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유채꽃 흐드러지게  핀 제주는 봄의 자태가 한창이다.
유채꽃 흐드러지게 핀 제주는 봄의 자태가 한창이다. ⓒ 박주현

"자장면을 먹을까, 짬뽕을 먹을까?"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 보았을 딜레마다. 자장면과 짬뽕의 선택을 놓고 망설이는 사람들을 위해 '짬짜면(그릇의 가운데를 둘로 나누어, 자장면과 짬뽕을 따로 담는 한국식 중화요리)이 등장했으나 중국음식점에만 들어서면 선택의 딜레마는 여전하다. 육지를 떠나 먼 섬, 그것도 한반도 최남단의 섬인 마라도에까지 와서 이러한 선택의 딜레마에 빠져들 줄은 미처 몰랐다.

마라도행 유람선   타는 곳에서 꼭 사자를 닮은 바위를 볼 수 있다.
마라도행 유람선 타는 곳에서 꼭 사자를 닮은 바위를 볼 수 있다. ⓒ 박주현

전말은 이렇다. 지난주 벚꽃과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핀 평화의 섬에서 있을 2박 3일간의 연수 길에 오를 때만 해도 잔뜩 기대에 부풀었다. 특히 이번 연수기간엔 청정 마라도 탐방이 포함돼 더욱 부푼 꿈에 젖었다. 처음 만나는 설렘 때문이었으리라.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마라리', 우리나라 최남단 섬의 행정주소다. 면적 0.3㎢, 해안선 길이 4.2㎞, 최고점 39m에 불과한 조그만 섬이지만 '평화의 섬' 제주에서 불과 20여분 거리에 있는 또 다른 조그만 '평화 섬'이다.

멀리 배 위에서 바라보니 한 폭의 그림만 같다. 제주시 모슬포항에서 11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는 이 섬은 원래 가파리(加波里)에 속했으나 1981년 4월 1일 '마라리'로 분리됐다. 넓고 깊은 바다 한 가운데 마치 고구마가 둥실 둥실 떠 있는 것 같았다. 고구마 모양을 이루고 있는 섬 해안은 오랜 해풍의 영향으로 곳곳이 기암절벽을 이루고 있었다.

산림 울창했던 마라도, 지금은 나무 한그루 찾기 힘들어...왜?

한반도 최남단 섬 청정 마라도가 더 이상 오염되지 않았으면...
한반도 최남단 섬청정 마라도가 더 이상 오염되지 않았으면... ⓒ 박주현

지금은 나무 한 그루 보기 힘든 곳이지만 원래는 산림이 울창했다고 한다. 1883년 영세농어민 4∼5세대가 당시 제주목사로부터 개간허가를 얻어 화전을 시작했는데, 이주민 중 한 명이 달밤에 퉁소를 불다가 뱀들이 몰려들자 불을 질러 숲을 모두 태워버렸다고 한다. 나무와 관련된 전설들은 지금도 많이 회자되고 있다.  

마라도에는 주민들이 하늘에 있는 신이 강림하는 곳이라 신성시 여기는 장군바위와 '애기업개'에 대한 전설이 스며있는 할망당(처녀당)이 유명하다. 마라도를 향해 거친 파도를 가르는 배에서 현지 주민들이 전해주는 할망당에 관한 전설이 무척 재미있었다.

마라도 해녀 마라도에는 많은 전설들이 지금까지 전해 오고 있다.
마라도 해녀마라도에는 많은 전설들이 지금까지 전해 오고 있다. ⓒ 박주현

전설에 의하면 옛날 가파도에 살던 고부이씨 가문의 가산이 탕진되자 마라도로 건너왔다고 한다. 이때 업저지(어린아이를 보아주며 업어주는 계집아이)도 함께 왔는데 이씨 가족들은 마라도의 풀숲을 불태우고 개간 작업을 벌였다. 불 탄 수풀들이 다음 해에 거름이 되면 다시 돌아오기로 하고 가파도로 다시 건너가려고 하였다. 그런데 이씨에게 처녀 한 사람을 두고 가지 않으면 풍랑을 만날 것이라는 신의 현몽이 있었다고 한다.

