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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봄맞이 잔치

 

.. 나아가 아미쉬 공동체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한 해를 준비하는 장날이자 공동체의 새봄맞이 축제가 벌어지는 장터이기도 하다 … 그렇다고 하여 '머드 세일' 행사가 아미쉬들만의 잔치는 아니다 ..  <임세근-단순하고 소박한 삶, 아미쉬로부터 배운다>(리수,2009) 141, 142쪽

 

"아미쉬들만의 잔치"는 "아미쉬들만이 즐기는 잔치"나 "아미쉬들만 어우러지는 잔치"나 "아미쉬들만이 모이는 잔치"로 다듬어 봅니다. "한 해를 준비(準備)하는"은 그대로 두어도 되고, "한 해를 여는"이나 "한 해를 추스르는"으로 손볼 수 있습니다.

 

이 보기글을 가만히 살펴보면, 앞쪽에서는 '새봄맞이 축제(祝祭)'라고 했는데, 뒤쪽에서는 '잔치'라고 합니다. 한쪽은 '잔치'라고 잘 적었으나 다른 한쪽은 아쉽게도 조금 더 마음을 기울이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새봄맞이'라는 말마디 하나는 싱그럽게 잘 적어 주었습니다. 으레 '신춘(新春)'이라고들 쓰는데, 이러한 말틀에서 벗어나 알맞고 알차게 우리 말글을 빛내 주었습니다.

 

 ┌ 신춘(新春) = 새봄. '새봄'으로 순화

 ├ 신춘문예(新春文藝) : 매해 봄마다 신문사에서 아마추어 작가들을 대상으로

 │    벌이는 문예 경연 대회

 └ 봄맞이 : 봄을 맞는 일이나 봄을 맞아서 베푸는 놀이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새봄' 한 마디는 실려 있고 '새여름'이나 '새가을'이나 '새겨울'이라는 낱말은 안 실려 있습니다. '새봄'이라는 낱말은 새롭게 맞이하는 봄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힘을 새롭게 내거나 꿈을 새롭게 키우는 모습을 가리키기도 하니, 따로 국어사전 올림말이 될 수 있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힘을 새롭게 내거나 꿈을 새롭게 키우는 모습이라면 '새봄'뿐 아니라 '새여름'으로도 가리킬 수 있습니다. '새가을'이라는 낱말로는 우리 삶이나 넋이나 일이나 꿈이 새롭게 무르익는 모습을 일컬을 수 있습니다. '새겨울'이라는 낱말로는 우리 삶이나 넋이나 일이나 꿈이 새로운 어려움을 맞이했다고 하는 자리에 쓸 수 있습니다.

 

 ┌ 봄맞이 / 봄맞이 잔치

 └ 새봄맞이 / 새봄맞이 잔치

 

국어사전을 다시금 뒤적입니다. '봄맞이'와 '새봄'은 실려 있으나 '새봄맞이'라는 낱말은 안 실려 있습니다. '새봄'과 '-맞이'를 더해 '새봄맞이'처럼 쓸 수 있는 한편, 이 낱말을 따로 올림말로 삼아 볼 수 있습니다. 여느 봄맞이와는 사뭇 다르다는 '새봄맞이'로 여길 수 있고, '새봄맞이'를 남다른 어울림마당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아미쉬 사람들은 새봄을 맞이하여 '새봄맞이 잔치'를 연다면, 이 나라 언론사들은 새봄을 맞이하여 '새봄맞이 글잔치'를 연다 할 수 있습니다. 백화점 같은 곳에서는 새봄을 맞이하여 '새봄맞이 큰잔치'를 연다 할 수 있겠지요. 'big sale'이나 'grand sale'같이 영어로만 잔치 이름을 붙여야 하지 않습니다. 우리 깜냥껏 우리 말로도 얼마든지 잔치 이름을 붙여 보면 됩니다. 운동경기를 할 때에도 '핸드볼 큰잔치'처럼 '농구 큰잔치'나 '배구 큰잔치'나 '야구 큰잔치'나 '축구 큰잔치'처럼 이름을 붙이면 됩니다. 또는 '한마당'이라는 말마디를 뒤에 넣어 '농구 한마당'이나 '축구 한마당'이라 할 수 있어요. 우리 스스로 안 써 버릇하니까 자꾸 멀어지고, 우리 스스로 생각을 안 하니까 그예 낯설 뿐입니다.

 

 ┌ 새봄맞이 글잔치 / 새봄 글잔치

 └ 새봄맞이 문학잔치 / 새봄 문학잔치

 

그나저나, 아직까지 널리 쓰고 있는 '신춘문예'라는 잔치마당을 돌아보노라면, '신춘'이라는 한자말은 고쳐쓸 낱말입니다. 그저 '새봄'을 뜻할 뿐인 '신춘'이요, 국어사전에도 어엿하게 '새봄'으로 고쳐쓰도록 풀이말을 달아 놓았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말뜻과 말풀이와 말쓰임을 곰곰이 헤아리면서 '신춘문예'라는 글잔치에 새 이름을 붙이려고 하는 신문사를 본 적이 없습니다. 말 그대로 "새봄 글잔치"라 하든지 "새봄 문학잔치"라 하면 되는데, 이와 같이 올바르고 알맞게 이름을 붙이지 않습니다.

