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17일 <한겨레> 22면에 실린 '이희재의 세상수첩'은 봉은사 사건을 상징적으로 잘 보여준다. 그림 위쪽에 '봉은사 뒷산에는 귀신들이 산다'는 글이 있고, 귀신들은 봉은사 탑 뒤와 위에, 그리고 그림 구석에 뿔을 내밀고 숨어 있다. 한 아이가 "명진 스님…"하면서 팔을 활짝 편 채 달려간다. 그림의 풍선 속에 이런 대화가 오간다.

"스님, 어찌하여 정강이를 다쳤습니까?"
"귀신한테 조인트 까였답니다."

봉은사 뒷산의 귀신들 정체는?

11일 낮 서울 삼성동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이 일요법회를 마친 뒤 법왕루를 나오고 있다.
 11일 낮 서울 삼성동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이 일요법회를 마친 뒤 법왕루를 나오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봉은사 뒷산에 있는 귀신들' 정체는 무엇일까. 명진 스님이 폭로를 했는데도 이를 딱 잡아 뗀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의 '거짓말 귀신'이 하나 보인다. 사건이 터지자 안상수 대표는 "황당한 이야기", "좌파 이야기 한 적 없다", "명진 스님을 알지도 못한다", "세 사람이 만났다"며 딱 잡아뗐다. 이런 주장은 4인 회동을 주선한 김영국 거사가 3월 23일 기자회견에서 "명진 스님의 발언은 모두 사실", "(안상수 대표가) 부인한다고 사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힘으로써 거짓임이 드러났다.

게다가 그 뒤 김영국 거사의 기자회견을 막으려 여기저기서 압력이 가해졌고, 그런 사건에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의 이름까지 거론되고 있으니, 봉은사 뒷산에는 '거짓말 귀신'에다, '압력 귀신'도 사는 모양이다.

귀신은 또 있다. 서울의 한 호텔 식당에서 4인 모임이 있은 뒤 넉 달 쯤 지난 3월 11일, 봉은사가 조계종 직영사찰로 지정된다. 조계종 총무원 쪽이 적극적으로 나섰다. 원래 봉은사 직영사찰 전환 건은 조계종 입법기관인 중앙종회 총무분과에서 안건 상정 자체가 부결되었다. 그러자 총무원이 직권 상정해 3월 11일 열린 중앙종회 임시회의에서 전격 승인되었다.

국회로 치면 운영위원회에서 부결된 안건이 국회의장 직권으로 본회의 상정되어 처리된 격이다. 그날은 마침 법정 스님이 입적(3월 11일)하신 날이다. 우연이었겠지만, 나를 강제 해임시킬 때가 2008년 여름 베이징 올림픽 열기가 한창 뜨거웠을 때였고, 엄기영 MBC 사장에게 온갖 모욕을 가하면서 스스로 물러나게 강요한 때는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승전보가 연이어 들어오던 때였음을 상기해 보면, 괴이한 타이밍이기도 하다.

그 즈음, '절친한 사이'로 알려진 명진 스님과 자승 총무원장이 만나 이런 대화를 나눴다고 명진 스님이 전했다.

명진 스님 : "이게 어떻게 된 것입니까."
자승 스님 :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명진 스님 : "왜 하는 것입니까."
자승 스님 : "제가 참회합니다."
명진 스님 : "어디서 압력 받은 거 아닙니까? 귀신이 씐 것입니까?"
자승 스님 : "귀신이 그런 것 같습니다."

봉은사 사건은 되어가는 모양새로 보아 파장이 잦아들 것 같지 않다. 김영국 거사 기자회견 압력 사태도 그렇고,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어떤 형태로건 자신의 거짓말과 '압력 행사'에 대해 입장 표명을 하지 않는 한 불씨가 사그라질 리 없다.

여기에다 "이명박 정권 들어선 뒤 거짓말이 횡행하는 사회가 됐다. 내가 알기로 정치인 중에 이명박 장로만큼 거짓말의 달인은 못 봤다", "낙동강 4대강 사업에 어떤 사람들이 공사를 하느냐. 이명박 장로, 이상득 장로가 나온 동지상고 동창들이 그 사업을 맡았다니, 이것이 국가냐, 조폭 집단이냐", "자승 원장은 참회하고, 안상수는 당장 정계 은퇴하라"는 명진 스님의 결의 또한 범상치 않다. 결국 봉은사의 여러 귀신들은 한동안 우리사회를  떠돌아  다닐 것이 분명해 보인다. 명진 스님이 "봉은사 사태가 소나기가 아니라 장맛비"라 했으니….

