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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도 가파도 청보리밭
가파도가파도 청보리밭 ⓒ 김정민

 

제주 서귀포시 가파도에 다녀왔습니다. 청보리 축제가 한창일 때였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말도 마세요. 징그럽게 사람이 바글바글했습니다. 오전 9시 배를 타려고 했는데 10시 30분이나 돼서야 배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사람을 짐짝처럼 나른다는 느낌에 가까웠습니다. 그마저도 얼마나 다행이었는지요. 기가 막힌 노릇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궁금해 하실 줄 알았습니다. 자, 따라오세요.

 

가파도 가파도 해안도로의 몽돌
가파도가파도 해안도로의 몽돌 ⓒ 김정민

 

모슬포항에서 배를 타고 가파도에 도착했습니다. 겨우 25분 걸리더군요. 상동포구에 내리니 모슬포항과 산방산, 한라산까지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마라도보다 가깝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마라도만 가려고 합니다. 이상하죠?

 

가파도 가파도로 가는 여객선.
가파도가파도로 가는 여객선. ⓒ 김정민

 

대정읍 모슬포에서 남쪽으로 5.5km 떨어져 있는 가파도는 모슬포와 마라도 중간지점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1842년 이후부터 사람이 들어가 살게 되었습니다.

 

가파도는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섬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지역 중엔 가장 처음으로 서양에 소개된 곳으로 추측되기 때문입니다. 1653년 가파도에 표류했으리라 짐작되는 네덜란드의 선박인 스페르웨르호. 그 안에 타고 있었던 선원 헨드릭 하멜이 '화란선 제주도 난파기'와 '조선국기'를 저술함으로써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비교적 정확히 소개되기도 했다는군요.

 

가파도 가파도 해안도로
가파도가파도 해안도로 ⓒ 김정민

 
가파도는 해안도로를 따라 쭉 걸어도 1시간밖에 걸리지 않습니다. 약 5km정도라고 하는데, 가파도는 해안도로도 좋지만 온 섬을 파랗게 물든 청보리를 보는 것 또한 환상적입니다. 산책 코스도 있는데, 벼락왓을 중심으로 발전소와 개엄주리코지를 경유하는 A코스는 30분이 걸리고, 가파초등학교를 시작으로 고냉이돌과 물앞이돌을 경유하는 B코스는 25분정도 걸립니다. 산책코스는 둘 다 가파도 해안과 동시에 청보리를 한 번에 볼 수 있습니다.

 

그러고보니, 이 모든 코스를 다 둘러보아도 2시간이면 되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무작정, 아무 길이나 들어서기로 했지요. 뭐, 시간이 멈춘 듯한 섬이다보니 그런 것 따윌 걱정할 필요가 없겠더군요.

 

가파도 마을 안길따라 쭉 벽화가 그려져있다
가파도마을 안길따라 쭉 벽화가 그려져있다 ⓒ 김정민

 

먼저 마을 안쪽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집집마다 예쁜 벽화가 들어오라고 유혹했습니다. 섬을 찾은 손님들을 위한 인사였습니다. 섬 주민들이 그만큼 반갑게 맞아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낮고 소박한 집들을 지나 끝없이 펼쳐진 청보리밭에 들어서게 됐습니다.

 

가파도 가파도.. 전신주가 경관을 어지럽힌다
가파도가파도.. 전신주가 경관을 어지럽힌다 ⓒ 김정민

 

가파도 청보리는 다른 지역보다 갑절은 키가 큰데, 18만여평이 청보리밭이라는군요.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이 벅찼습니다. 파란하늘아래 청보리가 살랑살랑 고개를 내젓고 있었습니다. 이상하리만큼 바람도 잠잠했습니다. 가파도에서는 바람도 쉬고 있었습니다.

 

올레꾼들 몇몇이 길을 걸어다니는 것 말고는 모든 게 정지돼 있었고, 고요했습니다. 모두가 잠을 자는 듯했습니다.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완벽한 내 세상이었습니다.

 

가파도 가파도 청보리밭
가파도가파도 청보리밭 ⓒ 김정민

 

혼자 양팔을 뻗고 청보리 밭에 서니, 세상 부러울 게 없었습니다. 아기자기한 돌담은 온 섬을 부드럽게 지도를 그리고 있고, 제주돌과 다른 몽돌이 해안을 따라 빙 둘러있었습니다.

 

이밖에도 섬에는 볼거리가 많았습니다. 모두 자연 그대로의 것들이지요. 고인돌 군락지, 선돌, 짓단집, 고망물 등이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있는 그대로가 아름다운 섬이었습니다.

 

가파도 가파도 산책로
가파도가파도 산책로 ⓒ 김정민
가파도 가파도 산책로길
가파도가파도 산책로길 ⓒ 김정민

 

그런데, 산책로가 좀 이상했습니다. 제주, 아니 가파섬과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시멘트를 바른 건 아니었지만 콘크리트였습니다. 산책코스를 위해 '일부러' 만든 듯했습니다.  

 

최근 가파도가 슬로우관광, 생태관광, 탄소제로의 섬 등으로 부각되면서 방문객이 늘자 행정에는 여행객들을 위해 편의시설을 만들려고 하고 있습니다. 산책로를 걷기 편하도록 콘크리트 재료를 사용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하지만 가파도는 흙 길이 어울립니다.

