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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싸전다리 싸전다리 밑에는 항상 많은 어르신들이 모여 계시다. 술도 한 잔씩 드시고, 장기를 두시기도 한다.
▲ 전주 싸전다리 싸전다리 밑에는 항상 많은 어르신들이 모여 계시다. 술도 한 잔씩 드시고, 장기를 두시기도 한다.
ⓒ 하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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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남부시장 인근에 필요한 것을 구입하기 위해 나갔더니, 전주천에 놓인 싸전다리 하천가에 보니 어르신들이 모여 계신다. 비가 오는 날인데도 꽤 많은 분들이 다리 밑에 비를 피해 모여 계시다. 무슨 일인가 하고 내려가 보았더니, 비를 피해서 모여계신 분들 중에는 장기를 두시는 분, 그 옆에서 훈수를 두시는 분, 화투 패를 잡고 열심히 눈치를 보시는 분, 소주 한 잔을 드시면서 세상살이를 찬으로 삼으시는 분들. 참 여러 분들이 계시다. 딱히 갈 곳이 마땅치 않으시니 이렇게 비가 오는데도, 이곳을 찾아오셨나 보다.

그런데 그 중 한 분이 무엇인가를 입속으로 읊고 계신다. 무슨 소리인가 해서 곁으로 가 들어보니 '언문뒤풀이'라는 소리다.

"어르신 그 소리 다시 한 번만 해주실 수 있어요?"
"힘든데 왜 자꾸 해달라고 그래."
"소리가 좋아서요."
"그래, 그렇다면 내 한번 해줄 테니 잘 들어봐."

가나다라마바사 아차 잠깐 늦었구나
기역 니은 디귿 리을 기역자로 집을 짓고 지긋지긋이 살자더니
가갸거겨 가히 없는 이 내 몸이 끝이 없이 되었구나
고교구규 고생하던 우리 낭군님 억만장자가 되었구나
나냐너녀 나귀 등에 솔질을 하여 순금만장을 휘르르 놓고 팔도강산을 유람할까
노뇨누뉴 노세노세 젊어서 놀아 늙어지면 못노나니
다댜더뎌 다닥다닥 붙던 정이 덕지덕지 되었구나
도됴두듀 도충의 늙은 몸이 다시 갱생은 어려워라
라랴러려 날러가는 원앙새야 너과 나와 짝을 짓자

언문뒤풀이란 말 그대로 발음을 갖고 그 발음에 맞는 사설을 만들어가면서 부르는 소리다. 예전 어르신들은 이런 소리를 하면서 공부가 되었을지는 모르겠다. 아마 따로 공부를 할 수 없었던 시절에는, 이런 소리로 인해 우리말을 쉽게 깨우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언문도 제대로 못 깨우친 것들이'

소리를 신나게 하시던 어르신. 요즈음 것들은 언문도 깨우치지 못한 것들이, 꼬부랑글씨에 미쳤다고 하면서 혀를 차신다. 하기야 그럴 만도 하다. 어르신들이 듣기에는 영 알 수 없는 노랫말이 방송에서 나오니 짜증도 내실 만하다.

"아 이 사람아 생각을 해봐. 지놈들이 언제 적부터 그렇게 꼬부랑말을 잘했어. 그놈들 아마 언문이나 제대로 깨쳤는지 모르겠네."
"어르신, 요즈음에는 다 영어를 잘해야 출세도 해요"
"그러니까 세상이 이렇게 버릇이 없어지는 것이여. 세상 모든 이치는 자연으로 살아야 해. 자연이란 머시여. 그저 내 것을 먼저 아낄 줄 알아야 하거든. 그리고 검소하게 사는 방법을 알아야 하는데, 요즘 것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겉멋만 잔뜩 들었어. 큰일이여 정말"
  
어르신은 점점 얼굴까지 붉히시면서 화를 내신다.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 소리를 마저 해달라고 졸라댔다.

