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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타 케이코 씨 학생들에게 데이트 폭력 예방 교육을 하고 있는 나카타 케이코 'DV방지 나가사키' 대표.
▲ 나카타 케이코 씨 학생들에게 데이트 폭력 예방 교육을 하고 있는 나카타 케이코 'DV방지 나가사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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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주부에서 지역 여성운동과 생협운동을 통해 시의원 당선, 그리고 노르웨이 인권 교육의 전파자, 가정폭력과 데이트 폭력 방지 피해자 지원운동 및 예방 교육을 하는 시민단체의 대표가 된 여성이 있다.

자녀 양육, 환경과 평화, 여성 문제, 음식 문제, 가정폭력 피해 상담과 방지 교육 계발 운동 등 다양한 시민운동에 종횡무진 해온 나카타 케이코(中田慶子)씨(NPO법인 DV방지 나가사키 이사장)는 이미 <평범한 여성이 선거에서 이기는 방법>, <내가 만난 노르웨이>, <데이트 폭력에 대해서 알고 있습니까> 등 3권을 책을 단독으로 저술하거나 공저로 펴냈다. 지금은 매주 수요일 아침 나가사키 방송(NBC)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오늘 아침의 칼럼' 코너의 해설자로도 활약 중이다.

이미 한참 전의 일이지만, 지난 6월 12일 나가사키시의 한 호텔에서는 전문직 여성들의 권리 향상과 여성의 사회적 지위 신장 및 국내외 일하는 여성의 교류를 위하여 조직된 여성단체 BPW의 총회가 개최됐다.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전문직 여성과 활동가들의 앞에서 기조 강연자로 나카타 케이코씨가 초대됐다. '변혁에의 도전: 여성의 리더십과 주장· 행동'을 테마로 한 BPW의 총회에서 나카타 케이코씨가 펼쳐든 테마는 '만남으로 열어가는 삶의 첫 페이지-나와 사회의 관계'였다. 기자도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되어 나카타씨에게 직접 초대를 받아 강연회 및 BPW총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나카타 케이코씨는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뒤 도쿄 도청에 심리판정직으로 취직했으나, 결혼과 육아로 퇴직을 결심한다. 당시 그렇게 '간단'하게 직장을 그만둔 것을 지금은 대단히 후회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개인적인 이야기로 편안하게 시작된 그녀의 강연은 인생의 결정적인 반전기에 대한 이야기로 접어든다.

"결혼 후에 난소 등 몸 여기저기에 문제가 생겨서 수술을 받았습니다. 병고와 건강 문제, 핵가족 시스템 속에서 육아에 대한 불안 등으로 힘든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때 부모님이나 이웃, 자녀를 키우는 같은 입장의 지역 여성들에게서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활기찬 지역 여성활동가나 생협운동과의 만남이 저에게 큰 변화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어느새 지역의 생활에 기반한 주부만의 감성과 경험을 살려 활기찬 여성운동가가 되어 가고 있던 나카타씨는 1987년 1월(당시 37세), 오랫동안 동경해왔던 쓰루미 카즈코(사회학자, 2006년 작고)를 만나게 된다.

쓰루미 카즈코씨는 1946년 <사상의 과학> 창간, '생활을 글로 쓰는 모임' 활동 및 여성 공장 노동자 모임인 '생활을 기록하는 회'와의 만남을 계기로 <어머니의 역사>, <동료 속의 연애> 등을 출판하고, 도쿄 연극 앙상블에 의한 집단 창작극 <내일을 짓는 딸들> 등의 공연을 성사 시키는 등 여성의 생활과 노동, 사랑과 인생을 기록하고 표현하는 활동에 공헌한 저명인사다. 미국 유학시절에는 이민여성들의 생활사 등을 기록하기도 하였다. 지역주민의 손으로 지역의 발전을 만들어간다는 논지의 <내발적 발전론>등의 저술로도 알려진 인물이다.

