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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를 닦는 날은 신이 난다.
우선 이는 뭔가 나들이의 빌미가 되는 때문이다.

평소엔 다소 지저분해도 구두를 잘 안 닦는다.
하지만 어제처럼 처조카의 결혼식이 있는 날은 다르다.

그래서 어젠 예식이 열리는 전주로 가기 전에 구두부터 닦았다.
내 구두는 물론이요 식구들의 구두까지 덩달아.

구두를 잘 닦는 방법은 이렇다.
우선 솔로 구두에 묻어있는 먼지부터 털어낸다.
다음으로 구두약을 적당히 바른 뒤 이른바 '융'이라 불리는 섬유를 물에 적셔 광을 낸다.

그러면 금세 파리도 앉았다가 낙상할 만치로 반짝반짝 빛이 나기 마련이다.
이같이 구두를 잘 닦는 노하우는 너무도 일찍 배웠다.

그건 전혀 원하지도, 바라지도 않았거늘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 '소년가장'이란 멍에 때문의 귀결이었다.
삭풍이 휘몰아치는 고향역 앞에서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남의 구두를
다방 등지에서 '찍어다가' 닦새(구두를 닦는 이란 뜻의 은어) 형에게
구두를 전달하는 게 처음의 내 직업이었다.

그러다가 '짬밥' 수가 늘어남에 따라 나도 그간의
'찍새'(구두를 찍어온다고 하여 붙은 은어)에서 '닦새'로 승진(?)을 하기에 이른다.
그렇지만 밥벌이는 늘 그렇게 불안하고 불투명함에 다름 아니었다.

비와 눈이 오는 날이면 손님들은 하나같이 구두를 닦으려 하지 않았다.
그것도 전혀!

하여 그런 날은 그야말로 '공(空)치는 날'이었는데
그로 말미암아 점심은 헐한 가격의 국수조차도 사 먹지 못 하곤 했다.
당시 고봉(高捧)으로 가득 채워주는 멸치국수는
한 그릇에 5백 원이었으나 돈을 못 번 처지에선 그마저도 사치였기 때문이다.

그같이 위태로운 직업을 노동, 속칭 '노가다'로 바꾼 건 불과 1-2년 뒤의 일이다.
노가다는 일만 하면 일당은 반드시(!) 꼬박꼬박 나오는 때문이었다.

그 때 하루 품삯은 5천 원이었는데 이 돈이면 얼추 일주일은 견딜 수 있었다.
근데 그마저도 안정적 직업은 못 되었다.

비와 눈이 쏟아지면 일 자체가 원천 무효화되었고
몸이 아프면 쉬어야 했으며 일이 없으면 또한 놀아야 했다.
그처럼 불규칙하고 안정적이지 못 한 직업을
현재도 생업으로 하고 있는 세일즈맨으로 바꾼 건
나처럼 못 배운 작자도 능력만 있음 되는 까닭이었다.

'세일즈맨은 실적으로 말한다'를 어떤 투철한 신앙으로 알고 앞만 보며 뛰었다.
그랬더니 전국 최연소 영업소장이란 진기록까지 일궈낼 수 있었다.

이윽고 구두는 다 닦았다.
어제 신고 간 구두는 재작년에 제 발엔 적다며 처조카가 준 고급구두이다.

하여 '고급스런 날'에만 신는데 그래서 어젠 모처럼
이 구두도 날 따라 나서는 호강(豪强)을 할 수 있었다.

덧붙이는 글 | sbs에도 송고했습니다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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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서: [초경서반]&[사자성어는 인생 플랫폼]&[사자성어를 알면 성공이 보인다]&[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 대전자원봉사센터 기자단 단장 ▣ 月刊 [청풍] 편집위원 ▣ 대전시청 명예기자 ▣ [중도일보] 칼럼니스트 ▣ 한국해외문화협회 감사 / ▣ 한남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CEO) 수강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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