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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일 오후 홍대 앞 클럽 '오백'에서 열린 '워크나인 잔치'
13일 오후 홍대 앞 클럽 '오백'에서 열린 '워크나인 잔치' ⓒ 김시연

"일본에선 '일본해', 한국에선 '동해'라 부르는 저 바다를 우린 어떻게 불러야 할까?"

90여 일 함께 고민하며 쉼 없이 걸어온 한일 젊은이들도 숨 돌리기가 필요했을까? 도보 순례 100일 대장정의 대단원을 고작 나흘 남겨둔 13일 오후 홍대 앞 한 클럽에서 작은 잔치를 벌였다.

워크나인(Walk9). 전쟁 포기와 군대 보유 금지를 밝힌 '일본헌법 제9조'를 지키려는 일본 젊은이들의 발걸음이 바다 건너 한국으로 이어진 건 지난 9월 9일. 강화도 마니산을 출발해 한반도를 시계 방향으로 돈 뒤 지난 10일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한국인 5명을 포함한 일본인과 재일한국인 30여 명이 긴 여정을 줄곧 소화했다. 또 중간 중간 일본에서 또 한국에서 온, 10대부터 70대에 이르는 많은 동반자들이 함께 걸었다.

이날 잔치는 지난 여정을 정리하고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며 스스로 힘을 북돋는 자리였다. 생명평화결사를 비롯해 이날 순례꾼들을 응원하려 모인 100명 남짓한 손님들 가운데는 낯익은 얼굴도 끼어 있었다. 안상수체로 잘 알려진 디자이너 안상수 홍익대 교수나 '까탈이 도보여행가' 김남희씨도 그들 가운데 하나.

평택 미군기지 여정에 잠시 동참했다는 김남희씨는 "일본 젊은이들이 추운 겨울 낯선 한국 땅에서 주먹밥 먹어가며 힘들게 걷는 모습에 감동했다"면서 "그들이 뭘 느꼈고 어떤 고민을 했고 어떻게 변했는지 듣고 싶어서 이 자리에 오게 됐다"고 말했다. 

마지막 날이 다가올수록 설렘에 밤잠을 설치기 일쑤라는 순례꾼들은 이번 순례에서 무엇을 남겼을까?

한국인-일본인-재일한국인, 서로 상처를 보듬다

 워크나인 한국순례를 함께한 '로키' 권순록씨(왼쪽)와 호코야마 게니치씨
워크나인 한국순례를 함께한 '로키' 권순록씨(왼쪽)와 호코야마 게니치씨 ⓒ 김시연

순례꾼들에게 '로키'로 불리는 권순록(30)씨는 3개월 전만 해도 여행을 좋아하는 평범한 한국 젊은이였다. 일본어 실력 덕에 워크나인 통역을 맡으면서 이 '고난의 행군'에 뛰어들었다. 처음엔 일단 걸어보자, 재밌을 거다, 라는 막연한 환상에서 출발했다.

"막상 걸어보니 준비가 제대로 안된 탓에 매일 싸우게 되더라고요. 문화도 달라, 언어도 달라, 서로 익숙해지는 데 50일은 걸린 거 같아요. 동해 돌아서 부산쯤 오니 친해지더라고요."

이런 갈등은 한일 과거사가 남긴 상처들을 함께 돌아보며 보듬어갔다.

"처음에 한일 과거사를 전혀 모르던 일본 젊은이들이 적극적으로 배우려는 모습에 감동받았어요. 잘 몰랐던 저도 함께 배우는 보람도 있었고요. 함께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보면서 한국이나 일본이란 국가를 떠나 인간으로서 전쟁을 보게 됐어요."

워크나인 100일 이후 그는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그전까진 그냥 자기만족으로 여행을 좋아했다면, 이젠 나도 만족하면서 세상에도 도움 주는 그런 여행을 하고 싶어요."

 워크나인 한국순례 100일 여정을 담은 대형 지도
워크나인 한국순례 100일 여정을 담은 대형 지도 ⓒ 김시연

일본인이나 재일한국인이 한국에서 받은 인상은 '친밀감'이었다. 오키나와에서 다이빙 강사를 하고 있는 호코야마 게니치(38)씨. 친구를 통해 2년 전 워크나인 순례를 알게 된 뒤 이번 한국 순례에 처음 동참했다.

"순례를 다녀보니 한국이나 일본이나 자연과 사람은 똑같아서 고향 같고 형제 같다고 느꼈어요. 일본에 돌아가면 한국 순례를 많이 알리고, 걷는 게 대단하다는 것도 알리고 싶어요."

10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는 재일한국인 최정미(31)씨에게도 한국은 "일본 시골처럼 익숙하고 그리운 느낌" 그 자체였지만 보는 눈은 남달랐다. 

