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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산이란 이름이 언제부터인지 우리 뇌리에서 점점 멀어져가는 느낌이다. 노산동, 노산공원, 마산문학관이 떠오르는 곳이 제비산이다. 이 제비산이 마산시도시계획에 의거 노비산공원으로 지정되고도 여전히 제비산으로 불리었으나 지금은 노비산공원이 익숙하다. 제비산은 말이 산이지 도심속 작은 언덕이다.

마산시는 1999년부터 국고 지원을 받아 제비산 중턱에 이은상(1903~1983)을 기리기 위한 문학관 건립사업을 추진해왔는데 열린사회희망연대 등 시민단체는 이은상의 독재부역 경력과 친일의혹을 제기하면서 '이은상 문학관' 건립 반대운동을 벌였고 결국 이은상(노산)대신 마산문학관이란 이름표를 달게 되었다.

지난 토요일 이 마산문학관에서 특별한 행사가 있었다. 고 이선관(1942-2005.12.16) 시인의 4주기 추모행사가 그것이다.

경남도민일보 김주완 기자는 올 2월 창원 상남동에 사신다는 박호철(68)이란 분을 이르러 "마산·창원지역에서 민주화운동이나 노동운동을 해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인하는 '운동권의 원로'이다. 지난 2005년 타계한 이선관 시인이 1942년생이었으니, 1941년생인 그를 '마창 진보세력의 최고 어른'이라고 칭해도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 같다"라면서 이선관 시인을 지역 어른으로 인정한 바 있다.

이날 추모행사는 오후 3시부터 저녁 7시까지 진행되었다. 1부 '인간 이선관을 말하다!' 라는 주재로 이선관 시인 생애사 연구를 위한 좌담회에 이어, 2부 '창동허새비를 꿈꾸며' 라는 문화제로 꾸며졌다. 생전 이선관 시인 영상과 학생인권영화 상영, 무용, 노래공연이 펼쳐졌다.

이 행사에 꼭 참석하리라 다짐하고 메모까지 해두었는데 산에서 일하고 내려오니 저녁때가 다 되었다. 부랴부랴 세수를 하고 작업복을 외출복으로 갈아입고는 행사장에 갔는데 그날 행사 일정 중 마지막 공연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그래도 객석에는 사람들이 재법 자리를 채우고 있었고 김산의 노래공연에 이어 '철부지' 공연이 진행되고 있었다. 김산의 2집 앨범에 수록된 '살과 살이 닿는다는 것은'이란 노래가 나오자 객석에 있는 사람들도 흥겹게 박수로 장단을 맞추어 주었다.

   살과 살이 닿는다는 것은 / 참 좋은 일이다
    손녀가 할아버지 등을 긁어 준다던지 / 갓난애가 엄마의 젓꼭지를 빤다든지
    손자가 할머니께 안마를 한다든지 / 뜻이 맞는 친구끼리 두 손을 꼭 잡든지
    할머니가 손자 엉덩이를 툭툭 친다던지 / 사랑하는 연인끼리 손을 잡고 간다든지
    이쪽사람 저쪽사람 온몸으로 껴안든지 / 사랑하는 연인끼리 입맞춤을 한다든지

이 노래 말은 이선관 시인이 쓴 시이고 여기에 고승하 선생님이 곡을 붙이셨다.

마지막 공연은 철부지가 장식했는데, 철부지 3총사는 빨간 스웨터를 입고 어깨끈 바지에 통키타를 치며 이선관 시에 고승하가 곡을 붙인 '민들레 꽃씨 하나' '독수대'를 불렀다. 이에 철부지 일원으로 나온 고승하 선생님이 "영~ 추모분위기가 아닌 것 같애. 이렇게 빨간 스웨터 입고 신명나게 노래 불러도 되나 모르겠다" 하면서 농담을 하시니 객석에서 더 큰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렇게 행사는 막을 내렸는데 문학관 안을 둘러보니 선생님 유품전이 열리고 있었다. 이 유품전은 추모시기에 맞추어 12월 1일부터 내년 2월 말까지 열린다.

전시된 유품엔 선생님의 일상이 소롯이 담겨있었다. 때묻은 육필원고와 시집 속 생전 가공되지 않은 모습, 시화와 자화상 등 볼거리가 많았다. 이것만 둘러보아도 선생님 생각과 고뇌, 불구의 몸이지만 무엇을 지향했는지, 왜? 그 분이 떠나고 없는 이 자리에서 해마다 산자들이 추모행사를 하는지도 이해할 것 같다.

이 글을 포스트하기 위해 인터넷을 뒤지다 지난해 이맘 때 쓴 '파비님'의 글이 있어 읽어보니 생생한 감동으로 또 다른 이선관을 이해하는 기회가 되었다.<관련블로그>

파비님은 자신이 쓴 글에서 "이선관의 시는 매우 단순하면서도 서민적이며 해학적입니다. 시인은 심한 뇌성마비로 발음이 정확하지 않습니다. 저도 딱 두 번 그분과 인사를 했지만, 그분의 말을 알아듣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선관 시인은 부정확한 발음을 오히려 해학으로 승화시켜 한편의 시로 만들어냈습니다. 이성모 교수(김달진 문학관장)는 "은폐되거나 억제된 몸이 오히려 장난스러움으로 전복되는 한편, 천진난만하기까지 하다"는 말로 그의 시를 평가합니다"라고 이선관을 말한다. 여기에 이선관의 모든 것이 있고 정말로 이 이상의 표현은 없을 것이다.

