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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만들며 세월을 보냈으니,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나를 지탱해 준 건 춤이었던 것 같습니다. 1971년 김복희 선생님과 함께 명동국립극장에서 첫 개인발표회를 시작했으니, 올해가 40년이 되겠네요. 지금까지 중고등학생, 대학생을 위한 작품을 제외하고 정식 극장공연을 위한 작품만 70개를 안무했습니다. 무용은 어쩌면 가장 역사가 깊은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무용가가 사라지고, 그 춤도 사라져버리면 누구도 기억해내지 못합니다. 무용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누군가는 체계적으로 기록을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고, 저 역시 그런 맥락에서 제 춤의 역사를 정리해 본 것입니다."

 

 

원광대학교 무용학과 김화숙(61) 교수의 춤이 있는 에세이 '춤이 있어 외롭지 않았네'(시월출판사)가 출간했다. 김 교수는 지난 12일 서울 인사동 아원공방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서 "그간의 기억을 기록해 책으로 엮은 것"이라며 "인연이 다한 것들에 대한 미련에서가 아니라 지금껏 춤으로 세상과 대화했듯이 지금까지의 삶을 조금 다른 방법으로 기록해보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무용수, 안무가, 예술감독, 무용교육자로 활동 중인 김 교수는 고등학교에서는 발레를 했지만, 대학에서는 자유로움을 쫓아 현대무용을 전공했다. 1969년부터 8년 동안 육완순의 오케시스 무용단 멤버로 활동했으며, 이화여대 출신으로 구성된 '한국컨템포라리 무용단' 창단 멤버이기도 하다.

 

1971년에 '김복희 & 김화숙 현대무용단'을 창단, 데뷔 공연 '법열의 시'를 시작으로 1991년까지 20년 동안 이 무용단의 대표를 맡아 김복희와 공동으로 36편의 작품을 안무했으며, 주역 무용수로 활동했다. 1977년 '춘향이야기'로 프랑스 파리에서 첫 해외 개인공연을 가진 이후 꾸준히 외국에서도 작품을 발표해 왔으며, 국내에서도 1986년 아시안게임 축하공연과 1988년 서울올림픽 국제무용축제에 참가하는 등 지속적인 작품 활동을 펼쳐왔다.

 

원광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는 전북지역의 무용발전을 위해 1985년 '김화숙 & 현대무용단 사포'를 창단, 이후 안무와 연출을 담당하고 예술감독을 맡아 26편의 작품을 발표했다. 특히 1991년부터는 본격적으로 현대무용단 사포를 통해 한국적 정서를 바탕으로 역사성과 사회성이 강한 작품을 발표해왔다. 1995년부터 1998년까지 4년 동안 광주 민중항쟁무용 3부작을 발표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이 대표적이다. 이 3부작은 1999년에 '오월의 눈물'이라는 무용 시디로 출시되기도 했다.

 

제1회 대한민국무용제에서 '창살에 비친 세 개의 그림'으로 우수상(1979), 제7회 대한민국무용제에서 '비나리'로 연기상(1985), 제11회 대한민국무용제에서 '뒤로 돌아 이 소리를'으로 안무상(1989)을 수상했다.

 

1987년에는 '흙으로 빚은 사리의 나들이'로 한국평론가협회에서 주는 최우수예술가상을, 1997년에는 '편애의 땅'으로 월간 객석에서 올해의 무용가로 선정됐고 한국춤비평가회가 제정한 춤비평가상도 받았다. 2001년에는 한국현대무용협회가 제정한 이사도라 무용예술상을 수상했으며, 이때 이화여대에서 올해의 이화인으로도 선정됐다.

 

한편 '김화숙 & 현대무용단 사포'는 창단 25주년을 기념해 오는 19일 오후 5시부터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연지홀에서 지난해 선보여 호평을 받은 작품 '지나가리라'를 앵콜 공연으로 무대에 올린 예정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전주일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화숙#춤#현대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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