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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이의 딸과 누이(오른쪽)
누이의 딸과 누이(오른쪽) ⓒ 이계송
우리 역사를 돌아보면 누이는 가족들을 위한 희생자였던 경우가 수없이 많다. 중국에 조공이 되었던 누이, 일제하에 정신대로 끌려간 누이, 부잣집에 팔려간 누이, 오빠나 동생들 학비를 위해 스스로 식모나 공순이가 되었던 누이 그리고 우리들의 이민 역사를 보아도 그렇다. 누이들이 미국 사람들과 결혼하여 이민의 씨앗을 뿌린 결과 200만의 동포들이 미국에 살고 있다.
  
나에게도 그런 누이 하나가 있다. 대대로 딸이 귀한 우리 집안 5남매 가운데 나의 누이는 말 그대로 양념 딸이었다. 누이는 착하고 총명했다. 집안이 가난하여 대학을 못 갔지만, 전남에서 수재들이 다녔던 전남여고를 나왔다.

가난 속에서도 장남만은 대학을 보내야겠는 어머니의 의지로 나만은 겨우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다. 나는 그게 동생들에게 늘 미안하고 빚진 마음이었다. 그래서 대학을 졸업하자 제일 먼저 했던 일이 동생들 대학 공부시키는 일이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누이만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여자라고 그랬을까? 그리고 머뭇거리던 사이 뜻하지 않은 사고가 생겼다.

우리 집이 없이 전셋집을 전전하던 우리 가족에게 불행이 닥친 것이다. 전셋집 연탄 구들방에서 어머니와 누이가 함께 잠을 자다가 연탄가스를 마신 것이다. 어머니는 겨우 목숨만을 건졌지만, 기억상실증으로 평생 환자로 살아야 하셨고, 누이는 어떻게 잠을 잤는지 모르지만 오른 손이 굽어진 채 마비가 되어 평생 장애인이 되었다.

사랑하는 어머니 그리고 우리 집 양념 딸의 불행으로 나는 평생 가슴에 멍을 안고 살았다. 눈물도 많이 흘렸다. 나의 착한 누이는 다행스럽게, 아주 좋은 짝을 만나 결혼하여 예쁜 두 공주를 낳아, 대학을 졸업시켰고, 풍족하지는 못하지만 한국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하지만 나는 누이에게 너무도 많은 빚을 지고 사는 사람이다. 장남으로 한국에 살며 부모를 모셨어야 함에도, 동생들 공부 시킨 뒤, 나도 공부 좀 더 하러 미국에 왔다가 그냥 눌러 앉아버린 것이다. 모시려고 했지만 미국 생활 싫다시는 부모님을 한국에 팽개치고 미국에 살면서 나는 늘 가시방석이었다. 

그런데 양념 딸 누이가 이 나라 저 나라 흩어져 살고 있는 오빠들 대신 부모님을 모신 것이다. 기억상실증 환자 어머니를 모시기는 더더욱 쉽지 않았을 텐데, 누이는 20여년을 모셨고, 3년 전에 어머니를 여의었다. 이제 90이신 아버지를 모시고 있다. 어른들 모시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짜증도 나고 혼자서 울 때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누이는 전혀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우리 식구가 서울에 가면, 제일 반갑게 맞아주고, 이것저것 챙겨주고 도와주는 사람도 누이다. 나는 그런 누이가 있어, 한국에 가도 전혀 불편한 게 없다.

미국 여행 무비자가 되면서, 아내는 누이부터 미국에 초청했다. 나는 누이가 미국에 오게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도 행복했다.  1월초 라스베가스 뷰티 엑스포장에서 누이를 만났다. 이제 60을 바라보는 사랑하는 누이에게서 돌아가신 어머니의 보습을 보았다. 어머니는 누이를 통해서 살아 계셨다.

가난한 집, 세 오빠, 남동생 하나 사이에 끼어서 늘 제대로 자기 몫 하나 제대로 챙기지도 못했던 나의 누이, 이름은 "영란(玲蘭)", 옥소리처럼 맑고 아름다운 난초, 나의 눈에 비친 그녀는 언제나 맑고 단아하게 보이는 한 떨기의 난 꽃이다.

설운도의 유행가 한 가락 "언제나 내겐 오랜 친구 같은 사랑스런 누이가 있어요. 보면 볼수록 매력이 넘치는 내가 좋아하는 누이..." 장애도 부모님도 숙명처럼 함께 껴안고 살아온 누이, 그는 나의 영원한 눈물이다. 안쓰럽고, 사랑스럽고, 미안하고... 누이에게 갖는 나의 마음은 하나가 아니다. 사랑한다 누이야...


#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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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거주, Beauty Times 발행인, <밖에서보는코리아>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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