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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주 집에 모인 잡놈들은 장안 풍설을 안주삼아 꺼억 꺽 게트림 쏟아내며 키득거렸다. 한 말 술이 너끈하다고 잡소리 주절대던 배가(裵哥)가 탁배기살이 통통히 오른 늘어진 배를 강가로 튼 채 시원하게 오줌줄기 뽑아내다 넉장거릴 쳤다.

"오메, 저게 뭣이여!"

물속을 들락거리는 건 껍질 벗긴 백 돼지를 닮은 사내의 사체였다. 이틀 전 날씨가 얼마나 사나웠는지를 알 수 있을 만큼 사체는 곳곳에 멍이 들고 걸친 옷가지도 찢겨져 너덜거렸다. 어찌 보면 물짐승이 떠밀려온 것으로 착각할 만큼 퉁퉁 물에 불어 흉측하기 그지없었다.

현장에 도착한 정약용은 강둑으로 올려놓은 사체에 대한 검시보고서를 작성했다. 송화가 시형도(屍形圖)를 펼쳐 멍 자국과 치사의 원인이 될 만한 곳에 관주를 치자 조사에 들어갔다.

"사낸 아녀자완 달리 포태(胞胎) 원리에 따라 태어나면 엎드린다. 그건 길짐승도 마찬가지다. 허면, 죽은 후는 어떠냐?"
"마찬가집니다."

"죽은 자의 모양은 어떠냐?"
"두 손과 두 다리가 앞을 향하고, 입은 다물고 눈은 뜬 상탭니다. 양손은 주먹 쥐고 복부는 두드리면 팽창해 소리가 납니다. 발바닥은 쪼글쪼글 주름 잡힌 상태고, 상투는 단단합니다. 손톱을 비롯해 발톱 틈이나 신발 안에 모래와 진흙이 있고 입과 코엔 물거품과 약간은 맑은 빛 핏자국과 긁힌 흔적이 있습니다."

"허면?"
"살았을 때 물에 빠진 증겁니다."
"잘 보았다."

정약용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행한 포교에게 명해 사체를 관아로 옮기게 한 후 상의를 벗겼다. 문양 하나가 나타났다. 팔뚝에 엉성하게 그린 새 한 마리였다.

"이것은 한밤중에 여인이 자는 곳에 들어가 주인 행세를 하는 뻐꾸깁니다."

서리배의 말에 정약용은 무슨 말을 하는가 싶어 어리둥절했다.
"한양엔 오래 전부터 그런 패거리가 있습지요, 다른 새 둥지를 파고드는 도둑괭이 같은 놈들이죠. 그 놈들이 팔에 이런 문신을 하고 뻐꾸기 행세를 한다는 소문은 벌써 두 해가 지났지만 행색을 찾지 못했습니다. 죽은 자도 그들 중 하나로 보입니다."

항간에 알려진 것으론 일곱 마리 뻐꾸기라 했다. 이른바 칠 공자(七公子)로 통하는 사내들의 개개인 신상명세는 다음날 오후 밝혀졌다. 일곱 사내는 그런 대로 집안이 넉넉한 편이었지만 개 중에 두 사람만은 중류 가정 출신이었다. 그 둘 중의 하나인 조인성(趙仁星)이 사체의 임자였다.

그는 얘기꾼이었다. 행세깨나 하는 집안을 돌아다니며 은근 짭짤한 얘기를 풀어헤쳐 상당한 고객을 확보한 염담(艶談)쟁이었다. 집안엔 치매 걸린 일흔 넘은 노모와 혼인한 지 여덟 달 되도록 아이를 갖지 못한 아내, 그리고 서너 달 전 시집에서 쫓겨 온 누이동생이 별당(別堂)에 머물러 있었다.

집안 사정이야 어떻든 일단 얘기를 꺼내면 엮어가는 솜씨가 좌충우돌이라 솜 덩어리에 물이 빨리듯 조인성의 구변에 사람들은 몰입했다. 행세깨나 하는 젊은이들이 그를 홀대를 못한 데엔 그런 점이 작용했다.

