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무비판적으로 이용하여

 

.. 또 그 사실을 알고서도 이를 무비판적으로 이용하여 출병과 지배를 통설로 만든 역사가들의 자세는 무엇이었던가 ..  《이진희/이규수 옮김-해협, 한 재일 사학자의 반평생》(삼인,2003) 182쪽

 

 "그 사실(事實)을 알고서도"는 그대로 두어도 되고, "그 일을 알고서도"나 "그런 일을 알고서도"로 다듬을 수 있습니다. '이용(利用)하여'는 '써서'나 '휘둘러서'나 '갖다 붙여'로 손보고, "통설(通說)로 만든"은 "널리 받아들이도록 만든"이나 "마땅한 듯 생각하도록 만든"으로 손봅니다. "역사가들의 자세(姿勢)"는 "역사가들 매무새"나 "역사가들이 보여준 모습"으로 손질해 봅니다.

 

 ┌ 무비판적(無批判的) :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고 무조건 받아들이는

 │   - 무비판적 태도 / 외래 문화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다

 ├ 무비판(無批判) :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음

 │   -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무비판으로 받아들이다

 │

 ├ 무비판적으로 이용하여

 │→ 비판없이 받아들여

 │→ 생각없이 받아들여

 │→ 따지지 않고 써서

 │→ 제대로 거르지 않고 갖다 붙여

 └ …

 

 옳고 그름을 가리거나 살펴서 밝히는 일을 놓고 한자말로는 '비판(批判)'이라고 일컫습니다. 우리 말로는 '가리다'나 '살피다'나 '밝히다'나 '따지다'라고 일컫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들은 낱말뜻을 제대로 헤아리지 않습니다. 옳고 그름을 밝히는 일이란 누군가를 해코지하거나 깎아내리거나 얕보거나 비아냥거리는 일이 아니지만, '비판한다'고 할 때에는 달갑지 않게 받아들입니다. 때로는 콧방귀를 끼거나 눈길 한 번 안 두거나 아예 고개를 돌리기도 합니다. 서로서로 한결 나은 쪽으로 거듭나면서 새롭게 살아가자는 뜻에서 하는 '비판'이지만, 제대로 된 말마디가 자리잡지 못합니다.

 

 속없는 말이나 겉치레 말이 판을 칩니다. 텅 빈 말이나 겉꾸밈 말이 널리 나돕니다. 생각하는 사람이 줄고, 생각있는 사람이 사라집니다. 생각을 북돋우지 못하고 생각을 살찌우지 못합니다.

 

 생각을 하지 않기에 내 삶을 곰곰이 돌아보지 못합니다. 생각을 가꾸지 못하기에 내 말을 차근차근 가다듬지 못합니다. 생각을 북돋우지 않기에 내 둘레를 널리 보듬지 못합니다. 생각을 나누지 못하기에 내 이웃들 마음이나 넋이 어떠한가를 느끼지 못합니다. 생각은 생각대로 가라앉고, 말은 말대로 주저앉으며, 삶은 삶대로 내려앉습니다. 생각을 생각답게 키우지 못하고, 말을 말답게 일으켜세우지 못하며, 삶을 삶답게 바로세우지 못합니다.

 

 ┌ 함부로 받아들여

 ├ 아무렇게나 받아들여

 ├ 멋대로 써서

 ├ 제멋대로 써서

 ├ 저희 좋을 대로만 갖다 붙여

 └ …

 

 보기글을 돌아봅니다. 일본에서 적잖은 역사가들이 제 나라 옛 역사를 감추거나 덧씌우면서 거짓 모습을 사람들한테 알린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는 일본뿐 아니라 한국 또한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아니, 옳고 바른 길을 걷지 않는 역사가라면 일본과 한국뿐 아니라 나라밖 어디에도 이러한 모습을 찾아볼 수 있겠지요. 더욱이, 역사를 파헤치는 이들뿐 아니라 경제를 말하고 정치를 이야기하며 문화를 읊는 모든 이들이 매한가지입니다. 있지 않은 모습을 있는 듯 부풀리거나 있는 모습을 있지 않은 듯 감추는 이들은 제 한몸을 비롯해 이웃 모두를 속이면서 갉아먹습니다.

 

 있는 모습을 감추는 일이란 제멋대로 덧씌우는 일입니다. 있지 않은 모습을 부풀리는 일이란 함부로 떠드는 일입니다. 있는 모습을 숨기는 매무새는 엉터리로 덧입히는 노릇이요, 있지 않은 모습을 내세우는 일은 아무렇게나 내갈기는 노릇입니다.

 

 마구잡이로 일을 벌이니 저희 좋을 대로만 하는 꼴이면서, 저희 밥그릇을 지키려는 꼴입니다. 엉망진창 일을 망가뜨리니 볼썽사나우며 어처구니없는 꼴입니다.

 

 생각이 있다면 이렇게 나서지 않았을 터이나 생각이 없기에 이렇게 나섭니다. 생각이 있다면 부끄럽다고 느낄 터이나 생각이 없기에 부끄러운 줄 모릅니다. 생각이 있다면 이웃과 동무를 괴롭히거나 갉아먹음을 깨달으며 가슴이 아파야 하는데 눈물도 웃음도 어깨동무도 없습니다.

 

 ┌ 무비판적 태도

 │→ 비판없는 매무새 / 옳고 그름을 모르는 매무새 / 생각없는 모습

 ├ 외래 문화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다

 │→ 바깥 문화를 아무렇게나 받아들이다

 │→ 바깥 문화를 생각없이 끌어들이다

 │→ 바깥 문화를 찬찬히 거르지 않고 껴안다

 └ …

 

 생각하는 사람이라야 산다는 말씀을 나눈 어르신이 있습니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된다면 나와 내 이웃과 내 삶터와 내 겨레와 나라 모두 잃거나 앗긴다는 말씀을 펼친 어르신이 있습니다. 퍽 예전 일입니다만, 오늘날 젊은이를 놓고 생각이 없다는 소리가 꽤 드높은데, 곰곰이 살피면 퍽 예전을 살던 젊은이부터 생각이 얼마 없었던 셈입니다. 생각없이 살고 생각없이 말하고 생각없이 사귄 셈입니다. 생각없이 일하고 생각없이 놀며 생각없이 어울린 셈입니다.

 

 그나저나, '-적'을 붙인 '무비판적'과 '-적'을 붙이지 않은 '무비판'은 쓰임새가 어떻게 다르고, 말느낌이 얼마나 벌어질까요. 이와 같은 말투로 써야 할 까닭은 있기나 한지 궁금하고, 이와 같은 말투를 쓰지 않고서는 우리 마음과 뜻을 나눌 수 없는지 궁금합니다.

 

 ┌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무비판으로 받아들이다

 │

 │→ 다른 사람 생각을 그냥 받아들이다

 │→ 다른 사람 생각을 깊이 안 살피고 받아들이다

 │→ 다른 사람 생각을 함부로 받아들이다

 └ …

 

 우리 스스로 생각을 해 보면 좋겠습니다. '무비판적'뿐 아니라 '무비판'이라는 낱말을 써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를. 한자말 '비판'을 쓰고 싶다 한다면, '비판없다-비판없이'처럼 쓸 수는 없는지 있는지를. 여기에서 한 걸음 나아가 '생각없다-생각없이'처럼 쓸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를.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태그:#-적, #적的,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