당시 나카타씨는 가와사키 시의 도시 디자인 콘테스트에 논문을 응모했는데, 특선으로 당선되었다. 수상을 위한 자리에 참석했다가 우연히 만난 이가 쓰루미 카즈코씨였고 젊은 나카타씨에게 쓰루미씨는 이미 거물이고, 원로이고, 저명인사였다. 그날 마주친 쓰루미 교수는 사실 이 콘테스트의 심사의원이었는데, "내가 당신을 가장 최후까지 지지했다"며 나카타씨를 격려했다고 한다. 그리고 반년 뒤인 7월,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여성 생활자 잡지인 <부인의 벗>이 1000호 발행 기념 대담회에서 젊은 여성 생활자 운동가 대표로 나카타씨가, 원로로서 쓰루미씨가 대담 파트너가 된다.

좋은 가정이 좋은 사회를 만든다는 정신으로, 직접 생활을 해나가는 여성들의 눈에서 생활을 말하고, 의식주와 삶, 세계의 움직임과 자연, 환경, 자원문제 및 자녀 교육, 여성의 삶에 이르는 내용들을 담아내고 있는 <부인의 벗>은 올해로 창간 108주년을 맞는다. 이 잡지는 전국과 해외 각지에 195개의 독자회를 가지고 있을 만큼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다. 독자회는 "사상하면서, 생활하면서, 기도하면서"를 슬로건으로 하여 좋은 가정을 만듦과 동시에 사회의 진보에도 공헌하는 여성 생활자의 삶을 지향하고 있다고 한다.

쓰루미 교수와의 만남도 짧게 끝나고, 나카타씨는 남편의 해외 전근으로 인하여 딸 둘을 데리고 함께 노르웨이로 떠난다. 1987~89년 사이 노르웨이에 체류하게 된 나카타씨에게 <부인의 벗>과의 인연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노르웨이에 거주하던 또다른 일본인 독자 세츠코씨와의 만남과 교류를 나누며 외국 생활을 잘 이겨나가는 힘을 얻었다.

BPW총회에서 기조강연을 하는 나카타 씨 6월 12일, 전문직 여성들의 일할권리와 여성인권 신장을 위해 조직된 단체 BPW의 2010년 총회에서 강연을 하는 나카타 케이코씨, 그녀는 이날 "사람과의 만남이 인생을 바꾼다"는 취지로 자신의 시민운동 라이프를 밝고 경쾌하게 이야기했다.
▲ BPW총회에서 기조강연을 하는 나카타 씨 6월 12일, 전문직 여성들의 일할권리와 여성인권 신장을 위해 조직된 단체 BPW의 2010년 총회에서 강연을 하는 나카타 케이코씨, 그녀는 이날 "사람과의 만남이 인생을 바꾼다"는 취지로 자신의 시민운동 라이프를 밝고 경쾌하게 이야기했다.
ⓒ 전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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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타씨의 노르웨이 행은 본인이 처음부터 선택한 길이 아니라 남편을 따라 가족이 전부 이사를 하는 형태이기는 하였으나, 그녀는 보다 적극적인 생활을 했다. 북구의 신화를 읽고 아이들에게도 읽히면서 풍부한 자극을 얻었고, 어둡고 긴 겨울의 자연환경에 맞추어 맑은 날에도 비오는 날에도 어떠한 날씨에도 산책과 소풍, 야외 활동을 즐기는 삶의 방식을 이어간다. 그리고 자녀 교육을 하면서 '남녀평등 선진국, 인권교육 선진국'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던 노르웨이의 교과서나 교육 실태를 더 면밀히 파악하고 공부했다.