 

이 이름이 썩 내키지 않는다든지 '신춘문예와 견주어 무게가 떨어진다'고 느낀다면, 우리 말과 삶과 문화를 두루 헤아리면서 당신들 스스로 생각하는 '무게가 있는 좋은' 이름을 찾아서 붙여야 마땅합니다. 옳지 않은 이름을 옳지 않은 채 두면서 널리 쓰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고, 알맞지 않은 말마디를 알맞지 않은 채 퍼뜨리는 모습은 아름답지 않습니다. 아니, 이런 말마디 하나하나가 쌓이면서 우리 말 문화가 가라앉습니다. 이런 글줄 하나하나가 모이면서 우리 글 문화가 뒷걸음을 합니다.

 

한국말은 한국사람이 살릴 말입니다. 한국사람이 즐겁게 쓰고 주고받으면서 북돋우는 말입니다. 프랑스말은 프랑스사람이 살릴 말입니다. 프랑스사람이 즐겁게 쓰고 주고받으면서 북돋우는 말입니다. 중국말은 중국사람이 살릴 말이요, 일본말은 일본사람이 살릴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한국사람으로서 한국땅에서 쓰고 주고받는 말마디가 어떠한 말마디라고 생각하고 있는가요. 우리는 한국말을 얼마나 옳고 바르게 헤아리고 있는지요. 우리는 우리 겨레얼을 어떻게 바라보면서 어떤 매무새로 가다듬고 있을까요.

 

 ┌ 봄잔치 / 새봄잔치 / 봄맞이 잔치 / 새봄맞이잔치

 ├ 여름잔치 / 가을잔치 / 겨울잔치

 ├ 농구잔치 / 축구잔치 / 야구잔치

 ├ 글잔치 / 문학잔치 / 영화잔치 / 책잔치 / 신문잔치

 ├ 사랑잔치 / 믿음잔치 / 나눔잔치 / 기쁨잔치 / 졸업잔치

 ├ 생일잔치 / 축하잔치 / 돌잔치

 └ …

 

학교를 마치는 사람들은 '졸업잔치'를 엽니다. 또는 '마침잔치'를 엽니다. 학교에 새로 드는 사람들은 '입학잔치'를 마련합니다. 또는 '여는잔치'를 마련합니다. '첫잔치'라 할 수 있고, '끝잔치'도 괜찮습니다.

 

이 나라 국어사전에는 '파티'라는 영어까지 버젓이 실린 까닭에, 초중고등학교뿐 아니라 어린이집에서까지 아이들 '생일잔치'를 '생일파티'로 쓰거나 '버스데이 파티'로 쓰도록 내몰고야 맙니다. 적잖은 교사들은 '국어사전에도 파티라는 낱말이 실려 있는데 왜 이 말을 쓰지 말아야 해요?' 하면서 '생일파티'라는 말마디를 쓰며 아이들하고 즐겁게 노는 일이 무슨 잘못이냐고 따집니다. '생일파티'가 좋지 '생일잔치'는 안 좋다고 여깁니다. 돌잔치나 회갑잔치에서나 '잔치'라는 낱말이 어울리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은 나날이 더욱 깊어집니다. 이런 느낌은 날로 더욱 퍼집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교사들 스스로 퍼뜨리고, 누구보다도 어버이들 스스로 퍼뜨립니다. 우리 깜냥을 일구거나 우리 슬기를 빛내는 데에는 우리 스스로 젬병이 되고야 맙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말로 우리 잔치 이름을 안 붙여서 그렇지, 해마다 부산에서 벌어는 국제영화제란 다름아닌 '영화잔치'입니다. 크고작은 모임과 기관에서 마련하는 도서전이나 북페스티벌이란 바로 '책잔치'입니다. 야구경기를 이야기하는 분들 가운데 예나 이제나 '가을잔치'를 말하는 분이 있습니다. 이분들은 '코리안시리즈'라는 말도 쓰지만 '가을잔치'라는 말도 함께 씁니다. 그러나 '가을잔치'라는 말마디를 눈여겨보면서 이렇게 우리 스스로 잘 빚은 좋은 이름을 널리 뿌리내리거나 퍼뜨리고자 애쓰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어쩔 수 없지만, 국어사전에도 '가을잔치'라는 낱말은 안 실립니다.

 

기쁨을 나누는 기쁨잔치를 열고 싶습니다. 사랑을 나누는 사랑잔치를 마련하고 싶습니다. 알차고 고운 말마디를 빛내는 말잔치를 꾸리고 싶습니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바자회'란 우리 말로 하자면 '나눔잔치'이거나 '나눔마당'이거나 '나눔장터'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고 있는 일과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차분히 돌아보면서 더없이 곱고 맑은 말글을 가꿀 수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생각할 수 있으면 우리 말글을 우리 손으로 가꿀 수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이웃을 헤아릴 수 있으면 우리 말글을 우리 힘으로 지킬 뿐 아니라 일으킬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태그:#살려쓰기, #토박이말,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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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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