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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후, 짙은 황사 속에서 철쭉을 옮기고 쇠스랑으로 야콘 심을 밭을 엎은 까닭은 비가 오리라는 일기 예보를 믿었던 때문이다. 그러나 이곳에 비는 오지 않았다.

오리라고 여겼던 비가 내리지 않은 것은 일종의 돌발 상황이다. 그렇다고 일기예보를 믿은 것이 잘못은 아닐 것이다. 나무를 옮긴 후 하루쯤 물을 주지 않는다고 금방 시드는 것은 아니지만 나무에게 미안할 뿐이다.

점심을 먹고 오후에야 집을 나서는데 바람이 세차게 분다. 남평장에 들러 괜찮은 나무가 나왔나 살핀 후 숙지원에 들어서니 어제까지도 머뭇거리던 매화가 활짝 반긴다. 아무리 꽃샘추위라고 해도 오는 봄을 막을 수 없는 법. 바람에 하늘거리는 노란 수선화를 보면서 강압과 억지만으로 자연의 흐름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매화를 보면 늘 상쾌하다. 겨울 추위를 이겨내고 피어난 매화는 선비의 절개를 상징한다하여 예부터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아온 꽃이다. 매화에 관한 시만도 수백 편이 되는 것으로 안다. 그중에서 돌아가시기 직전 "매화분에 물을 주라."고 했다는 퇴계선생의 매화 사랑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밖에 모르는 수많은 사람의 매화 사랑을 다 옮길 수는 없을 것이다.

매화    숙지원 한쪽 매화밭의 일부이다. 작년에 심은 작은 묘목까지 꽃자랑을 한다.
매화 숙지원 한쪽 매화밭의 일부이다. 작년에 심은 작은 묘목까지 꽃자랑을 한다. ⓒ 홍광석

매화는 초여름에 우리에게 매실을 선사한다는 점 때문에도 귀한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요즘 매화는 어느 곳에서나 흔히 볼 수 있다. 웬만한 시골집이라면 몇 주씩 키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도 매화는 볼수록 많은 느낌을 주는 꽃이다. 화사한 홍매화, 수수한 백매화 눈까지 시원하게 해주는 청매화, 그 곁에 서면 향기는 왜 그리 짙은지! 지금 숙지원의 매화는 작년에 심은 어린 나무까지 덩달아 절정을 이루고 있다.

매화와 함께 시선을 잡는 꽃이 수선화이다. 봄의 전령이라고 하는 수선화. '자기 사랑'이라는 꽃말을 가진 꽃, 나르시시즘의 어원의 되었던 수선화. 새삼 미주알고주알 소개하는 일이 도리어 촌스러운 짓일 것이다.

홍매와 수선화     꽃이 피면 지는 것은 자연의 순리다.
홍매와 수선화 꽃이 피면 지는 것은 자연의 순리다. ⓒ 홍광석

키가 땅에 닿을 정도로 작고 여리면서도 여성적인 부드러움을 갖춘 수선화. 입춘만 지나면 언 땅을 뚫고 새순을 밀어올리는 강한 생명력을 가진 수선화다. 꽃씨는 없고 구근으로 번식하는데 꽃의 종류나 꽃의 색도 다양하다고 알고 있다. 그렇지만 수선화 하면 먼저 떠오르는 색이 노란색 아닌가 한다. 아내가 군데군데 심어놓은 수선화는 이제 황금빛 꽃을 피기 시작한다. 장독대 주변에 줄지어선 수선화가 필 무렵이면 자두꽃이 매화의 뒤를 이으리라.

추위에 굽히지 않는 힘을 가진 매화와 수선화, 흙바람 속에서도 계절을 지켜주는 꽃을 보며 마음을 다스린다. 다가올 여름을 위해 마음을 가다듬는다.

요즘 선거판에 뛰어든 선후배들을 많이 본다. 선거란 승리와 패배가 명확하게 갈리는 싸움으로 잘못되면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 모두 상처받지 않은 결과가 있기를 기원해본다.
그러면서 그런 친구들에게 한번쯤 사심 없이 추위를 이겨내고 이제 경쟁하면서 조화를 이루는 봄꽃과 함께 짧은 시간이라도 보낼 것을 권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겨레 필통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매화#수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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