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저씨는, 보기엔 60대 초반 나이로 보이는데 실제 나이는 아직 50대 초반이라고 했다. 내가 운영하는 막걸리 가게에 2년을 드나들었지만 술에 취하지 않고 온 날은 딱 한 번이다. 아저씨는 우리 가게에 들어오시면 항상 큰소리를 치신다. 손님이 많거나 적거나 아저씨에겐 아무 상관이 없다.

 

"어이, 송 선생!"

 

아저씨는 나를 항상 '송 선생'이라고 부른다. 내 성이 송씨라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어이, 송 선생! 여기 막걸리 한 병 줘!"

"아저씨, 오늘도 취하셨구만. 술 그만 드세요."

 

그러면 아저씨는 큰 눈을 더욱 크게 뜨면서 "지금 무슨 소리 하노? 나 안 취했어. 빨리 막걸리 한 병 줘!"라고 큰 소리를 치신다.

 

처음에 멋 모르는 손님들은 아저씨가 와서 큰 소리를 치고 옆 테이블에 참견을 하니 싫어했는데 2년 정도 아저씨가 가게에 오시니 이젠 다들 서로 인사를 하고 아저씨가 술주정을 하셔도 오히려 귀엽다면서 그러려니 한다.

 

동네 술집 어느 곳에서도 아저씨를 받아주는 곳이 없고 문을 열고 들어가면 쫒겨 나는 게 다반사다. 어느 술집에서는 손님과 시비가 붙어 맥주병으로 머리를 맞았다고도 하고 또 어느 술집에서는 주인한테 멱살을 잡혀 길바닥에 내동댕이쳐지기도 했다고 한다. 어느 날은 옷이 다 찢겨져서 오기도 하고 어느 날은 먹다 남은 전어에 모래까지 섞어서 가게에 가져오기도 하신다.

 

어느 정도 아저씨에 대해 알고 보니 아저씨 인생이 불쌍하지만 술을 마신 모습만 보여주는 아저씨를 다른 사람들은 알 리가 없으니 그런 대접을 받는 아저씨가 안타까울 뿐이다.

 

아저씨는 우리 가게 근처에 있는 어느 지하 단칸방에서 홀로 산다고 했다. 결혼도 했었는데 부인이 사이비 종교에 너무나 푹 빠져서 가정도 돌보지 않고 밖으로만 나돌아 이혼을 했다고 했다. 그 이후 책도 많이 읽고 음악도 즐겨듣던 아저씨는 언젠가부터 술에 의지를 하며 살아왔다고 고백을 했다.

 

사람들이 아저씨 별명을 붙여줬는데 그 별명이 '베토벤 아저씨'다. 아저씨는 날마다 술을 드시지만 모르는 게 없으신 분이다. 어려운 책 이야기며 음악이며 영화까지 물어보면 술술 이야기가 풀어져 나온다.

 

그 중에 특히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베토벤 음악을 너무나 좋아한다는 것이다. 우리 가게는 막걸리 가게라서 그냥 편안한 음악, 소위 말하는 7080 음악을 주로 트는데 아저씨는 베토벤 음악이 가득 실린 CD를 가져와서는 날마다 틀어달라고 조르신다. 그리고 음악을 틀어드리면 눈을 지그시 감고 지휘를 하신다. 손님들은 또 그걸 보고 웃느라 정신이 없고.

 

지휘를 하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갑자기 손님들을 향해서 소리를 치시기도 한다.

 

"야! 니들이 베씨를 알아? 베씨 음악이 얼마나 좋은데! 나는 베씨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

 

아저씨가 말하는 베씨는 베토벤의 앞 글자를 딴 베씨이다. 고로 아저씨에게 있어 베토벤은 성은 베씨요. 이름은 토벤인 셈이다.

 

지금까지 '베토벤 아저씨'의 술 전적을 이야기하자면 너무나 많지만 몇 가지만 이야기 해보려 한다.

 

우리 가게에 처음 오셨을 때도 만취가 되어 오셔서는 막걸리 한 병을 달라고 하셨다. 술이 취해 안주는 필요 없을 것 같았다. 밑반찬과 막걸리만 드렸더니 옆 손님들에게 시비를 걸다가 맞을 뻔하다, 또 사과하길 반복하더니 술값을 내지 않으시고 그냥 가셨다.

 

어느 날 지나가는 아저씨를 발견하고는 재미삼아 "아저씨, 막걸리 값 3천원 주세요" 했더니 "뭐라? 3만원이면 주겠는데 3천원이라 못 주겠다"라고 하신다. 그냥 웃으며 넘겼지만 몇 번을 그렇게 돈을 안 내고 가시기에 다음엔 못 오게 했더니 없다던 돈이 지갑에서 얼른 나온다.

 

그 다음부턴 오시면 항상 막걸리 값 3천원을 선불로 내시고는 또 큰 소리를 치신다.

 

"송 선생! 나 막걸리 값 냈제? 얼른 막걸리 한 병 가져와라!"

 

돈을 냈다고 당당하게 소리를 치면 옆 손님들은 그 모습이 재미있어서 웃고 아저씨에게 막걸리 한 병을 사드리기도 한다.

 

요즘 아저씨는 우리 가게에서 말걸리를 마시고 나면 우리 가게 근처 카페에 가시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남들은 카페 가면 맥주 한 병에 5천원, 양주 한 병에 10만원, 20만원도 훨씬 넘는 돈을 주고 마시는데 아저씨는 늘 공짜로 술을 얻어 마시곤 한다. 그리곤 아저씨는 우리 가게 오셔서 또 큰소리를 치신다.

 

"내가 이 동네 카페 안 가 본 데가 없는 사람이야!"

 

사실은 카페 아가씨들이 손님들 있는데 아저씨가 와서 안 가고 시끄럽게 하니 그냥 맥주 한 병 주고 달래서 보내고 남은 양주 한 잔씩 주니 그 맛에 아저씨는 습관처럼 카페에 가는 것이다.

 

어느 날은 카페 손님한테 뒷덜미를 잡혀 나오기도 하고 술에 취해 길 바닥에 몇 시간 누워 있다가 일어나서 가기도 했다. 또 어두워 안에서 보이는 줄도 모르고 카페 창문에 대고 오줌을 싸다가 카페 아가씨에게 봉변을 당하기도 여러 번이다.

 

어젯밤에도 술에 취해 남 가게 앞에서 기웃거리는 걸 보고서도 난 무심히 지나치고 말았다. 아저씨가 가게 오시면 내가 신경 써야 할 게 많아서 일부러 모른 척 한 것이다.

 

가게에 있는 베토벤 CD만 보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아저씨가 눈 감고 지휘하시는 모습도 떠오르고. 아저씨가 술을 끊기에는 너무 멀리 와 버린 것 같아 안타깝지만 술을 드시더라도 이 추운 겨울에 제발 길바닥에 쓰러져 있는 모습만 보이지 않는다면 좋겠다.

 

언젠가 아저씨가 "송 선생! 베씨 노래 좀 틀어봐라!" 하기에 농담삼아 "베씨 CD 버렸어요" 했는데 오늘 아저씨가 오시면 아무 말 없이 틀어드려야겠다. 그럼 아저씨는 또 날 예쁘다고 칭찬해 줄 게 분명하다.

덧붙이는 글 | 특별한 술버릇에 공모합니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