한나라당과 조중동의 이중 잣대... '신뢰의 붕괴' 촉진

우리사회에 나타나고 있는 각종 '재앙의 징후'는 이처럼 정권 상층부에서 발생한 '신뢰의 붕괴'에서 비롯된 것이 큰 줄기를 이룬다. 더욱이 일란성 쌍둥이 같은 한나라당과 조중동  수구 언론권력이 이명박 정권 들어서 노골적으로 보여 온 이중적 잣대는 국민을 무시한 오만함이 없다면 어찌 저럴 수가 있을까 싶다. 대표적인 사례가 고위 공직자 인사청문회에서 터져 나온 각종 부동산 투기, 세금 탈루, 위장 전입 등에 대해 보여 온 이중 잣대다. 국민의 정부, 참여 정부 10년 동안 그렇게도 모질게 문제 제기를 했던 그 잣대가 이명박 정권에서는 참으로 너그럽고 관대해졌다.

"세 번의 위장 전입을 통해 부동산 투기를 한 분이 '국민들에게 투기하지 마십시오. 위장전입하지 마십시오' 어떻게 그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인지 대단히 우려스럽지 않을 수 없다" - 2002년 7월. 심재철 한나라당 의원, 장상 총리 후보자 인준청문회에서

"(위장전입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받도록 돼 있다. 장대환 (총리) 후보자께서는 대단히 미안하지만 범법자가 됐던 것이다." - 2002년 8월. 안택수 당시 한나라당 의원, 장상 후보 낙마 뒤 새로 내정된 장대환 총리 후보 인준청문회에서

"부동산 투기, 세금 탈루, 위장 전입으로 주민등록법 상속세법 증여세법 등 각종 실정법을 위반했다. 위반한 법의 형량을 합치면 무기징역까지 가능하다." - 2002년 8월, 홍준표 한나라당 의원, 장대환 총리 후보 인준청문회에서

이랬던 한나라당이 이명박 정권에서는 고위공직자들의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세금 탈루 등을 아예 외면하거나, 변명할 기회를 주거나, 너그럽게 지나가는 태도를 보여 온 것은 천하가 아는 사실이다.

상황 따라 태도 바꾸는 언론들, 결국 자멸 길 갈 것

2009년 9월15일자 <조선일보> 사설.
 2009년 9월15일자 <조선일보> 사설.
ⓒ 조선PDF

관련사진보기


조중동 등 수구 언론권력도 이명박 정권 들어 각종 현안에 대해 180도 달라진 이중 잣대를 보여 왔다. 노무현 정부 때와 이명박 정부 때가 그렇게 다를 수가 없다. 같은 신문의 사설이라고는 도저히 볼 수 없는 내용이다. 그렇게 상반되고 모순투성이다.

"편법 증여와 위장 전입 의혹부터 소득세 탈루, 경력 허위 기재, 국민 연금 미납, 상습적인 교통법규 위반까지 최고위 공직을 맡기에는 부적절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일부 내정자들의 치부가 드러났다 … 200년의 인사청문회 전통을 갖고 있는 미국에선 내정자들이 사소한 불법이나 도덕성에 상처받는 사안이 불거지면 자진해서 사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공직을 맡겠다는 사람이라면 그 정도의 인격 수양은 돼 있어야 할 것이다." - <조선일보> 2006년 2월9일 사설 '대통령은 또 인사청문회 결과를 무시할 것인가'

이랬던 <조선일보>가 2009년 9월 15일 사설 '후보자 검증, 과거 자리서 무엇을 어떻게 했나 따져 보라'에서는 완전히 다른 잣대를 내놓았다.

"공직 후보자 검증에서 도덕성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후보자의 업무 능력과 각종 현안에 대한 견해다. 미국 인사청문회에선 후보자가 과거에 재직했던 자리에서 어떤 성과나 오점을 남겼느냐가 그를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척도로 다뤄지고 있다."

2005년 3월 8일 이헌재 부총리 부동산 투기의혹과 관련하여 <조선일보>는 '이 부총리 사퇴와 공직자 재산 형성의 윤리'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공직자들은 자신들이 부동산에 돈을 묻을 때는 온 나라 온 국민이 부동산에 들떠 있었다는 점을 들어 자신들의 행위가 특이한 탈법은 아니었다는 주장을 바탕에 깔고 있다. 그러나 이 주장이 사실과 전혀 다른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오늘의 공직자는 오늘의 공직 윤리를 적용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랬던 <조선일보>가 불과 3년 6개월 뒤, 그런 기억도 깡그리 잊어버린 채 참으로 너그럽고 이해심 많은 사설을 썼다.