"중학교 교과서 첫페이지에 선주 민족이나 소수 민족의 문화나 민족차별 반대운동이 담겨 있는가 하면, 청소 노동자나 초콜릿 공장 노동자들의 사진도 실려 있었습니다. 또 당시 일본이 1년에 5~6명 정도의 난민만을 허용했던 데 반해,  꾸준히 아시아 각국으로부터 난민을 받아들여온 노르웨이의 난민 정책과 초등학교 4학년 교과서에 베트남 어린이들의 생활을 소개하는 부분 등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경험은 당시 딸들이 다니던 학교는 일본인 학교가 아니라, 노르웨이 현지의 학교였는데 나카타 씨의 딸들처럼 외국에서 온 학생들이 모국어를 공부할 권리를 중시하여, 매주 4시간 모국어 수업을 개설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노르웨이에는 베트남 사람들도 많았기 때문에, 학교에는 베트남어 모국어 교사 스완씨가 있었습니다. 어느날 교장 선생님이 '아이들에겐 모국어 수업을 받을 권리가 있다'면서 저에게도 수업료를 지불할 테니 딸들에게 매주 4시간씩 학교에서 모국어 수업을 해달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너무나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노르웨이 내의 모국어 교사는 교직원 조합도 결성했는데, 23개국어의 교사들이 모여서 노조에 대한 논의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 모임에 참가하면서 나카타씨는 난민과 정치적 망명을 한 세계 각국의 다양한 사람들과도 만나게 된다.

나카타씨는 상당히 많은 자료와 사진 등을 준비하며 파워포인트 화면으로 보여주면서, 각료의 절반이 여성이었던 브룬트란트 내각(노동당)에 대한 이야기에서부터 최근까지 지속되고 있는 노르웨이의 여성 파워와 양성평등에 대해 소개할 때는 부러움과 동경의 마음도 표했다. 또 노르웨이 초등학교 교과서의 양성평등 교육이나 남성의 육아 휴가 취득, 보육교사 속 남성 등에 대한 이야기도 펼쳐 놓았다.

노르웨이 생활을 2~3년 동안 마치고 다시 일본으로 돌아온 나카타씨는 교육잡지에 노르웨이의 교육에 대한 글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책을 저술하여 무언가를 전하는 일의 소중함을 인식해 책을 펴냈다. 그것이 <내가 만난 노르웨이>였다. 당시 그녀는 친구로부터 "무언가를 바꾸려고 생각한다면, 동료를 만들고 공부를 하라, 서로 협력을 하라"는 조언을 접한다.

이윽고 1991년 봄, 나카타씨는 사회를 바꾸고 자신과 사람들의 삶을 바꾸는 길로 이어지는 또 한 사람의 결정적인 동료를 얻는다. '카나'라는 이름의 여성 동료였는데, "응원할게요"라며 열렬하게 나카타씨의 시의회 의원 선거를 도왔다. 카나씨도 나카타씨도 선거운동은 초짜였다. 나카타씨의 시의원 입후보는 도쿄 생활자 네트워크 운동의 일환이었다.

일본 지역 풀뿌리 운동의 상징인 생활자 네트워크는 1977년 "삶의 방식을 바꾸자"는 슬로건으로 걸고, 그룹 생활자(생활자 네트워크의 전신)를 결성해, 도의회 의원 선거에 첫 도전을 한다. 현재 도쿄 도내 33개의 자치체에 생활자 네트워크가 있는데, "보도가 좁다, 재취직하려고 하는데 연령 제한 때문에 취직을 할 수가 없다, 육아의 괴로움을 사회가 해결해주면 좋겠다"는 등의 실제 생활과 지역 현장의 목소리를 정책화하고 해결하기 위해서는 의회에 진출해야 한다는 필요성에 의해 출발했다.

생활자 네트워크에서는 도, 시, 구 의회의 각 선거에 후보자를 내놓고 그 후보가 시 의원이 되면 최장 12년(3선까지 가능)까지 시의회 활동을 한다. 그 다음부터는 새로운 후보가 도전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지자체 생활 현장에 기반한 정치가를 스스로 만들어가는 일본 지역 풀뿌리 운동, 혹은 지방자치의 상징이 생활자 네트워크다.

