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ㄱ. 사진의 발전

 

.. 벽에 걸어 놓기 좋은 아름다운 사진만 찾는 사람들, 또 그런 사진만 찍는 사람들이 많으면 사진의 발전은 어둡다 ..  <전민조 엮음-사진 이야기>(눈빛,2007) 6쪽

 

 '발전(發展)'은 그대로 두어도 되나, '발돋움'이나 '앞날'로 다듬으면 한결 낫습니다.

 

 ┌ 사진의 발전은 어둡다

 │

 │→ 사진이 발돋움하기에는 어둡다

 │→ 사진이 발돋움할 앞날은 어둡다

 │→ 사진 앞날은 어둡다

 │→ 사진은 앞날이 어둡다

 └ …

 

 보기글에 쓰인 한자말 '발전'을 생각해 봅니다. "발전이 어둡다"고 적었지만, 아무래도 "앞으로 맞이할 나날이 어둡다"는 뜻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는 '발전'보다는 '앞날'을 넣어야 글흐름이나 글느낌이 한결 살아나리라 봅니다.

 

 또는, 한자말 '발전'을 고스란히 두고자 한다면 "사진이 발전하기는 어렵다"로 적어야 알맞다고 느낍니다. "발전이 어둡다"는 아무래도 맞갖지 않습니다. '어렵다'나 '힘들다'를 넣거나, "사진은 발돋움할 수 없다"처럼 적어야 올바르다고 느낍니다.

 

 ┌ 사진은 발돋움하기 어렵다

 ├ 사진은 발돋움할 수 없다

 ├ 사진은 발돋움을 꿈꿀 수 없다

 └ …

 

 이 자리에서는 사진 갈래를 살피며 이야기합니다만, 사진 갈래뿐 아니라 그림 갈래이든 글 갈래이든 춤 갈래이든 매한가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겉보기로 예쁘장한 길이 아닌, 속보기로 알차고 아름다운 길을 찾아야 한다고 봅니다. 겉보기를 예쁘장하게 꾸미는 데에 마음쏟기보다, 속보기를 알차고 단단하도록 여미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내 얼굴과 몸차림을 알뜰히 다스리는 일이 나쁠 까닭은 없으나 내 얼굴치레와 몸치레에 지나치게 사로잡히거나 자꾸자꾸 얽매인다면, 내 참다운 속내와 속삶과 속생각은 그예 사그라들지 않을까 걱정스럽습니다. 우리는 속삶을 가꿀 노릇이요, 겉삶을 가꿀 노릇이 아니지 않느냐고 생각합니다.

 

 ┌ 사진이 발돋움하기란 꿈만 같은 일이다

 ├ 사진이 발돋움을 할 수 있겠는가

 ├ 사진이 나아갈 길은 어둡다

 ├ 사진이 갈 길은 어둡기만 하다

 └ …

 

 밝은 길을 내자면 밝은 넋과 얼을 바탕으로 밝은 삶을 꾸려야 합니다. 내 말글이 언제나 밝도록 애쓰는 가운데, 내 생각과 마음이 밝도록 힘을 쏟아야 합니다.

 

 즐거운 길을 마련하자면 즐거운 넋과 얼을 발판 삼아 즐거운 삶으로 일구어야 합니다. 내 말글부터 늘 즐겁도록 힘쓰는 가운데, 내 생각과 마음에 즐거움이 가득하도록 기운을 쏟아야 합니다.

 

 함께 움직이고 같이 흐르며 나란히 뻗어나가는 말이요 생각이요 삶입니다.

 

 

ㄴ. 교육의 역할

 

.. 이러한 허위를 깨뜨리고 흑인들에게 그들 자신과 세계의 참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다름 아닌 교육의 역할이었다 ..  <하워드 진/유강은 옮김-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이후,2002) 53쪽

 

 '허위(虛僞)'는 '거짓'으로 다듬습니다. "그들 자신(自身)과"는 그대로 두어도 되고, "그들 스스로와"로 손볼 수 있습니다. "세계의 참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는 "세계 참모습을 보여주는 일이"나 "세계가 어떠한 모습인지를 보여주는 일이"로 손질해 봅니다. '역할(役割)'은 '몫'이나 '할 일'로 고쳐씁니다.