   나는 初志一貫으로 말을 하면
    당신네들은 좆이 일관으로 알아듣고

    다시
    나는 初志一貫으로 말을 하면
    당신네들은 좆이 일관으로 알아듣고

    또다시
    나는 初志一貫으로 말을 하면
    당신네들은 좆이 일관으로 알아듣고

   -「나는」 이선관

위 시에서 그 이선관의 마음을 알 수가 있을 거다. 소통되지 않는 이 사회, 현실, 아마 죽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이어 파비님은 "시인은 몇 번이나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여 비장한 마음으로 자살을 시도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시인의 비장함은 "결여된" 자신의 존재를 넘어 "결여된" 사회를 향한 저항으로 발전합니다. 시인의 날카로운 통찰력은 어쩌면 결여된 존재에 대한 자아로부터 나오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인은 이미 산업화가 시작되던 초기에 "침식되어 가는 자연과 오염에 시달리는 인간"을 발견합니다"라고 썼다.

이선관 선생님은 작품의 주재를 지구환경, 통일, 민중의 삶, 인간, 자연을 소재로 하고 있으며 저항 또한 빼 놓을 수 없는 정신세계이다. 소통되지 않는 사회, 답답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시가 있다.

바로 <헌법 제 1조>인데 이 헌법 제 1조는 이미 1972년에 시인이 썼던 시이다. 파비님은 자신의 글에서 "시인의 인식세계는 이처럼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사람들을 묶어주는 마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 1조, 제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제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둔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에 대해 시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라고 하면서 아래 시를 소개했다.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이다.
    그렇다!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이다.
    그렇다니까!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이다.
    그래...... .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이다.
    ...... 그래.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이다.
    ...... 허긴 그래.

   -「헌법 제 1조」 이선관, 1972년, 씨알의 소리

이것만으로도 선생님의 정신세계가 어떠하였는지 엿볼 수 있을 것이고 이토록 그를 못잊어하고 추모해야 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지난 2005년 이맘때 아니 딱 오늘 14일 선생님이 영면하셨을 때 마산은 슬픔의 도가니었다. 수십명의 장례위원이 꾸려지고 애도의 물결은 강물이 강둑을 넘쳐 흐르듯 넘쳤다.

당시 추모칼럼을 썼던 이성모 교수는 "똥같은 사이비 애국자가 판을 치는 조국의 현실에서 스스로 사이비를 고집했던 시인이다"라고 하면서 그가 스스로 일컫는 말 삼류시인, 능마주의, 거지, 바보, 창동허새비가 그것이라고 했다.

그때 나도 시인을 깊숙이 알지 못한 상태에서 그냥 현실사회의 부조리한 부분을 바꿔야 한다는 공감이 있었기에 "본인의 장애보다 사회의 장애에 더 마음 아파했던, 그래서 사회 장애의 장막해체에 온 정열을 다 받쳤던 임의 그 숭고한 정신은 우리 사회에 분명히 각인되어 좋은 세상이 되리라" 하고 추도 글을 올렸던 기억이 난다.

마산문학관에서 이선관시인의 유품전시를 알리는 글

이선관(1942-2005)은 마산에서 태어나, 성호초등학교와 창신중, 고등학교를 거쳐 경남대학교에서 수학했습니다. 어릴 적부터 평생을 뇌성마비 장애의 굴레에 묶여 살았지만, 첫시집 <기형의 노래>(1969)를 비롯해 13권의 시집을 펴냈습니다.

그가 문학을 통해 보여준 세계는 사람.지역.나라.자연에 대한 사랑과 실천이었습니다. 또한 이선관은'마산의 터줏대감' 또는 '창동 허새비'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닐 정도로, 지역사회에서는 널리 사랑받았던 시인입니다. 그에게 있어 마산은 문학 활동의 중심 무대였습니다.

그렇듯 그는 마산을 소재로 삼은 작품을 많이 남겼는데, 대표작 <독수대>는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애송되는 작품입니다.

마산문학관에서는 문향 마산의 전통과 자산을 널리 알리고, 훌륭한 문학인들의 삶과 정신을 이해하기 위해 특별기획전을 열고 있습니다.

이번 특별기획전 <창동 허새비의 노래과 꿈>은 이선관 시인의 유품을 중심으로 마련했습니다. 그의 저서 뿐 아니라, 육필원고, 시화, 스크랩, 사진, 소장도서, 기타 유품 등을 펼쳤습니다.

이선관 시인이 타계한 지 네 해가 지났습니다. 이번 특별기획전은 그의 삶과 문학을 만날 수 있는 뜻 깊은 자리가 될 것입니다.

줄곧 마산에 살면서 활동했던 그의 문학살이는 마산의 소중한 문학 자산이라 하겠습니다. 문학으로 사랑을 실천하고자 했던 창동 허새비의 노래가 두척산과 합포만에 울려 퍼지기를 바랍니다.

이 유품전시회는 12월 1일부터 내년 2월 28일까지 열립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임종만의 참세상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이선관시인, #마산문학관, #창동허새비, #제비산, #철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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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시청에 근무하는 공무원입니다. 공무원노조에 관심이 많으며 한때 지역에서 중추적인 역할도 했습니다. 이로 인하여 2년여 해직의 아픔도 격었습니다. 공직사회가 깨끗해지고 비굴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며 앞으로도 어디 어느 위치에 있던 이를 위해 노력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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