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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대신 죽이고, 제발 좀 살려주세요!"

"높은 사람들은 다 살고, 아랫사람들은 다 죽고!"

"우리는 아직 살아있다고 생각합니다!"

"내 새끼 살리가(살려서) 내 앞에 데꼬(데리고) 오이소!"

 

천안함 침몰사고 실종자 가족들의 첫 공식 기자회견 현장은 눈물바다였다. 처음부터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닦아내던 가족들은 회견문이 낭독되자 결국 오열하기 시작했다.

 

한두 명이 소리내어 울자 여기저기서 통곡이 터져 나왔고, "아이고, 어떻게 해"라는 고통의 외침이 이어졌다. 먼저 눈물 흘리는 사람에게 "진정하라"면서 격려하던 가족들도 끝내 부둥켜안은 채 마주보고 울었다. 기운이 빠져 주변의 부축을 받는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 대신 죽이고"... 통곡의 바다된 기자회견장

 

31일 오전 10시, 실종자 가족 200여명은 경기도 평택2함대 부대 안 안보교육관 강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가족협의회 입장을 발표했다. 이들은 전날 전체회의를 열고 가족당 1명씩이 참여하는 '천안함 실종자 가족협의회(이하 가족협의회)'를 구성했다.

 

이날 가족협의회는 군 당국에 대해 ▲ 실종자 전원에 대하여 마지막 1인까지 (구조에) 최선을 다할 것 ▲ 현재까지 진행된 해군 및 해경의 구조작업 과정에 대한 모든 자료를 제공해줄 것 ▲ 실종자 가족의 의혹 해소를 위한 별도의 질의응답 시간을 마련해줄 것 등 세가지 요구사항을 공개했다.

 

이에 대해 이정국 가족협의회 대변인은 "따지겠다거나 싸우겠다는 것이 아니다, 혼란을 해소하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군 측이 질의응답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공개질의를 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는 기자들에게 "사고 발생시점, 초동 대처 및 구조 작업, 함미 탐색과정까지 의문들이 큰 제목만 뽑아도 수십가지"라고 말했다. 또한 "이런 사태가 일어나면 (사건 실체가) 낱낱이 밝혀질 줄 알았다"면서 "대통령 말을 믿었다, 저도 믿어드렸다"고 정부에 대해서도 불신을 나타냈다.

 

또한 이후 정부와의 협상과 관련해서도 "(마지막 실종자 구조까지) 기다리는 것이고, 주고받는다는 의미의 거래나 협상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못박았다.

 

"사고시점부터 함미 탐색까지, 큰 의문만 수십가지"

 

가족들은 먼저 실종자를 구조하다 순직한 고 한주호 준위에 대한 묵념으로 애도의 뜻을 나타냈다. 기자회견문을 낭독하면서 이정국 대변인은 여러 차례 "정말 감사드린다",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앞서 오전 9시 가족 7명이 수도통합병원 빈소로 조문을 떠나기도 했다.

 

회견문은 군부대 구조작업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백령도 현장에 나가있던 참관단이 볼 때 구조작업에 대한 지원은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전날 "더이상의 참관은 아무 의미가 없다"면서 백령도를 떠나 평택 임시숙소에 합류했다.

 

가족협의회는 자원봉사하는 소형 어선이 함미를 포착하고 정작 해군의 옹진함·광양함 등은 조기 투입이 되지 못한 상황을 강조하면서 "함미를 발견한 시점은 이미 (선내 산소가 충분한) 제한시간을 넘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특히 문제로 삼은 것은 감압장치(챔버)다. 운용 가능한 챔버가 현재 단 1기밖에 없기 때문에 구조의 최우선 작업인 잠수도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백령도 참관단은 회견 이후 질의응답에서도 이를 집중 비판했다. 이들은 "구조요원들은 정말 목숨을 걸고 하고 있지만, 이 분들이 열심히 하고 싶어도 장비가 없다"고 현지 상황을 전했다.

