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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고사 보더날 현장체험학습장을 집 앞 바다로 정했다. 큰 아이 송인효 녀석과 함께 바다를 거닐면서 녀석이 읽은 책을 얘기했다.
일제고사 보더날 현장체험학습장을 집 앞 바다로 정했다. 큰 아이 송인효 녀석과 함께 바다를 거닐면서 녀석이 읽은 책을 얘기했다. ⓒ 송성영

아침부터 비가 내렸습니다. 아주 가는 이슬비입니다. 오늘(7월 13일)은 작은 아이 인상이 녀석만 홀로 학교에 갔습니다. 중학교 3학년인 큰 아이 인효 녀석은 학교에 가질 않았습니다. 일제고사 보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충남 공주에서 생활했던 지난해에도 역시 일제고사를 거부한 녀석입니다. 녀석 스스로가 결정한 일입니다.

일제고사 보는 날, 전남 고흥에서 전교조 활동을 하고 있는 강 선생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이미 체험학습을 신청한 아이들이 광주로 떠났다고 합니다. 녀석은 단체 체험학습을 떠나는 것을 포기하고 책을 읽다가 바다로 나서기로 했습니다. 녀석은 전날부터 책 한 권에 푹 빠져 있었습니다. 일제고사를 거부하는 만큼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전 내내 책을 읽던 녀석과 함께 사시사철 체험학습장인 바다로 나섰습니다. 오후의 바다는 모래사장과 자갈밭과 갯벌을 널찍하게 열어놓았습니다. 집에서 3백 미터도 채 떨어지지 않은 바다, 늘 마주 대하는 바다지만 오늘은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녀석과 나란히 열린 바다를 걸으면서 예전에도 그랬듯이 똑같은 질문을 들이댔습니다. 

"일제고사 왜 거부하는데?"
"시험이 너무 많어. 일주일 전에도 봤잖아, 그런데 또 봐? 거기다가 일제고사 거부한다고 선생님들이 해직 당하고 징계 받고 하는 것은 정말로 옳지 않다고 봐. 친구들과 경쟁하는 것도 싫고."
"니들 반 애들은 뭐라구혀?"
"일제고사 보는 거 다 싫다고 하지 뭐."

녀석은 기말고사를 본 지 불과 일주일 밖에 안됐습니다. 사흘에 걸쳐 열 한 과목을 보았습니다.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립니다. 그리고 또 다시 이틀에 걸쳐 일제고사를 본다는 것입니다. 끔직한 일입니다.

일제고사를 강요하는 인간들에게 닷새에 걸쳐 시험을 보라 억압한다면 뭐라 할까요? 신나는 일이라고 할까요? 이미 그런 단계를 다 거쳤기 때문에 더 이상 보지 않아도 된다고요? 그럼 그 단계를 거칠 때 어떤 기분이었나요? 그 단계를 극복했기에 한 나라의 교육정책을 담당하고 있다고요? 그런 강요와 억압된 시험을 거쳤기에 또 다른 누군가를 억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기말고사 끝나자마자 다시 일제고사... 이건 아니지요

 녀석의 현장체험 학습장은 집 앞 바다입니다. 이슬비가 내리는 오후의 바다가 활짝 열리고 있었습니다.
녀석의 현장체험 학습장은 집 앞 바다입니다. 이슬비가 내리는 오후의 바다가 활짝 열리고 있었습니다. ⓒ 송성영

인효 녀석은 기말고사가 끝나자마자 일제고사를 준비하기 위해 아침 자습시간에 꼬박꼬박 시험 문제에 코를 박았다고 합니다. 그뿐 아닙니다. 보통 때는 기말고사가 끝나면 7·8교시를 하지 않는데 일제고사를 위해 또다시 시험문제를 풀었다고 합니다. 하루에 세 시간씩 일제고사를 준비하기 위해 시험문제를 풀고 또 풀었다는 것입니다. 시험을 보기 위해 태어난 아이들 같습니다. 선택권조차 없습니다. 강압과 억압으로 무조건 시험을 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불이익을 당하게 됩니다.

