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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오자마자 경사가 생겼습니다. 우리 집 개 곰순이가 새끼를 낳은 것입니다. 이사 온 지 보름도 채 안 돼 무려 여덟 마리의 새끼를 낳았습니다. 곰순이를 닮은 검정개가 여섯 마리, 누렁이가 두 마리입니다. 그런데 누렁이는 어떤 녀석의 씨를 받은 것일까요?

누렁이는 어떤 녀석의 씨를 받은 것일까

곰순이가 이사 오고 나서 보름도 채 안 돼 여덟 마리의 새끼를 낳았습니다. 검정개 여섯 마리에 누렁이 두 마리입니다.
 곰순이가 이사 오고 나서 보름도 채 안 돼 여덟 마리의 새끼를 낳았습니다. 검정개 여섯 마리에 누렁이 두 마리입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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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짓는 하루 일을 마치고 목수들과 함께 달세 방으로 떠나면 곰순이 홀로 현장에 남아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인가 아침마다 곰순이 녀석의 모습이 보이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다 늦은 아침이 되어서야 어슬렁어슬렁 집 짓는 현장으로 돌아왔습니다.

혹여 불상사가 일어날까 봐 목수들의 손을 빌려 번듯한 집까지 지어주고 목줄을 길게 묶어 놓았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손가락보다 굵은 밧줄을 이빨로 끊고 어디론가 여지없이 밤마실을 다녀오곤 했습니다.

낮에는 풀어 놨다가 더 이상 밤마실을 다닐 수 없도록 하기 위해 좀 더 단단한 밧줄로 묶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녀석이 그토록 밤마실을 다녔던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진돗개처럼 생긴 녀석이 곰순이를 찾아와 백주대낮에 노골적으로 애정행각을 벌였던 것입니다.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가 날리도 만무하고, 곰순이와 생김새가 전혀 다른 두 마리의 누렁이 새끼들은 분명 그 진돗개처럼 생긴 녀석의 씨를 받은 게 틀림없었습니다.

곰순이 새끼들의 애비는 집 지을 당시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진돗개 닮은 이 녀석이 아닌가 싶다.
 곰순이 새끼들의 애비는 집 지을 당시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진돗개 닮은 이 녀석이 아닌가 싶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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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순이 녀석은 새끼를 낳던 전날까지 남산만한 배를 출렁거리며 뛰어다녔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밤, 개집에 들어가 꼬박 하루 반나절을 보내면서 새끼를 낳았습니다. 새끼를 낳고나서도 하루 이틀쯤 지나 또다시 산으로 들로 뛰어다녔습니다. 

개가 새끼를 낳게 되면 누구는 새끼들의 숨이 막힐까봐 코를 빨아주고 어쩌고 한다지만 우리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곰순이가 알아서 다 순산 처리했고 여덟 마리 모두 곰순이만큼이나 건강하게 잘 자랐습니다.

새끼를 낳은 순간, 어미는 그대로 자연이 된다

6년 전 우리 집에 처음 들어왔던 곰순이. 녀석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런저런 예방 주사 한 방 맞지 않고 건강하게 잘 자라 두 번째 새끼들을 순산했습니다. 곰순이 새끼들 역시 이런저런 주사 한 방 맞지 않고 새로운 주인을 만나 어미 품을 떠나는 그날까지 아주 건강했습니다. 

개를 애지중지 기르는 사람들이 보면 무책임하다 말할지 모르겠지만 곰순이를 믿기 때문입니다. 새끼를 낳는데 어미인 곰순이만한 손길이 세상에 또 어디 있겠습니까? 새끼를 낳은 곰순이는 스스로 갈무리하는 자연에 가깝습니다. 어미가 되는 순간 곰순이의 손길은 살아 있는 자연입니다.