"으흐흐, 흔히 도원경(桃源境)이란 말을 씁니다만, 사람들은 이 말의 참 뜻을 모르지요. 진나라 시황제가 책을 불사르고 선비를 생으로 묻어 죽이는 바람에 사람들은 피난처를 찾아 떠났었지요. 그 곳이 동경의 땅이자 은둔 장소인 도원경이었습니다. 이곳엔 생로병사를 걱정할 필요 없고 농사를 짓는 둥 호구지책에 허덕일 필요 없어 살기에 그만이었을 겁니다. 특히 마을 안팎에 심겨있는 복숭아나무는 일 년 사시절 먹을 걸 매달아주어 누구든 따먹을 수 있으니 그 아니 좋았겠습니까. 바로 그런 곳을 꿈의 낙원 도원경이라 흠모하고 바란다는 얘깁니다만, 여기엔 풍설가(風說家)들의 교묘한 속임수가 있다 그겁니다."

어디에서 어떤 경로로 그런 얘기들만 모았는지 몰라도 조인성의 말솜씨는 좌중 분위기를 흔들었다 놓았다 제 맘대로였다.

"한데 말이시, 가만 생각해보니 도원경이란 그런 뜻이 아니란 말이야. 오래전부터 중국인들은 복숭아를 선과(仙果)로 애용해 왔거든. 서왕모(西王母)의 고사를 비롯해 무릉도원(武陵桃源)에 관한 전설 같은 게 그런 게지. 한데, 하필이면 복숭아인가 하는 점이야. 사과도 있을 수 있고 배나 감도 있는데 그걸 놔두고 복숭아가 대접 받는가 그 말이야?"

생각해 보니 그랬다. 전설이나 설화라는 게 어떤 경로로든 이유가 있을 테지만 그 안엔 은유의 무늬가 숨겨져 있다. 조인성은 그러한 은유를 나름대로 풀어헤쳤다.

"내가 도원경이란 글자를 들여다보니 그런 생각이 들더란 말이야. 도(桃)는 복숭아를 본뜬 상형이야. 그렇담 원(源)은 뭔가. 물(氵)이 흐르는 근본 줄기(原)이자 동굴이야. 경(境)은 그러한 경지나 지경이구. 도원경을 파헤치면 여자 엉덩이 모양을 본뜬 복숭아 모양(桃)과 그 사이의 물이 흐르는 달콤한 샘과, 그런 경지라 그 말이야. 모름지기 사내라면 장생불사의 도를 알아야 하는 거구, 그런 경지에 나아가려면 샘이 깊은 지 얕은 지를 확인해 보라 그 말이야."

먼 길을 우회하여 돌았지만 골격을 추스르면 계집사냥이라 부르는 보쌈이었다. 장안의 행세께나 하는 사대부 집안 과부들은 남의 눈치 때문에 근질거리는 몸을 주체치 못해 발정 난 괭이처럼 이앓이 한다고 혀끝에 힘을 주었다.

"내가 얘기 주머닐 열어 은근 짭짤한 사연들을 풀어주면 나의 고객들은 그것만으로도 얼굴이 벌게져 방망이질 하는 가슴 다독거리지 못하네. 하룻밤이라도 자신을 보쌈해 달라는 은근한 눈빛들이라니까! 장안의 칠 공자 얘길 들었으니 만날 수 있길 고대한다는 거야. 어떤가, 이번 기회에 복숭아를 훔쳐보지 않겠는가?"

소문이 그렇다 보니 칠 공자에 대한 조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림자처럼 누워있던 부분들이 하나씩 일어나자 의심이 갈만한 자는 둘이었다.

정약용은 칠 공자가 자주 회합을 가진 마포구에 있는 망원정(望遠亭)을 찾아갔다. 이곳에서 일곱 사람이 만나 시회를 즐긴 것을 그들 나름대로 '강변 만필'이라 이름 짓고, 다른 사람들 시선엔 그럴듯한 시문을 노래하는 것 같았으나 실제론 오늘밤 누구 집 과부를 데려 올 것인가, 어느 댁 마나님을 데려올 것인가로 평점을 매겼다.

