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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민주적으로 익혀

 

.. 아이들이지만 이렇게 나름대로 공동체의 질서를 민주적으로 익혀 나가기도 하고 소수 의견도 존중했다 ..  <안재구-할배, 왜놈소는 조선소랑 우는 것도 다른강?>(돌베개,1997) 26쪽

 

 "이렇게 나름대로"는 "이렇게 제 나름대로"로 다듬고, "공동체(共同體)의 질서(秩序)"는 "공동체 질서"나 "공동체에서 지킬 것일"이나 "사람들하고 어울리면서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를"로 다듬어 봅니다. "소수(少數) 의견(意見)도 존중(尊重)했다"는 "적은 사람들 생각도 섬겼다"나 "작은 목소리도 귀기울여 들었다"로 손질해 줍니다.

 

 ┌ 민주적(民主的) : 국민이 모든 결정의 중심에 있는

 │   - 민주적 개혁 / 민주적 정부 /

 │     이번 선거는 민주적 절차에 의해 치러졌다 / 민주적으로 다스리다

 ├ 민주(民主)

 │  (1) 주권이 국민에게 있음

 │  (2) = 민주주의

 │

 ├ 공동체의 질서를 민주적으로 익혀

 │→ 공동체 질서를 올바로 익혀

 │→ 공동체 질서를 바르게 익혀

 │→ 공동체 질서를 사이좋게 익혀

 │→ 공동체 질서를 서로서로 깊이 살피면서 익혀

 └ …

 

 '민주적'과 함께 '민주주의적'이라는 말마디를 널리 쓰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민주주의'라는 낱말에 '-적'을 붙이는 "민주주의적 선거"는 "민주주의에 걸맞는 선거"나 "민주주의를 따르는 선거"나 "민주주의를 지키는 선거"나 "민주주의를 이루는 선거"쯤으로 풀어내며 말뜻과 말느낌을 살려 보는데, "민주적 선거"라든지 "민주적 개혁" 같은 글월은 이처럼 풀어내기가 만만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민주적'은 이대로 두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괜히 어설피 다듬는다고 건드리는 일은 알맞지 않구나 싶기도 합니다.

 

 다만, '-적'만 덜어 "민주 개혁"이나 "민주 정부"처럼 적어 보면 어떠할까 싶습니다. 때때로 '올바르다'나 '바르다'나 '알맞다' 같은 낱말을 넣으며 아예 새롭게 적으면 어떠할까 싶기도 합니다.

 

 ┌ 민주적 개혁 → 민주 개혁 / 사람들 스스로 뜯어고치기

 ├ 민주적 정부 → 민주 정부 / 사람을 섬기는 정부

 ├ 민주적 절차에 의해 치러졌다 → 올바르게 치러졌다

 └ 민주적으로 다스리다 → 올바르게 다스리다 / 사람을 아끼며 다스리다

 

 "민주적 절차"란 "민주를 지키는 절차"이고, 민주를 지키는 절차란 "검은 꿍꿍이나 꾐수가 깃들지 못하도록 하는" 흐름입니다. 이는 곧 "어긋남이나 잘못이 없도록 하려는" 움직임이며, 이와 같은 움직임은 한 마디로 '올바른' 매무새입니다. 사람을 사람답게 섬기고, 사람을 사람답게 아끼며, 사람을 사람답게 사랑하는 길이란 다름아닌 "옳고 바르게" 살아가는 길입니다.

 

 그래서, "민주 개혁"이나 "민주 정부"라 이야기할 때에, 어느 모로 헤아리면 "올바른 개혁"이나 "바른 개혁", 또는 "올바른 정부"나 "바른 정부"를 가리키는 셈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느끼는 '옳고' '바른' 매무새란 "권력자가 아닌 여느 사람 눈높이와 눈길로 우리 삶을 보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 사람들하고 어울리면서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를 서로 살갑게 익혀

 ├ 여러 사람과 어울릴 때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를 다 함께 즐거이 익혀

 ├ 이웃과 어깨동무를 할 때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를 오순도순 얘기하며 익혀

 └ …

 

 공동체 질서를 '민주적'으로 익힌다는 이야기를 꺼내는 이 보기글을 찬찬히 돌아봅니다. 이 같은 보기글은 그저 이대로 두어야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구나 싶으면서도, '아이들이 민주적'으로 익히는 매무새는 어떻게 보일까 하고 곰곰이 짚어 보고 싶습니다. 하나씩 실마리를 찾아보고 싶습니다. 아이들이 '민주에 따라' 무엇인가를 익힌다고 하면, 서로 제 목소리만 앞세우지 않으리라 봅니다.

