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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쉽게 쓸 수 있는데 어렵게 쓴 말마디 : 사고방식이 비슷

 

.. 에렌페스트가 프라하에 머물렀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지만, 우리 두 사람은 서로의 사고방식이 매우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  <장 자크 그리프/하정희 옮김-아인슈타인의 편지>(거인북,2010) 124쪽

 

'시간(時間)'은 그대로 두어도 됩니다만, '나날'로 손볼 수 있습니다. 이 보기글을 "에렌페스트는 프라하에 그리 길게 머물지 않았지만"처럼 적바림하면 '시간' 같은 한자말을 손쉽게 털 수 있기도 합니다. "비슷하다는 것을"은 "비슷함을"이나 "비슷하다고"로 다듬습니다.

 

 ┌ 서로의 사고방식이 매우 비슷하다는 것을

 │

 │→ 서로 생각이 매우 비슷함을

 │→ 서로 매우 비슷하게 생각함을

 │→ 서로 생각하는 틀이 매우 비슷함을

 │→ 서로 매우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음을

 └ …

 

사람들은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에 깊이 살피지 못합니다. 처음부터 이 나라 사람들이 깊이 살피지 않는 가운데 말을 하거나 글을 썼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날이 갈수록 얄궂게 생각을 잃어버립니다. 사람들은 학교를 오래 다닐수록 생각하고 더 멀어지며, 사람들은 신문이나 방송이나 인터넷을 더 자주 더 많이 하면 할수록 생각이 얕아지고 맙니다.

 

더 많이 배웠으면 더 많이 고개 숙일 줄 알면서 더 많이 생각할 수 있어야 올바릅니다. 그러나 한국땅에서 더 많이 배운 사람들치고 더 고개 숙일 줄 아는 사람이란 몹시 드뭅니다. 더 많이 배웠기에 더 참다운 앎을 마주하면서 고개 숙여야 마땅하지만, 좀처럼 고개를 숙이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더 많이 배웠다고 하면서 더 많이 생각하지 못할 뿐 아니라 더 깊이 생각하지 못하고 더 널리 생각하지 못합니다.

 

영어를 참 잘할 뿐 아니라 온갖 지식이 무척 넓은 사람이 꽤 늘어났습니다. 그러나 영어를 어떻게 하면 좋은가는 헤아리지 못하는데다가, 영어로 어떠한 내 생각을 나타내면 기쁠까는 헤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온갖 지식이 무척 넓지만 이러한 지식을 어떻게 살리거나 살찌우는 가운데 즐거이 나누고 펼치는가는 곱씹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생각하는 길이 그릇된 탓이라 할 만합니다. 생각하는 길, 곧 '생각길'이 뒤틀려 있는 탓이라 하겠지요. 그렇다면 생각길이란 어떻게 이루어질까요. 생각길은 학교를 오래 다니며 익힐 수 있을까요.

 

 ┌ 생각길 / 마음길

 ├ 넋길 / 얼길

 ├ 삶길 / 사람길

 ├ 일길 / 놀이길

 ├ 말길 / 글길

 └ …

 

우리는 누구나 길을 걷습니다. 어느 사람은 길을 몹시 빨리 걷고 어느 사람은 길을 무척 한갓지게 걷습니다. 빨리 걷는 사람은 더 빨리 당신이 가고자 하는 데에 닿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빨리 걷는 사람은 으레 더 멀리 가고자 합니다. 당신 둘레나 가까이에 참 좋은 데가 있어도 가까운 좋은 데보다 멀디먼 훨씬 좋은 데가 있으리라 생각하기 일쑤입니다. 나중에 멀디 먼 퍽 좋은 데라는 자리를 찾아가고 나서 보니 당신 둘레에 있던 자리 또한 퍽 좋았을 뿐 아니라 당신 둘레로 느긋하게 걸어갔다면 당신으로서는 더 너른 누리와 더 깊은 삶을 맛볼 수 있었는데 그만 모두 놓치고 말았다고 깨닫곤 합니다.

 

그래, 애먼 걸음을 하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덧없는 걸음을 단단히 붙잡는 사람이 꽤 많습니다. 살가우며 고운 말을 사랑하는 사람보다 지식과 돈과 이름값과 권력에 매여 살갑지 않으며 곱지 않은 말을 내세우는 사람이 퍽 많습니다.

 

왜 '사고방식(思考方式)' 같은 말마디에 매여야 할까 궁금합니다. '사고방식'이란 다른 말이 아닙니다. 그저 "사고하는 방식"을 줄여 '사고방식'이라 적습니다. '사고'란 '생각'이라는 토박이말을 한자로 옮겨 적은 낱말입니다. 다른 낱말이 아닌 한자말 '사고'입니다. 토박이말 '생각'과 견주어 대단하거나 거룩하거나 놀랍거나 알뜰한 낱말이 아니라, 그저 한자말인 '사고'요, 토박이말인 '생각'입니다. 한자말 '사고'와 거의 같은 뜻과 느낌으로 쓰고 있는 '궁리(窮理)'이든 '사유(思惟)'이든 우리 말로 하자면 하나같이 '생각'입니다. '방식'이란 '틀'이나 '길'을 한자로 적바림한 낱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우리 삶터에 걸맞게 우리 말로 이야기를 하자면 '사고방식'이 아닌 "생각하는 틀"이라는 뜻으로 '생각틀'이라 하거나, "생각하는 길"이라 할 때에 알맞습니다. 이러한 쓰임새에 맞추어 '생각길'이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 서로의 사고방식이 비슷하다 (x)

 ├ 서로 사고방식이 비슷하다 (△)

 └ 서로 생각이 비슷하다 (o)

 

어설픈데다가 어줍잖을 뿐더러 어리석은 생각틀에 매여 있는 동안 옳고 바른 말을 잃습니다. 어리숙한데다가 어리벙벙할 뿐더러 어리광을 부리는 생각길에 붙잡혀 있으니 착하고 참되며 고운 글을 놓칩니다.

 

우리는 우리 말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이웃하고 우리 마음을 오순도순 나눌 아름다운 우리 말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글을 써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살붙이와 우리 사랑을 기쁘게 함께할 빛나는 우리 글을 써야 합니다.

 

우리 길을 걷고 우리 꿈을 키우며 우리 삶을 북돋울 노릇입니다. 우리 뜻을 세우고 우리 힘을 돌보며 우리 터를 아낄 노릇입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 (1)∼(9)>(그물코)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태그:#말익히기, #글다듬기,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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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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