망원정의 본래 이름은 희우정(喜雨亭)이다. 세종대왕이 어느 날 형의 정자에 나왔을 때 오랫동안 기다리던 비가 내려 들판을 촉촉이 적시자 기쁜 왕은 즉석에서 희우정이라 이름 짓고 현판을 걸었다. 이곳에서 한강을 굽어보면 물고기와 새우들이 뛰노는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성종 때엔 월산대군의 별장 '멀리 바라본다'는 망원정으로 바뀌었으나 이곳의 역사가 맑은 것만은 아니다. 호색으로 이름난 연산군이 백모(伯母) 박씨가 젊고 미인이란 소문에 이곳으로 불러 범해 버렸다. 박씨는 불의의 치욕을 씻을 수 없어 원통함을 견디지 못해 자신의 국부를 찔러 자살했다는 구담(口談)이 오랜 세월 촌로들의 입을 통해 전설이 돼 내려왔다.

'이곳에서 모임을 가진 다음이 문제구먼. 아랫길을 타고 객주 집으로야 아니 갔을 것이고, 분명 유곽이나 요정으로 갔다면 반대쪽인 오른 쪽 길이었을 게야. 한데, 사체는 왼쪽의 객주 집 있는 곳에서 발견됐다. 사건 당시 조인성이 만난 사람은 부유한 자가 아니라는 얘긴데···.'

고약한 건 또 일주일 안팎의 날씨였다. 일기가 고르지 않고 진눈깨비가 쏟아졌다. 길을 나서면 송충이처럼 칙칙하게 달라붙어 소름 섞인 짜증이 일어난 탓에 칠 공자들은 대부분 집이나 유곽에 있었다고 그 날을 기억해냈다.

그들의 소재 증명을 확인하려 명례방(明禮坊)의 <취하(醉蝦)>란 유곽을 찾아갔을 때 스물 대여섯으로 뵈는 기생이 흥미로운 말을 내놓았다.

"이곳에 오는 손님 중엔 정작 술 한 잔이 필요한 분이 있는 반면, 부모 잘 만나 호의호식에 지쳐 지랄염병 떠는 작자들도 있어요. 얼마 전 민승호(閔承虎)란 젊은이가 여길 찾아와 술에 곤죽이 돼 떠들었어요."

"죽은 조인성이한테 말입니까?"
"예에. 우리 집 언니도 남편이 두 해 전 세상을 떠났거든요. 음식점을 했는데 잘 돼질 않아 뭘 할지 망설이던 차에 그 얘기꾼을 만나 '취하'란 유곽을 차렸거든요. 그 얘기꾼 덕분에 장사가 잘 되거든요."

기생은 굳이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이 집의 명물 취하주(醉蝦酒) 한 잔을 내놓았다.

"취하란 게 뭡니까?"
"술 취한 새우예요."
"호?"
"나으리 잔을 보세요. 그 안에 새우가 들었잖아요."

과연 사기 잔 속엔 새우가 들어있었다.

"취하주는 당나라 때 측천무후란 여황제가 마셨답니다. 홀로 된 여자가 그런 술을 왜 마셨는지 모르지만, 이 술을 마시면 여인들은 피부가 고와진다거든요. 우리 집에서는 여자 손님에겐 이 술이 명물이에요. 없어서 못 팔  정도니까요."

'취하'는 새우다. '술 취한 새우'다. 살아있는 새우(민물새우)에 독한 술을 부으면 당연히 녀석들은 팔짝팔짝 뛴다. 뚜껑 있는 그릇으로 잠시 덮어두면 술기로 인해 새우는 기절해 버린다. 이때 젓가락으로 집어먹는 게 취하고 그곳에 부은 술을 마시는 게 취하주다. 그런가 하면 이 집을 찾는 사내들은 메추리로 만든 장량주(張良酒)도 애용했다. 그것은 정력 강정주였다. 얘기는 본래 자리로 돌아왔다.

"그 날은 비가 좀 왔거든요. 민승호라는 젊은이가 언성을 높이며 따지더라고요.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얼핏 들은 얘기가 당신 누이 눈을 보라지 않겠어요. 비둘기 눈이래요. 새 가운데 가장 음탕한 게 비둘기 눈이래요. 그 눈으로 얼마나 많은 사내들을 자기 모르게 잠자리로 불러들였는지 아느냐 따졌어요. 그놈의 이가(李哥)를 죽이지 못해 한이라면서요."

