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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두산그룹에 인수된 중앙대는 각 학과·학부를 통폐합하고 5개 계열별로 책임부총장을 두는 내용의 구조조정을 추진해 왔다. 이에 반발하여 지난 4월 교내 신축공사 현장에 있는 타워크레인과 한강대교에 올라가 시위를 한 중앙대학교 학생들은 퇴학과 정학이라는 중징계를 당했다. 극단적 결말의 배경에는 학교측의 일방적인 구조조정과 그에 따른 반발이라는 학내 갈등 과정이 존재하고 있었다.

최근 성균관대에서도 대학 구조조정에 따른 학내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성균관대는 지난 97년부터 비전(Vision) 2010이라는 중장기 발전 계획안을 마련, 시행해 왔고 2004년에는 이를 수정, 보완한 비전 2010+를 시행해 오고 있다. 성균관대는 홈페이지에 'VISION 2010+'가 '세계 100대 연구중심대학'으로 도약하기 위한 프로젝트이며 성균관대의 비전을 소중히 여기는 삼성의 변함없는 지지와 폭넓은 지원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비전 2010+는 내년 2월 종료될 예정으로 성균관대는 삼성경제연구소(SERI)에 의뢰하여 '비전 2020'으로 명명한 중장기 발전 계획안을 준비하고 있다.

초안은 현재 대외비로 외부에 공개되고 있지 않으나 매일경제신문은 문과대와 사회과학부, 경제학부, 자연과학부 등을 가칭 문리과대학으로 통합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고 전했다. 전공 특수성을 고려해 의과대, 사범대, 경영학부, 약학부 등은 따로 운영될 예정이라고 한다.

서정돈 성균관대총장은 1월에 매일경제신문에 보도된 마이클 맥로비 미국 인디애나대학 총장과의 인터뷰 중 "학문의 융복합화는 바람직한 현상이다. 더 빨리 학문 간 벽을 허물고 칸막이를 제거해 아날로그적 분과학문의 한계를 뛰어넘어야 한다"고 말했다. 서 총장의 발언과 유사한 흐름이다. 그 외에도 이전부터 추진 중이던 경기도 평택 제3캠퍼스 건립을 2013년까지 마친다는 내용과 2014년까지 교수의 완전연봉제 시행 등이 포함되어 있다. 

비전 2020의 내용이 알려지면서 학내에서는 이에 대한 반발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학내 다양한 구성원들이 대학본부 측의 일방적인 정책결정과 집행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다. 지난 5월 19일에는 이 대학 문과대학 교수 일동 명의의 대자보가 붙었다. 교수들은 대자보에서 "세계 100대 대학 진입이라는 비전 2010+의 비현실적인 목표로 이미 인문학의 황폐화를 야기했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더욱 허황된 비전 2020으로 인문학과 인문학자들을 질식시키려고 한다"고 주장했다.

교수들은 "그동안 개인 성과 이기주의와 맹목적 논문생산에 매몰되어 비판적 성찰을 멈추고 이번 사태를 초래한 책임을 통감한다"면서 '비전 2020의 안을 교수와 학생 등 모든 학내구성원에게 공개할 것, 비전 2010+의 냉정한 평가와 그 집행부에 대한 엄중한 문책, 대학운영의 민주적 의사소통과 의사결정체제의 정상화' 등을 요구했다. 문과대학 교수들의 대자보가 붙자 대자보 아래에는 학생들의 자발적인 지지 메시지가 붙었다.

교수들이 나서자 성균관대 강사협의회와 비정규교수노조도 나섰다. 이들은 먼저 대학에서 연구와 교육활동의 많은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대학강사와 비정규교수에게 의견을 묻지 않은 점을 문제 삼았다. 비전 2020에 대학강사와 비정규교수에 대한 처우를 개선할 어떤 내용도 담겨있지 않고, 1,200명의 전임교수를 1,600명으로 늘린다면서 그 방법도 제시되어 있지 않은 점을 지적하며 "어떻게 글로벌 톱 10이 되고, 세계적인 연구중심대학이 되려고 하는지 어안이 벙벙할 뿐"이라고 말했다.

또, "기업이 구조조정 하듯이 개혁하겠다고 하면서, 재정 조달에 대한 언급이 어떻게 없을 수 있는지 수수께끼다" 라며 "비전 2020이 인문학자와 인문학을 질식시키고 기초과학을 고사시키는 결과만을 낳을 것이다"고 주장했다. 특히 "비전 2020은 한국 대학의 현 주소에 맞지 않는 현실성 없는 이야기"라며 평가절하했다. 