그 자연 상태나 다름없는 어미와 새끼들, 사람의 손길이 오히려 다치게 할 수 있습니다. 새끼들이 사람의 손길이 닿게 되면 당장 눈에 뵈지는 않지만 훗날 자라면서 어딘가 모르게 몸의 균형이 깨질 수 있습니다. 끊임없이 이런저런 주사기가 들려 있는 사람의 손길을 필요로 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의 아기는 사람이 돌봐야 하듯 당연히 새끼 개는 어미개가 돌봐야 하질 않겠습니까? 물론 환경에 따라 다르겠지요. 만약 개가 새끼를 낳을 때 사람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환경이라면 그것은 개에 적합지 않은 환경일 것입니다.

새터의 평화유지견 곰손이와 나의 관계는 현관문과 방 사이가 적당한 것 같습니다. 곰순이는 방안보다는 밖에서 생활하는 것이 훨씬 편하니까요.
 새터의 평화유지견 곰손이와 나의 관계는 현관문과 방 사이가 적당한 것 같습니다. 곰순이는 방안보다는 밖에서 생활하는 것이 훨씬 편하니까요.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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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사람의 관계는 현관문과 방 사이가 적당한 것 같습니다. 곰순이는 방 안에서 사는 것보다 현관문 밖에서 사는 것이 훨씬 편하니까요. 어째든 사람이든 동물이든 만나면 헤어지기 마련. 곰순이 새끼들이 떠날 때가 되었습니다. 우리 식구가 새 터에 정착하는 데 많은 사람들에게 크고 작은 도움을 받았는데 곰순이가 거기에 큰 힘을 보탰습니다. 곰순이 새끼들이 그 보답을 했던 것입니다. 

곰순이는 새끼들이 하나둘씩 품에서 떠날 때, 똥오줌 핥아가며 애지중지 돌봤던 것이 언제였나 싶게 무표정 그대로였습니다. 새끼들의 이빨이 날카로워지면서 젖 물리는 것을 무척 힘들어 할 무렵이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새끼를 떠나 보내야 하는 곰순이의 심정을 누가 알겠습니까?

곰순이 새끼들이 하나둘씩 곰순이의 품에서 떠날 무렵 블루스 음악 작곡가 김유신씨가 아들 휘연이와 함께 놀러 왔습니다. 충남 공주에서 생활할 때 형 동생으로 흉허물 없이 지내던 유신씨였습니다.

기타 연주를 하는 유신씨 곁으로 다가와 앉아 있는 곰순이.
 기타 연주를 하는 유신씨 곁으로 다가와 앉아 있는 곰순이.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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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우리 집 마루에서 홀로 기타 연주를 하고 있는데 곰순이 녀석이 어슬렁거리며 등장했습니다. 현란한 기타 연주를 듣고자 한 것인지 어떤지는 몰라도 녀석은 유신씨 옆에 가만히 앉았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나 보기 좋아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컴퓨터 화면에 사진을 불러와 살펴보았는데 아주 기묘한 장면들이 잡혀 있었습니다. 사진 속에서 곰순이 녀석의 표정이 새끼들을 떠난 보낸 속 깊은 심정을 유신씨의 기타 연주를 통해 위로 받고 있는 듯보였습니다. 믿거나 말거나 한 얘기지만 누가 알겠습니까? 나 자신의 속마음도 잘 모르는데 곰순이의 속마음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곰순이의 속마음, 그 누가 알겠습니까마는

기타 연주를 듣는 곰순이 표정이 묘합니다. 감정이 절정에 이른 듯한 표정입니다.
 기타 연주를 듣는 곰순이 표정이 묘합니다. 감정이 절정에 이른 듯한 표정입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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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순이가 보여준 기묘한 행동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언젠가 우리 집 촌놈들, 인상이와 인효 녀석이 집 마당에서 야구를 하는데 적당한 자리를 잡고 앉아 구경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역시 놓칠새라 잽싸게 집안으로 들어가 카메라를 꺼내 들고 나왔는데 그때까지 고자세로 앉아 구경을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집 아이들이 야구하는 모습을 한참 동안 지켜보다가 별 흥미를 못 느꼈는지 되돌아 나오는 곰순이.
 우리집 아이들이 야구하는 모습을 한참 동안 지켜보다가 별 흥미를 못 느꼈는지 되돌아 나오는 곰순이.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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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순이 녀석은 사진을 찍거나 말거나 우리집 아이들이 야구공을 던지고 받아치는 것을 몇 차례에 걸쳐 구경하다가 재미없다는 듯 돌아섰습니다. 우리 집 아이들이 연방 헛손질하는 것이 영 재미가 없었던 모양입니다. 누가 알겠습니까? 곰순이의 야구에 대한 관심을.

