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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초상
어머니의초상 ⓒ 송유미

어머니, 마음이 어지러우면 바느질 하셨다

늦은 아버지의 귀가 기다리다

자정이 넘어도 집에 오시지 않으면

잠든 어린 자식들 이불 다독여 주시고

*애써 밥이나 먹어야겠다...중얼거리시며

그제야 부엌에 드셔 달그락 달그락 혼잣상 차리셨지

 

젊은 시절은 아버지 기다리시다 청춘을 다 보내시고

늘그막에는 자식들 기다시다가 머리에

희끗희끗 서리가 내린 어머니

 

어쩌다 아버지 기일에 찾아뵈면

아버지의 빛바랜 사진 꺼내보며

영감요.. 딸자식은 키워봐야 아무짝에 필요가 없네요...

하고 출가외인의 나를 무척 민망케 말씀 하셨지.

 

그래도 천리 타향에서 문안 전화드리면,

전화료 아깝다고, 난 밥 잘 챙겨 먹고 잘 지낸다고

할 말 없으면 어서 전화 끊으라 나무라셨지.

 

세월이 가고 또 가도 또 가고,

어머니는 왜 그리 변하지 않으신지

평생 바느질로 사셨으면서 떠나는 수의마저

물레에 잣고 베틀에 짜서

한 땀 한 땀 손바느질 해 입고 가신 어머니,

 

남에게 당하고 살면서도 모진 말 한마디 하지 못해서일까.

스트레스가 원인이라는 간암으로 돌아가신 어머니,

 

지금도 눈에 현현하여라.   

 

뜬 구름 해 속으로 지는 먼 산만

하염없이 쳐다보다 사립문 닫고 돌아와

하롱하롱 석유등 심지 높이고,

오빠들의 떨어진 교복의 이름표,

동생들의 구멍난 바지며 양말이며

밤새워 산처럼 쌓인 바느질 하시다가도,

 

할아버지 기침 소리만 들려도 

자리 박차고 일어나

아궁이에 군불 지피고

새벽 소 여물 썰시던 어머니,

 

학교 갔다 돌아오면

부뚜막에 앉아 아침 겸 점심으로 

퉁퉁 불은 보리누룽지밥을 

꾸역꾸역 숟가락으로 입속으로 밀어넣으시며,

 

"얘야, 곡식 아까운 줄 모르면 죄 받는단다..." 

 

새삼 눈시울 뜨거워지는

내 유년의 하얀 빈혈처럼

아지랑이 피어나는

허기진 보릿고개의 봄 언덕에서 

모락모락 저녁연기 피워 

이 강산 지천에 피어도

아무도 돌보지 않는

며느리 밥풀꽃의

현현(現現)처럼

모락모락 그리움의 밥을 짓는

하얀 삼베 적삼 입은

그리운 어머니여 !

그 태산의 은혜여 !

 

그리운 그대들의 이름은 어머니 !
그리운 그대들의 이름은어머니 ! ⓒ 송유미

덧붙이는 글 | 중국 한대 고시 <행행중행행>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하다.


#어머니#밥#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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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곧 인간이다고 한다. 지식은 곧 마음이라고 한다. 인간의 모두는 이러한 마음에 따라 그 지성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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