담임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일제고사를 거부하면 무조건 무단결석 처리하라는 교과부의 지침이 내려왔다고 합니다. 일제고사 기간 동안은 체험학습 신청도 받지 말라 했답니다. 작년에는 체험 학습을 신청하면 담임선생님이 난처한 상황에 처할까봐 질병 처리를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조차 통하지 않았습니다.

담임선생님 말로는 반 아이들이 이미 인효 녀석이 일제고사를 거부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질병 처리를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효 녀석 딴에 일제고사 거부의 이유 중에 하나가 선생님들을 위한 것이었는데 정작 선생님은 그런 인효 녀석에게 무단결석이라는 징벌을 내릴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무단결석 처리로 불이익을 당하지 않게 하려면 내일이라도 인효가 시험을 보도록 학교로 보내 달라고 합니다. 일제고사를 보고 안 보고는 아들 녀석의 선택입니다. 나는 그런 선생님에게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그렇게는 못하겠습니다. 현장 체험 학습을 신청할 테니까 그렇게 처리해 주십시요."

무단결석으로 그깟 고등학교 입학의 불이익과 우리 아이의 자유로운 선택을 어떻게 맞바꿀 수 있겠습니까? 부모된 자로서 녀석 스스로 선택한 자유를 박탈할 수는 없었습니다. 굴종을 강요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학생은 물론이고 선생님들과 학부모인 나까지 일제고사를 전투적으로 대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담임 선생님이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교육자 이전에 꼬박 꼬박 월급 받아 생활하는 직장인으로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요.

문제는 선생님들의 밥줄을 쥐고 있는 교과부입니다. 도대체 교과부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무엇을 시험하고자는 것일까요? 선생님들에게 무엇을 시험하려는 것일까요? 억압된 사회의 틀 속에 얼마나 잘 버티는지를 실험하는 것일까요? 자유가 없는 무조건적인 선택은 억압과 굴종이 뒤따르기 마련이고 결국 아이들은 일제고사를 통해 억압과 굴종을 교육 받고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니가 일제고사 봤으면 했다며?."
"학교 성적이 제일 안 좋은 학교는 아홉시까지 공부해야 한데. 그래서 선생님이 강요하지는 않았지만 일제고사를 봤으면 하더라구."

성적이 상위권에 속하는 인효 녀석이었기에 일제고사를 보게 되면 전체 평균 점수를 올릴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공부 못하는 아이들이 일제고사를 거부하는 것은 괜찮단 말인가? 선생님들이 설마 그런 생각은 하지 않겠지요?

 송인효 녀석이 모래와 뻘이 섞인 바다에서 무엇인가를 발견했습니다.
송인효 녀석이 모래와 뻘이 섞인 바다에서 무엇인가를 발견했습니다. ⓒ 송성영

 빈 조개 껍질 속에 집게가 들어 있습니다.
빈 조개 껍질 속에 집게가 들어 있습니다. ⓒ 송성영

인효 녀석이 물 빠진 바다 한가운데로 들어서면서 작은 조개 하나를 주워들었습니다. 조개 속에는 집게 한마리가 몸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집게발을 꼼지락거리고 있었습니다.

"자세히 봤으면 좋겠는데 집게가 밖으로 나오지 못하네."
"두렵기 때문에 그렇지."
"뭐가?"
"... 집게도 그렇고, 불이익을 당할 두려움 때문에 꼼짝 못하는 사람들."
"아빠 뭐라고 했어?"
"아냐, 아무것도."

나는 바닷물 가까이로 다가가며 혼자말로 중얼거렸습니다. 그랬습니다. 아이들이 공부하는 이유는 자유로운 삶을 누리기 위한 것입니다. 좋은 대학 나오고 좋은 직장 구하는 것 또한 자유로운 삶을 살기 위한 것입니다. 부모들은 자식들이 그렇게 살지 못할까 두려워 죽어라 공부시킵니다. 하지만 억압과 굴종을 강요하는 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훗날 자유로운 삶을 누릴 수 있을까요?

