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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종이었던 계집이 양반이라고?"

"나는 언년이라는 여자를 모른다. 내 아내는 혜원이다."

 

요즘 최고의 인기 드라마 <추노>(KBS2)에서 극중 송태하(오지호 분)와 이대길(장혁 분)의 대화의 한 장면이다. 송태하는 소현세자의 호위무사로 전국에게 이름을 떨친 무사였다. 하지만 소현세자의 폐위 이후 역적으로 지목되어 노비가 된다. 하지만 송태하는 노비의 신분에서 탈출하여 소현세자의 아들을 구하고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겠다고 한다. 소현세자를 구출하는 과정 속에 혜원(언년이=이다해 분)를 만나 혼례를 치르게 된다.

 

이대길은 송태하를 쫓는 추노꾼이다. 그리고 한때 양반이었을 때 자신의 집에서 일했던 노비 언년이(이다해)와 사랑의 감정을 나누었다. 하지만 언년은 자신의 오라버니와 함께 노비의 신분을 벗어나기 위해 도망간다. 대길은 언년을 찾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노비를 쫓는 추노꾼이 된 것이다.

 

이외에도 노비 계급 사회를 뒤엎기 위해 양반을 죽이고 있는 업복이(공형진 분)의 노비 지하당 무리들, 송태하와 세상을 바꾸겠다는 선비들, 현재 조선 정권의 무리 등 <추노>에는 다양한 정치적 색깔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 글에서는 이와 같이 다양한 정치적 색깔의 무리들을 살펴보려 한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송태하와 선비들

 

"군사를 모아 내전을 준비합시다!"

"안 됩니다. 세상을 어떻게 바꾸려는 어떤 고민도 없이 전쟁이라니요!"

"송 장군! 세상을 바꾸는 일은 저기 세자마마가 왕이 되시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네."

 

송태하는 소현세자 마마를 구출하고 뜻을 결의한 동지들을 규합한다. 무인뿐만 아니라 문인들 또한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송태하와 함께 한다. 하지만 그들 간의 미묘한 정치적 색깔 차이가 있다.

 

선비들은 먼저 왕권을 쟁취하여 소현세자 마마를 옹립해야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송태하는 왕이 바뀐다고 해서 새로운 세상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대신 현재 변화를 꿈꾸는 사람들이 썩은 조선을 바꾸기 위해 대안을 만들어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두 세력의 입장 차이는 분명하지만 극중 이들의 입장이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당시 조선 사회의 양반-천민-노비의 계급 사회의 변화를 모두 얘기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조선비(최덕문 분)는 언년이가 송태하의 아내가 되는 것을 반대한다. 그는 집안의 뿌리나 혈통을 알 수 없는 여자가 감히 혁명군 대장의 아내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조선비가 꿈꾸는 세상에서 집안의 뿌리와 혈통은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송태하 또한 마찬가지다. 이대길과의 대화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그는 자신의 아내가 노비였다는 사실을 계속 부정한다. 혜원이 언년이였던 과거에 대해서는 알고 싶지 않은 투로 대길에게 언년이라는 여자를 모른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대길이와 태하가 함께 잡혀 감옥에서 세상의 변화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게 된다.

 

"세상이 바뀐다는 헛소리 하지 마슈!"

"그런 소리 함부로 하지 마시오. 누군가가 제일 무서워하는 말이요!"

"허참, 아무튼 난 양반-노비-천민 뭐 요런 거 가리는 게 제일 싫더라고. 세상 바꾸겠다고 했으면 이런 거나 한 번 바꾸어 보시오!"

 

대길이의 마지막 얘기는 현재 계급 사회를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태하는 대길이 장난 섞인 말투로 하는 말을 주의 깊게 듣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해 버린다. 이와 같이 태하가 그리는 세상이 양반-천민-노비의 계급 사회를 바꾸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럼 태하가 꿈꾸는 새로운 세상은 뭘까? 극 중에서는 태하가 꿈꾸는 세상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는다. 단 태하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변화를 꿈꾸는 사람들이 오랫동안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노비라는 신분 때문에 양반의 성적 노리개가 되는 어린 여자 노비 등의 삶 등을 얘기하며 당시 시대적 문제는 계급사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태하와 선비들은 당시 조선의 핵심 문제인 계급 문제를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

 

노비가 양반이 되는 세상?

