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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인간의 모습으로

 

.. 인간의 모습으로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요구였다 ..  <하종강-길에서 만난 사람들>(후마니타스,2007) 118쪽

 

"살아가기 위(爲)한"은 '살아가려는'으로 손보면 되는데, '살아가고 싶은'이나 '살고 싶은'으로 손봐도 어울립니다.

 

 ┌ 인간의 모습으로 살아가기 위한

 │

 │→ 사람다운 모습으로 살고 싶은

 │→ 사람답게 살고 싶은

 │→ 사람으로 살고 싶은

 └ …

 

"최소한의 요구"는 "최소한으로 바라는 것"으로 풀 수 있는 한편, 뜻을 살려서 '발버둥'이나 '몸부림'으로 나타내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이 보기글은 "사람으로 살고 싶은 몸부림이었다"라든지 "사람답게 살고 싶어 발버둥을 쳤다"처럼 통째로 다듬어 본다면 한결 나으리라 생각합니다.

 

같은 사람이면서도 사람 대접을 못 받고 있기 때문에, '적어도 이만한 대접은 받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무엇인가를 바랐겠지요. 그러니, "나도 사람이니까, 이만큼은 주어야 하지 않느냐고 외쳤다"처럼 다시 쓸 수 있고, "나도 사람이라고 외치면서, 이만큼은 달라고 했다"처럼 다시 써도 됩니다.

 

ㄴ. 인간의 시야

 

.. 그중에서도 인간의 시야와 가장 비슷한 50밀리미터 렌즈를 장착한 라이카는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을 기록하는 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 ..  <클레망 셰루/정승원 옮김-앙리 카르티에브레송>(시공사,2010) 90쪽

 

'그중(中)에서도'는 '그 가운데에서도'나 '여기에서도'로 다듬고, '시야(視野)'는 '눈'이나 '눈길'로 다듬습니다. '장착(裝着)한'은 '달고 있는'이나 '끼운'으로 손보고,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을"은 "그이 눈에 들어온 모습을"이나 "그가 눈으로 본 모습을"로 손봅니다. '기록(記錄)하는'은 '담는'이나 '옮기는'이나 '찍는'으로 손질하고, "큰 역할(役割)을 담당(擔當)했다"는 "큰몫을 했다"나 "크게 도움이 되었다"나로 손질해 줍니다.

 

 ┌ 인간의 시야와 가장 비슷한

 │

 │→ 사람 눈과 가장 비슷한

 │→ 사람 눈길과 가장 비슷한

 │→ 사람이 보는 눈과 가장 비슷한

 │→ 사람이 눈으로 볼 때와 가장 비슷한

 └ …

 

한자말 '시야'는 "시력이 미치는 범위"를 가리킨답니다. '시력(視力)'은 "물체의 존재나 형상을 인식하는 눈의 능력"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국어사전을 뒤적이며 곰곰이 생각해 보면 뜻풀이를 이러구러 알아들을 수는 있으나, 그리 쉽지 않습니다. 뜻풀이를 달 때에 처음부터 "눈으로 볼 수 있는 테두리"라든지 "눈으로 알아보거나 느낄 수 있는 힘"이라든지 달 수는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여느 사람들이 여느 살림을 꾸리면서 주고받는 말마디로 국어사전 올림말 뜻풀이를 달면 안 되는지 궁금합니다. 널리 알아듣도록 도와줄 국어사전이요, 사람들 말씀씀이를 알차고 넉넉하게 가꾸도록 이끌 국어사전이니까요.

 

 ┌ 아이 눈으로 보셔요 (o)

 ├ 아이 눈길로 보셔요 (o)

 │

 ├ 아이의 눈으로 보셔요 (x)

 └ 아이의 눈길로 보셔요 (x)

 

이 보기글에서는 "인간의 시야"를 이야기합니다. 이와 비슷한 꼴로 "아이의 시야"라고도 할까 모르겠습니다. 아마 "아이의 시야"라고는 하지 않고 "아동의 시야"처럼 말하겠지요. 우리 말 '눈'이나 '눈길'을 쓸 때에는 저절로 "아이 눈"이나 "아이 눈길"이라 할 테지만, 한자말 '시야'나 '시선'이나 '시력'을 쓸 때에는 시나브로 '아동(兒童)'과 같은 또다른 한자말을 불러들입니다. 그리고 이런저런 한자말 몇 가지를 불러들이며 그치지 않고 우리 말투를 어지럽힙니다. 옹근 우리 말투가 아닌 어설픈 번역 말투로 뒤집으며, 살가운 우리 말결이 아닌 어줍잖은 일본 말투에 찌들고 맙니다.

 

 ┌ 어른 눈으로 보면 (o)

 ├ 어른이 보기에는 (o)

 │

 ├ 어른의 눈으로 보면 (x)

 └ 어른의 시각에서는 (x)

 

차근차근 생각을 기울이며 알맞고 바르게 가눌 말글을 찾을 노릇입니다. 우리는 "인간의 시야"가 아닌 "사람 눈"이요 "사람이 보는 눈"이며 "사람이 눈으로 보는"입니다. "아동의 시야"가 아닌 "아이 눈"이요 "아이 눈으로 보면"입니다. "성인의 시야"나 "성인의 시선"이 아닌 "어른 눈"이나 "어른 눈길"이며 "어른이 볼 때에는"이나 "어른이 보기에는"입니다.

 

그렇지만 이와 같이 차근차근 생각을 기울일 틈이 없다고 하는 오늘날 우리들입니다. 말 한 마디를 제대로 가다듬는 데에는 품과 땀과 겨를을 들이지 못하는 오늘날 우리들입니다. 영어를 가르치는 학원이 넘치고, 공공 배움터인 초중고등학교에서 그토록 많은 품과 땀과 겨를을 바쳐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데, 정작 아이들이나 어른들이 옳고 바르고 알맞고 살가우며 곱게 말을 하고 글을 쓰도록 돕는 일은 하나도 안 하고 있습니다. 말다운 말을 익히고 글다운 글을 배우며 내 이웃하고 동무랑 오순도순 사귀도록 이끄는 일은 하나도 안 하고 있습니다.

 

 ┌ 내 눈으로 보기에는 (o)

 ├ 내가 보기에는 (o)

 │

 ├ 나의 눈으로 보기에는 (x)

 ├ 나의 시각으로는 (x)

 └ 나의 관점으로는 (x)

 

첫 끈을 제대로 매야 합니다. 첫 단추를 바르게 꿰어야 합니다. 첫 삽을 옳게 떠야 합니다. 처음 배울 말이 참다우며 바르고 좋은 말이어야 합니다. 처음 익히는 글이 착하며 아름답고 살가운 글이어야 합니다. 어느 사람이 보든 좋은 말을 배울 노릇입니다. 어느 어른이나 아이가 보든 고운 글을 익힐 노릇입니다. 우리는 돈에 미친 사람이 아닌 사랑이 넘치는 사람으로 살아갈 노릇이요, 우리는 돈에 굶주린 사람이 아닌 믿음이 넘실거리는 사람으로 어깨동무할 노릇입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 (1)∼(9)>(그물코)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태그:#-의, #토씨 ‘-의’,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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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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