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최근에 찍은 고흥 새집. 아직 채 다 갈지 못한 밭 주변에 강아지풀이 수북하게 자라 있다.
 최근에 찍은 고흥 새집. 아직 채 다 갈지 못한 밭 주변에 강아지풀이 수북하게 자라 있다.
ⓒ 송성영

관련사진보기


지혜의 강은 오고 갈 수 있으나 욕망의 강은 한 번 건너고 나면 다시 되돌아가기 힘든 것 같습니다. 아내의 '내친 김에' 욕망은 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인효 아빠, 내친 김에 새것으로 하자."
"그냥 새것으로 하시죠. 변기도 그렇고 세면대도 그렇고 부속품이 빠져 있어 설치하기 어렵겠는데요."

'내친 김에' 병에 걸린 아내, 새것에 눈 뜨다

변기와 세면대를 설치해 주겠다고 다시 집 짓는 현장으로 돌아 온 윤구씨가 아내를 거들었습니다.

"거시기, 그거 없는 부속품 구해서 설치하믄 안 되나?"
"아이구, 형님 그걸 어디서 구해요. 그냥 형수님 하자는 대로 하세요."
"인효 아빠는 가만히 있어. 내부 설비는 내가 다 알아서 할 거니까."

부속품이 한두 개쯤 빠져 있는 멀쩡한 화장실 변기며 세면대를 집 짓는 현장 옆에 모셔다 놓고 아내는 윤구씨와 한통속이 되어 내친 김에 새 것으로 설치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공주에서 시골생활할 때 새것을 쓰지 않고 거의 모든 생활용품을 재활용해 사용했던 아내가 아니었습니다. 새 집을 지었으니 거기에 구색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투덜거리거나 말거나 아내와 윤구씨는 건재상에 가서 새 변기며 세면대를 비롯한 유리며 비누 받침대, 수건걸이 등을 구입해 돌아왔습니다. 윤구씨가 화장실 설비를 할 무렵 장판과 도배, 싱크대 등을 설치할 업자들이 찾아왔습니다.

도배와 장판지를 가장 저렴한 것으로 하자고 했지만 아내는 중간 가격대로 골랐습니다. 싱크대 역시 본래 시골집에 쓰던 것을 다시 설치해 놓고 쓰려고 했는데 아내는 새집에 비해 싱크대가 너무 작고 낡았다며 새 것으로 장만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대충 적당한 걸루 혀, 때 안 끼고 그런 거 있잖어. 애들 방은 밝은 걸루 하구."
"가만 있어봐, 그래도 민박집을 할 건데 깔끔한 것으로 해야지."
"좋은 놈 찾다가는 끝이 없다니께."
"내가 다 알아서 한다니까. 화장실이나 싱크대나 가스레인지 이런 건 기본이잖아."
"그냥 쓰던거 쓰지, 인건비 주고 나서 이제 돈도 별로 없잖어. 그런 거 설치할 돈이나 있어?"
"어디서 한 오백만 원 빌릴 수 있어."
"빚을 져?"
"걱정 하지 마, 내가 다 알아서 할게. 까짓 거 이럴 때 써야지 언제 쓰겠어."

돈 쓰는 데 겁을 내가며 한 푼 두 푼 모아 왔던 아내는 점점 간이 커지고 있었습니다. 화장실이 따로 설치된 손님용 큰 방에도 가스레인지와 싱크대, 작은 냉장고까지 설치해 원룸 형식으로 말끔하게 꾸며 놓았습니다. 그동안의 힘들었던 시골살이를 집 꾸미는 것으로 그 보상을 받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10여 년 전 시골 빈집을 구했을 때 용감무쌍하게 허물어진 빈집에 들어가 헌 장판지를 끄집어내 냇물에 씻고 또 씻어가며 재활용했던 아내가 아니었습니다. 내부 공간 설비에 점점 눈이 높아져 가고 있었고 그런 와중에도 업자들과 흥정을 하면서 물품과 설치 비용을 깎고 또 깎아댔습니다.

"어휴, 도배집 사장님한티 괜히 미안혀네, 여기까지 오라고 해놓고 자꾸만 깎아대구. 인효 엄마 대충 혀, 그러다가 저 분들 인건비도 안 나오겠다."
"가만히 좀 있으라니까."
"아이구 머리 아퍼. 이제 나도 모르겠다."

나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저만치서 쭈그려 앉아 담배를 뻑뻑 피우고 있다가 아내에게 시달림을 당하고 있는 업자들에게 미안해 실실 아내 눈치를 살펴가며 한 마디씩 툭툭 던져 놓고 은근슬쩍 집 밖으로 빠져 나오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아내가 원하는 대로 집 내부는 '삐까번쩍' 호화판으로 꾸며졌습니다. 아내 말대로 그래봤자 보통 아파트 내부 수준에 불과하다지만 이전에 살던 시골집을 생각하면 초호화판이라 할 수 있었습니다. 집 내부로 들어설 때마다 물질의 거센 물살을 휩쓸려가고 있는 것처럼 어지럼증이 났습니다.

내부 설비가 마무리될 무렵 뒤늦게 장작 보일러가 들어왔습니다. 보일러 대리점 사람들이 한창 장작 보일러를 설치하고 있는데 아내가 그럽니다.

"아참! 아랫집 할아버지가 땔나무 갖다 때랬어."
"할아버지는 어떻게 하시구?"
"이제 아궁이 불 지피시는 것도 힘드시나봐."
"그렇게 많이 안 좋으셔? 할아버지 뵌 지도 한 달이 넘었구만......"