 

<추노>에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인물은 태하와 선비들말고 또 있다. 극중 업복(공형진 분)이 노비 생활을 하면서 활동하고 있는 지하당 무리들이 바로 그들이다. 지하당의 활동은 양반과 노비를 쫓는 추노꾼들을 죽이는 것이다. 업복은 젋은 시절 총을 다루었던 경험을 토대로 많은 양반들을 쏘아 죽인다.

 

지하당 활동 속에서도 서로 다른 분파가 존재한다. 업복과 지하당 노비들은 지하당 중앙에서 보내온 비밀문서를 참고하여 양반들을 죽인다. 그런데 전국의 노비들을 모아 지하당 조직을 건설하고 있는 대장이 업복의 무리에게 나타난다.

 

"우리의 목표는 노비가 양반이 되어 우리가 당했던 것을 양반들에게 똑같이 갚아 주는 것입니다."

 

노비 지하당 대장은 업복의 무리들을 모아 놓고 자신들이 양반을 죽이고 있는 이유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 그의 결론은 노비가 양반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업복은 대장과 대화를 마치고 초복(민지아 분)와 돌아오는 길에 이런 말을 한다.

 

"초복아, 노비가 양반이 되는 거 쫌 이상하지 않트라? 낸 그냥 양반, 노비 그러거 따지지 않고 다 같이 잘 사는 세상이 더 좋은데..."

"에이 아저씨! 우리가 평생 이렇게 당하고 있는데 그대로 갚아줘야죠!"

 

업복이 꿈꾸는 세상은 계급 차별이 없는 평등한 세상인 것이다.

 

<추노>의 결론은 노비 해방?

 

대길은 역적 태하를 잡아 관청에 넘긴다. 하지만 대길은 역적과 공모한 누명을 뒤집어쓰고 태하와 처형을 당할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관청 관리는 5천냥을 주며 대길에게 태하를 잡아 줄 것을 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처형하려 한다.

 

그러나 청나라의 무사들의 도움으로 태하와 대길은 도망가게 된다. 이 때 업복이는 총을 들고 대길이를 따라 나선다. 업복이 대길을 따라가는 것은 <추노> 첫 화를 보면 대길에게 잡혀 다시 노비로 돌아오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때의 앙금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업복은 그를 죽이지 않는다. 천지호(성동일 분)가 대길이와 함께 도망친다. 그는 대길이가 잡힌 소식을 듣고 위장을 하여 대길이를 구한다. 하지만 도망치는 길에 활을 맞아 결국 목숨을 잃게 된다. 이에 대길은 서럽게 울며 지호에게 일어나라고 하는데 이 장면을 본 업복은 대길을 죽이지 않게 된다.

 

집으로 돌아온 업복은 초복에게 울고 있는 호랑이는 죽이는 법이 아니라고 하며 대길이를 죽이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넌지시 얘기한다. 업복이 대길을 죽이지 않은 것은 추노꾼 또한 계급적 차별에 벗어 날 수 없는 노비와 같은 인생을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았던 것 때문문인 것 같다. 계급적 한계 때문에 차별을 받고 있는 같은 입장끼리 서로 죽이면 안된다는 생각을 업복이 한 것 같다.

 

드라마 <추노>의 종방이 얼마 남지 않았다. 대길이가 끝까지 언년이를 찾기 위해 걸음을 나서는 길에 태하와 다시 만나게 되면서 지난 주 방송분이 끝이 났다. 하지만 대길-태하-언년의 결말만을 기대하는 것보다, 다양한 정치세력(업복, 태하, 최덕문, 이경식-철웅 장인 등)의 정치적 행보를 주목해서 보는 것도 드라마를 즐겨 보는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과연 업복이 꿈꾸는 양반, 노비 구분 없이 평등한 세상이 드라마에서 실현될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추노#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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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부산본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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