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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내가 아이들이 할머니 집에 가서는 심심하면 자는데 외가에서는 자지 않는다며, 첫날 어머니를 잠깐 뵙고 처가에서 하룻밤 자자고 합니다. 아내보다 아이들이 더 좋아합니다. 생각해보니 새해 첫날 처가에서 잠을 잔 것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혼자 사시는 장모님께 죄송하다는 말밖에 더 할 말이 없었습니다.

겨울철 처가에만 가면 장모님이 나에게 꼭 부탁하는 것이 있습니다. '커튼'을 달아 달라는 것입니다. 같은 아파트 6층에 처형이 사는데도 해마다 겨울이 되면 커튼 다는 일은 나였습니다.

"장모님, 6층에 처형과 형님이 사는데 왜 꼭 저보고 커튼을 달라고 하세요."
"그 사람들은 바쁘다. 바쁜 사람들 보고 달아 달라고 할 수 있나."
"저는 진주에 사는데요."
"진주에 살아도 자네가 우리 집에 오면 달아달라고 했는데 그것이 습관이 되다보니 계속 달아 달라고 하는 거네."

"그래도 빨리 달아야 바람이 들어오지 않잖아요."
"그럼 겨울이 되기 전에 와서 달아 주면 안 되는가."
"예. 내년에는 겨울이 오기 전에 달아드릴 게요."


지난 봄 깨끗하게 빨아 장롱 안에 넣어두었던 커튼을 꺼낸 후 장모님과 아내가 정리를 했습니다. 생각해보니 봄에 커튼을 뗀 것도 저였고, 깨끗하게 빨아 넣은 것은 아내였습니다.

 장모님과 아내가 커튼에 고리를 달고 있는 모습
 장모님과 아내가 커튼에 고리를 달고 있는 모습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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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경화를 앓는 장모님을 위해 제가 물질로 도와드리는 것은 없습니다. 석 달 한 번씩 대구에 있는 한 병원에 모시고 가는 일, 집안 큰 행사가 있으면 발벗고 나서서 집안 청소하는 일은 둘째 사위인 제 몫입니다. 쉽게 말해 몸으로 하는 일은 잘합니다. 이런 사위를 그래도 장모님은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장모님, 사위가 왔는데 씨암탉 한 마리 잡아 주세야죠."
"씨암탉?"

"예 씨암탉요. 사위는 백년 손님이예요."
"씨암탉은 없고, 오리 한 마리 있는데. 오리탕 해주면 안 되겠는가."
"사실 요즘 씨암탉이 어디 있나요. 오리탕으로 하죠."
"그런데 6층까지 하면 오리 한 마리 가지고는 안 되겠는데. 오리집에 가서 사와야겠다."


오리를 한 마리 더 사려고 장모님을 모시고 다녀왔습니다. 커튼 하나 달아주고 장모님께 씨암탉은 아니지만 오리탕을 끓여달라고 했습니다. 해마다 하는 일이지만 커튼 다는 일은 어렵습니다. 고개를 들고 창틀에 있는 고리에 끼워넣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창틀에 커튼을 달고 있다.
 창틀에 커튼을 달고 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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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틀 구석까지 커튼을 다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창틀 구석까지 커튼을 다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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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 달기 10년이 되었는데도 힘듭니다. 이런 일은 재주가 없는지 발전이 없습니다.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본 아내가 벌써 10년째 커튼을 다는데 아직도 힘들어하느냐고 타박을 줍니다.

"벌써 10년째예요. 아직도 힘들어하면 어떻게 해요."
"내가 커튼 전문가도 아니고. 목을 위로 하고 다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아요? 그럼 당신이 하지. 나도 잘 하고 싶지, 하지만 안 되는데 어떻게 해요."

"아무리 생각해도 커튼집 하기는 틀렸어요. 10년을 했으면 눈을 감고도 할 수 있을 것인데."
"그래도 처가 커튼 달아주는 사위는 나밖에 없을 것입니다. 안 그래요?"
"그래 당신 우리 엄마한테 정말 잘해요."


자기 엄마를 위해 커튼 하나 달아주었다고 좋아하는 아내를 보면서 마음이 한 편이 아팠습니다. 잘해 드리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말입니다. 커튼을 달고 있는데 장모님은 오리탕을 끓였습니다. 그리고 아귀찜도 가장 큰 것 하나를 시켰는데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푸짐했습니다. 장모님께 약속했습니다. 내년 겨울에도 커튼을 달아 드릴 것이라고. 항상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커튼#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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