스승들이 나서자 제자들도 따라 나섰다. 문과대학 학생회장과 문과대학 각 학과 학생회장들이 문과대학 운영위원회 명의로 교수들의 선언에 지지를 표명했다. 문과대학 학생 대표자 회의(이하 문학대회)는 문과대학 교수회의 끝에 지난 5월 19일 대자보가 붙자 이를 내부적으로 논의하여 지지하기로 결정했다. 문학대회는 그들의 대자보에서 앞서 문과대학 교수 일동이 발표한 내용을 지지하며 "비전 2020을 즉시 중지하고 성균관대학교 구성원 모두의 의견을 모아 논의하라"고 요구했다.

대학본부측에서는 3월부터 교직원과 교수들을 대상으로 비공개 공청회를 벌여 계획을 설명하고 의견을 수렴하고 있는 중이다. 대학 기획조정처 VISION 2020  추진 T/F팀(이하 T/F팀)이 학부별로 교수들에게 비전 2020 초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문과대학 교수들이 이를 거부했고 학생들도 이에 동조하며 학내에서의 반대가 커지자 지난 5월 27일에는 이 학교 다산경제관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비전 2020 학생설명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는 비전 2020이 전공(학과)를 단계별로 폐지하고 통합시키는가에 대한 질문이 먼저 나왔다. T/F팀에서는 "학과(전공) 폐지는 없으며 인위적인 인원 조정도 없을 것"이라 말했다. 그리고 전공 선택과 인기학문분야의 전공쏠림 현상에 대한 대책과 기초학문에 대한 보호 대책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이에 대해 T/F팀은 "전공배정에서 학생의 선택권을 최대한 보장하면서도 쏠림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일정범위 내에서 제한할 것이며, 기초학문군에 대한 의무 이수제를 확대하고 교수확보율을 높일 것"이라고 밝혔다. 그 외에 비전 2020안이 8월에 최종 선포되는가라는 질문에 "8월 선포계획은 없으며 2010년 2학기말까지 구성원들의 의견수렴을 한 후 제시할 것"이라고 답했다.

학생들의 등록금이 특정학과의 교육비로 지출된다는 의혹에는 "반도체학과나 휴대폰학과생들도 등록금을 납부하며 이들이 받는 장학금은 삼성전자의 별도재원으로 운영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론이 가라앉지 않자 T/F팀은 학생처장 명의로 학생 각 개인에게 우편으로 비전 2020에 대한 안내 유인물을 발송했다. 6월 28일자로 보내진 이 안내문에는 "이것은 설득을 위한 PR이 아니라 비전 2020에 들어있는 내용을 사실 그대로 전달하려는 소통행위"라고 밝히고 "신뢰를 쌓도록 정확한 정보를 지속적으로 제공할 것을 약속한다"고 나와 있다.

하지만 여전히 학내구성원들은 의혹의 눈초리로 대학본부 측을 바라보고 있다. 성균관대학교 재학생들의 대표적 인터넷 게시판인 성대사랑(www.skkulove.com)에는 다양한 의견이 올라오고 있다. 비전 2020은 사이버 상에서도 뜨거운 논란거리가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19일 익명의 한 학생누리꾼은 자유게시판에 올린 '비전 2020에 대한 저의 생각 - 학생들은 누구에게 무엇을 요청해야 하는가' 라는 글에서 "학내 비판적 학생들의 모습도 중요하지만 삼성이라는 기업을 연관시켜 반대를 하는 것은 옳지 않다", "현실적으로 중문과나 노문과 등은 교환학생 제도의 신설과 확대 등을 주장해야 한다. 유학동양학부는 특성화 시킬 내용과 명분이 있으니 그런 것을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삼성과 대학을 모두 경험했다는 아이디 'FMH'는 "대학은 대학이고, 기업은 기업이며 대학에 기업문화가 침투하면 부작용이 있을 것"이라며 비전 2020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또, 아이디 'cow21c'는 "아무도 비전 2020 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하지 않았을 때 주도적으로 움직인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칭찬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의견을 밝혔다.

현재로서는 학내구성원들의 의견이 수렴되지 않은 상황에서 극단적인 갈등의 표출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갈등이 커지며 위험요소가 커져가고 있다. 학내에서 반발하는 쪽이 비민주적인 소통방식과 정보의 비공개를 문제 삼는 만큼 대학본부 측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투명하게 해결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의혹과 불신의 눈초리에 성균관대학교 대학본부가 어떤 대답을 내놓을 것인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대학 구조조정##성균관대학교##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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