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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2일 꼭 투표하세요.
6월 2일 꼭 투표하세요.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참 차분한 성격에 일도 잘하고 성격도 좋은 동료 하나가 있다. 친하게는 지냈지만 서로의 가정사에 대해 잘 알지는 못했었는데, 최근 어느날 그 동료가 퇴근길에 저녁을 먹고 가자며 나를 붙잡았다. 이유는 집에 가도 아무도 없고 밥도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왜? 엄마가 해 주는 밥 먹고 다닌다며? 엄마 어디 가셨어?"

"네, 요즘 엄마, 아빠 두 분 다 바쁘세요."

"취직하셨나 보네."

"에효.... 선거 운동 하셔야 하거든요."

 

알고 보니 내 동료의 아버지는 부천시 의회 기초의원으로 출마한 분이셨다. 오래 살다보니 내 인맥에 권력층(?)의 자제분까지 망라하게 될 줄이야! 그날 우리는 순대볶음으로 저녁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치인의 가족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던 나는 이것저것 물어보았고, 내 동료는 평소 쌓인 게 많았는지 술 한잔 하지 않은 자리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들을 해 주었다.

 

내 동료의 말에 의하면, 아버지는 다른 아버지들처럼 성실하게 일하시며 열심히 돈을 벌어오신 분이셨다. 그러다가 어느 해 큰 병에 걸리셔서 돌아가실 뻔한 위기를 겪으셨다고 한다. 위기를 넘기고 건강을 회복하신 아버지는 그 일이 계기가 되셨는지 앞으로 더 이상은 일하지 않고 그동안 벌어 놓은 돈으로 살겠다고 선언하셨다고 한다. 가족들은 죽을 고비를 넘기신 아버지였기 때문에 그 결정을 존중해 드렸다.

 

정치에 뛰어드신 동료의 아버지

 

생업에서 은퇴하신 아버지는 시의회 의원으로 정치에 뛰어드셨다. 아버지는 지역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셨고, 몇 가지 지역 사업을 성공적으로 하셨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3선까지 하셨다.

 

"사람들이 보통 그러잖아요. 선거 때만 되면 동네를 돌아다닌다고. 사실 선거 때만 돌아다니는 거 아니거든요. 평소에도 지역에 무슨 일 없나 항상 다니세요. 그런데 그 때는 사람들이 관심이 없어서 못 보다가, 선거 때가 되면 관심이 조금 생겨서 알아보는 거예요."

 

동료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시의원이나 도의원에 출마하는 사람들이 그 지역을 위해 나름대로 노력하고, 그 지역 주민들의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는 존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처음 정치를 하겠다고 결심할 때 사리사욕을 채우겠다는 생각을 시작하는 사람은 드물지 않을까? 우리 지역을 위해, 주민을 위해 훌륭한 일을 해 보겠다는 야무진(?) 초심을 가지고 시작하지 않을까?

 

3선 이후 이번에는 무소속으로 출마하셨지만 낙선하셨다. 아버지께서는 당 없이 출마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알게 되셨다고 했다. 그래서 당이 공천을 위해 꽤 무리한 요구를 했지만 그것을 모두 감수하고 공천을 받으셨다고 한다. 그런데, 그날 동료가 울분을 토하며 한 이야기는, 이번 출마에서 "가, 나, 다" 번호 중 "다"를 받게 되어 아버지께서 상심하고 계신다는 거였다.

 

그런 얘기를 듣고 보니 얼마 전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에서 들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기초의회 의원은 중선거구제라 한 지역구에서 여러 명을 뽑기 때문에, 한 당에서 여러 명이 출마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기호 1-가", "기호 2-나" 하는 식으로 정당 번호인 1, 2, 3, 4,.. 뒤에 가, 나, 다 등의 기호가 덧붙는 거라고 했다.

 

동료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시의회 의원 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공천을 받아야 하고, 그 다음에는 "가" 번호를 받은 이가 유리하기에, 가, 나, 다 번호를 정하기 위한 경선을 한다고 한다. 동료의 아버지도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겪으셨고, 그 과정에 외압(?)이 있어 아버지께서 "다"를 받으셨다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억울하다며 분노만 하던 동료가 좀 기특하고 기사를 쓰고 싶게 만든 이야기를 한 것은 그 다음이었다. 아버지가 원래는 "나"를 받았다가 외압(?)으로 "다"를 받아 억울해 하고 있는데, 지역 신문에 "나"를 받은 후보가 빼앗겼던 "나"를 되찾았다는 기사가 났다고 한다. 내 동료가 억울해서 그 기사에 댓글을 쓰려고 했는데, 동료의 말에 의하면, 원천적으로 댓글쓰기를 막아놓아서 쓸 수가 없었다고 한다.

 

댓글을 쓰려고 시도를 하다가 내 동료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다. 조용한 세상이 좋은 세상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조용한 것은 하나의 목소리만 있고 반대 목소리가 없는 것인데, 세상은 평온해 보일지 몰라도, 하나의 목소리를 반대하는 억울한 사람들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조금 시끄러워도 억울한 이들이 반대 의견을 낼 수 있는 사회가 진정 좋은 사회라고 느꼈다고 동료는 내게 말했다.