마먀머며 마자마자 말자고 했는데 임의 생각이 또 나누나
모묘무뮤 모지도다 모지도다 한양 낭군이 모지도다
바뱌버벼 밥을 먹다 생각해보니 임이 없어서 못 먹겠네
보뵤부뷰 보고지고 보고지고 한양 낭군을 보고지고
사샤서셔 사자고 굳은 언약이 귀중치 못하겠구나
소쇼수슈 소슬 단풍 찬바람에 울고 가는 저 기럭
아아야어여 아예 덥석 쥐었던 손목 그지없이도 놓았구나
오요우유 오동복판 거문고 줄을 대충 매어 튕겨내니 백학이 우쭐우쭐 춤을 춘다
자쟈저져 자주 자주 만나던 임은 소식한 번 돈절하고나이렇게 살아도 행복하다는데

"어르신 이런 소리는 언제 배우셨어요?"
"누구한테 배운 것도 없어. 그저 어른들이 부르시는 것을 곁에서 귀동냥으로 들은 것이지. 우리는 귀명창들이거든. 귀명창이 소리 한 대목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이지"
"예전 분들은 머리가 좋으셨나 봐요?"
"그렇지. 요즘 사람들 머리가 나빠. 그러니 저 죽을 것도 모르고 온 천지를 다 까발리고들 있으니 원. 그게 살기 위해 하는 일은 아니지"

어르신의 말씀에 할 말이 없다. 정말이다. 돌아다니면서 보면 정말 여기저기 많이도 파 놓았다. 산에는 채석을 한다고 흉물스럽고 까놓고, 강은 그야말로 몸살을 앓고 있다. 자연은 그대로 순응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어르신의 말씀에 공감이 간다. 온 지구가 이상기온과 자연재해로 인해 아픔을 당하고 있으니 말이다.
  
차챠처쳐 차라리 죽었더라면 이 꼴 저 꼴을 아니 볼 걸
초쵸추츄 초당 안에 깊이 든 잠 학의 소리 놀라 깨니 학은 간 곳 없고 들리나니 물소리로다타탸터텨 타고 타고 또 갈아타며 누구를 바라고 나 여기 왔나
토툐투튜 토지지신 감동하사 임 생기게 도와주소
파퍄퍼펴 파요 파요 보고파요 한양 낭군이 보고파요
포표푸퓨 폭포수 흐르는 눈물에 더덩실 빠졌더라면 이 꼴 저 꼴을 아니나 볼 걸
하햐허혀 한양 낭군이 내 낭군인데 소식 돈절에 못 살겠구나.

끝날 것 같지 않던 언문뒤풀이가 끝이 났다. 소리를 음미를 하면 참 감칠맛이 있다. 끝내 존함을 밝히지 않으시는 어르신을 옆에서 '이가여. 올해 77살이고'라고 한 분이 말씀을 하신다.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돌아서려는데 "이 사람아 소리를 들었으면, 소리 값을 내야지"라고 하신다. 소리 값으로 소주 몇 병을 사다드렸다. 너무 많다고 하시는 어르신. 이렇게 작은 것 하나에도 정이 있는 것이 바로 우리네 삶이었건만. 요즈음은 참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는 것만 같아 마음이 아프다.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 것을 잘 산다고 생각을 할까? 아마 자신이 누릴 수 있는 권력을 마음대로 휘젓고, 가진 것으로 기름지게 먹고 좋은 차타면서, 대궐 같은 큰 집에서 사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을 할까? 아니면 어르신들처럼 소주 한 병에 작은 행복을 느끼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 가만히 생각을 하면 참 인생이란 것이 별게 아니란 생각이다. 흐르는 저 물길처럼 그저 가는 데로 살면 될 것을.

덧붙이는 글 | 5월 18일 비가 오는 날 다녀왔습니다. 비가 와도 많은 분들이 이곳에서 소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언문뒤풀이#싸전다리#남부시장#전주#어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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