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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아마존의 눈물'을 직접 촬영하고 돌아온 사람들이 무릎팍 도사에 출연한 것을 보았다. 아마존은 이 세상의 논리가 전혀 통하지 않는 곳 곧 야생이었다. 어쨌든 그들은 무사히 살아 돌아와서 토크쇼에도 나왔다. 하지만 그러기까지 조감독 한명이 사고로 죽을 뻔 했다. 모험담 같이 이야기를 하던 사람은 "만약 그가 잘못되었다면 그의 부모님 얼굴을 볼 낯이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제작비가 걸려있어 한사람 때문에 촬영을 접고 나올 수도 없고 되도록 빨리 찍고 나와야 했다고 말했다. 다큐멘터리라는 것이 그만한 가치가 있는 줄을 나는 몰랐다. 인간은 정말 자신의 존재보다도 큰 것이란 말인가. 그 사람들이 내 질문에 대답했다. 아마존이 오염으로 사라지기 전에 누군가는 기록해야 했다고 말이다.

 

<한국의 글쟁이들>에 등장하는 글쟁이들도 기록하는 사람들이다. 기록은 남는 것이다. 그가 만약 이 세상을 떠나도 남아있는 것들로 결코 자신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나는 그들이 기록하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들에 먼저 관심이 갔다. 정민교수의 전 재산이며 원래는 병원에서 차트를 꽂아두는 거치대는 돌려가면서 보기에 편리할 것 같았다. 건축저술가 임석재가 슬라이드 필름을 보호하기 위해 제자들을 모아 함께 신문지 1만장을 자르는 모습을 상상하자 무척 재미있었다. 또 민속학자 주강현박사는 서재에 제본기를 갖다놓고 직접 제본을 한다고 했다. 효율성을 굉장히 중시하는 공병호는 제일 좋아하는 간식이 초콜릿이라고 대답했다. 뇌에 빨리 포도당을 제공해서 머리를 잘 돌아가게 하기 때문이다.

 

  도올 김용옥은 옛날에 도사를 찾아가듯이 사계에 정통한 사람을 찾아가서 독서의 방향을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닥치는 대로 독서를 많이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데 그 사람이 자신의 빛을 얻지 못했다고 말해서 안타까웠던 적이 있다. 그래서 사람에게 진짜를 배워야 한다는 그의 말이 잘 이해되었다.

 

  그리고 이야기를 들으러 돌아다녔다는 동양학 저술가 조용헌도 진짜가 뭔지 알았기 때문에 직접 돌아다니는 것 같다. 그리고 도사 같은 사람들끼리는 사실 알아보기 때문에 오대산 사람이 지리산 사람을 소개해준다는 말도 진짜 그럴 것 같았다.

 

  만화작가 김세영은 백수시절 바둑을 두면서 뒷심을 길렀다는 말을 한다. 공격당해도 버티고 일어서는 잡초 같은 바둑이라는 말 안에는 이야기가 힘차게 절정까지 밀고 올라가서 멋지게 결론까지 도달하는 그 긴장감이 모두 응축되어 있다. 한비야는 자신이 겪은 사실을 그것보다 덜 표현할 수 없어서 글을 쓸 때마다 자신의 최대한을 능가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다. 한비야의 문장이 좋은 것보다 한비야가 더 좋은 이유도 그 때문이다. 글쟁이들은 그래서 글을 쓰지 않는 동안 이렇게 내공을 쌓는다.

 

  아마존의 눈물팀이 목숨을 걸고 아마존에 들어갔다면 이 책에 나온 글쟁이들은 자신의 한평생을 걸고 글을 쓴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이 책을 쓴 구본준기자도 마찬가지로 치열한 글쟁이다. 그의 깔끔한 소개로 여러 작가들의 몇 페이지를 넘겨볼 수 있는 담백한 책이다.


한국의 글쟁이들 - 대한민국 대표 작가 18인의 ‘나만의 집필 세계’

구본준 지음, 한겨레출판(2008)


태그:#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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