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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물가에는 누가 하얀 목도리와 모자를 씌워놓기라도 한 듯 하얀 눈이 소복소복 내려앉았다.
우물가에는 누가 하얀 목도리와 모자를 씌워놓기라도 한 듯 하얀 눈이 소복소복 내려앉았다. ⓒ 조찬현

눈발이 흩날린다. 잿빛구름에 갇힌 태양은 술래잡기라도 하는 듯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한다. 사의재 돌담에는 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여 있다. 동문주막 문을 열어젖히자 '삐이걱~' 대문 열리는 소리가 귀청을 때린다. 가마솥 형제가 입구에서 여행객을 멀뚱하니 지켜보고 있다.

우물가에도, 장독대에도 누가 하얀 목도리와 모자를 씌워놓기라도 한 듯 하얀 눈이 소복소복 내려앉았다. 사의재 뒤란의 처마에 매달린 시래기 형제들은 맵찬 겨울 찬바람에 투정을 부린다.

 장독위에도 하얀 눈이 소복하게 내려앉았다.
장독위에도 하얀 눈이 소복하게 내려앉았다. ⓒ 조찬현

 사의재 뒤란의 처마에 매달린 시래기 형제들은 맵찬 겨울 찬바람에 투정을 부린다.
사의재 뒤란의 처마에 매달린 시래기 형제들은 맵찬 겨울 찬바람에 투정을 부린다. ⓒ 조찬현

사의재 열린 방에는 도포와 갓이 걸려 있다. 등잔과 빛바랜 서책도 놓여 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아마 이곳 방에 앉아서 <경세유표>를 집필했을지도 모르겠다.

다산이 1801년 11월 23일 강진에 와서 처음 묵은 주막집이 사의재다. 다산은 이곳 주막 뒷방에서 4년을 살았다고 한다. 사의재는 네 가지, 즉 "생각은 마땅히 맑게 하고, 용모는 마땅히 엄숙하게 하며, 말은 마땅히 과묵하게 하고, 동작은 반드시 더디게 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다산은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경세유표>와 <애절양> 등의 저서를 남기기도 했다.

 사의재 열린 방에는 도포와 갓이 걸려있다. 등잔과 빛바랜 서책도 놓여있다.
사의재 열린 방에는 도포와 갓이 걸려있다. 등잔과 빛바랜 서책도 놓여있다. ⓒ 조찬현

사의재(四宜齋), 동문매반가(東門賣飯家), 동천정(東泉亭) 등은 2007년 복원되었다. 다산이 거처했던 곳이 사의재이며 동천정은 정자이다. 동문매반가는 현재 동문주막이라는 이름으로 토속음식과 동동주를 파는 주막으로 운영되고 있다.

 뒤란으로 이어지는 사의재 모퉁이다.
뒤란으로 이어지는 사의재 모퉁이다. ⓒ 조찬현

 찬바람 맞으며 주모상이 추위에 떨고 있다.
찬바람 맞으며 주모상이 추위에 떨고 있다. ⓒ 조찬현

 동천정에 이르는 하얀 눈길이 여행객의 마음을 이끈다.
동천정에 이르는 하얀 눈길이 여행객의 마음을 이끈다. ⓒ 조찬현

다산과 인연이 깊은 강진에는 다산 실학의 4대 성지가 있다. 다산 선생이 강진 유배 생활 18년 중 1801년 처음 머문 동문 밖 주막이 그 첫 번째 성지인 사의재다. 또한 1805년 겨울부터 1년여를 머문 강진읍 보은산 고성사의 보은산방, 1806년 가을부터 2년 가까이 머문 이학래의 집, 도암 귤동마을에 있는 다산초당이다.

사의재를 나와 뒤란의 사립문으로 들어섰다. 드넓은 공터에는 눈이 가득하다. 발밑에서 뽀드득 대는 소리가 서정적이다. 그늘진 그곳에는 찬바람 맞으며 주모상이 추위에 떨고 있다. 주모상 앞에서 한참을 머물러 있다 주변을 살피는데 동천정에 이르는 하얀 눈길이 여행객의 마음을 이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전라도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사의재#강진#동문주막#다산 정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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