 

 ┌ 교육의 역할이었다

 │

 │→ 교육이 할 일이었다

 │→ 교육이 맡은 일이었다

 │→ 교육이 맡은 몫이었다

 └ …

 

 일본 한자말이기에 안 써야 한다고 오래도록 이야기를 하는 '역할'이지만, 이 일본 한자말을 말끔히 털어내는 지식인은 거의 없습니다. 우리 말 '구실'과 '노릇'과 '몫'에다가 '할 일'까지 있으나, 이 같은 말마디를 때와 곳과 흐름에 맞추어 슬기롭게 집어넣는 사람은 몹시 드뭅니다. 말마디 하나를 깊이 돌아볼 줄 아는 지식인은 손가락으로 꼽기조차 힘들고, 글줄 하나를 넓게 살펴볼 줄 아는 글쟁이는 몇 안 됩니다.

 

 말이 씨가 된다 하는데, 우리들은 알차고 싱그러운 씨앗을 뿌리며 튼튼하고 아름다운 말삶을 이루려 하지 않습니다. 좋은 말을 뿌리는 일이 드물고, 궂은 말을 아무렇지 않게 뿌립니다. 우리들 말씨앗과 글씨앗은 얄딱구리하다고 할까요. 씨앗이란 새로운 풀이나 나무가 자라도록 하는 밑힘인데, 밑힘을 엉터리로 내팽개치고 있다고 할까요.

 

 날마다 좋은 씨앗을 뿌리지 못하는 삶이니, 날마다 얄궂은 씨앗만 퍼지면서 얄궂은 말나무가 자라고 짓궂은 말꽃이 핍니다. 나날이 좋은 씨앗을 뿌리고 있다면, 몇 그루 안 되더라도 싱그러운 말나무가 자랄 테고, 고운 말꽃이 피겠지요.

 

 말과 글뿐 아니라 모든 삶자리에서 마찬가지인데, 우리들은 좋은 마음씨앗을 뿌리면서 우리 이웃한테 좋은 믿음과 사랑을 퍼뜨릴 수 있습니다. 좋은 생각씨앗을 뿌릴 수 있으면 우리 둘레에 좋은 일과 놀이를 두루 펼치며 함께할 수 있습니다.

 

 ┌ 나와 세계가 참모습이 어떠한가를 보여주는 일은 다름 아닌 교육이 맡는다

 ├ 내 모습과 세계를 참되게 보여주는 몫이 교육에 있다

 ├ 스스로와 세계가 어떠한 모습인가를 보여주는 일을 교육이 맡아 한다

 ├ 나와 세계를 참다이 보여주는 일은 교육이 해야 한다

 └ …

 

 어쩌면 우리네 교육은 참된 씨앗을 뿌리는 몫을 안 맡고 있는지 모릅니다. 초중고등학교뿐 아니라 어린이집부터 아이들한테 참된 씨앗을 뿌리는 일은 안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착하고 맑은 마음을 키우는 우리 교육일까요? 싱그럽고 알찬 생각을 심어 주는 우리 교육인가요? 슬기롭고 씩씩한 넋을 북돋우는 우리 교육인지요? 바르고 아름다이 살아가는 길을 이끄는 우리 교육이라 하겠습니까?

 

 가르침과 배움이 아름답지 않은 마당에 아름다운 말과 글을 바란다는 일은 부질없습니다. 가르침과 배움이 올바르지 못한 판에 올바른 말과 글을 꿈꾼다는 일은 덧없습니다.

 

 세상이 비뚤어져 있어도 나부터 비뚤어지지 않도록 애써야 합니다만, 세상이 자꾸자꾸 더 비틀리고 뒤틀리고 있으니, 나부터 말다운 말을 지키고 글다운 글을 가꾸기란 그지없이 어렵습니다. 그래도 믿음줄을 놓아서는 안 되고 사랑끈을 버려서는 안 되겠지요. 비뚤어지고 비틀리고 뒤틀리는 세상 물결이라지만, 사람다움을 건사하고 삶다움을 간직하며 말다움을 추슬러야겠지요. 내가 나누는 말 한 마디가 우리 아이한테 좋은 씨앗이 되도록 힘쓰고, 내가 적바림하는 글 한 줄이 우리 동무한테 기쁜 씨앗으로 퍼지도록 애써야겠지요.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의#토씨 ‘-의’#우리말#한글#국어순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