내가 즐겨 산책하며 아끼는 산의 개발문제'라고 봐 주었으면 한다."

#성미산#홍익학원#10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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