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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일 대안학교 '틔움'에서 일제고사의 대안 프로그램으로 실시한 체험활동 중 학생들이 각종 재료들로 칠판을 만들고 있다.
13일 대안학교 '틔움'에서 일제고사의 대안 프로그램으로 실시한 체험활동 중 학생들이 각종 재료들로 칠판을 만들고 있다. ⓒ 안미소

13일 오후 1시30분. 서울의 여느 학교라면 한참 학업성취도평가(이하 일제고사)가 시행되고 있을 시간. 서울 상계동 대안학교 '틔움'에서는 10여 명의 학생들이 테이블 서너 개가 전부인 좁은 공간 안에 빙 둘러앉아 칠판 만들기 작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일제고사 대신 '함께하는 체험' 학습을 선택한 학생들이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한 학생이 "다 만들었다"면서 분홍색 칠판을 들어올렸다. 칠판에는 보라색 분필로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No test, No loser"

대안학교 틔움은 이날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30분까지 일제고사를 거부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공동체놀이, 칠판 만들기, 초 만들기 체험 등을 진행했다. 이 날 일제고사 대안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은 모두 15명으로, 중3과 고2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들 중에는 선생님과 상의하여 대안학교를 찾은 학생도 있었지만, 대부분 스스로 '무단결석'을 택한 학생들이었다.

"당연히 혼나겠지만, 겁 나지 않아요"

이날 참가한 학생들은 서로를 닉네임으로 불렀다. 중3인 '클린앤'은 '왜 일제고사를 보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세상에 시험보기 좋아하고 서로 경쟁하고 싶어 하는 학생이 어디 있겠느냐"며 "저는 친구들이랑 경쟁하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무단결석에 대한 걱정은 없냐'고 묻자 "당연히 혼날 것이다. 저희 담임 선생님은 학교에서 보수꼴통 양대 산맥 중 한 명으로 불린다"면서도 "하지만 겁이 나지는 않는다"고 '씩씩하게' 말했다.

칠판 만들기 작업이 끝나고 초 만들기, 비누 만들기 체험이 이어졌다. 중고등학생이 하기에 다소 수준이 낮은 활동인 듯 보였지만, 학생들은 체험 내용보다는 방식에 의미를 두는 듯했다. 경쟁을 부추기는 시험이 아니라 함께 하는 활동이라는 점이다. '아즈'도 "시험성적이 전부가 아닌데 그것 하나로 학생을 평가하는 방식이 문제"라는 생각에 일제고사를 거부하고 대안학교를 찾았다고 했다.

'아즈'는 "우리가 선택했든, 선택하지 않았든 우리는 학교에서 팍팍하게 살고 있다"며 "그래도 함께 한다는 것이 삶을 조금은 덜 팍팍하게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틔움 담당자 임현정씨는 "학생들에게 다양한 체험을 통해 적성을 찾고 진로를 찾아가게 하는 것이 교육"이라며 "이런 목적으로 이번 프로그램을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13일 대안학교 '틔움'에서는 공동체놀이로 일제고사와 관련된 주제어 만들기 활동을 했다. 한 그룹이 신문을 오려 만든 꼴라주에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세요"라고 쓰여 있다.
13일 대안학교 '틔움'에서는 공동체놀이로 일제고사와 관련된 주제어 만들기 활동을 했다. 한 그룹이 신문을 오려 만든 꼴라주에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세요"라고 쓰여 있다. ⓒ 안미소

끊임없이 손을 놀리면서도 대화가 끊이지 않았다. 대화의 소재는 호화청사 논란 끝에 결국 모라토리움(지불유예)을 선언한 성남시청이었다.

"오늘 아침에 뉴스 봤어? 성남 부도났다는 소식?"
"봤어. 호화 청사 짓느라고 3000억 원 넘게 쓰더니 5200억 원 못 갚아서 지불 유예 했다더라."
"예전에 성남시청 조감도 보니까 완전 쩔던데(좋던데). 3200억 원 쓴 호화시청은 도대체 얼마나 좋은가 한번 가보고 싶다."

테이블 한 켠에서는 노트북을 손에서 놓지 않는 '레스'가 계속해서 일제고사 관련 기사를 모니터링해 알려줬다.

"전북이랑 강원도 교육감은 학생들이 일제고사 거부하면 다른 대체학습 시키도록 했대."
"오늘 학교에서 시험 거부한 학생들이 150명에서 200명 정도래."

'레스'가 일제고사 관련 소식을 들려줄 때면 웃고 떠들던 학생들의 표정도 사뭇 진지해졌다. 서울시교육청이 시험을 거부하는 학생들을 '기타결석' 처리하겠다던 처음 입장을 번복했을 땐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여기저기서 '결정권', '기타결과'에 관한 이야기들이 오고갔다.

"진보교육감이 모든 문제 해결해 줄 거라는 기대, 문제 있죠"

 13일 대안학교 '틔움'에서는 '일제고사'를 거부한 학생들을 위해 '함께하는 체험' 학습이 진행됐다. 행사에 참석한 '밤의 마왕'이 자신이 만든 칠판을 자랑스럽게 보여주고 있다.
13일 대안학교 '틔움'에서는 '일제고사'를 거부한 학생들을 위해 '함께하는 체험' 학습이 진행됐다. 행사에 참석한 '밤의 마왕'이 자신이 만든 칠판을 자랑스럽게 보여주고 있다. ⓒ 안미소
진보 성향의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은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대화거리였다.

"곽노현 교육감 재산 신고한 거 보니까, 17억 원이던데, 누락한 건 없겠지?"
"모르지. 나는 곽노현이라고 해서 무조건 좋아하지는 않아."

곽노현 교육감에 대해 고1 '따이루'도 할 말이 많았다. '따이루'는 기자에게 "진보 교육감이 탄생했다고 해서 그 사람이 일제고사든 경쟁교육이든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거라고 기대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교육감 한 사람에게 기대기보다는 학생들과 시민들이 연대해서 곽노현의 정책에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갑자기 한 학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학교에서 출석체크를 하러 오라는 지시가 내려졌단다. 학생들은 아쉬운 표정으로 그 학생을 보냈다. 이 학생 외에도 이날 아침 틔움에 오던 중 "당장 돌아오라"는 학교의 전화를 받고 급히 돌아간 학생이 5명이나 더 있었다.

중3 아들을 데리고 온 박현숙씨는 "일제고사는 학생을 서열화하고 그 서열화된 질서에 따라 일종의 교육 권력을 형성한다"며 "학부모들도 일제고사가 좋지 않다고 생각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불이익이 갈까 봐 계속 시험을 보게 하는 것을 보면 이상과 현실이 멀다는 것을 느낀다"고 지적했다.

덧붙이는 글 | 안미소 기자는 12기 오마이뉴스 대학생 인턴입니다.



#일제고사#대안학교#무단결석#진보교육감#학업성취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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