배를 타기 직전 부인 이씨는 처녀 업저지한테 심부름을 시키고는 떠나 버렸는데, 그들이 다시 마라도로 돌아왔을 때 처녀 업저지는 앙상하게 유골만 남아 있었다고. 이때부터 이씨네는 이곳에서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도 액막이 치성을 드리는 곳으로 할망당을 섬기고 있다고 한다.

섬인 이곳은 용천수가 나지 않아 집집마다 비가 오면 빗물을 모았다가 여과시켜 가정용수로 사용하고 태양광을 이용한 발전소에서 전력을 공급 받고 있다. 남쪽에는 한국에서 최남단 지역임을 알리는 기념비와 함께 섬의 가장 높은 곳에는 1915년 설치된 마라도 등대가 자리 잡고 있다.

선착장에 도착하자마자 눈앞에 전개된 해괴한 풍경들

마라도 선착장 에 북적이는 외지 관광객들.
마라도 선착장에 북적이는 외지 관광객들. ⓒ 박주현

마라도 해안은 오랜 해풍의 영향으로 기암절벽을 이루고 있으며 절벽은 다시 거친 파도를 받아 해식동굴이 발달해 있다. 그러나 주변지역은 모래사장이 전혀 없고 해풍으로 인해 나무가 자라지 않아 주변에 큰 나무가 없다는 점이 여느 섬들과 다르다.

섬 가장자리의 가파른 절벽과 해식동굴, 마라도 등대가 볼 만하며 해상에서 바라다 보이는 '형제섬'과 '산방산' 그리고 '한라산'이 한데 어우러진 남서쪽 제주의 모습이 무척 아름다운 그림 여러 폭을 선사한다.

웬 '골프카트"들? 마라도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카트들.
웬 '골프카트"들?마라도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카트들. ⓒ 박주현

현지 주민들에 의하면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주로 전복·소라·톳·미역 등을 채취하고 관광객을 위한 민박을 열어 소득을 올렸다고 한다. 또 마라도에는 자전거 대여점들이 있어 자전거를 빌려 섬을 한 바퀴 돌아 볼 수 있으며, 씨알이 굵은 바다고기 낚시터로도 유명하여 전국의 강태공들이 자주 찾는 곳이란다.

그런데 마라도 선착장에 도착하자마자 눈앞에 전개된 풍경들은 상상 외였다. 그동안 육지와 배안에서 전해들은 이야기와는 거리가 먼 해괴한 모습들이 펼쳐졌다. 싱싱한 해물대신 '자장면 시키신 분', '원조 자장면' 등의 표어와 함께 변형된 중국음식점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선착장에서 불과 5분 거리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대여섯 남짓 되는 자장면 집들을 바라본 순간 실망이 앞을 가렸다. 자장면과 짬뽕이 큼지막하게 쓰인 간판 앞에서 청정 마라도의 싱싱한 해산물 꿈은 금세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자장면과 짬뽕이라니, 최남단 섬에서 미각을 사로잡을 것으로 기대했던 해산물들과는 영 거리가 멀다.

먼 외지인들 먼저 유혹하는 건 자장면과 짬뽕?

마라도 자장면 을 안내하는 간판들이 즐비하다.
마라도 자장면을 안내하는 간판들이 즐비하다. ⓒ 박주현

물론 상가 입구에 놓인 수족관에 약간의 해산물들이 있었지만 외지인들을 먼저 유혹하는 건 해물자장면과 해물짬뽕이었다. 우리 일행을 안내하던 마을 주민은 "먹어 본 사람들은 다 알지요, 왜 유명한지를" 하면서 자장면과 짬뽕을 가리키며 자랑한다. 그러자 한 젊은 여인이 "우리 집은 CF보다 더 유명한 곳이랍니다" 하며 너스레를 떨며 따라 붙는다.

