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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동안 쓰던 번호를 바꾸게 할 때는 언제고, 이제 나가는 마당에 쓰던 번호는 두고 나가라뇨?"

 

직원 20명 정도인 광고 인테리어 업체를 운영하는 정관용 세종지에스 대표의 하소연이다. 정 대표는 3년 전 서울 구로 가산디지털단지에 있는 한 아파트형 공장에 입주했다. 그 건물은 구내통신서비스 지역이라 부득이 15년 쓰던 회사 유선 번호를 모두 그 건물 국번으로 바꿔야 했다.

 

사세 확장으로 통신비와 키폰 증설 부담이 커져 타사 인터넷 전화로 바꾸려고 해도 약관상 타 통신사로 '번호 이동'은 불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또 최근 회사를 다른 지역으로 옮기려고 보니 쓰던 번호는 그 건물 사업자에 반납해야 했다. 정 대표로선 새 번호도 이제 겨우 자리 잡은 마당에 또 번호가 바뀌면 당장 고객 영업에 지장을 줄까 고민하는 상황이다.

 

구내통신 가입자 '번호 이동' 원천 봉쇄

 

집 전화-이동전화-인터넷전화로 번호이동제가 확대되며 통신사업자들의 가입자 유치 경쟁은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그런데 정작 통신비 부담이 큰 중소기업들 가운데는 '번호 이동'이 원천 봉쇄돼 속병을 앓는 곳이 적지 않다. 바로 구내통신사업자가 있는 대형 빌딩이나 오피스텔에 입주한 기업이나 개인 가입자들이다. 

 

구내통신사업자는 건물주와 계약해 사설 교환기(PABX)를 설치하고 KT와 같은 기간통신사업자에게 1000회선, 1만 회선 단위로 특정 번호 대를 받아 건물 가입자들에게 유무선 통신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98년 별정통신사업 3호로 처음 도입됐으며 현재 방송통신위원회에 등록된 구내통신사업자는 54개에 이른다.

 

건물주 입장에서는 따로 통신설비를 깔거나 유지, 보수하는 비용을 아낄 수 있고 가입자들도 구내 무료 통화 등 요금에 이점이 있어 요즘 짓는 대형 건물에서 선호하고 있다. 특히 첨단 아파트형 공장이 늘고 있는 가산디지털단지에도 15층이 넘는 웬만한 건물에는 모두 구내통신사업자가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가입자 "번호 사겠다"... 사업자 "개별 번호 이동 불가능"

 

문제는 해당 번호대가 그 건물 구내통신사업자에게 묶여 있어 '번호 이동성'에 여러 제약이 따른다는 것이다. 당장 입주자가 바로 옆 건물로 회사를 옮기더라도 쓰던 번호를 가져갈 수 없다. 뿐만 아니라 통신비용을 아끼려고 인터넷 전화로 바꾸거나 타 통신사로 옮기려고 해도 '번호 이동'이 허용되지 않는다. 

 

영업 활동에 있어 전화번호가 생명과도 같은 중소기업들은 값비싼 요금을 물더라도 기존 번호를 쓸 수밖에 없고, 막상 회사 이전이라도 하게 되면 불가피하게 전화번호를 바꿔야 하는 처지다. 10회선을 써온 정관용 대표는 "쓰던 번호를 KT와 직접 계약하겠다고 했지만 구내통신사업자에게 이미 모든 권리가 있어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밝혔다. 

 

세종지에스를 포함해 150여 개 업체 650회선 정도를 관리하는 이 건물 구내통신 담당자는 "해당 국번은 이 건물 안에서만 사용하는 것이어서 밖으로 가지고 나갈 수 없다"면서 "구리선 형태로 들어오는 일반 전화선과 달리 광통신으로 한꺼번에 들어와 기술적으로 번호 이동이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부득이 쓰던 번호를 계속 쓰려면 기존 번호를 계속 유지하면서 새 번호로 착신 전환하는 방법이 있긴 하지만, 이때 수신 요금까지 이중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거의 활용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건물 내 번호 이동 놓고 사업자 간 이해 엇갈려

 

통신사업자들은 건물 밖 '번호 이동'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데 의견 일치를 보고 있지만 건물 내 '번호이동'에 대해서는 서로 견해가 엇갈렸다. 후발주자인 SK브로드밴드 회선이 들어간 구내통신서비스 건물이 200여 곳 정도인 반면, 1000여 곳에 이르는 대부분 건물에서 KT 회선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SK브로드밴드 홍보팀 임영석 매니저는 "건물 내 개인 번호이동을 허용할 경우 기존 사업자의 사업권이 없어져 문제가 되는 것이지, 가입자 규모만 크면 장비를 추가로 넣을 수 있기 때문에 기술적 문제는 없다"고 밝혔다

 

반면 KT 홍보팀 관계자는 "이동 전화와 달리 유선 번호 이동은 KT가 받아서 착신 전환해주는 방식인데, 구내 통신은 개별 전화와 달리 해당 번호 대역을 한꺼번에 처리하기 때문에 1회선이건 100회선이건 회선 일부만 빼내는 것은 기술적으로도 어렵고 더 많은 비용이 발생한다"고 맞섰다.

 

이에 번호 이동 문제를 담당하는 방통위에서도 최근 해법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방통위 통신자원정책과 이준희 사무관은 19일 "구내통신설비를 대부분 보유한 KT측에서는 (번호 이동이) 기술적으로 어렵다고 하고 경쟁 사업자 쪽에선 1회선씩은 어렵지만 100회선 단위로 그룹으로 옮기는 것은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어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면서 "실제 기술적으로 불가능하지 않다면 제도상 문제될 건 없다"고 밝혔다.

 

다만 건물 바깥으로 번호 이동에 대해서는 "해당 번호대가 구내통신사업자 영업권으로 묶여 있어 건물 외부로 번호를 가져가는 것은 상호 접속 문제 등이 발생해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라면서도 논의 범주에는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번호이동#인터넷전화#구내통신사업자#K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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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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