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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았다. 60년 전 역사학자 김성칠의 일기에서처럼 "사소한 일이라도 먼 앞날을 헤아리고 인생의 깊은 뜻을 생각해서 말하고 행할 일"을 생각해본다. 새해에는 동물화와 속물화의 거친 흐름을 되돌리는 계기를 만들 수 있을까. 세상의 인간화를 위해 무엇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작년을 생각해보면 연초의 화두는 단연 '경제위기'였다. 이명박 정부는 재정확대와 금융완화의 기조를 취했으며 여러가지 무리한 일들을 벌였지만 경제위기가 파국으로 번지지는 않았다. 내수부문과 중소기업은 여전히 어려운 상황에 있지만 대기업과 IT·선박·자동차 등 주력 수출부문들은 세계시장에서의 점유율을 높이고 경제의 회복세를 견인했다.

 

한국경제, 회복세 단정 어려워

 

그러나 2010년에도 경제는 중요한 문제이다. 경제의 회복추세가 지속가능하다고 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경제가 위기 속에서 비교적 선전했던 것은 원-달러 환율이 상승한 결과이다. 국내 제조업은 수출비중이 60%에 달하여 환율 변동에 매우 민감한데, 환율이 하락하면 수출이 크게 악화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해외시장의 동향이 매우 중요하다.

 

가장 나쁜 시나리오는 유럽발 금융위기와 중국의 버블붕괴가 겹치는 상황이다. 정부의 적자규모가 큰 스페인, 아일랜드, 영국, 그리스 등이 새로운 금융위기의 진원지로 거론되고 있다. 중국에서도 그간의 경기부양책으로 건설·철강·시멘트·화학공업의 과잉생산이 심화되고, 금융완화로 발생한 부동자금이 증시와 부동산의 버블을 키우고 있다.

 

위기 풀어갈 진보의 새로운 프레임은

 

그런데 경제위기가 지속 또는 악화되는 상황이라고 해도 그것이 곧바로 이명박 정부를 약화시킨다고 할 수는 없다. 세계화가 진행된 조건에서는 경제위기의 책임도 세계적으로 분할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국 단위에서 재정정책으로 완전고용을 달성하는 것도 쉽지 않게 되었다. 국가가 완전고용과 복지 확대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국가가 이런 방식으로 작동하려면 누적된 정치 자산과 신뢰받는 정치세력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분단체제하에서 형성된 분열적 정치환경에서는 사회민주주의나 복지국가, 그리고 이를 가능케 하는 강력한 진보정당체제로 일거에 도약하기는 쉽지 않다.

 

진보세력이 단번에 도약하는 것이 어렵다면 한걸음씩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그러면 어디에서 시작할 수 있을까. 필자는 그 출발점이 '지역'이라고 생각한다. '지역'을 거론함으로써 미시세계로 끝없이 들어가자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경제와 정치의 프레임을 '지역'을 중심으로 짜자는 것이다.

 

'지역', 새로운 경제 만드는 공간이자 과정

 

지역문제는 단순히 '만들어진 현실'이 아니다. 신고전파 경제학의 성장논리에 의하면 지역격차는 조정과정에서 발생하는 일시적 현상일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는 일반 시민의 현실감각과 상당히 괴리되어 있으며, 특히 생산의 지역간 격차는 극심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을 단행한 대기업이 선도하는 산업부문과 여타 산업의 격차가 크고, 이것이 지역경제의 불균등한 성장을 가져오고 있다. 한편 교육비 지출의 지역격차도 뚜렷하게 확대되고 있다. 향후의 경제성장이 지식이나 혁신에 좌우된다고 할 때, 교육이 지역간 격차를 구조적으로 증폭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극의 형태로 존재하는 '지역'은 새로운 경제가 만들어지는 공간(space)이자 과정(process)이라고 할 수 있다. '지역'을 만들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쟁점에 주목해야 한다.

 

세종시 수정안에 담긴 대수도권 발전론

 

첫째, 세종시 수정안과 관련된 논란은 새로운 경제의 핵심적인 전선은 아니다. 세종시 자체는 새로운 경제의 내용을 담보하는 것이 아니며, 투입되는 비용에 비해 성과가 높지 않을 가능성도 크다. 보다 근본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것은 세종시 취소안 또는 수정안의 배후에 있는 대수도권 발전론이다. 수도권 일극화론을 비판하다가 수도권 대 비수도권의 대립구도를 유발한 노무현정부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된다. 일극화발전론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다극화발전론을 더욱 정교하게 개발해야 한다.

 

둘째, 다극화발전을 위해서는 중앙정부가 아니라 광역 규모의 지방정부의 권한과 책임을 더 키워야 한다. 노무현정부 말기에 제기되었으며 이명박정부가 전면화한 광역권이 지역의 적절한 규모 공간이 될 수 있다. 이미 한국의 재벌대기업은 국내 지역보다는 세계적 차원에서 시장과 자원을 구하고 있다. 새로운 경제에서는 지역에서 태동하고 있는 세계 수준의 기술력을 갖춘 중견기업들과 아래로부터 형성되는 지역순환형 산업의 잠재력을 키워야 한다. 이러한 지역산업 육성 프로젝트를 매개로 해서 지자체들 간에 산업정책 연합을 추진하면서 조세의 주요 부분을 중앙에서 지역으로 이양할 필요가 있다. 

 

지역-산업-교육을 매개로 정치연합을

 

셋째, 교육의 양극화는 지역격차를 확대하는 주요 요인이다. 교육에서의 시장주의 접근은 격차를 확대하는데, 국가의 역할을 강조하고 교육관료를 강화하는 것이 그 해결책이 되지는 못한다. 현실에서 최선의 교육은 시장과 국가의 중간, 즉 지역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좀더 광역화된 지역연합이 형성되고 지자체의 책임성이 높아지면 스스로의 책임하에 지역 사정에 맞는 산업과 고용을 추진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지역의 공공재와 산업의 수요에 부응하는 교육제도를 발전시키려는 유인이 마련된다. 학교와 지역사회가 서로에 대한 요구를 강화하면 대학-중등교육-지역을 연계·혼합하는 지역교육 거버넌스가 구축될 수 있다.

 

새해에는 지방선거가 있다. 선거를 통해 지역정치가 활성화되고 나아가 새로운 '지역'의 형성을 가속화할 기회다. 경제의 인간화를 위해서는 그에 필요한 정치적 조건을 함께 갖추어가야 한다. 다극화된 발전과 지역고용을 추구하는 지역-산업-교육정책을 매개로 해서 정치연합을 이루어낸다면, 한결 인간화된 경제로 가는 징검다리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2010.1.6 ⓒ 창비주간논평

덧붙이는 글 | 이일영님은 한신대 교수입니다.


#경제위기#지역격차#세종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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