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한울림소극장

관련사진보기

대구 극단 동성로의 제 13회 정기공연 <루브>. 우리에게 <타이피스트>나 <불어를 하세요?>로 알려진 미국 희곡작가 '머레이 쉬스갈'의 작품이다.

<타이피스트>나 <불어를 하세요?>에서 볼 수 있듯이 머레이 쉬스갈의 작품 기조는 자본주의 사회를 비트는 특유의 블랙 코미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풍자와 시니컬함 속에서도 또 각각의 삶의 애환을 드러내 보여준다. <루브> 역시 그 기조에서 벗어나진 않은 것 같다. 오죽하면 제목이 <러브>가 아니라 비틀어서 <루브>이겠는가.

작품에 나오는 인물은 넷. 밀트와 해리, 그리고 밀트의 아내 엘렌. 그리고 왜 나왔을까 싶지만 극의 윤활유 역할을 해주는 조. 이들이 엮어내는 우리시대의 사랑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자.

밀트와 엘렌은 부부. 이들은 벌써 권태기에 접어들었고 밀트는 린다라는 여자와 연애 중이다. 밀트는 어떻게든 엘렌과 이혼하고 싶지만 엘렌은 절대 이혼만은 못해준다고 한다. 사랑도 애정도 다 식었는데 이 여자는 왜 이혼을 안 해줄까, 빨리 새로운 사랑 린다와 살고 싶은 밀트. 그런 밀트가 어느날 자살을 시도하려는 한 남자를 보게 된다. 그 남자는 대학동창 해리.

학교 때는 잘 나가던 '도스토예프스키'였으나 지금은 별 볼 일 없는 행색의 남루한 그. 세상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자살을 시도하려던 중 대학 동창 밀트를 만나게 된 것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어보면서 밀트는 자신의 이혼에 해리를 이용해보려 한다. 해리에게 사랑을 할 것을 조언해주며 자신의 아내 엘렌을 만나보라고 한다. 그저 만나기만 하려고 했지만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해리와 엘렌은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급기야 엘렌은 밀트에게 이혼을 선언한다.

이제 각자 새로운 길을 걷게 된 세 사람. 서로 사랑한다고 믿었던 그 사람과 행복하게 살고 있을까? 그들의 사랑의 방식대로라면 당연히 새로운 사랑과 행복해야 한다. 그러나 대답은 'NO'! 우연히 만나게 된 밀트와 엘렌은 서로의 사랑을 포장하며 행복에 겨운 듯 이야기하지만 결국 지리멸렬한 서로의 삶을 실토한다. 밀트가 그렇게 완벽하다고 느꼈던 밀트의 새 사랑 린다는 게으르기 이를 데 없고, 엘렌의 '도스토예프스키' 해리는 공허한 사랑만을 입버릇처럼 남발한다.

새 애인에게서도 '사랑'의 진정성을 얻을 수 없었던 밀트와 엘렌은 재결합하기로 한다. 이제 해리는 이들에게 거추장스러운 존재가 되어버린다. 이에 해리를 제거할 계획을 세우는 밀트와 엘렌. 그러나 일이 꼬여 밀트는 물에 2번이나 빠지며 죽다 살아나는 신세가 된다. 해리 역시 밀트와 엘렌의 간계로 물에 빠져 죽다 살아나는 신세가 된다.

서로 사랑이라 믿으며 모든 것을 다 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던 감정이나 느낌도 고여 있으면 썩기 마련이다. 물이 고여 있으면 썩듯이. 사랑하는 사람이 내 옆에 있다는 존재감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사랑의 감정은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 여기에 더 해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행동이며 변화다. 사랑하는 감정이 식지 않도록 생각과 행동이 따라야 한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노력이며 또한 상대방에 대한 배려이기도 하다.

밀트와 엘렌, 해리는 우리시대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자기만의 사랑, 자기 생각대로만의 사랑이 있을 뿐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노력이 이들에겐 결여되어 있다. 이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기적인 현대인의 모습이며 더 나아가서는 자본주의 시대, 돈과 명예로 사랑을 멋대로 포장하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쉬스갈은 이런 우리들의 모습을 이미 1960년대에 읽어냈던 것이다.

연극을 보고 난 후 씁쓸한 느낌이 많이 들었다.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바로 눈 앞에서 보는 것 같아서이기도 하고 엘렌의 마지막 대사처럼 '우리는 우리 각자의 삶 속에 갇혀있다'는 느낌이 들어서다. 밀트와 엘렌, 해리는 저마다 사랑을 외치지만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닌, 공허한 메아리처럼 흩어질 뿐이다.

<러브>가 되지 못한 <루브>. 씁쓸한 맛을 느껴야 했지만 언젠간 진정한 '러브'가 무대에 올려져 사랑의 참맛을 느끼게 될 그 날을 기대해본다.

덧붙이는 글 | - '도발대구'라는 인터넷웹진에도 기사가 게재되었습니다.
- 연극 루브는 6월 18일 ~ 7월 4일까지 대구 한울림 소극장에서 공연했습니다.



태그:#러브, #루브, #동성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