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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를 보면, 요즘 추미애 민주당 의원이 인기 상한가입니다. 칼럼 기사 사설 등에 그 이름이 연일 오르내리는가 하면, "작년 7월 미디어법 파동 때의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를 떠올리는 이도 있다"(<'개정 노동법' 통과 주역-추미애 위원장 與野 완충역할>, 2010.01.02. A4)며 추 씨를 치켜세우는 기사까지 어지러이 난무합니다. 자신이 몸담은 민주당을 등지고 한나라당과 연합해서 '개정 노동법'을 통과시킨 이후에 벌어지고 있는 낯뜨거운 풍경이 이러합니다. 최근 것들 위주로 몇 개만 감상해 볼까요?

먼저, 5일자 '태평로' 칼럼부터 보시죠. 제목이 <민주당의 '추미애 이지메'>입니다. 한나라당과 타협해 환경노동위원회에서 개정법안을 처리한 추 씨의 독자행동을 문제삼아 민주당이 당 윤리위 제소 가능성까지 내비친 것은 "거당적으로 추 위원장 가슴에 해당행위자의 주홍글씨를 새겨 돌팔매질을 하려 드는" 이지메나 다를 바 없다는 게 글의 요지입니다. '추미애 사태'를 빌미삼아 자신들의 전공 특기인 이지메를 민주당에게 은근슬쩍 뒤집어씌우려는 조선일보의 이이제이 수법이 참으로 노회하지 않습니까?

<제 할일 한 죄(罪)>. 조선일보가 6일자 지면을 통해 추 씨에게 헌사한 기묘한 죄목(?)이 이렇습니다. "여당과 법안을 논의해 타협점을 찾거나 회의를 꼬박꼬박 운영한 '죄'" 때문에 추씨가 소속당 사람들로부터 당 윤리위 제소와 더불어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제소까지 당할 형편에 처하게 됐으니,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겁니다. '제 할일 한 죄'로 핍박당하는 거룩한 추미애와 "대여 최전선의 싸움꾼 역할에 매진"하고 "선명성 경쟁"만 벌이고 있는 민주당의 딱한 대조가 참으로 눈물겹지 않습니까?

 

 2010년 1월 7일자 조선일보 사설
2010년 1월 7일자 조선일보 사설 ⓒ 조선일보


추미애를 들어 민주당을 때리는 조선일보의 꽃놀이패는 그 다음 날에도 계속 됐습니다. 조선일보는 <黨 활로 뚫는 의원에게 매질하는 민주당>이란 제하의 7일자 사설에서, 민주당 지도부가 해당행위를 저질렀다는 죄목으로 추씨를 당 윤리위와 국회 윤리특위에 제소하기로 한 것은 "민주당의 가치 기준이 국민, 특히 경제적 중산층, 정치적 중간층과 완전히 거꾸로"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판하면서, 이렇듯 "일부 극단세력의 포로"가 돼서는 집권은 커녕 현상유지밖에 할 수 없을 거라고 긁어댔습니다.

이 모양 조선일보에 따르면, 민주당을 배반하다시피 하면서 독자적으로 한나라당의 노동법 개정에 협력한 추씨는 "제 할일 한 죄"로 소속당에게 억울하게 이지메 당하는 올바른 정치인이고, 그런 추씨를 당 윤리위에 제소하네 마네 하면서 윽박질러대는 민주당은 "黨 활로 뚫는 의원에게 매질"이나 하고 "대여 최전선의 싸움꾼 역할"에만 골몰하는 저질정당에 다름 아닙니다. 그러나 불과 11년 전 김대중 국민의 정부 때만 해도 조선일보의 시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거, 아니 180도 달랐다는 것을 아십니까?

1999년 4월, 노사정위원회 법제화 문제로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힘겨루기를 하는 상황에서 한나라당 이수인 의원과 이미경 의원이 국회 운영에 불참하라는 당의 지시에 불복,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참석해서 노사정위원회 법안 통과에 힘을 보태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한나라당은 즉각 두 의원의 해당행위를 묵과할 수 없다며 징계에 나섰고, 두 의원도 이에 반발하며 "국익과 노사안정을 위해" 의원이 소신에 따라 자유투표한 것을 징계하려는 것은 "정치적 미숙아"나 할 짓이라고 당 지도부에 각을 세웠습니다.

재밌는 것은, 조선일보가 당시 한나라당에 정치적 타격을 가한 두 의원을 추미애와는 달리 적극 비난하고 나섰다는 겁니다. 조선일보는 99년 5월 1일자 사설 <'한나라 이-이의원'의 모양새>에서, "두 의원의 행동은 한 정당조직의 「당원」으로서 분명히 문제가 된다"면서 "한나라당이나 두 의원이 보다 투명하고 분명한 태도와 처신을 취하는게 바람직한게 아닌가 충고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주요 공당으로서의 정체성 확립이나 국민의 정치인식 혼란을 막기 위해서도" 징계(사실상 제명)가 불가피하다는 겁니다.

이어 <의원징계 '씁쓸한 뒷맛'>이란 제목을 단 5월 5일자 '현장파일' 기사에서, 조선일보는 96년 총선에서 민주당 전국구 의원으로 있다가 97년 대선 직전 한나라당에 합류한 두 의원의 전력을 거론하며 "이념과 노선이 맞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전국구 의원직 유지를 위한 것이었는지" 먼저 해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러면서 "이들이 진정 '정치적 소신'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사사건건 당을 '배신'해 충돌하기보다는 스스로 의원직을 버리고 당을 떠났을 것"이라는 주변의 목소리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어떻습니까? 민주당을 척지고 한나라당과 연합해 개정 노동법을 통과시킨 추미애 의원의 단독행동에 대해선 "제 할일 한 죄"밖에 없다며 추씨를 징계하려는 민주당을 비난하고, 반대로 한나라당을 척지고 민주당과 연합해 노사정위법안을 통과시킨 한나라당 이수인 이미경 두 의원의 단독행동에 대해선 "정당조직의 당원으로서 문제가 된다"며 그에 대한 한나라당의 징계가 정당하다는 쪽으로 몰고간 조선일보의 두 얼굴이. 한나라당은 선이요 민주당은 악이라는 조선일보적 이원론의 실체를 보는 듯 하지 않습니까.

그나저나 한때나마 자신의 입으로 '×같은 조선일보'라고 욕했던 신문으로부터 "박근혜가 연상된다"느니 어쩌니 하면서 뜬금없이 영웅대접 받고 있는 추 씨의 기분은 어떨까요?


#조선일보적 이원론#추미애의 배반 #개정 노동법 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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