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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위건 부두로 가는 길?
표지<위건 부두로 가는 길? ⓒ 한겨레 출판
1936년 영국 탄광 지역 광부들과 실업자들의 삶을 치밀하고 생생하게 묘사했다는 오웰의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읽으며 1980년대 강원도 탄광 지역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50여 년 전, 영국에서 있었던 일이지만 막장에서 탄을 캐내며 삶을 이어갔던 80년대 광부들의 삶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과 함께.

탄광 쓰레기, 잿빛 진흙탕, 지독한 추위, 시커먼 눈 더미, 슬럼가의 회색빛 집들…. 오웰의 눈에 비친 당시 영국의 탄광 지역 모습이다. 80년대 강원도 탄광지역 모습은 어땠을까. 낡은 성냥곽 모양으로 줄지어 있던 광부들의 사택, 아침이면 줄지어 서던 공중 화장실, 산에도 들에도 지붕 위에도 골고루 내려앉던 시커먼 탄가루, 기차를 타고 이 지역을 지나던 어떤 정치인은 줄지어 선 사택을 보면서 저곳이 돼지 기르는 곳이냐고 물었다는 일화도 있었다.

광부들은 다른 직업에 비해 사고율이 워낙 높아서 대단찮은 전쟁만큼이나 사상자가 나는 것을 당연시한다. 매년 광부 900명 중 하나 꼴로 목숨을 잃으며, 여섯 명 중 하나가 상해를 당한다. 물론 상해의 대부분은 심한 정도가 아니나, 적지 않은 부상자는 완전 불구가 된다. (책 속에서)

80년대 말 탄광지역 학교에서 근무하던 내게 탄광 사고는 결손가정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탄광에서 일하다 사고를 당해 아버지를 잃은 아이, 사고로 다쳤거나, 진폐증에 걸려 노동력을 완전히 상실한 채 사는 아버지를 둔 아이, 그런 환경을 견디다 못해 어머니까지 집을 나가버려 새벽에는 신문 배달하고, 저녁에는 식당 일을 하며 학교 다니는 아이….

아무 연락도 없이 결석을 하는 아이가 있어 집을 찾아간 적이 있다. 아이는 가출해서 없고 진폐증에 걸려 누워 있는 아버지 혼자 집을 지키고 있었다. 말로만 듣던 진폐증 환자를 그때 처음 보았다. 탄광에서 일하다 얻은 진폐증. 코로 입으로 들어온 석탄가루가 몸 속에 쌓여 생긴 병.

아이 아버지는 조금만 가파른 언덕도 숨이 차 올라갈 수 없다고 했다. 이렇게 망가진 몸으로 생활하다보니 아이가 집을 나갔다며 내 손 붙잡고 애원을 했다. 마음 같아선 어디 있는지 찾아가서 잡아오고 싶은데 몸이 망가져 그럴 수 없어 죄송하다고,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강원도 탄광마을에서 5년 동안 살면서 많은 걸 보고 겪었지만, 막장에 들어간 적은 없다. 다만 내가 머물던 집 주인 아저씨도, 옆집 아저씨 또 그 옆집 아저씨도 막장에서 일을 했고, 어쩌다 술자리에서 만나면 술 따라 잔 부딪치며 간접적으로 막장 얘기를 가끔 들었을 뿐이다.

비좁은 막장과 작은 몸집의 광부들 광부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우리가 얼마나 서로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들이 없으면 지상의 세계도 없다.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에서 대서양을 건너는 것, 빵 굽는 것에서 소설을 쓰는 것까지, 모든 게 석탄과 직간접적으로 연관을 맺고 있다.
비좁은 막장과 작은 몸집의 광부들광부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우리가 얼마나 서로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들이 없으면 지상의 세계도 없다.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에서 대서양을 건너는 것, 빵 굽는 것에서 소설을 쓰는 것까지, 모든 게 석탄과 직간접적으로 연관을 맺고 있다. ⓒ 한겨레 출판

오웰의 르포를 통해 비로소 막장의 고된 노동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온몸에 석탄 가루를 뒤집어쓰고 눈과 목구멍까지 시커먼 가루가 꽉 찬 상태에서 팔과 복근을 이용해서 석탄더미와 씨름을 하는 광부들의 처절하고 고된 노동을. 막장 속의 그 고된 노동을 듣지도 보지도 못한 채 사는 사람도 많지만 막장과 무관해 보이는 그들의 삶 또한 광부들의 삶에서 빚지고 얻은 것이라고 오웰은 강조한다.

오웰이 취재했던 영국 탄광 마을은 지금도 그대로일까? 80년대까지 탄광 지역으로 유명했던 강원도 마을은 석탄합리화 정책 이후 탄광이 문을 닫기 시작했다. 지금은 막장도 광부도 찾기 힘들다.

하지만 오웰이 제기한 문제는 여전히 유효하다. 빈민가와 주택 문제, 재개발 문제 등등. 광부들처럼 지하 막장에서 일하지는 않지만, 재개발이란 이름으로 한겨울에도 삶터에서 가차 없이 쫓겨날 수 있는 인생 막장에서 살고 있는 이들이 그들이다.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이 오늘의 우리들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책 말미에서 역자는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아무 힘없는 빈자와 약자와 소수자가 시장 독재에 압살당하지 않고 공공의 영역에서 보호받을 수 있는 사회로 가는 것, 그게 이 책이 우리에게 비춰주는 하나의 방향이 아닐까 싶다. 그 길로 가자면 짓밟히는 자를 위해, 또 무력한 자기 자신을 위해 지르는 소리가 커져야겠다. 이 책이 그런 목소리를 키우는 데 미력하나마 기여할 수 있다면 다행일 것이다. (옮긴이의 말 중에서)

덧붙이는 글 | 이한중 옮김/한겨레 출판/2010년 1월/12,000원



위건 부두로 가는 길 - 조지 오웰 르포르타주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한겨레출판(2010)


#오웰#위건 부두#탄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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