"우리 이제 그런 얘기 그만하자, 송인효! 신발 한번 벗어 봐봐!"

 폭신한 갯벌에 샌들을 벗고 맨발로 걸었습니다.
폭신한 갯벌에 샌들을 벗고 맨발로 걸었습니다. ⓒ 송성영

 송인효 녀석이 맨발의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송인효 녀석이 맨발의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 송성영

신발 벗고 바다에 들어가니 너무 좋아요

녀석이 샌들을 벗고 맨발로 걸어가며 그럽니다.

"야, 발바닥이 편한디, 이제 바다에 나오면 맨날 이렇게 놀아야 겠다."
"편하지이. 근디 너 그 책 이해하겄데?."
"어떤 책?"
"니가 어제부터 읽은 거, 이현주 목사님이 쓴 <그러므로 저는 당신입니다>."
"그 책 내용 중에 이현주 목사님이 참새한데 다가가는데 늑대와 나비처럼이라는 말이 제일 맘에 들었어."
"그게 무슨 뜻인데?"
"자신이 나비처럼 가벼웠으면 무서워하지 않았을 텐데 그런 뜻이었어."

"그리고 또 그 책 읽으면서 뭘 느꼈어?"
"목사님인데 예수님은 물론이고 노자나 부처님도 자신의 스승이라고 얘기하는 것이 좋았어"
"어떤 것에 메이지 않고 자유롭기 때문에 그렇겠지이."
"응. 그런 거 같어."

체험 학습이 따로 있겠습니까? 녀석은 일제고사 거부를 통해 큰 체험을 한 것 같았습니다. 일제고사 거부와 함께 스스로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책 한 권을 독파하면서 두려움 없는 자유에 눈 떠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이현주 목사님이 쓴 책, <그러므로 저는 당신입니다>는 무슨 뜻인 거 같어?"
"글쎄? 그거 응..."
"너와 내가 따로 없다는 것이지, 나는 너고 너는 또 나고. 전에 아빠가 얘기했지? 냇물이 바다에 이르러 하나가 되듯이 삼라만상이 하나라고. 모두가 하나인데 그게 말처럼 가슴 다가오지 않지, 아무튼 무단결석 처리하겠다는 담임 선생님을 미워하면 안 된다. 너나 아빠 또한 선생님과 다르지 않으니께."
"알았어."

 송인효 녀석이 바다를 등지고 구름낀 산을 바라보고 뭔가를 생각합니다.
송인효 녀석이 바다를 등지고 구름낀 산을 바라보고 뭔가를 생각합니다. ⓒ 송성영

바닷물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녀석은 바다를 등지고 눈앞으로 펼쳐진 구름 낀 산을 바라봅니다. 우산을 쓰고 한참 동안 산을 바라보고 서 있습니다. 녀석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더 이상 묻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녀석조차도 알 수 없는 그 어떤 자연의 심성이 녀석의 깊숙한 곳에 자리잡게 될 것이니까요.

그렇게 오늘 녀석의 현장체험 학습은 다 끝났습니다.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같은 날 만큼은 인효 녀석뿐만 아니라 시험에 억압당하는 대한민국의 모든 아이들에게 강요된 지식의 바다가 아닌 몸으로 체험하는 지혜의 바다를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바다에서 무엇을 느꼈냐?" 

아이들은 인효 녀석처럼 대답할 것입니다.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걸으니까 너무 편해요!"

덧붙이는 글 | 7월 13일 전남도교육청 앞에서 일인시위를 했던 신선식 선생님과 통화를 했습니다. 현장체험 학습을 신청한 아이들이 무단결석처리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건의를 했는데 전남도 교육청에서 그 문제를 의논해 보겠다고 했답니다.



#일제고사 거부#현장체험학습#바다와 자유#억압과 굴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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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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