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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너무나 익숙해진 이름, 송경동. 사람들은 그를 거리의 시인이라 부른다. 그가 세상의 사소한 물음에 답을 하였다.

 

 송경동 시인 두 번째 시집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송경동 시인 두 번째 시집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 오도엽

송경동 시인 하면 저 구로동 기륭전자 비정규직 농성 천막이 떠오른다. 용산 참사가 일어난 남일당 건물이 떠오른다. 언제부턴가 그의 창작실은 거리가 되었고, 그의 시에는 '투쟁시', '추모시'라는 말이 붙었다. 그의 시들은 서점 시집 코너에 꽂혀있는 대신 머리띠, 현수막, 깃발들이 가득 찬 곳에서 함께 나부꼈다.

 

내게 송경동 시인은 그저 친구다. 자유가 무엇인지 알고, 낭만이 무엇인지 아는 진정한 리얼리스트. 벗이 아플 때 기꺼이 고통을 함께 나누고 벗이 슬플 때 함께 펑펑 울 줄 아는. 술에 취하면 웃통을 벗고 거리를 활보하며 노래를 부를 줄 아는, 그저 그렇고 그런 친구.

 

그런 그를 '데모꾼'이라고 경찰서에 가둔다. 송경동 시인은 '알아서 불어라'며 조서를 꾸미는 형사 앞에서 '무엇을, 불까' 생각한다.

 

'풍선이나 불었으면 좋겠다 / 풀피리나 불었으면 좋겠다 / 하품이나 늘어지게 불었으면 좋겠다 / 트럼펫이나 아코디언도 좋겠지.'

 

바로 이런 인간이 송경동이다.

 

시인은 생각한다. 기껏 휴대전화 통화기록으로 자신을 평가하려는 이 세상의 사소한 물음에 대해 이렇게 답한다.

 

내 과거를 캐려면

최소한 저 사막 모래산맥에 새겨진 호모싸피엔스의

유전자 정보 정도는 검색해와야지

저 바닷가 퇴적층 몇천 미터는 채증해놓고 얘기해야지

저 새들의 울음

저 서늘한 바람결 정도는 압수해놓고 얘기해야지

그렇게 나를 알고 싶으면 사랑한다고 얘기해야지

이게 뭐냐고

 

(시 '혜화경찰에서' 가운데)

 

경찰만 이런 사소한 물음을 던지는 건 아니다. 그를 투쟁 현장에서 만나는 이들도 좌파가 아니냐고도 묻고, 학생출신 아니냐고도 묻는다. 송경동 시인은 이리 답했다. '나는 고졸이며, 소년원 출신에 / 노동자 출신이라고 이야기해주었다' 사상의 잣대로 송경동 시인과 '동지'나 '조직원'이고 싶은 이들에게 말한다.

 

나는 저 들에 가입되어 있다고

저 바닷물결에 밀리고 있고

저 꽃잎 앞에서 날마다 흔들리고

이 푸르른 나무에 물들어 있으며

저 바람에 선동당하고 있다고

가진 것 없는 이들의 무너진 담벼락

걷어차인 좌판과 목 잘린 구두,

아직 태어나지 못해 아메바처럼 기고 있는

비천한 모든 이들의 말 속에 소속되어 있다고

대답한다 수많은 파문을 자신 안에 새기고도

말없는 저 강물에게 지도받고 있다고

 

(시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가운데서)

 

 송경동 시인의 사인한 시집
송경동 시인의 사인한 시집 ⓒ 오도엽

 

송경동 시인의 첫 시집 <꿀잠>에 이어 두 번째 시집 <사소한 물음에 답함>(창비)이 나왔다. 송경동 시인이 투사나 전사이기보다는 내 벗이자 시인이기를 바라는 나로서는 무척 기쁘고 행복한 일이다. 저 물대포가 쏟아지는 거리에서도, 찬 겨울바람에 펄럭이는 농성천막에서도 시를 쓸 수 있는 송경동 시인이 너무 부럽기도 하다. 인쇄소에서 책이 나오던 날, 우연찮게 그를 만나 잉크도 마르지 않은 시집을 선물 받았다. 일 년 동안 입술만 적시던 술을 그날은 밤이 새도록 마셨다.

 

송경동 시인은 세상의 사소한 물음에 대해 어느 물음도 무시하지 않고 친절하게 답하고 있다. 붕어빵 노점상 아저씨 이근재씨의 추모시를 쓰는 송경동은 자신의 시에 대해 성찰을 한다.

 

이런 민주주의가 판치는 세상을

어떻게 그럴듯하게 문학적으로 미학적으로 그려줄까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읊어줄까

국화꽃 같은 누이로 그려줄까

어떤 존엄한 시어를 찾아줄까

그러면 나의 시도 어느 연인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까

그러면 나의 시도 평론가들로부터 상찬받을 수 있을까

 

(시 '비시적인 삶들을 위한 편파적인 노래' 가운데서)

 

송경동 시인은 시인으로서 어떤 시를 쓸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는다. 송경동 시인은 단지 이 시대의 시인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를 고민한다. 그래서 시를 쓰려고 쓴 시는 없다.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찾아다니다 시를 만나게 된다.

 

세계 산재노동자 추모의 날에는 '나의 모든 시는 산재시다'라는 시를, 포항건설 일용노동자 하중근 영전에서 '안녕', 기륭전자 농성장에서는 '너희는 고립되었다', 콜트 콜텍 노동자에는 '꿈의 공장을 찾아서', 택시 운전사 허세욱 열사에게는 '별나로 가신 택시운전사께', 용산 참사 해결을 위해 '이 냉동고를 열어라'라고 때론 분노하고 때론 울부짖는다.

별 수 없는 인간이 송경동 시인이기도 하다. 시인의 첫 해외여행은 멕시코 깐꾼에서 열린 더블유티오 반대 시위였다. 그곳에서 한 농민이 할복으로 항거하였고, 시인은 이국땅에서 추모시를 써야 했다.

 

아무튼 이번 시집이 많이 팔렸으면 한다. 거리를 떠도는 시인에게 차비라도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독자들이 알았으면 한다. 송경동 시인이 누구인지를. 그리고 그의 꿈이 무엇인지를.

 

나의 꿈은 이미 이 세상의 것이 아니다

 

(시 '미행자' 가운데서)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 제12회 '천상병 시상' 수상작

송경동 지음, 창비(2009)


#송경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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