 

해안도로 군데 군데에는 흙길이 고스란히 있었습니다. 반가운 길이었고, 자꾸 자꾸 걷고 싶어지는 길이었습니다. 흙길은 참 부드럽습니다. 훨씬 편합니다. 산책코스를 내기 위해 일부러 만들어진 콘크리트 길은 불편하고, 어색합니다. 섬과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고, 푸른 청보리 밭과도 어울리지 않습니다.

 

가파도 가파도 폐가
가파도가파도 폐가 ⓒ 김정민

 

가파도는 변하고 있었습니다. 상동포구에 내리자마자 목격한 것은 놀랍게도 폐가였습니다. 그리고 포크레인과 같은 대형 장비들이었습니다.

 

가파도 버려진 중장비
가파도버려진 중장비 ⓒ 김정민
 

가파도 가파도 상동포구쪽 포크레인
가파도가파도 상동포구쪽 포크레인 ⓒ 김정민

 

가파도가 유명해지고 사람들이 많이 찾게 되면 외지인들이 들어와 민박이며 펜션을 열겠지요. 가파섬과 다른 색으로 화려하고 크게 건물을 짓겠지요. 제발, 가파도 만큼은 마라도처럼 되지 않기를, 그냥 내버려 둘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굳이 필요하다면, 가파도에 있는 돌을 쓰고 흙을 쓰고, 청보리와 어울리는 색을 쓰면 안 될까요? 가파도에서 제일 높은 곳이 20.5m정도라고 하니, 건물도 1층만 지어야 할 겁니다. 가파도의 경관을 해치는 요인 중 하나가 전신주라고 하니, 어느 정도인지 아시겠죠?

 

그런데 건물을 짓는 것뿐만 아니라 사람들 자체도 문제였습니다.

 

가파도 가파도 청보리 축제때, 배를 기다리는 방문객들
가파도가파도 청보리 축제때, 배를 기다리는 방문객들 ⓒ 김정민

 

가파섬에 가기 위해 모슬포항에 도착했을 때부터 사람들 때문에 놀랐습니다. 평소에는 하루 세 번 밖에 운행을 안하는 배가 청보리 축제 때문에 무려 열한 번이나 왕복하며 사람을 실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좌석이 부족했습니다. 대부분 올레꾼들이었습니다. 정말 사람이 많았습니다.

 

가파도 가파도 여객선에서 내리는 방문객들
가파도가파도 여객선에서 내리는 방문객들 ⓒ 김정민

 

걱정이 됐습니다. 우리는 마라도가 어떻게 변해갔는지 기억해야 합니다. 실제로 가파도 방문객수는 2007년 1만29명, 2008년 1만5786명, 2009년 2만543명으로 크게 늘었다고 합니다. 올해는 거의 대박에 가까울 정도로 손님이 찾았다고 합니다. 섬은 292명의 주민이 오순도순 살고 있는데 말입니다.

 

가파도 가파도 청보리 축제때, 평소 3편이던 여객선이 11편으로 증편됐다
가파도가파도 청보리 축제때, 평소 3편이던 여객선이 11편으로 증편됐다 ⓒ 김정민

 

사람들이 많이 간다는 건 그만큼 많은 것들이 노출된다는 얘기일 겁니다. 중년의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검은 봉지를 들고 해안가를 돌면서 뭔가 캐고 있는 걸 목격했습니다. 작은 봉지가 아니었습니다. 배낭 가방보다 컸습니다. 뭔가 의심 적은 목소리로 뭐냐고 물었습니다. 방풍나물을 캔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아주머니는 과도까지 들고 열심히 캐고 있었습니다. 내가 너무 이상하게 쳐다봐서 그런지, 금세 허리를 펴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반대편으로 가버리셨습니다. 나중에 자료를 찾아보니 방풍나물은 몸에 좋은 약초로 풍을 잘 막는다고 하는군요.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나요? 참, 정도껏 합시다!

 

지금까지 가파도는 최남단 마라도에 가려있었습니다. 덕분에 현금인출기 하나 없는 가파도는 자장면집과 카트로 몸살을 앓고 있는 마라도와는 질적으로 다르게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가파초등학교 가파초등학교
가파초등학교가파초등학교 ⓒ 김정민

 

관광객들이 많이 들락거리는 마라분교의 학생수는 3명에 불과한데 비해 가파초등학교는 7명의 학생과 3명의 유치원생이 다닙니다. 분교도 아닙니다.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오히려 관광객들의 외면이 가파도를 아름답게 지켜준 건 아닐까요.

 

가파도 가파도에서 보이는 한라산
가파도가파도에서 보이는 한라산 ⓒ 김정민

 

행정은 가파도를 친환경적인 섬, 카본프리아일랜드, 탄소제로의 섬으로 부릅니다. 그러면서 개발하려고 합니다. 관광객들을 맞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관광객들조차 인위적인 가파도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마지막 남은 섬, 가파도에 거는 희망이 크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마라도의 교훈을 되새겨야 합니다.


#가파도#이레착저레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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