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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0일 아침, 밤새 눈이 많이 내린 탓에 세상은 온통 겨울 수채화를 그려놓은 듯했다. 민주노총 임원선거 당시 지역을 순회하면서 당락에 관계없이 투쟁사업장을 방문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함께했던 두 명의 후보 동지와 함께 지방으로 향했다.

 

먼저 설 연휴가 지나자마자 사측의 불법적 공장폐쇄에 맞서 가두투쟁과 지역연대파업 등으로 투쟁하고 있는 금속 경주지부를 방문하기로 했다. 소나무가 뚝뚝 꺾이는 폭설이었지만 봄눈이라 고속도로 통행은 그리 불편하지 않았다. 몇 시간을 달려 경주시내 외곽에 있는 민주노총 경북본부 경주지부 사무실에 도착했다.

 

그 곳에서 금속 경주지부장과 간부들을 만나 상황에 대해 청취했다. 며칠 전 집회에서 7명의 간부들이 삭발을 한 상태였다. 그리고 경주포항산업도로 점거 후 수십 명이 연행되었다 풀려났지만 지도부에게는 소환장이 발부되고 있었다. 

 

현지 동지들의 안내로 발레오만도 옆 공단 공원에 도착했다. 농성텐트가 줄지어 있다. 남쪽이지만 밤사이 눈이 많이 내린 탓에 날씨는 쌀쌀했다. 지부장을 만나 상황에 대해 얘기를 들었다. 설 연휴가 채 끝나기도 전인 지난 2월 16일 새벽 6시 30분 경주 발레오 전장(만도) 시스템코리아(주)는 무기한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경비, 식당, 외곽부서 인원을 아웃소싱하는 것은 단체협약이나 노사협의회 위반이라는 노조 요구를 외면하면서 노동자들을 공장 바깥으로 쫓아냈다. 식당에서 잠을 자던 여성노동자들도 끌려나왔다고 한다. 용역이 공장 문을 막아선 채 노동자들의 출입은 봉쇄되었다.

 

노동부 포항노동지청장은 자신이 새벽 5시에 출근을 했고 사측이 6시에 직장폐쇄요청을 했기에 허가했다는 코미디 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 바로 그 날 아침 7시 28분부터 직원까페가 개설되고 조합원들에 대한 사측의 회유와 심리적 압박이 시작되었다. 사장은 직접 핸드폰 메시지를 통해 집행부와 조합원들을 분리시키는 혈안이 되고 있다.

 

투기자본 발레오

 

지난 12년 전 아이엠에프 외환위기 직후 외자유치를 명분으로 알짜배기 기업들이 외국자본에 헐값으로 팔려나갔다. 전국에 산재해 있던 한라그룹의 (주)만도 역시 해외자본에 분할 매각되었다. 경주공장은 프랑스 발레오 자본에 매각됐다. 발레오자본은 M&A를 중심으로 성장한 전형적인 투기자본이다. 충남에 있는 발레오 공조 코리아의 경우도 공장폐쇄 후 노동자들이 프랑스 현지로 원정투쟁을 나서는 등 투쟁 중이다.

 

투기자본을 '먹튀'(이익만 빼먹고 튄다)라 부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경주 발레오만도의 경우도 장기적인 투자보다는 전 지구적(글로벌) 생산체제를 갖추고 이윤을 극대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예를 들면 멕시코에 공장을 건설하기 위해 발레오 만도에 멕시코 노동자들을 연수생이라는 이름으로 기술을 익히게 하였고 발레오 만도 기술자들을 멕시코로 보내 기술을 전수하거나 공장 설비를 깔아주도록 했다. 일종의 기술유출이라 할 수 있다. 투기자본은 고배당을 통한 이윤극대화뿐만 아니라 기술을 유출시키고 매매차익까지 노린다.