그리고 마지막 남은 새끼 한 마리, 우리 집 아이들이 새터의 지명을 따서 달금이라는 이름까지 지어 주었는데 곰순이는 그 새끼 누렁이와 감동적인 일화를 엮어 주기도 했습니다. 누렁이 달금이는 집 짓는 동안 우리 식구에게 고맙게 대해준 바로 앞집 '박사장'(동네 사람들은 그를 박사장이라 부르고 있다)네 집으로 입양을 갔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늦은 밤에 곰순이 녀석이 그 새끼를 데리고 왔습니다. 우리 식구 모두 감동했지만 이제 겨우 사람을 쫄래쫄래 따라다니는 어린 달금이 녀석에게 목테가 채워져 있었습니다.

"아빠 그냥 우리가 기르자. 달금이가 너무 불쌍하잖어."

곰순이가 앞집으로 입양 갔던 새끼 달금이를 데리고 와 젖을 먹입니다.
 곰순이가 앞집으로 입양 갔던 새끼 달금이를 데리고 와 젖을 먹입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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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목테가 채워진 달금이 녀석이 안타까워 그냥 집에서 기르자며 졸라댔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냐구요? 달금이 녀석을 집으로 데려와서 함께 지내기로 했습니다. 아내 말로는 박사장네 부인에게 우리집 아이들이 간절하게 원해 달금이를 다시 데리고 가야겠다고 했더니 무슨 이유에선지 얼른 데려가라 했다고 합니다.

내가 애지중지 개를 끼고 살지 않는 까닭

나는 개를 좋아하지만 애지중지 품에 끼고 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강아지를 짧은 줄에 묶어 놓지는 않습니다. 개가 태어나 최소한 강아지적만큼은 자유롭게 커야 된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래야 훗날에도 사람을 해코지하지 않고 서로 필요로 하는 순한 개로 자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개에 대해 결론을 얘기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개를 좋아하지만 또한 두려워합니다. 너른 벌판에 살면서도 풀어 놓고 기르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잃어 버릴까봐 두려워하고 누군가를 물까봐 두려워합니다. 밭작물을 해칠까봐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묶어 놓는 순간. 그 두려움은 배로 커지게 된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어렸을 때부터 개와 가까이 해온 경험에 의하면 개는 묶어 놓고 기르게 되면 극도로 사나워집니다. 틈만 나면 왕왕거리고 짖어 댑니다. 풀어 놓았을 때보다 사람들에게 더 많은 두려움을 주게 됩니다.

농작물에 주는 피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개를 풀어 놓고 기르면 농작물에 큰 피해를 준다고 하지만 그것은 사실과 다릅니다. 개는 어쩌다 밭에 들어가 영역 표시를 하기 위해 똥을 누거나 오줌을 갈기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러다가 농작물을 밟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산짐승들이 주는 피해에 비하면 조족지혈입니다. 산짐승들은 아예 쑥대밭을 만들어 놓기 일쑤이기 때문입니다.

인적이 뜸한 들 너른 산간오지에서 개를 풀어 놓고 기르게 되면 오히려 농작물이 해를 덜 입게 된다는 것을 이번에 곰순이를 통해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일부 동물애호가들은 개를 풀어 놓으면 개가 산짐승들에게 피해를 준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 또한 단면만 보기 때문입니다. 개를 풀어 놓게 되면 산짐승들에게 어느 정도의 위협이 되고 또한 그만큼 산짐승들의 영역이 줄어드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개로 인해 농약이나 덫으로부터 산짐승들이 보호되는 측면이 많습니다.