"'털면 먼지 나지 않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법과 현실의 경계가 애매하게 된 것이 사실이다 … 언젠가는 구미 선진국처럼 사소한 위법행위로도 공직의 꿈을 접어야 하는 시대가 반드시 와야 하고, 올 수밖에 없다. 지금의 진통은 그런 시대로 가는 과도기여야 한다" - 2009년 9월 22일자 '공직 후보의 위법을 지켜보는 국민의 착잡한 심정'

<동아일보>는 2005년 3월 19일자 '약산의 흠도 최 위원장에게는 무겁다'는 사설에서 최 영도 인권위원장 내정자의 투기의혹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정부로부터 위원장 제의가 왔을 때 당연히 거부하는 게 최씨의 바른 처신이었다"고 질책했다.

그랬던 <동아일보>가 2009년 9월 14일, '이제 국민 앞에 '고품질 청문회'  한번 해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이렇게 다른 주장을 폈다.

"도덕성에 매몰돼 국정 수행 능력이나 자질 같은 더 중요한 요소들을 간과학로 있지는 않는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후보자의 도덕적 흠결에 대해서는 … 공직에 공헌할 기회를 박탈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것인지도 냉철하게 살펴봐야 한다." - 이상 민언련 분석자료 '시민과 언론' 특별 11호에서 인용

이렇게 불과 몇 년 사이에 서로 다른 잣대를 들이대고 상반된 주장을 하니 어떻게 신뢰를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이명박 정권과 공동운명으로 있으면서 각종 이득을 챙기고, 권력을 행사하면서 즐길 수 있을지는 몰라도 언론의 존립 기반인 신뢰를 무너뜨리는 이런 행태는 결국 자멸의 길로 가기 마련이다.

'산 권력'과 '죽은 권력'에 대한 정치검찰의 이중 잣대

한국진보연대가 지난 3월26일 오전 여의도 한나라당사 앞에서 '큰집에서 조인트 까인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공무원노조와 명진스님에게 좌파낙인을 찍는' 내용의 풍자를 하며, 이 사태에 대한 안 대표의 공식해명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진보연대가 지난 3월26일 오전 여의도 한나라당사 앞에서 '큰집에서 조인트 까인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공무원노조와 명진스님에게 좌파낙인을 찍는' 내용의 풍자를 하며, 이 사태에 대한 안 대표의 공식해명을 요구하고 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정권도 마찬가지다. 이중 잣대는 스스로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결국은 덫이 되고 만다. 고위 공직자의 도덕성에 대한 태도만이 이중적인 게 아니다. 정치검찰이 '산 권력'과 '죽은 권력'을 대하는 태도는 가히 하늘과 땅 차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사건과 한명숙 전 총리 사건에서 보인 정치 검찰의 권력 행사는 치졸하고, 혹독하고, 야비하고, 잔인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현 정권 핵심부와 직·간접적으로 연루되어 있는 인사들에 대해서는 수사의 흉내나 시늉만 낸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한상률 전 국세청장의 '학동마을' 그림 로비사건도 그렇고, 천신일 세중 나모그룹 회장 사건도 그렇고, 이명박 대통령의 사돈 기업인 효성 그룹 비자금 조성 의혹 사건도 모두 수사에 뜻이 없거나, 흐지부지 하거나, 미지근 하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정권이 바뀌면 그 때 써먹으려고 남겨 둔 것인가?

어쨌거나 이런 정치 검찰의 행태도 신뢰의 붕괴를 가져 오고, 그것은 검찰 조직은 검찰 조직대로 망가트리고, 거기에 의존하는 정권은 끝내 몰락의 길을 걷기 마련이다.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지만,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과 공화당 보수주의가 몰락해간 과정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신뢰의 붕괴와 오만, 권력 탐닉 등이 핵심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라크 침공을 둘러싼 여러 거짓말이 불러일으킨 신뢰의 붕괴, 절대다수 의석의 점유에 따른 오만과 권력 탐닉, 그 결과로 나타난 부패, 칼 로브와 같은 부시 심복들의 분열과 적대에 근거한 공작 정치, 기독교 근본주의자들과 손을 잡은 부시의 종교적 편협함, 감세와 국방비 급속 증대에 따른 연방적자와 국가부채의 급증, 이로 인한 경제적 압박… 상당히 여러 면에서 조지 부시와 이명박 대통령은 닮았다.


태그:#정연주, #KBS, #이명박, #신뢰의 붕괴, #봉은사 귀신들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전 동아일보 기자, 한겨레 워싱턴 특파원, 논설주간, kbs 사장. 기록으로 역사에 증언하려 함.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