이 호사스러운 집에 누굴 초대하나

공주 시골집 유씨 할아버지와 땔감. 유씨 할아버지는 거동이 불편해 아궁이 불 조차 지필 힘이 없어지셨다.
 공주 시골집 유씨 할아버지와 땔감. 유씨 할아버지는 거동이 불편해 아궁이 불 조차 지필 힘이 없어지셨다.
ⓒ 송성영

관련사진보기


공주 시골집에서 큰 인연을 맺은 유씨 할아버지는 흙에 대해 쥐뿔도 모르는 내게 농사일을 가르쳐준 사부님입니다. 농사일뿐 만아니라 여유로운 마음자리를 몸으로 일깨워 주기도 했습니다. 나는 빈 지게를 지고 씩씩하게 산에 오르지만 짐 지고 내려 올 때는 헉헉 거리며 온갖 죽을 인상을 쓰곤 했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지게를 지고 산에 오를 때와 땔나무를 한 짐 지고 지게 작대기에 의지해 내려 올 때의 걸음걸이가 다르지 않습니다.

'저걸 어느 세월에 다 깨나?' 싶은 묵정밭 한 가운데의 바위덩어리를 단지 망치와 정만을 들고 그 앞에 하루 종일 붙어 앉아 적당한 크기로 깨서 가장자리에 쌓아놓기도 했던 유씨 할아버지. 마치 태극권의 고수처럼 느릿느릿한 몸짓으로 생활 하는 할아버지로부터 생활의 긴 호흡을 배우기도 했습니다.

"할아버지한테 용돈을 쥐어 드렸더니 그동안 고마웠다며 내 손을 붙들고 우시더라구. 나도 할아버지하고 손잡고 한참을 펑펑 울었어."

재작년 봉순 할머니를 세상 떠나보내고 홀로 생활하시는 유씨 할아버지는 우리 식구가 이사를 가면 영영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예감하셨던 모양입니다. 평생 소처럼 땅을 일구며 살아오시다가 여행이라고는 어쩌다 동네 노인 위안 여행을 떠나는 것이 전부였던 유씨 할아버지. 공주에서 저 멀리 남녘 땅 끝, 전남 고흥은 할아버지에게는 평생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했을 만큼 멀고 먼 곳일 것이었습니다.

유씨 할아버지의 먼 거리만큼 우리 부부 또한 먼 곳으로 내달리고 있었습니다. 새 집을 지으면서 아주 먼 곳으로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지난 세월들이 아뜩하기만 했습니다. 그 끝이 어디인지 모르겠지만 분명 이전의 소박한 생활로 되돌아가기 힘든 그런 곳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습니다. 아내의 소박한 마음조차 먼 곳으로 내빼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습니다.

이런 호화스러운 집을 짓고 누구를 초대할 수 있단 말인가? 언젠가 소설가 강병철 선배가 평수 너른 아파트로 이사해 놓고 한 말이 떠올랐습니다.

"글쎄 오지 말라니께. 아주 넓어, 니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아주 넓다니께."

집에 초대하지 못해 미안해 하는 강 선배의 심정이 와 닿았습니다. 그럼에도 꼭 보여 주고 싶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머니였습니다. 새 집을 완성하고 나서 세상에서 가장 기뻐할 사람은 아내와 어머니였습니다.

평생 새집 한번 가져보지 못한 어머니

몇 해 전 공주 시골집에서 봄 나들이 나서는 어머니와 아내. 아직도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는 고흥 새집에 오지 못했다.
 몇 해 전 공주 시골집에서 봄 나들이 나서는 어머니와 아내. 아직도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는 고흥 새집에 오지 못했다.
ⓒ 송성영

관련사진보기


어머니는 열아홉에 가세가 기울어져가는 진사 참봉댁으로 시집와 평생 제 땅에서 새 집을 짓고 생활한 적이 없습니다. 할아버지는 그 많았다던 땅을 다 팔아 일제 강점기 당시 광산이며 서울에서 새 살림을 차린 덕분에 땅 한 평 남아 난 것이 없었습니다. 훗날 아버지가 농사지어 장만한 몇 마지기의 땅 역시 사촌 형을 서울로 대학 보내기 위해 죄다 팔아 넘겼고 현재 어머니가 시집와 평생 생활하고 있는 낡은 집조차 남의 땅에 얹혀 있습니다.

땅 사고 새집 짓는 것이 소원이셨던 어머니였지만 구멍가게며 과일가게 등으로 온갖 고생고생 번 돈은 우리 7남매 먹이고 입히고 교육시키는 데 한 푼도 남김없이 털어 넣었습니다. 그렇게 살아온 어머니이다 보니, 그것도 장가 갈 생각도 않던 역마살로 떠돌아 다니던 셋째 녀석이 일 잘하는 며느리에 손자 둘, 거기에 땅 사고 새집까지 지었으니 얼마나 대견하고 기분 좋은 일이었습니까?

집을 완성하고 이삿짐을 옮겨 놓는 대로 당장 어머니를 모셔오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화장실이며 도배와 장판까지 집 내부 설비를 다 끝내고 이사 준비할 무렵 어머니는 수술대에 오르셨습니다. 오랜 동안 당뇨를 앓고 있다가 척추 부분의 연골이 다 닿아 수술을 해야 했던 것입니다.

이삿짐을 옮겨 잠자리를 마련할 무렵 여동생 내외가 찾아와 사진을 찍어가 병원에 입원해 계신 어머니에게 보여 들었고, 그리고 얼마쯤 지나 우리집 아이들이 캠코더로 집 주변 전경과 내부 곳곳을 찍어 보여드리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아직도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는 여전히 우리집에 찾아오질 못하고 있습니다.


태그:#새집 완성, #내부설비, #유씨할아버지의 땔감, #어머니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48,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