 

투기자본은 종합선물세트처럼 자본의 투기적 속성을 있는 그대로 발휘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자본의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발맞춰 노동유연화 실시한다는 점이다. 투자 대상국가로부터 법적, 제도적, 물리적 지원까지 받으며 노동착취를 통한 자기자본이익률(ROE)을 극대화한다. 물론 해당국의 고용사장을 통해 노동자를 통제하고 관리한다.

 

따라서 고용사장은 본사의 지시 없이는 어떤 자율성도 없다. 본사는 필요하면 언제든지 공장을 폐쇄하거나 매각하고 철수를 감행한다. 지금 발레오자본이 한국정부의 지원을 받아 경주공장에서 벌이고 있는 작태는 피도 눈물도 없는 투기자본의 본질을 드러내는 것이다. 노조를 완전하게 굴복시켜 노동유연화 정책을 통해 전사적 자원․노무관리(ERP)를 통해 더 많은 이윤을 뽑겠다는 것이다. 만약 이것이 성공하지 못할 경우는 자본을 철수하겠다는 협박까지 하고 있는 셈이다.

 

이명박 정권의 눈엣가시

 

김대중, 노무현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이어받고 자본독재 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이명박 정권은 노동운동을 약화시키기 위해 총공세를 펴고 있다. 민주노총 무력화를 위해서는 민주노총의 손발을 잘라내는 일이 급선무다.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공무원과 전교조에 대한 이념·정치공세, 공공부문선진화를 명분으로 단협해지와 성과 연봉제 도입, 화물연대 등 특수고용노동자 노조 불인정, 민주노총의 주력인 금속노조 약화, 제3노총 추진 등 노동운동에 대한 전면적인 공격을 계속하고 있다.

 

산업노조의 중심인 금속노조는 아직 대공장노조가 지역지부로 편재되지 않는 등 구조적한계를 가지고 있다. 이 가운데서도 경주지부는 지역연대투쟁을 힘차게 전개할 수 있는 조직력을 가지고 있다. 또 하나 이명박 대통령의 큰 형이 소유하고 있는 다스(DAS)의 경우 얼마 전 민주노총 금속노조에 가입하였고 지역 연대총파업 등에서 선두에 서고 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금속노조 경주지부는 정권의 눈엣가시가 아닐 수 없다. 지난 3월 12일 금속노조 결의대회를 개최한 이후 17일까지 사측의 태도를 본 뒤 투쟁수위를 결정하기로 되어 있다.

 

노동자들에겐 아직 한 겨울

 

지부장을 만난 뒤 텐트에서 나오니 주위에는 식당에서 일하던 여성조합원을 비롯해 여러 명의 사수대가 드럼통에 장작불을 피워놓고 모여 있다. 우리들의 방문을 반갑게 맞으며 전국적인 지원과 연대를 부탁했다. 농성대오와 헤어져 공장 정문을 지날 때 양 쪽에서 조합원과 용역들이 서로 대치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저녁 무렵 경주 발레오 만도를 출발해 창원으로 향했다. 경주지부투쟁이 무너지면 금년 금속노조가 추진하는 전임자임금지급을 위한 특단협이나 임금협상 등에서 어려운 지경에 빠지게 된다. 이 경우 내년 복수노조 시기와 맞물려 민주노총의 위기로 이어질 것이다. 발레오 만도와 금속노조 경주지부의 투쟁이 특정산업이나 지역투쟁을 넘어서는 의미가 있다.

 

그 날 저녁 늦게 금속 경주지부장, 수석부지부장 그리고 발레오만도 지회장에게 체포영장이 발부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계절은 춘설이 녹아 봄을 재촉하지만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와 이명박 자본가정권 하에서 노동자들은 여전히 추운 겨울의 한 가운데 서 있다. 아직은 양파 껍질 속에 있다고 생각하는 노동자들도 언제든지 그 껍질이 벗겨진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러면 자본의 한파가 몰아치는 벌판에 서게 될 것이다. 그러기 전에 연대투쟁전선에 함께 나서야 한다.


#발레오#직장폐쇄#투기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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