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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8월 17일 14명의 필리핀 출신 노동자의 입국으로 시작된 고용허가제가 시행된 지 만 6년이 지났다. 현대판 노예제도라고 불리던 산업기술연수제도를 대신하여 저임금 단순미숙련 외국인력 도입을 위한 목적으로 시행된 고용허가제는 시행 초기부터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노출해 왔다. 그에 대해 정부는 여러 번의 개정을 거쳐 문제점들을 보완해 오고 있지만, 사업장 변경 제한과 같은 제도 자체가 갖고 있는 문제로 인해 여전히 잦은 인권침해가 발생하고 있다.

 

고용허가제 시행 6주년을 맞던 날, 어쩌면 삼 년을 갇힌 섬 안에서 '노예 아닌 노예'로 살아야 했을지도 모를 한 젊은이의 하소연을 들을 수 있었다.

 

"석 달 동안 딱 일주일 동안만 오징어 배를 탔어요. 배를 타지 않는 날은 산에서 나물을 캤는데, 선주가 그것을 시장에 가서 팔았던 것 같아요. 한 번은 2만 원을 받았는데, 그게 석 달 동안 일하면서 받은 돈의 전부예요. 기본급을 92만 8천원으로 계약했는데 월급을 받아 본 적이 없어요."

 

어부로 와서 산나물만 캤다는 이는 인도네시아에서 온 하리스(Haris, 23)였다. 인도네시아수카르노 하타 국제공항에서 정비공으로 일하던 그가 한국행을 택한 것은 '코리안 드림'을 꿈꾸었기 때문이었다. 평생 배를 타 본 적이 없는 그가 말이 통하는 사람이라곤 한 명도 없는 '섬'에서 석 달을 견디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제가 담배라도 피우는 사람이었다면, 어떻게 생활했겠어요. 먹고 자는 거야 선주가 해 주니까, 문제가 없다지만, 담배 피우는 사람들은 꽁초라도 주워야 했을 거예요"라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하리스는 조심스럽게 자신이 월급을 받을 수 있는지를 물어왔다. 하리스가 질문을 조심스럽게 던진 이유는 부산에 있는 모 단체에 도움을 의뢰했지만, 사장 말만 믿고 돌아가라며 등을 떠밀었기 때문이었다.

 

그 일로 선주 집으로 전화를 해 봤다. 전화를 받은 이는 인도네시아인 문제로 전화를 했다고 하자, 다짜고짜 쌍욕을 하기 시작했다. "그 놈의 새*, 멕여주고 잘 대접해 줬더니 어디를 도망 가, 거기가 어리라고? 뭐 땀시 그런 놈을 싸고 돌아!" 대화가 불가능했다.

 

30여 분이 경과한 후, 선주로부터 전화가 왔다. 선주의 목소리는 차분했고, 나름대로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었다. 선주는 하리스를 '알렉스'라고 부르고, 자신은 '아빠'라고 지칭했다.

 

"제가 알렉스를 쓰기 전에 한 명이 더 있었어요. 그런데 얼마 일 안 하고 도망가 버려서, 손해가 많아요. 이래선 안 되겠다 싶더라고요. 제가 월급을 안 준 게 아니고, 적금을 든 거예요. 누누이 설명했어요. 지난 번 부산에서도 전화가 왔기에, 잘 타일러서 보내 달라고 했더니, 그런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이제 와서 또 이런 전화가 오니까 답답하네요."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인에게 월급을 한 푼도 주지 않고, 적금을 든다는 말이 이해가 됐을 것 같으냐고 물어보았다. 선주는 "알렉스와 삼 년을 계약하고 데려온 거거든요. 그래서 두 달 동안 알렉스에게 잘 알아듣게 설명했어요. 집에 갈 때 받을 수 있다고요." 직원 급여를 임의로 적금을 든다는 것 자체가 불법이지만, 적금을 진짜 들었는지를 물어보았다. 그러자 선주는 "제가 가서 그 문제를 풀게요. 거기 어디에요?"라며 말을 돌렸다.

 

선주는 하리스에 앞서 데려 온 외국인이 도망가면서 삼백만 원을 넘게 손해 봤다는 푸념과 함께, 자신이 하리스의 돈을 떼먹을 생각이 없고, 삼 년을 계약했으니 일을 시켜야겠다는 주장으로 일관했다.

 

고용허가제로 외국인을 데려오면서 삼백만 원을 썼다는 허무맹랑한 주장에 어이가 없었지만, 다른 사람과의 문제를 제3자인 하리스에게 전가하는 것이 온당하냐고 물어보자, 선주는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 아니고, 이 문제는 제가 알아서 합니다"하며 하리스를 '섬'으로 돌려보내라는 주장만 반복했다.

 

선주의 주장대로라면 하리스는 말 그대로 삼년간 '선상 노예'로 일해야 할 판이었다. 오징어 배의 특성상 일년 내내 일하지 않기 때문에 선상노예 신세를 벗어나면, '섬 노예' 신세를 벗어날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야말로 방송에서나 듣던 일이 코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셈이었다.

 

다행인 것은 선주가 고기를 팔러 육지에 내렸을 때, 화장실에 간다는 핑계를 대고 선주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리스는 현재 석 달간의 섬 생활에 심신이 허약해지긴 했지만, 코리안 드림을 포기하기엔 너무 이르다며, 자신의 임금 체불에 대해 노동부 진정과 함께 그를 근거로 근무처 변경을 계획 중에 있다. 

 

고용허가제 도입 이후, 노동부는 고용허가제가 이주노동자들의 노동 인권 현실을 상당 부분 개선했다고 자랑해 왔다. 그러나 관련 시민단체들은 고용주들이 이주노동자와의 계약을 종신계약인 것처럼, 노예계약인 것처럼, 여기게 하는 현 제도에 대한 개선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선상노예#이주노동자#고용허가제#임금체불#노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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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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