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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에게서 인사청탁과 함께 뇌물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기소된 한명숙 전 총리가 8일 첫 공판을 받기 위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 들어서고 있다.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에게서 인사청탁과 함께 뇌물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기소된 한명숙 전 총리가 8일 첫 공판을 받기 위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 들어서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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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년 전, 유신 치하의 사법실상

지금부터 31년 전 오늘, 1979년 3월 9일 오전 10시에 한명숙은 중부경찰서 김 형사라고 거짓 신분을 말한 중앙정보부 요원에게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갔다. 이후 신인령(전 이화여대 총장), 김세균(서울대 교수), 정창렬(한양대 교수), 황한식(부산대 교수) 등이 연달아 같은 일을 겪었다. 이들은 대학원을 마치고 막 강단에 선 신진 엘리트들이었다. 3월 27일 강원룡 목사가 중정으로 연행되고서야 지인들은 사태를 알아차렸다. 중정은 수색영장도 없이 사무실과 집안의 모든 종이를 훑어갔다.

연행된 이들은 실로 죽음에 이르는 잔인하고 혹독한 고문에 방기되었다. 이들은 5월 4일 기소될 때까지 그렇게 짐승의 시간에 버려져 있어야 했다. 가까스로 이세중, 홍성우, 황인철 변호사들이 단 한번 이들을 면회하고 경악했다.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된 이들은 자신들을 방어할 기력을 완전히 상실한 듯이 보였다.

4월 16일 중앙일간지들은 일제히 중정의 발표문을 앵무새처럼 받아 대서특필했다. 이른바 '불법용공서클 일당 검거'였다.

그러면 과연 이들이 한 일은 무엇이었는가? 크리스찬아카데미 원장 강원룡은 한국사회구조의 병폐를 '양극화'로 진단했다. 이념과 체제의 양극화 위에 소수 특권층과 다수 국민대중, 도시와 농촌, 호화주택과 빈민촌, 기업주와 노동자, 남성패권과 여성 등등. 이들 집단간의 양극화를 해소하는 것이야말로 사회갈등을 치유하는 사활적 문제라 생각했다.

다수 국민의 편에 서서 사회개혁에 관심을 가지는 세력을 양성하기 위해 크리스찬아카데미는 노동, 여성, 농민, 학생, 교회단체 회원을 수강생으로 모집해 각종교육을 실시했다. 특히 한명숙과 신인령이 얼마나 헌신적으로 일했는지 두 사람에게 '아카데미무당'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두 사람은 늘 눈이 반짝였으며 교육사업에 대한 자긍심으로 충만해 있었다.

이들의 열정은 점차 그 효력을 드러냈다. 수강생들은 각자의 일터로 돌아가 노조를 결성하는가 하면 민주화를 요구하는 각종 조직을 건설했다.

사실상 박정희의 종신집권체제인 '유신왕조'를 받치고 있던 중정은 이를 놓칠세라 무식하게시리 빨간 페인트칠을 했다. 무엇이 두려우랴! 자신들이 의도하는 대로 척척 손발을 맞추어 주는 관제언론과 검찰이 부복하고 있음에랴!

증거물이라고는 '민중' '민주' 등의 어휘가 제목으로 찍힌 서적 몇 권을 두고 모든 혐의사실을 중정이 조작하고 검찰은 이를 그대로 인정했다. 거기다 더 보태어 검찰은 어처구니없는 무식을 스스로 폭로하기까지 했다. 크리스찬아카데미의 후원자인 유명한 국제기구인 WCC를 'KGB(소련 비밀경찰)'의 하부조직이라고 우겼다.

이 과정에서 구속자들에 대한 '숨이 멎는' 고문사실이 정식으로 알려진 것은 변호인 반대심문이 있던 7회 공판 때였다. 그러나 '증거능력'을 상실한 고문수사의 자백 같은 건 문제되지 않았다.

오호라, 슬프고 또 슬프다

법정이 신성한 이유는 그곳이 진실과 정의를 찾아가는 험난한 여정이기 때문이다. 그때 유신 치하의 법원은 검찰의 영장청구접수와 발부를 담당하는 행정부서에 불과했다. 그들은 공소장을 판결문의 부본처럼 사용했다.

역설적이게도 재판부의 판결문은 아카데미 교육의 목적과 내용을 잘 간추리고 있다.

"....... 궁극적으로 인간화의 실현을 이념으로 자유와 평등이 동시에 실현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정치 경제 문화 사회 전반에 걸쳐 심각한 양극화 현상을 해소하는 것이 급선무라 생각하여 그 방법으로 노조, 여성, 농민, 학생, 종교, 언론, 등 소위 중간집단을 육성 강화하여 때로는 압력을 통하여 때로는 화해와 통합기능을 통해 양극화의 해소를 기한다는 전제아래 그들을 의식화시키는 과정에서 착취로부터 해방되고 권익이 제도적으로 보장되는 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투쟁의식을 고취시키고 이들을 조직화시켜 사회주의 실현을 목적으로 했다"

마지막으로 터무니없는 사회주의 운운만 뺀다면 이는 정확한 기술이다. 

재판과정에서 확인된 불법 체포와 구금, 압수수색, 처절한 고문폭로 따위는 재판부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다. 1979년 9월 22일. 판사는 아무런 고뇌한 흔적도 찾아볼 수 없이 징역 7년 등 최고형량을 선고했다.