 

제 목소리만 앞세우지 않는다면, 이웃이나 동무 목소리를 귀담아듣는 매무새라고 느낍니다. 다른 사람들 말을 곱씹고 새기면서 내 생각을 섣불리 밀어붙이거나 우격다짐으로 몰아붙이지는 않으리라 봅니다. 곧, 서로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며 익히려 하는 매무새가 되겠구나 싶고, 서로 살가이 어우러지는 가운데 익히는 매무새가 되겠다고 느낍니다. 서로 사이좋게 지내는 가운데 익히는 '공동체 질서'일 테지요. 그리고 이 공동체 질서란 "서로서로 오붓하게 어울리는 틀"을 가리킬 테고요.

 

 저로서는 이 보기글을 아직은 또렷하거나 환하거나 깔끔하게 다듬어 내기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도 풀어내고 저렇게도 풀어내는 가운데 '민주'가 무엇이고 '공동체'가 무엇이며 '질서'가 무엇인지를 낱낱이 살펴보고 싶습니다. 우리가 으레 쓰며 깊이 돌아보지 못하는 이런 말마디가 한낱 말마디로 그치지 않고 우리 삶으로 스며들어 제대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좀더 곰곰이 되씹고 싶습니다.

 

어느 만큼 지식이 있는 어른들끼리만 주고받는 말마디가 아니라, 중고등학교 아이들하고, 또 초등학교 아이들하고, 또 너덧 살짜리 어린이들하고 '공동체-민주-질서'를 이야기 나누려 한다면, 우리 어른들은 어떠한 낱말을 고르고 어떠한 말투로 가다듬으면서 생각을 펼쳐야 알맞을까를 찾아보거나 살피고 싶습니다. 우리들 때에는 힘들다 할지라도, 틀림없이 앞으로는 한결 알맞고 싱그럽고 훌륭한 낱말과 말투를 우리 뒷사람이 새롭게 일굴 수 있으리라 믿으며 우리 말 다듬기에 한손을 보태고 싶습니다.

 

 

ㄴ. 작업을 민주적으로 계속해 나간다

 

.. 디자인 작업을 민주적으로 계속해 나간다는 것은 쉽지 않으며 시간이 오래 걸린다 ..  <빅터 파파넥/한도룡,이해묵 옮김-인간과 디자인>(미진사,1986) 42쪽

 

 "디자인 작업(作業)"은 "디자인 일"로 손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계속(繼續)해'는 '이어'로 다듬습니다.

 

 ┌ 민주적으로 계속해 나간다는 것은

 │

 │→ 싸우지 않고 이어나가기는

 │→ 윽박지르지 않고 하기는

 │→ 외곬로 밀어붙이지 않기는

 │→ 작은 곳까지 이야기를 나누며 맞추어 가기는

 └ …

 

 보기글에서 말하는 '민주적' 또는 '민주주의'는 어느 한쪽 생각을 외곬로 밀어붙이지 않는 모습을 가리킨다고 느낍니다. 내 생각만 밀어붙이지 않고, 서로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작은 곳까지 꼼꼼하게 뜻을 맞추면서 함께 일하기는 무척 어렵지만, 이 어려움을 이기면서 서로 즐겁게 일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하고 싶은 모습을 가리킨다고 느낍니다.

 

 내 생각만 하기보다 남 생각을 조금 더 하고, 내 이야기만 떠벌이기보다 옆사람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려는 모습을 가리키지 않느냐 싶습니다. 툭탁툭탁 다투지 않고 일을 하는 삶을, 서로서로 좋게좋게 이야기를 나누며 일을 하는 삶을, 모두 함께 한뜻이 되어 일을 하는 삶을 바라는 모습을 가리키는구나 싶습니다.

 

 ┌ 디자인 일을 모든 사람을 두루 생각하면서 이어 나가기란

 ├ 디자인 일을 이 사람 저 사람 얘기를 모두 들으면서 이어 나가기란

 ├ 디자인 일을 뭇사람 삶을 골고루 살피면서 이어 나가기란

 └ …

 

 참으로 힘든 노릇입니다.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보듬기란. 서로서로 아름답고 거룩한 목숨으로 받아들이면서 내 뜻과 네 뜻 모두 아름답고 거룩하다고 깨닫기란.

 

 그리고, '민주적'이라는 말마디를 가다듬거나 다독여 내는 일도 참으로 힘이 듭니다. 삶이 삶다운 길로 접어들기도 힘들고, 말이 말다운 길로 접어들기도 힘듭니다. 삶이 삶다울 수 있도록 보듬기도 까다롭고, 말이 말다울 수 있도록 보듬기도 까다롭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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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적的#우리말#한글#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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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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