그러자 손님들은 "이 먼 마라도에까지 와서 자장면을 먹어야 하나?", "그건 그렇다 치고 자장면과 짬뽕 사이에서 또 고민해야 하나?" 하며 웃음으로 받아 넘긴다.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씁쓰레함이 묻어났다. 

카트와 철가방 든 해녀 마라도 선착장에서 불과 5분 거리에 펼쳐진 풍경들.
카트와 철가방 든 해녀마라도 선착장에서 불과 5분 거리에 펼쳐진 풍경들. ⓒ 박주현

자장면 집이 생긴 이유는 여행객이 많이 증가한데다 관광객들은 대부분 1~2시간 정도 섬에서 머물기 때문에 다른 것보다 빠르게 만드는 요리를 선호하기 때문이라고 안내원은 설명한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다. 그건 바로 "자장면 시키신 분" 하면서 철가방(자장면 배달통)을 들고 마라도에까지 등장한 한 이동통신사 광고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한반도의 끝 마라도 곳곳에 철가방을 든 배달원 사진과 "자장면 시키신 분"이라는 문구가 새긴 간판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이 뿐만 아니다. 차 없는 청정섬인 마라도가 '골프카트'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2005년부터 마라도가 '청정자연환경 보호특구'로 지정돼 자동차 운행이 전면 금지되자 관광객들의 이색 체험을 위해 현지인들은 '골프카트'를 도입, 섬 안에서 80여대를 운행하고 있다. 카트를 이용하는 관광객들에게 해물자장면과 해물짬뽕을 공짜로 제공해 주는 이색 이벤트도 늘었다.   

'골프카트' 크게 증가...자연 훼손, 크고 작은 사고까지 발생

황량한 마라도 에서 바라본 제주 섬.
황량한 마라도에서 바라본 제주 섬. ⓒ 박주현

그런데 마라도 '골프카트'는 골프장 대신 보도블록으로 조성된 도로와 잔디밭까지 심하게 훼손시키는가 하면 산책로를 질주해 관광객들을 놀라게 하는 등 쳐다만 봐도 아슬아슬할 지경이다. 사고 위험성도 높아 보였다. 특히 해안절벽으로 둘러싸인 섬에서 길을 벗어나면 바로 추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골프카트' 수가 증가하면서 크고 작은 사고가 발생하고 있어 조례 제정 등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일고 있었다. 실제 지난 4일 오전 11시께 마라도 기원정사 앞 인근에서 한 남성 관광객이 몰던 골프 카트가 앞에 걸어가는 관광객 3명을 치는 사고가 발생해 각별한 주의와 함께 안전대책이 요망된다. 

한 현지 상인은 "골프카트 운행시 2종 소형면허가 필요하다"며 "관광객이 2종 소형면허 없이 마라도 골프카트를 운행하면 무면허로 형사처벌된다"고 말했지만 실제 단속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갈매기와 마라도 다시 오게 되면 청정 자연과 좀 더 많은 시간을 가지리라.
갈매기와 마라도다시 오게 되면 청정 자연과 좀 더 많은 시간을 가지리라. ⓒ 박주현

짧은 첫 만남을 뒤로 하고 마라도를 등지려니 허전하고 아쉬웠다. 육지에서 꿈꾸었던 조용하고 평화로운 섬, 싱싱한 청정 해산물과 우거진 수풀림 대신 '골프카트'와 자장면, 짬뽕을 나르는 '철가방'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

다시 오게 되면 청정 자연과 좀 더 많은 시간을 가지리라 다짐하며 배에 몸을 실었지만 자장면과 짬뽕이 자꾸만 뇌리에서 떠나지 않고 어지럽힌다. "마라도에서 골프카트 사고가 잇따라 올 들어 2건, 지난해에는 14건의 사고가 발생했다"는 신문기사 내용과 함께. 관광수입도 중요하지만 이건 아닌 것 같다.


#마라도#자장면#최남단 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