이것이 유신왕조의 사법실상이었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오직 '진실'뿐

 8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한명숙 전 총리의 첫 공판이 열렸다. 이날 법원 앞에는 한명숙 전 총리 지키기 시민들이 '떡검'으로 변장하고 나왔다. (사진은 휴대전화 3755 '미디어몽구'님이 #5505 엄지뉴스로 보내주셨습니다.)
 8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한명숙 전 총리의 첫 공판이 열렸다. 이날 법원 앞에는 한명숙 전 총리 지키기 시민들이 '떡검'으로 변장하고 나왔다. (사진은 휴대전화 3755 '미디어몽구'님이 #5505 엄지뉴스로 보내주셨습니다.)
ⓒ 엄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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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한명숙이 31년 만에 다시 법정에 피고인으로 섰다. 국민들이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이 헛되지 않아 그동안 군사정권은 소멸하고 민주정부 10년을 세우기도 했다. 그녀는 최초의 여성 총리를 역임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현 집권당의 지방권력에 가장 위협적인 존재가 되어있다.

검찰은 그녀가 백주의 총리공관에서 곽영욱으로부터 인사청탁 대가로 5만 불을 받았다고 기소했다. 온갖 비리의 백화점인 듯이 보이는 곽영욱의 오락가락 진술이 그 근거인 듯 보인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검찰이 한명숙이 받아챙겼다는 그 5만 불의 용처도 밝히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오히려 한명숙더러 그 용처를 밝혀 달란다. 혹시 아들 연수비용으로나 가족이 해외체류시 사용하지 않았느냐고. 참 뒤집혀도 한참이나 뒤집혔다. 살아온 온 생애를 걸고 결백을 외치는 이에게 범죄자의 진술 대로 자신들의 기소 내용에 짜맞추라니!

왜 검찰은 한명숙 측 변호인이 요구하는 자료를 내줄 수 없다고 버티는지 오묘하다. 중대한 국가안보나 타인의 프라이버시 침해 등등 이유도 구차하다. 한명숙은 노무현 대통령 서거를 불러온 검찰이 이와 똑같은 동기와 방식으로 진행하는 듯이 보이는 표적수사와 야비한 언론 플레이에 항의하면서 검찰수사에는 협조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법원의 결정을 존중하고 따랐다.

31년 만에 다시 법정에 선 한명숙을 보면서 나는 결코 희망의 빛을 느끼지 못했다. 나의 뇌리에 각인된 법정은 과거 독재의 하수인으로 기능했던 여러 모습이기 때문이다.

군사정권 시절, 실로 무수한 이들이 법정에서 죽임을 당하거나 인권을 송두리째 유린당해왔다. 이루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재판부가 조금이라도 인권 최후의 보루라는 소명의식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그렇게 무고한 생령들이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강산이 서너 번 바뀐 후에야 국가는 그때 사법부의 오판으로 인한 천문학적 보상금을 국민 혈세로 내주고 있다. 그나마도 재심제도가 있어서, 다시 진실을 파고드는 사법부가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민청학련 사건이 그렇고 인혁당이 그렇다. 죄없는 어부를 간첩으로 둔갑시켜 여론조작에 이용하고, 아내를 살해한 살인범을 반공투사로 조작하고, 조국애에 몸살 앓던 재일교포들을 정치적 필요로 악용하고…… 이루 다 말하기 버겁다.

다소 난폭하게 정의하자면, 독재정권 시절의 법정은 민주주의가 피흘리며 쓰러진 곳이다. 인권이 사정없이 짓뭉개지던 사각지대였다. 설령 총칼과 군홧발이 법정을 원격조종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적어도 법정은 고뇌하는 빛이라도 보였어야 했다. 그래서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민중들이 집단창조하는 가장 정직하고 신랄한 야유로 오랫동안 생명을 유지한다.

법원의 궁극적 목표는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인류보편의 최고가치인 민주주의 체제를 보존하고 지원하며, 인권의 마지막 수호자의 역할이라고 확신한다.

그동안 우리의 민주주의와 인권 수호는 '비사법적인 경로'로 통해 성취된 측면이 크다. 독재시절에 의회보다는 민간에 의한 서명, 농성, 시위, 집회, 극한적 분신 등이 정치상황을 이끌어가던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러나 정상적으로 민주주의 시스템이 작동하는 사회라면 인권은 마땅히 통상적인 사법절차를 통해 충족되어야 한다. 법원은 주도적으로 사실확인 과정을 진행해야 한다. 행정부가 그 명령을 준수하는지 여부도 감시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국민의 신뢰를 얻고 시민사회와 동반자 관계를 형성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치욕을 벗을 수 있을 것이다.

절차적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완성된 오늘, 전직 총리 한명숙의 운명은 이제 '사법적 경로'의 회로 속에 놓였다. 오로지 우리들이 그리고 국민 대중이 알고 싶은 것은 '진실'일 뿐이다. 국민은 그 누구의 편도 들 생각이 없다.

오오, 나는 진실로 보고 싶다. 진정으로 소망한다. 거짓과 편견과 음험한 의도로 뒤덮여 있는 지뢰밭을 헤치고 오직 비너스의 나신처럼 그렇게 아름답게 서 있는 '진실'을 향해 진군하는 사법부의 노력을 보고 싶다. 법정이 더 이상 민주주의와 인권과 진실이 피흘리며 처참히 쓰러지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빛나게 증언해주기를!

덧붙이는 글 | 유시춘님은 전 국가인권위원입니다.



태그:#한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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