 

하루에 3~4번 조류가 잔잔한 시간에만 구조작업을 할 수 있는데 챔버가 1개 밖에 없어 한 조(2인)만 물에 들어갈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한 가족은 "장비가 5대만 있었다면 실종자들 다 (구조해) 나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감압장비가 5대만 있었더라면..."

 

또한 이날 가족협의회는 "무분별한 취재 경쟁 및 오보로 혼란만 가중되고 있다"면서 언론에 대해서도 불만을 나타냈다. 이 대변인은 "가족들이 통곡하는 모습, (실신해서) 링거 맞고 있는 모습 내보내면 기분 좋냐"면서 자제를 부탁했다.

 

그러면서 ▲ 추측 보도 및 확인되지 않은 사항에 대한 보도를 자제해줄 것 ▲ 가족의 비통한 심정을 이용한 비인도적 취재행위를 하지 말 것 ▲ 영외에 계신 실종자 가족, 특히 연로하신 가족들에게 무리한 취재요구를 하지 말 것 등의 요구사항을 전하기도 했다.

 

오열 속에 진행된 기자회견의 결론은 "우리와 함께 밥먹고 잠자고 생활하던 가족이 설령 불귀의 객이 돼서라도 온전하게 돌아오는 게 소원"이었다. 가족협의회는 다음과 같은 '국민에게 드리는 호소'로 기자회견을 마무리했다.

 

"마치 모든 것을 다 하고는 있지만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상황인 것처럼 발표하는 군당국과 이를 받아쓰기 하듯 보도하고 있는 일부 언론의 왜곡된 보도에 저희 실종자 가족들은 칼로 심장을 찢어내는 고통 속에 심신이 망가져가고 있습니다. 가정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부디, 차디찬 바다 속에 갇혀있는 46명의 장병들이 여러분의 가족이라 생각하시고, 최대한의 인원이 무사 생환할 수 있기를 기원해 주십시오. 하늘에서 부여받은 명이 다하여 불가항력적으로 희생된 장병이라도 온전한 모습으로 저희 곁에 돌아올 수 있기를 기원해 주십시오.

 

아울러, 비통함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단체를 구성하여 힘겨운 목소리나마 내고자 하는 저희에게 힘을 실어 주십시오."

 

허리 굽힌 정세균 "제가 죄인입니다"

민주당 의원들 6명, 천안함 침몰 실종자 가족 방문

정세균 대표 등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31일 오후 2시 40분께 경기도 평택2함대를 방문해 천안함 침몰 실종자 가족들을 만났다.

 

이날 정 대표는 전체 가족 50여명이 모인 안보교육관 강당에서 "여러분을 뵐 면목이 없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면서 책임감을 나타냈다. 그는 "아직도 국민과 가족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지 못하는 심정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없다"면서 "내가 죄인이다, 정치를 잘해야 하는데 부족해서 이런 일이 생겼다고 자책했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는 정부에 대한 비판은 자제했다. 그는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어떻게든 46명을 구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한 "모든 인력과 장비와 기술을 총동원해 나설 수 있도록 힘을 합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정부에서 구조작업에 만전을 기한다고 하지만, 가족 대표들과 대화하는 과정에서 부족한 부분을 확인했다"고 우회적으로 정부 대응을 지적하고 "진상규명을 위해 책무를 다하겠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는 이같은 말을 마친 뒤 허리를 숙여 다시 한번 유감을 표했다. 발언을 듣는 가족들은 다시 눈물을 흘렸고, 한 가족은 "구조 작업에 힘 좀 써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이날 방문에는 정 대표와 김진표·서종표·송영길·신학용·홍영표 의원이 참석했다. 이들은 전체 가족을 만나기 앞서 사령부 회의실에서 40분간 구조작업에 대한 해군 측 브리핑을 듣고, 임시숙소에서 실종자 가족 대표 7명을 만나 1시간 가까이 면담을 가졌다.

 


태그:#천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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