"곳곳에 전쟁 상처가 많아 마음이 아픈 적도 많았어요. 빨치산, 일제시대 상처, 5.18 상처… 재일교포지만 몰랐던 '사죄의 마음', '무거운 마음'을 갖게 됐어요. 또 한국인과 일본인 사이에서 흔들릴 때도 많았는데, 많은 사람을 만나보니 더 흔들리지 않는 방법이 동아시아인이 되는 것이라는 희망도 생겼어요."    

 아이들 앞에서 붓글씨를 쓰고 있는 재일한국인 최정미씨. '길 위의 학교'로 불리는 '보따리학교' 어린이 5명도 당당한 순례꾼이었다
아이들 앞에서 붓글씨를 쓰고 있는 재일한국인 최정미씨. '길 위의 학교'로 불리는 '보따리학교' 어린이 5명도 당당한 순례꾼이었다 ⓒ 김시연

일본 헌법 9조가 한반도에도 중요한 까닭

 워크나인 제안자인 마사키 타카시씨.
워크나인 제안자인 마사키 타카시씨. ⓒ 김시연
'워크나인 제안자'인 마사키 다카시(64)씨는 어떻게 일본에 이어 한국 순례를 택하게 된 것일까? 전 세계적 '변혁의 시대'였던 1960년대에 12년간 여행하며 인도철학을 배운 뒤 일본에서 농사에 전념하던 마사키씨를 바깥세상으로 끄집어 낸 것이 바로 '일본헌법9조'였다.

일본에도 '헌법9조'를 지키자는 움직임이 많지만 마사키씨는 이를 환경 쪽에서 접근했다. 그래서 지난 2007년 봄 워크나인 일본 순례 길에도 나무 심기가 빠지지 않았다. 그는 "환경은 어머니이고 사람은 환경과 하나인데, 자연이 볼 때 인간의 가장 큰 문제는 전쟁"이라면서 "일본이 헌법 9조를 버리고 군대를 가지면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커진다"고 경고한다.

마사키씨는 "전쟁이 터지면 원자력발전소가 공격받을 수 있고 원자로 하나만 터져도 동해 바다는 몇 만 년이나 괴로울 것"이라며 "헌법9조는 전쟁을 막는 작은 브레이크인 셈인데, 일본인 스스로 헌법9조를 택함으로써 더 강한 힘을 지니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평화헌법이 한국과 일본뿐 아니라 지구의 문제, 동아시아 문제라는 넓은 의식을 지녀야 한다"면서 "지난해 한국에 왔을 때 많은 이들의 평화 염원을 보면서 강한 가능성을 갖게 됐다"고 한국 순례 배경을 밝혔다.

한국인에게 '워크나인'을 알리고 있는 순례꾼 김현우씨는 "일본 정권이 바뀌었지만 평화헌법 개정 움직임에는 변함이 없고 여론도 반반인 상황"이라면서 "이번 개정안을 부결시켜 과거 강대국에 의해 타의로 받아들인 '평화헌법(일본헌법 9조)'을 '일본인 스스로 다시 선택하자'는 의미"라고 말한다.

국적 뛰어넘은 '동해' 새 이름 찾기, 결과는?

 일본 평화헌법 아래서 놀고 있는 아이들
일본 평화헌법 아래서 놀고 있는 아이들 ⓒ 김시연
이번 '워크나인 한국순례'를 이끈 건 '동해(일본해)라는 이름을 다시 생각해보자'는 한 편의 시였다. 지난 2006년 11월 한일정상회담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일본 아베 총리에게 "동해를 '평화의 바다'로 부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한 것을 떠올린 듯, 마사키씨는 양국 정상이 아닌 바다를 둘러싼 두 나라의 시민들이 직접 나서 서로 공유할 만한 이름을 찾아보자고 제안했다.

이날 사회를 본 '보따리학교' 교사 김재형씨는 "동해를 걸으며 동해 바다를 어떻게 불러야 할까, 남해를 걸으며 남해 바다를 어떻게 불러야 할까 고민했다"면서 "처음엔 서로 갈등도 있었지만 지난 96일 동안 걷고 생각하며 이 자리에 오면서 공감을 확대했고, 새로운 사회의 가능성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서로 말이 안 통해도 눈빛만으로 호흡을 맞춰 악기를 연주하는 순례꾼들은 이미 동해와 일본해 사이에서 평화 만드는 법을 배운 듯했다.     

순례꾼들은 14일 서울을 다시 출발해 오는 17일 임진각에서 100일 대장정을 마친다.

 워크나인 순례 참가자들이 호흡을 맞춰 밴드 공연을 하고 있다.
워크나인 순례 참가자들이 호흡을 맞춰 밴드 공연을 하고 있다. ⓒ 김시연

덧붙이는 글 | 워크나인 카페는 http://cafe.naver.com/walk9



#워크나인#WALK9#일본 평화헌법#동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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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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