이들은 수질 조사와 거리 조사, 공원이나 놀이터, 방치 자전거 조사 등 발로 뛰는 조사활동과 인터뷰, 앙케이트 등을 실시하고, 생활자의 시점에서 정리한 조사 결과를 기반으로 하해서 정책을 만드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1998년에는 육아와 개호, 여성과 연금, 99년에는 어린이 인권, 2000년에는 여성과 노동을 테마로 하여 조사를 펼쳤고, 정책을 정리하여 제안했다. 2009년을 기준으로 도의원으로 3명, 시·구 의회 의원으로 51명이 활약했다.

나카타씨도 1991년 처음으로 도쿄도 후츄우시 시의회 선거에 도전하여 "설마 당선될까?"하는 의구심 속에서, 동료들과 함께 즐겁게 선거운동을 해보자라는 생각했을 뿐인데, 덜컥 큰 표 차로 당선되어 버렸다. 선거운동에 참여한 전원이 '첫 경험'이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당선이 확정된 순간 나카타씨는 "내일부터 뭘 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BPW 총회의 젊은 커리어우먼 스피치대회 이날 BPW 총회에서는 나카타 씨의 기조강연이 끝난 후, 전국 각지에서 선발된 젊은 커리어우먼들이 각자의 주제로 짧은 시간동안 '여성과 일'을 주제로 하여 스피치 대결을 펼쳤다.
▲ BPW 총회의 젊은 커리어우먼 스피치대회 이날 BPW 총회에서는 나카타 씨의 기조강연이 끝난 후, 전국 각지에서 선발된 젊은 커리어우먼들이 각자의 주제로 짧은 시간동안 '여성과 일'을 주제로 하여 스피치 대결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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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4년 뒤 재선하였고 시의회 의원으로서 8년 동안 활약한다. 그 시기 주력한 것은 물 문제였다. 당시 생활자 네트워크에서는 1996년 지하수 보전 프로젝트, 1998년에는 물 순환 프로젝트를 내걸고 총체적인 물 정책을 정리하여 정책으로 제안했다. 이 제안은 도쿄도의 물 정책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특히 '물은 순환되어야 한다'는 사고가 자리매김되는 계기가 되었다.

시의원에서 물러난 뒤에도 그녀의 활약은 계속되었다. 난민을 돕는 모임에서 소마 유키카 등의 대선배들을 만나고, 아시아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을 만들어 활동하는가 하면, 선배 여성운동가를 위한 선거운동에 참여했다. 고향인 나가사키로 돌아온 것은 2000년이었다. 이제는 50세의 베테랑 운동가, 생활자였다. 당시 사회적으로 일본에서는 남녀공동참획 사회기본법, 개호 보험법, 가정폭력 방지법, NPO(비영리법인) 활성화 법안 등이 제정되려고 하는 무렵이었다.

나가사키에 돌아온 나카타씨는 2002년 DV 방지 나가사키를 설립하고, 이듬해부터 DV(domestic violence 가정폭력) 근절을 위한 연속강좌를 개최한다. 또 민간에서 어떻게 하면 피해자를 지원할 수 있을까를 모색하면서 주1회 전화 상담을 개설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면접상담 및 교육과 계몽활동에도 점차 더욱 박차를 가한다.

그리고 2004년부터 6년동안 200여 회에 걸쳐, 나가사키 현내외 5만3000 여 학생들의 학교를 찾아가 가정폭력이나 성폭력, 데이트 폭력 예방 수업을 실시한다. 폭력이란 무엇인지, 폭력을 접하면 어떤 기분이 되는지, 폭력은 왜 발생하는지, 어떤 게 폭력이고 어떤 게 사랑인지, 대등한 관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자신이나 친구가 피해를 당하거나 가해를 저지르고 있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알기 쉬운 예를 들어가며 수업을 진행해 왔다. 특히 도시권보다도 남자 중심의 문화가 더욱 강하며 교육문화적으로 더욱 소외되어 있는 섬과 외딴 시골 지역의 학교에 더욱 정성을 기울였다. 

가까운 남녀관계에서 벌어지는 신체적, 성적, 정신적 폭력에 대한 일본식 용어인 DV에 대하여 나카타씨는 말한다.