 

"올~~ 역시 정치가 가족은 이렇게 정치와 사회 정의에도 일가견이 있구나. 자기 대단해."

 

그의 말처럼 정말 외압으로 기호가 바뀐 것인지, 그 지역 신문이 댓글쓰기를 원천적으로 막아 놓은 것인지는 반대 의견을 들어보지 않아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정치에는 전혀 관심이 없던 내 동료가 이런 기회를 통해 사회적 다양성이 필요하다는 걸 절실하게 느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사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치인 가족의 애환

 

그 다음 내 동료는 정치인 가족의 고충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정치인의 딸에는 대통령의 딸만 있는 줄 알았는데, 기초의원 후보의 자제분들은 전혀 다른 인생을 사는 모양이었다.

 

"정치인 가족 하면 얼마나 골치 아픈지 아세요? 항상 대문을 열어놓고 살아요."

"왜? 도둑 들어오면 어쩌라고?"

"사람들이 이런 저런 이유로 찾아오거든요. 주로 민원이죠. 어떤 때는 밤늦게 잘 시간인데 찾아 오기도 해요. 그래도 그거 다 잘 들어줘야 해요. 어떤 때는 술 취한 사람들이 와서 행패를 부리기도 해요. 그래도 그걸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그 사람을 내쫓으면 아버지에 대해 나쁘게 말하고 다닐 테니 정치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할 수 없이 그걸 다 받아줘야 하는 거에요."

 

참 골치 아프고 짜증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합리적인 민원이라면 정책수립에도 도움이 되겠지만, 터무니없는 민원이라면 참 대책이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사람들이 다 유권자이니 말이다. 취객들의 주사까지 들어줘야 하다니 정치인도 참 불쌍한 직업이다. 그러다가, 도둑이 혹시 오더라도 그도 유권자 중 하나일 터이니 정치인들은 그들마저도 공손하게 설득해서 보내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마저 들었다.

 

"정치인 가족이라는 게 그래요. 생기는 건 하나도 없는데, 의무는 많은 사람들이에요. 안 그러면 표 떨어지거든요. 행동도 잘 해야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다 잘해야 하고... 정말 피곤해요.... 그런데, 제일 화나는 건 뭔지 아세요? 선거 홍보물 나누어 주고 벽보에도 아버지 이름이 기호와 함께 붙어 있고 그러잖아요. 그러니까 길 가던 초등학생들도 아버지 이름을 '아무개' 그러면서 자기들끼리 부르는 거예요. 노무현, 이명박 이런 식으로 대통령 이름도 그냥 이름만 부르니까 정치하는 사람들도 누군가의 아버지이고 할아버지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나 봐요."

 

내 아버지는 정치할 생각을 하신 적이 없는 분이라 한 번도 이런 생각을 해 보지 않았었다. 그래서 이 말을 들으며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 맘에 드는 정치가든 싫어하는 정치인이든 그 사람의 이름만 또박또박 불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 모두 누군가의 부모이고 조부모일 사람들인데 말이다.

 

"사실 아버지가 출마하는 게 가족들은 참 힘들어요. 또 아버지는 정치하시니까 사람들 만날 때마다 항상 웃고 있어야 하는데, 그걸 잘 못하세요. 엄마도 아빠 선거 운동 도와야 하니까 힘들고."

"그럼 말리지 그래. 하시지 말라고."

"아버지가 하고 싶어 하시는 일이라 말릴 수가 없어요. 그리고 요즘엔 아버지가 시의원 하실 때 해 놓으신 일을 보면 좋은 일을 하셨다는 생각이 들고 아버지가 자랑스러워요. 그래서 열심히 도와 드리려구요."

 

지방선거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

 

며칠 후면 지방선거를 한다. 도지사, 시장 같은 굵직굵직한 자리가 아니면 누가 출마했는지도 잘 모르고 관심도 없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동료 인터뷰(?)를 계기로 관심을 가져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방자치가 성공적으로 정착이 되어야만 각 지방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나올 수 있을 것이고, 그 다양한 목소리가 하나의 목소리가 범할 수 있는 오류를 바로 잡아주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동료가 마지막에 이런 이야기를 했다.

 

"우리 지역 사람들이 그러잖아요. 멀쩡한 버스 안내 표시기 왜 바꾸었냐고, 더 불편하다고. 그런데, 그거 우리가 선택한 거예요. 우리가 뽑은 사람들이 그걸 바꾸기로 결정하잖아요. 우리 생활 하나하나가 다 정치예요. 우리가 뽑은 대표자들이 우리 생활의 사소한 거 하나하나까지 다 결정하잖아요. 무효표도 다 표예요. 그래서 정말 제대로 투표해야 돼요."

덧붙이는 글 | 참고로, 내 동료의 아버지 지역구는 제가 살고 있는 지역이 아닙니다.


#지방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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