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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부터 천안시 봉명동에서 우리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정경모(50) 대표. 개척교회 목회활동을 하던 중 저소득층 아이들이 마땅히 갈 곳 없어 시간을 허비하는 것을 보고 자비로 지역아동센터 운영을 시작했다.

평가에 시달리는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이 지역아동센터의 문화 강좌에 참여하고 있는 모습.
 아이들이 지역아동센터의 문화 강좌에 참여하고 있는 모습.
ⓒ 지역아동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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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지역아동센터는 중학생 4명을 비롯해 1일 평균 30여명이 이용하고 있다. 이 가운데 20명은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권자에 속하는 아이들. 다른 아이들도 조손가정이나 한부모 가정의 아이들로 실질적인 저소득층이다.

아이들은 지역아동센터에서 간식과 저녁 급식 제공은 물론 학습과 정서, 문화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정 대표를 비롯해 시설장 1명과 교사 2명, 급식 담당자 1명이 매일 아이들을 돌본다. 정부에서 지원되는 급식비를 제외하고 센터 운영비로만 한 달 450여만원이 지출된다.

시설장과 교사 인건비, 일부 프로그램 운영비로 시에서 매월 315만원을 지원받지만 실제 운영 경비에는 130만원 이상 부족하다. 모자란 경비의 충당은 정 대표의 몫. 후원금도 받지만 금액이 적어 큰 도움은 되지 않는다.

우리지역아동센터 운영 경비를 조달하느라 정 대표는 아르바이트 아닌 아르바이트를 한다. 오전에는 우리지역아동센터에서 일을 처리하고 오후에는 다른 지역아동센터 시설장으로 출근해 근무한다. 시설장으로 받는 월급 130만원은 고스란히 우리지역아동센터 운영비로 보탠다.

사실상 본인 급여는 없는 셈이지만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봉사의 일념으로 6년째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정경모 대표. 요즘은 센터 운영을 계속해야 하는지, 종종 회의를 느낀다. '돈' 때문은 아니다. 매년 반복되고 있는 '평가'가 원인이다.

"작년에도 평가 때문에 지역아동센터들이 녹초가 됐습니다. 매일 아이들을 돌보기에도 벅찬 지경인데 온갖 평가 서류 준비에 매달리니 지역아동센터들의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죠. 지난해 평가의 후유증이 치유되지도 않았는데 또 평가를 시행한다고 성화이니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천안 지역아동센터 93.6%, 평가 거부

천안시는 이달 초 각 구청을 통해 지역아동센터들에 공문을 발송했다. 공문의 제목은 '2010년 지역아동센터 평가 사업 신청 안내.' 시는 보건복지부가 작성한 '평가편람'을 첨부한 공부한 공문에서 7월 21일까지 지역아동센터 평가 사업을 신청해 달라고 요청했다.

지난 21일 평가 사업 신청은 마감됐다. 동남구청에는 21개 지역아동센터 중에서 1개소만 평가 신청서를 제출했다. 서북구청에는 2개소가 평가 신청서를 제출, 24개소 지역아동센터는 평가 신청서를 제출하지 않았다.

천안의 47개 지역아동센터 가운데 93.6%인 44개소가 평가 신청서를 미제출했다. 기한이 촉박해 제출하지 못했을까? 아니다. 평가를 거부한 것이다. 지역아동센터의 평가 거부 사태는 비단 천안의 상황 만이 아니다. 충남 전체적으로는 185개소 지역아동센터 가운데 150개소가 보건복지부 평가에 불만의 의사로 평가 신청서를 제출하지 않았다. 전국적으로도 비슷한 양상이다.

보건복지부는 지역아동센터의 평가 거부 움직임이 감지되자 7월 중순 각 시·도에 평가 사업의 원활한 추진을 독려하는 공문을 보냈다.

공문에서 보건복지부는 평가 신청 시설 수에 관계없이 2010년 지역아동센터 평가는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평가 거부 시설에는 예산 지원 불이익이 주어질 것이라는 점도 명백히 고지해 달라고 당부했다.

특히 평가 신청·실시에 대한 방해, 허위사실 유포 등에 대해서는 향후 엄중한 조치가 취해질 수 있다며 이와 관련한 지자체의 관리·감독 강화도 주문했다.

실제로 평가 신청서 접수 마감 다음날인 지난 22일 보건복지부 아동권리과 관계자는 기자와 전화 통화에서 "평가는 계획대로 진행한다"며 "평가를 받지 않는 지역아동센터에는 예산지원 불이익 등 패널티가 주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아동센터가 평가를 거부하는 까닭은?

만성적인 재정난을 겪고 있는 지역아동센터들이 보건복지부의 예산 지원 불이익 방침에도 평가 신청서 제출을 단체로 거부한 까닭은 무엇일까?

지역아동센터 종사자들은 평가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평가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천안지역아동센터연합회 김정운 대표는 "현재의 평가는 줄 세우기 식의 차별적 평가로 평가 기준도 정당하지 않다"며 "차등지원으로 좀 더 예산을 받기 위해 (지역아동센터가) 눈치봐가며 부풀려 경쟁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평가를 토대로 올해 지역아동센터들에는 예산이 차등 지원되고 있다. 천안의 경우 가장 낮은 평가 점수를 받은 지역아동센터의 월 지원금은 200만원. 4개소가 이에 해당한다. 천안에서 가장 높은 평가 점수를 받은 지역아동센터 2곳 월 지원금은 400만원. 최저 지원 금액의 2배에 달한다.

평가 방식이 상대평가인 탓에 모든 지역아동센터가 일정 수준 이상에 도달했다고 하더라도 예산 지원에서는 차이가 불가피하다. 평가 지표나 평가 위원단 구성, 평가 횟수의 적절성도 평가에 대한 불신을 부추긴다.

천안의 A지역아동센터 대표는 "지역아동센터 현실은 도외시한 채 단순한 서류 구비만 종용하는 평가 지표가 상당수"라며 "평가 준비에 내몰려 정작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지역아동센터의 가장 중요한 소임은 축소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지역아동센터의 시설장은 "평가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는다. 다만 제대로 된 평가를 받고 싶다"고 말했다. 이 시설장은 "현재 추진되고 있는 2010년 지역아동센터 평가는 2009년 평가의 문제점을 해소하지 못하는 등 평가의 정신과 기본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천안시에 따르면 올해 여름방학 동안 급식을 무료로 지원받는 저소득 아동은 3231명. 3명 중 1명은 지역아동센터에서 급식을 제공받는다.

지역사회 든든한 아동복지망인 지역아동센터가 평가 외풍에 휩쓸려 흔들리지 않을까,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천안지역 주간신문인 천안신문 583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지역아동센터#평가#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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