"DV는 일방적인 지배관계에서 발생합니다. 주로 남편이나 남자친구 등 남성이 여성에 대한 폭력과 지배가 많습니다. 가정폭력은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다', '싫으면 이혼하면 그만인데 헤어지지 않는 걸 보면 괜찮은 거다', '당하는 쪽에도 뭔가 잘못이 있다'는 잘못된 인식과 함께, 폭력을 용인하는 사회가 만들어 냅니다. 어떠한 폭력도 용인되지 않는 사회가 가정 폭력도 막을 수 있습니다. 또 폭력이 발생하더라도 사회와 공동체가 어떻게 대처하는가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풀뿌리 시민정치의 현장 도쿄의 생활자 네트워크뿐 아니라, 홋카이도, 사이타마, 구마모토, 후쿠오카 등에서 생활자 네트워크 혹은 시민 정치, 생활자 정치를 펼치는 네트워크 모임이 활성화되어 있다. 사진은 전국 각 지역의 생활자 시민 정치의 현장.
▲ 풀뿌리 시민정치의 현장 도쿄의 생활자 네트워크뿐 아니라, 홋카이도, 사이타마, 구마모토, 후쿠오카 등에서 생활자 네트워크 혹은 시민 정치, 생활자 정치를 펼치는 네트워크 모임이 활성화되어 있다. 사진은 전국 각 지역의 생활자 시민 정치의 현장.
ⓒ 전국시민정치네트워크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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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현 곳곳의 학교를 방문하여 이렇게 학생들에게 수업을 한 뒤, 나카타씨는 항상 빼놓지 않고 직접 만든 설문조사지를 배부하여 설문조사와 수업 소감글 등을 받아왔다. 그것을 일일이 전부 읽고 분석하는 것은 힘든 작업이었지만, 때로는 대학생 연구팀의 도움을 받기도 하였고, 여러가지 노력을 통하여 얻은 소중한 자료는 더 많은 활동가와 나누기 위해서 책으로 펴냈다. 그것이 2008년 10월에 발행한 <데이트 폭력에 대하여 알고 있습니까>이다.

그녀의 가정폭력 방지운동과 예방교육 수업에 있어서도 '만남'이라는 키워드는 큰 역할을 했다.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도 받아줄 학교가 없으면, 학생들에게 직접 다가가기란 쉽지가 않다. 그녀는 교장 선생님에게 편지를 보내거나 전화를 걸기도 하고, 교사들이 모이는 모임에서 먼저 수업을 실시하고 강연을 해서 한 사람 한 사람 교육현장의 사람들에게도 다가섰다. 그리고 수업을 받은 학생들이 적어낸 설문지의 감상문을 모아서 교장선생님께 보여드리면, 수업의 필요성을 알게된 교장 선생님이 다시 수업을 해달라고 의뢰를 해오기도 했다.

가정폭력, 데이트 폭력 예방 수업을 펼치면서 나카타씨의 마음에 남았던 한 남학생의 소감문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나는 폭력가정에서 자라서 나도 커서 그런 폭력 남편이 될까봐 걱정했는데, 꼭 그렇지만 않다고, 좋은 남편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참 다행이다. 오늘 수업을 듣고 안심했다."

나카타씨는 앞으로도 가정폭력 예방 교육과 피해자 지원 사업을 계속해나갈 생각이다. DV방지 나가사키는 단독 사무실을 가지고 있지 않고, 가정폭력 피해자 지원운동의 센터 역할을 할 수 있는 공간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피해자가 있을 수 있는 장소를 만들려고 계획 중이라고 한다. 시종일관 다정하고 따뜻한 음성으로 자신의 시민운동 스토리와 인생을 바꾸어 놓았던 소중한 만남에 대해 소개했던 나카타 케이코씨를 만나는 사람들도 아마 인생에 있어서 또 다른 새로운 페이지를 쓰게 되지는 않을까.


#나카타 케이코#생활자 네트워크#여성운동#가정폭력#데이트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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