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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올림픽 이후 자신감을 얻은 중국, 세계를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더 이상의 도광양회(韜光養晦, 자신의 재능을 숨기고 묵묵히 실력을 키움)는 없다. 할 말은 하고 해야 할 일은 당당히 하겠다는 유소작위(有所作爲)의 외교전략을 곳곳에서 숨김없이 드러낸다.

 

현 정권 들어 주중 한국대사 자리를 40일 넘게 공석으로 두자 중국은 이명박 대통령 방문 당일에야 대사 신임장을 제정해 주는 것으로 응수했다. 천안함 사건 이후 김정일 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하자 우리 정부는 외교적 결례를 무릅쓰고 주한 중국대사를 불러 공개 항의를 했지만, 이 대통령을 30분 만난 후진타오주석은 김 위원장과는 5시간이나 회담하며 북한을 자신의 품 더 깊숙한 곳으로 끌어안았다.

 

또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하자 중국은 서해부근 내륙, 산둥(山東), 남중국해 등지에서 대규모 군사훈련으로 응수했으며 미국 항공모함의 서해 합동훈련 참가에 대한 극도의 거부감을 공개적으로 표출하기도 했다. 전형적인 '눈에는 눈, 이에는 이(以眼还眼, 以牙还牙)' 전략이다.

 

한 발 더 나아가 중국은 한미동맹 올인 외교를 직접 거론하며 한국이 미국을 등에 업고 자신들을 압박한다며 불쾌해 한다. 중국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혐한을 넘어 한국응징론까지 거론되는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1992년 8월 24일, 한중수교를 맺은 이래 최악의 한중관계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라는 허울뿐인 수사만 떠돌뿐 양국간에는 신냉전시대의 냉냉함만이 가득하다.

 

한중 양국간에는 지난 18년 동안 이미 떼레야 뗄 수 없는 경제교역과 엄청난 인적교류를 통한 수많은 접점이 생겨나 있다. 경제교역규모가 2009년 기준 1409억 달러나 되고 일주일에 830편의 항공기가 운항되며 한 해 약 400만 명이 넘는 한국인이 중국을 찾는 시점에서 한중관계의 악화는 여러모로 많은 우려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

 

당장 우리나라는 중국에서 돈을 벌어오지 않으면 먹고 살기 힘든 구조에 들어섰다. 대외 무역흑자의 90% 이상이 대중국교역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돈은 중국서 벌고 놀기는 미국하고만 노냐'는 중국누리꾼들의 비아냥거림과 한국기업에게 준 공장 인허가권을 몰수하여 모두 대만기업에게 줘야한다는 중국 누리꾼들의 주장은 그래서 일면 우리를 움찔하게 하는 뼈있는 일침이다.

 

우리가 인식하든 못하든 중국은 더 이상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못 살고 힘없는 나라가 아니며 자타가 공인하는 '그레이트 투(Great 2)'로, 우리에게는 가장 의미있는 파트너로 자리잡았다.

 

냉각된 한중관계의 복원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나친 미국 중심의 외교전략에서 벗어난 명실상부한 실용적 다원화외교전략이 필요하다. 문화교류, 북핵문제 등 중국은 이미 우리가 피해갈 수 없는 벽으로 다가와 있다. 알아야 면장(免墻)을 한다고 이미 G2로 성장한, 또 다음 세기 슈퍼파워로 성장할 중국에 대한 인식의 전환과 중국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절실하다.

 

지난 2003년 8월 노무현 전대통령이 중국 칭화(淸華)대학을 방문했을 때, 중국의 정치지도자 가운데 누구를 존경하냐는 질문에 중국현대사의 무거운 짐을 마오쩌둥(毛澤東)도 덩샤오핑(鄧小平)이 나누어 짊어진 것 같다는 답변을 했는데 이를 두고 보수언론에서는 중공군을 파병하여 남북을 분단시킨 마오쩌둥을 어떻게 존경할 수 있느냐며 열을 냈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이런 냉전적 반공 이데올로기의 관점에서 중국을 바라보는 시각이 상존하고 많은 중국담론의 근저에서 여전히 유효하게 작동한다. 이런 논리라면 중국과 단교를 해야 하고 한 걸음도 미래로 나아갈 수가 없는데도 말이다.

 

또 13억으로 나눈 1인당 국민소득으로 보면 중국은 3700불 정도의 못 사는 나라가 분명하지만 국가적으로 보면 그 위상과 역량이 이미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에 자리잡고 있음도 함께 봐주어야 한다. 중국을 여행하며 눈에 보이는 한 수 아래 문화 수준의 중국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무서운 저력을 지닌 또 하나의 중국이 있다는 것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된다.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제국주의적 세계 전략을 펴고 있는 미국이 역풍을 맞고 실패해 갈 것이라는 경고와 예견이 미국내에서도 나오고 있는 마당에 우리는 여전히 한미공조만을 강화하며 외교적 실리를 놓치는 우를 범해선 안 될 것이다.

 

중국의 존재감은 이미 우리 경제지표의 모든 요소요소마다 내재되어 있으며 충분히 차고 넘쳐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다. 미국과 중국이라는 초강대국 사이에서 사안에 따라 실리를 쫓는 외교 본연의 기능을 하루 빨리 회복해야 한다. 그것이 수렁에 빠진 한중관계를 보다 원만하게 회복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중수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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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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