곰순이는 평화 유지군

곰순이가 새끼를 낳기 전입니다. 아주 예민한 상태에서 어느 날 밤, 평소와는 달리 다급하게 짖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밖으로 나가 보니 집 짓고 남은 목재더미 근처에 있는 뭔가를 향해 집요하게 으르렁대고 있었습니다.

집 주변에서 곰순이에게 발견된 너구리. 농약에 중독된 듯 힘이 쏙 빠져 있었다. 효소를 먹고 이틀 후 산으로 되돌아갔다.
 집 주변에서 곰순이에게 발견된 너구리. 농약에 중독된 듯 힘이 쏙 빠져 있었다. 효소를 먹고 이틀 후 산으로 되돌아갔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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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턴을 들고 살펴보니 잔뜩 겁에 질린 너구리 한 마리가 구석에 몰려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일단 곰순이 녀석을 진정시켜 묶어 놓고 너구리 녀석을 불 밝은 마루에 올려놓았습니다.

뭔가에 중독이 된 듯 빼빼 마른 몸에 맥이 쏙 빠져 있었습니다. 몸 구석구석을 살펴 보았는데 다행히 곰순이에게 물린 자국은 없었습니다. 너구리 녀석의 날카로운 발톱조차 축 처져 있었습니다. 산짐승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밭 주변에 놓은 농약 같은 독약에 중독된 듯싶었습니다.

충남 공주에서 생활할 당시 농약에 중독되어 있던 백로를 살려 보냈던 경험을 되살려 일단 너구리 녀석을 커다란 종이 박스에 가둬 놓고 효소를 먹였습니다. 물론 곰순이는 너구리 때문에 꼼짝없이 묶이는 신세가 되었지요. 그리고 이틀 후 아침에 나와 보니 박스가 텅 비어 있었습니다. 종이 박스에는 커다란 구멍이 나 있었습니다. 너구리 녀석이 건강을 되찾아 탈출에 성공했던 것입니다. 

너구리 이야기를 들은 한 이웃은 우리 집 개를 풀어 놓지 말라고 당부를 했습니다. 농작물을 해치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에게 곰순이가 오히려 농작물을 보호하고 있다고 말하려다가 말싸움이 날 것 같아 그만두었습니다. 곰순이가 거의 매일 같이 영역 표시를 하며 돌아다니기 때문에 산짐승들이 농작물 근처로 오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분명 내 말이 터무니없다 여길 것이기 때문입니다.

동물애호가들은 물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산짐승들은 곰순이로부터 큰 해를 입지 않는가? 하지만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내 생각은 다릅니다. 곰순이로 인해 산짐승들이 농작물 근처로 다가와 농약이나 덫에 걸려 죽게 되는 경우의 수가 그만큼 줄어들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곰순이는 일정한 영역을 확보해 가며 사람과 산짐승 사이에서 평화 유지군처럼 중간자 역할을 하는 것이라 믿습니다. 새터에 와서 곰순이가 야생 동물을 물어 죽이거나 농작물에 큰 해를 입혔던 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곰순이가 앞으로 어떤 해를 입히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말입니다.

우리 집 바로 옆댕이에는 30여 평쯤 돼 보이는 작은 다랭이 밭이 있습니다. 최씨 아저씨네 부부가 구슬땀을 흘려가며 그 밭을 일굽니다. 대처에 나가 사는 자식들을 위해 농약을 거의 치지 않고 강낭콩 등을 갈아 먹는 밭입니다. 

"올해는 옥수수를 심어도 괜찮겠네요이. 저 개(곰순이)가 지켜 줄 테니께요."
"그 전에는 어땠는디요?"
"옥수수가 익을 무렵이면 너구리 새끼들이 떼로 몰려와서 쑥대밭을 만들어 놓는다니께요. 하나도 안 남기고 다 갉아 먹어요. 그래서 몇 년 전부터는 아예 옥수수를 갈아 먹을 생각도 못했지요이."


태그:#우리집 개 곰순이, #산짐승과 곰순이, #밭작물과 곰순이, #곰순이 새끼 달금이, #곰순이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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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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