"다른 소란은 없었는가?"
"네에. 그날은요. 그 젊은이가 조 선비님의 매제라는 건 나중에 알았어요. 누이가 이혼한 건 품행이 좋지 않아서였겠지만 그토록 심할 줄 몰랐다는 거예요."

이날 술에 취한 민승호는 '당신 집안은 그년으로 인해 거덜 날 것'이라고 악담을 퍼부었다는 것이다.

관아에 돌아오자 정약용은 검시기록을 넘기며 시형도(屍形圖)에 표시된 곳을 검지로 가리키며 생각에 잠겼다. 물에서 건져낸 경우 시일이 흐를수록 부패가 심해질 건 뻔하기 때문에 초동 수사의 중요성을 몇 번이나 주지시켰다. 송화가 말했다.

"지금까지 조사된 것으로 보면 조인성 사건은 타살이 분명합니다. 칠 공자를 잡아들이면 모든 게 드러날 터인데 어찌 망설입니까. 사건을 달리 보시는 이유가 있습니까?"

"조인성이 살아서 물에 빠졌다면, 주위엔 누군가가 있었을 것이다. 상대방이 술을 먹었건 그렇지 않건 조인성은 상당히 술에 취했을 것이다."
"왜죠? 사체의 죽은 모양에선 그런 점을 발견할 수 없었는데요?"

"술을 마셨다고 하루 종일 술기운이 남아 있는 건 아니다. 눈비가 내리는 날이니 술이 빨리 깰 수도 있었을 것이야. 구타를 당해 물속에 쳐 넣었을 경우, 물이 깊으면 복부가 팽창하고 얕으면 그렇지 않아. 조인성이 빠진 곳은 얕은 곳이야. 또한 상투가 단단하고 눈 코 입에서 물이 흘러나왔으니 당연히 살았을 때 빠진 것이다. 몸 안의 구타 상처라고 해당되는 곳이 검질 않으니 그런 것이다. 해서, 내 생각은 상대가 밀었던 실족했든 조인성이 죽어가는 모습을 누군가 바라보고 있었다는 거야. 자, 일어서거라. 그 자의 집으로 가자."

죽은 조인성의 집은 동대문에서 멀지 않은 숭인동의 한옥지역이었다. 흥성했던 사대부가의 잔영이 남아있는 집안은 사랑채를 비롯해 몸채와 별채가 있었고, 턱이 약간 높은 낡은 중문이 사이에 놓여 있었다. 집안을 둘러 본 후 정약용은 별채에 있는 여인에게 말했다.

"조인숙씨가 시집에서 나와 이곳에 머무른 동안 외형상으론 밖에 나간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조인숙씨를 밖에서 본 사람이 있어요. 전남편 민승호씹니다. 그 분은 조인숙씨를 따라다니다 어떤 사실을 당신 오라버니에게 말해 주었구, 그로인해 당신은 사건이 일어나기 전 마포 강가에서 조인성씨를 만났습니다. 왜 밖에서 만났습니까?"

"우연한 일이었어요. 마음이 답답해 망원정에 갔는데 그곳에서 오라비를 만났어요. 좋은 얘기야 있었겠어요. 그렇게 많은 술을 마시지 않았지만 갑자기 눈비가 쏟아지고 주변이 소란스러워 무슨 말을 하는 지 알아들을 수가 있어야죠. 한동안 시달림을 받다 도망치듯 집으로 돌아왔어요. 그뿐이에요."

"망원정에 왜 나갔습니까?"
"오라버니가 나오라고 해서죠."

"집에서 얘길 하지 왜 그곳으로 불렀을까요? 그곳은 칠 공자들이 모임을 갖는 장소가 아닙니까? 그곳에서 오라버니를 만났다면 그것은 우연의 일이고, 조인숙 씨가 만난 사람은 다른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오라버니를 만나기 전 누굴 만났습니까?"

조인숙은 약간 놀란 빛이었으니 완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결코 그런 일이 없다는 것이다.
다음날 오전 관아로 급한 연락이 왔다. 남편이 익사체로 발견된 후 심한 우울증을 앓은 조인성의 부인이 대들보에 목을 매 목숨을 끊었다는 것이다.

[주]
∎명례방(明禮坊) ; 명동
∎취하(醉蝦) ; 정력에 크게 이롭다는 술 취한 새우


#추리, 추적, 명탐정#정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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